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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내의 도리 (엡 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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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도리 (엡 5:22-24)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5월이 가정의 달인 것을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지난 15일은 ‘스승의 날’이자 또한 ‘가정의 날’이었으며, 내일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한 것은, ‘둘(2)이 만나 하나(1) 된다.’는 의미에서 21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가정의 달에 또는 부부의 날을 앞두고, 오늘은 먼저 “아내의 도리.” 다음 주일에는 “남편의 도리”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의 이혼이나 가정 붕괴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직 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부부관계는 어떠할까요? 다음은 최근 인터넷에 실린 기사입니다. <고시를 패스한 박상수씨는 대기업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있는, 한마디로 잘나가는 남자다. 그의 아내 차윤정씨는 전업주부로, 마흔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미인이다. 대학생·고등학생 두 아이는 크게 속 썩이는 일 없이 제법 공부도 잘한다. 회사 행사는 물론, 아내의 동창 모임에까지 부부가 함께 참석하니 정말 부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들 속 모르고 하는 얘기다. 박씨 부부는 벌써 2년 반 넘게 각방 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동반 모임에서 웃고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와서는, 말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잉꼬부부의 모습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부부동반 모임에서 한 번이라도 아내를 만나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꿈에도 그런 모습을 떠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박씨는 생각한다. 아내는 부부동반 모임에만 가면 영판 딴사람이 된다. 상대방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아, 네네~” 호응을 잘해주는 아내는, 박씨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다. “우리 그이는요~”라며 이따금 흉인지 자랑인지 얘기하는 아내가 박씨는 가증스럽다. 집에만 오면 웃음기 가신 얼굴로 불만만 털어놓는 아내가 아닌가?

한편 아내인 차씨는 언젠가부터 “내 인생은 이게 뭔가?” 불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학벌이 기운다며 시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뒤로, 보란 듯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노라며, 박씨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헌신한 세월이었다. 덕분에 남편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승진을 거듭했다. 그런 남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맘 한편은 씁쓸했다. 남편은 바쁘다며 매일 밤늦게 들어왔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는 날이 많았다. 

가족은 늘 뒷전인 것 같았다. 대화는 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공통의 대화 주제는 점점 더 찾기 힘들어졌다. “내게 남은 건 뭔가. 난 그냥 아줌마가 됐고, 평생 남편 인생에 들러리만 섰다.” 차씨는 이런 생각에 자주 분통이 터졌다. 그래도 가정은 유지된다. 실제로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공식 석상에선 잉꼬부부처럼 행동하는 부부를 두고 ‘쇼윈도 부부’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이런 현상을 가리켜 ‘가정 내 이혼’이라고 한다. 자녀양육 문제나 경제적 이유, 체면 등 갖가지 이유로 한집에 살고 있을 뿐, 개인적인 대화나 부부관계는 물론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부는 사실상 별거 관계나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애정 없는 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는 부부들이, 상담소를 찾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 소장은 말한다.>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가정들의 한 단면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부란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세월을 보내고, 후에는 서로 다른 것에 절망하고, 나중에는 알아도 알아도 끝이 없다는데 좌절하게 된다. 이것이 부부의 일생이 된다.”고 했습니다. 과연 부부가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한때 일본에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질기고 강해진 것은 양말과 여자밖에 없다는 말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양말이 질겨진 것은 방직산업 발달로 천이 면직에서 나일론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이고, 여성이 강해졌다는 것은 패전의 상처를 아물게 한 주역이 바로 여성이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성이 강해진 것은 일본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나라의 여당과 야당의 대표가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여성 국회의원은 48명이 된다고 하니, 대단한 여풍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 G 임직원 933명을 대상으로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한 결과, 사회 추세를 반영하듯 가정에서도 여풍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먼저 “우리 가족 중 파워가 가장 센 사람은?”이란 질문에 응답자 중 49%가 아내라고 대답한 반면, 남편은 28%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어 “우리 가족 중 TV 채널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나?”라는 질문에도 아내가 36%로 1위를 차지했으며, 남편은 27% 부모님 등 기타 가족 24%, 자녀 13% 순이었다고 합니다. 응답자 가운데 남자가 약 80%였던 것을 감안해 볼 때, 남편들 스스로 가정의 주도권을 아내로 인정한 셈이라는 것입니다. 여성의 파워가 실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권위의 상실에 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잘못되어 가는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모든 영역에서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린 데 있습니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로서 대통령의 권위라든지, 성직자의 권위, 또는 스승의 권위, 혹은 가장의 권위가 모두 땅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오늘날 아무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권위의 상실, 그것은 먼저 우리들의 가정과 결혼 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남녀가 동등하고, 어떤 차별이나 구별도 해서는 안 되며, 완전히 평등하다고 주장한 결과, 그만 가정의 규율과 질서가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불량 청소년이나 비행 청소년들은, 이혼한 가정, 또는 아내가 남편을 향해 마구 대들고, 남편이 아내를 구박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런 아이들은 아버지나, 어머니나, 다른 누구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여성 운동은 아내와 어머니에게 호전성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나 어머니가 대등한 위치에 자신들을 세워 놓고,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아버지의 권위와 영향력을 약화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점점 돈을 벌어 오는 사람으로, 봉급을 타 오는 사람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상들이 결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얼마나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결혼관은 전적으로 성경의 교훈에 의해서 재조명되어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난 결혼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데요.”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성경이 결혼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씀하는가?”라고 말해야 합니다.

