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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버린 사람들 (삿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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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버린 사람들 (삿 2:11-15)


근자에 미국교회가 침체 현상 때문에 깊은 시름에 빠져있습니다. 

우선 2009년 ‘미국인 종교성향 조사’(American Religious Identification Survey)를 보면, ‘무종교’라고 답한 미국인들의 비율이 1990년 8.1%에서 2008년 15%로 20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무종교인들 가운데 18-29세의 젊은이들이 많은데, 1990년 11%에서 2009년 22%까지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무종교인들 가운데 73%는 신앙의 가정 출신이고, 66%는 종교를 떠나서 무종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오늘 미국의 상황은 과거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보다 빠른 속도로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실정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최근의 상황은 미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2005년 통계청이 보고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수는 861만 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1.6%가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003년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 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 종교를 가졌었지만 지금은 비종교인인 사람들 중 과거 가졌던 종교가 기독교인이었던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을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람들은 왜 교회를 떠날까요? 왜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일까요? 그리고 저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들이 믿음을 지켜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어왔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고,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때가 있어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을 저버리는 현상 뒤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표면적인 이유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현상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속을 깊이 드려다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구약의 사사시대가 시작될 때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라 함은 영적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뒤 사사들이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지도하던 시대를 말합니다.

여기서 사사라함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이후 왕이 나라를 통치하기 전까지 나라를 이끌던 지도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사는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나라 전체를 이끌던 영적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왕이나 제사장처럼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던 지도자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세움을 받아 그 문제를 해결했던 임시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영적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뒤 사사들이 통치하게 되면서 영적 환경이 크게 악화되었습니다. 삿 2:6-10까지 여호수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상황을 오늘 본문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영적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믿음을 저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버린 이유

그러면 도대체 저들은 왜 여호와를 버렸을까요? 애굽에서 인도하셨고,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그 땅에서 살게 해 주신 하나님을 왜 떠나게 되었을까요?

첫째,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난 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점령하던 그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다음세대가 뒤를 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여호와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저들이 여호와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잘 모르니, 여호와를 왜 섬겨야 할지 또 여호와를 어떻게 섬겨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행하신 그 놀라운 역사를 모르니, 감사하며 감격하며 여호와를 섬기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상들을 따라 형식적으로 여호와를 섬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고 또 유혹이 다가올 때 쉽게 흔들렸고, 쉽게 여호와를 버리게 됐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면서도 예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납니다. 그들이 믿음을 저버립니다. 예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인생의 위기가 와도 예수를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유혹과 시험이 다가와도 예수를 버리지 않습니다.

미국의 새들백 교회는 교인을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합니다.

1. 마당교인(The Crowd)입니다. 그저 가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쁘면 못나오고, 생각나면 주일예배에 참석합니다. 교회를 나오지만 예수를 잘 모릅니다. 

2. 교회원 (Congregation)입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예배출석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교회 교인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를 어렴풋이 알 뿐입니다.

3. 헌신자 (The Committed)입니다. 이들은 제자훈련을 통해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사역과 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예수를 어느 정도 압니다.

4. 핵심교인 (The Core)입니다. 이들은 교회의 리더 그룹입니다. 교회를 위해 십자가를 질 줄 압니다. 이들은 예수를 깊이 압니다.

새들백 교회가 이 교인들 중에 누가 교회를 떠날까를 살펴보았답니다. 어느 부류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상태에 오랫동안 그대로 머물러 있을 때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당교인이 마당교인인 채로 오래 머물러 있을 때,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원도 교회원인 채로 오래 머물러 있을 때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헌신자들과 핵심교인들 중에서도 오랫동안 믿음이 정체되어있을 때 교회를 떠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믿음이 자라지 못하는 영적 정체현상입니다. 예수를 오래 믿어도 여전히 예수를 제대로 잘 모르면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써 예수를 알아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예수를 잘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과 다음세대들에게 예수를 잘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보다 다른 신들을 더 좋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버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섬겼던 신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신이 바알입니다. 이 바알 신은 농사를 짓던 가나안 주변 나라들이 섬기던 신입니다. 다산과 풍요의 신입니다. 그래서 당시 가나안 주변 나라들은 농사짓는 모든 일들을 이 바알신을 섬기는 일과 연관지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농경문화가 곧 바알을 섬기는 종교문화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나안 사람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부분 저들에게 배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호와를 섬기는 일보다 바알을 섬기는 일이 더 유익해 보입니다. 더 신진문화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보다 바알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바알제사는 음란문화와 연계되어있었습니다. 바알신전에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제사과정 중에 여사제들과 음란한 행위들을 벌이곤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의 유혹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유혹의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여호와보다 바알을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2010년 10월 미국의 종교현상을 연구하는 ‘퓨 포럼’(Pew Forum on Religion and Public Life)이 조사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전보다 5-6배 빠른 속도로 종교로부터 이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심층 분석했는데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도덕적 타협’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청년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소위 ‘파티 문화’랍니다. 이런 저런 명목으로 자주 파티에 참석하게 되는데 이 때 분위기에 휩쓸려 성관계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경우 동거를 하기도 합니다.

이 때 자신의 신앙과 삶 사이에 감당하기 힘든 괴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양심의 가책에 지치고 죄악된 생활 방식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경우 결국 신앙을 저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지적 회의나 교회에 대한 실망감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런 도덕적 타협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한 복판에서 갖가지 유혹에 휘말리면서 예수보다 더 매력적인 것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저들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그 유혹을 잘 이겨야 합니다.

딤후 4:10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사명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갔다는 것입니다.

데마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일찍부터 복음을 받아들였고 바울의 동역자로 전도 여행에 참여했습니다. 그 후 골 4:14를 보면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함께 옥살이를 하면서 믿음을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바울이 두 번째 감옥에 투옥될 때, 그 곁을 떠나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데마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과거에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며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을 경험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유혹에 흔들립니다. 이 때 이것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세상을 사랑하여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저버립니다.

우리가 예수를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찬양을 더욱 뜨겁게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버린 결과

1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게 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보살피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롬 1:1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믿지 않는 자들을 대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롬 1:24 이하에 하나님의 진노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또 롬 1:28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진노를 나타내시는데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멸망 길로 치닫더라도 못본 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충청도 사투리로 “내비둬!” 더 줄여서 “냅둬!”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냅두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잠시 잠깐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 부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죄지으면서도 떵떵거리고 잘 사는 사람들 부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진노하고 계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행동이 저들을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변의 여러 나라와 부족들이 계속 쳐들어와서 저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들은 사사시대 내내 주변의 여러 나라의 침략을 받아서 정말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잠 3: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버려 두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징계를 하십니다. 돌아오도록 채찍질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게 되면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이 내려 쳐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에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예수를 버리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들이 예수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유혹에 빠져 예수보다 더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더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더 잘 믿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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