엡 5:21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아내와 남편’ ‘자녀들과 부모들’ ‘종과 상전’에 대한 교훈을 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경우에서 순서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 경우에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보다 아내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고, 부모보다 자녀에게, 그리고 상전보다 종에게 먼저 복종을 가르칩니다. 모두 복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 맨 먼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아내들아 너희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왜냐하면 그것이 주께 대한 너희 의무의 일부이기 때문이요, 그렇게 하는 것이 주께 대한 너희 복종의 표현이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는 남편만을 위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주님을 위해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들은 남편만을 위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종은 주님께 대한 것입니다. 곧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게 해야만 주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 드리고 싶은 그리스도인 아내는, 누구나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이 구절에서 아무런 모순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내에겐 오히려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다음은 가정 사역 연구소 소장 송길원 목사님의 설교중 일부분입니다. <요새 각 가정마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남편들이 아내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래도 성경은 아내에게 ‘순복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보다 열등하시기에 순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순복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해서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승리와 평안을 위해서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와를 주실 때,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각 가정에 돕는 천사를 보내주었는데, 그 천사가 바로 아내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고 “아내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구나!”하고 깨닫고, 아내 역시 스스로 자기 가정을 위해 하나님이 보낸 천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내의 매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내의 교양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돕는 모습 속에 있습니다. 재테크를 잘하고, 말을 잘하고, 사회적인 능력이 있어야 아내가 위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믿음을 도와주고, 자녀를 도와서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보이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천사의 모습을 할 때 아내는 위대해집니다. 인생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늘 아래서 살고, 자식은 부모 그늘 아래서 살듯이, 아내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똑똑해도 아내는 남편의 그늘 아래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에게 순복하려고 할 때, 어떤 모습으로 순복해야 할까요? 성경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순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대개 믿지 않는 남편들은 아내의 말이 아닌, 아내의 행동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을 구원해보겠다고, 시간이 있으면 남편에게 설교합니다.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어도 꿈쩍하지 않는 남편이, 아내의 설교로 움직일까요? 아내의 설교는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가르치려는 말만 들으면 “또 설교한다!”라고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설교자가 되기보다 순복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순복하는 모습에 감격합니다. 속으로 아내를 존경하고 인정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정결함을 느낍니다. 결국 아내의 사랑과 교양과 고결함에 압도되어, 남편은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옵니다. 그것이 남편을 이끄는 가장 소중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또 한 가지 아내들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곧 삼상 16:7절 말씀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무엇을 보신다고 했습니까?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사람은 무엇을 본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외모를 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아내의 외모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아내들이 간과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다음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십시오.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왔는데, 아내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보니 아내가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어디 가는 거야” “시장에 좀 다녀오려고요.” “시장에 가는데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화장을 해?” “고기 집 아저씨한테라도 예쁘게 보여야죠. 그래야 좋은 부위로 많이 줄 거 아녜요?” 남편의 기분이 좀 이상해졌습니다. 

“아니 난 그렇게 해서 많이 받아온 고기는 먹기 싫은데” 남편은 자신이 들어올 땐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내가, 고기 집 아저씨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는 말을 듣고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그래서 그날 저녁에 아내가 차려온 밥상의 고깃국에는 숟가락도 대지 않았습니다. “여보, 당신 왜 국을 안 먹어요?” “내가 먹기 싫다고 그랬잖아? 고기 집 아저씨한테나 갖다 주라고!” 그래서 둘은 그날 저녁에 한바탕 싸웠습니다.

흔히 우리나라 여성들은 집에 있을 때는 아무렇게나 하고 있다가, 외부에 나갈 때는 외모에 너무 많은 신경을 씁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남편에게 더 잘 보이려고 노력을 해야 될 텐데 말입니다. 흔히 여자들은 연애할 때는 그렇게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을 하다가, 일단 결혼을 한 후에는 전혀 달라집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관심이 떠나가는 남편을 보며 변했다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의 일부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남자들은 시각적인 것에 아주 민감합니다. 밖에서 만나는 여성들은 모두 아름답게 치장한 여성들인데, 집에 있는 아내는 아무렇게나 하고 있으면 남편은 아내에 대한 매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한 눈을 팔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다듬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에게 매력을 잃지 않는 아내의 모습을 간직하려면, 외모에 좀 더 신경을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내 된 여러분은 피곤해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남편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합니까? 생기 있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입니까? 활짝 웃는 미소 띤 얼굴입니까?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고 화장을 새로 합니까? 머리를 다시 한 번 빗습니까?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습니까?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헝클어진 머리로 세수도 안하고 있다가, 밖에 나갈 때만 화장하는 아내들이 있습니다. 누구 아내입니까? 어떤 남편이 아내가 너무 매력이 없어 이혼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이혼하러 법원에 가는 길에 생각이 바뀌었답니다. 왜냐하면 이혼하러 가기 위해 차려입은 아내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더랍니다. 마치 평생 처음 보는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누가 한번 웃자고 만든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웃고만 지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내 된 여러분, 남편에게 잔소리 대신 격려를 하십시오. 말 많은 집의 장맛이 쓰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잔소리는 독이 되지만, 격려는 약이 됩니다. 한창 정치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루스벨트는 39세 때에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보행이 곤란해졌습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가 방에서만 지내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 여사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어느 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뜻하지 않은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아내의 말에 루스벨트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지금까지는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아내의 이 재치 있는 말에 루즈벨트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후일 장애인의 몸으로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어 경제공황을 뉴딜정책으로 극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아내의 말 한 마디가 남편의 인생을 결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서울의 한 동네를 청소하는 미화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두겠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낙심한 그는 하루하루가 지겹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화원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마을을 청소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미화원을 변화시킨 것은 잔소리 대신 아내의 따뜻한 격려 한마디였습니다. “여보, 나는 이 마을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당신의 노고가 없다면 이 마을은 쓰레기로 뒤덮였을 거예요.”

아내 된 여러분, ‘님’ 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랫말도 있지만, 언젠가 인생의 석양 길에서 여러분의 남편으로부터 “당신은 내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었고. 당신을 만나 행복했소.”라는 말을 듣는 아내들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께서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주신 명령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라는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고 말씀하신 축복도 꼭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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