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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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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6-20)


몇 년 전 40여년 만에 만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방에서 같이 자취하며 공부를 한 친구였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대그룹에 입사하여 부장으로 있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서 공기 좋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난 친구입니다. 지금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래스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22년 만에 서울을 와서 보니까 “천지개벽이었다.”고 했습니다. 22년 전의 서울과 지금의 서울을 한번 비교해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밀림을 이루고 있는 초고층 빌딩과 고층 아파트 숲, 한강의 아름다운 다리들, 길거리를 가득 매운 자동차 “천지개벽”이 맞습니다. 

부전자원이 없는 나라인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왔겠습니까?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것은 가난과 재래식 농기구뿐이었습니다. 비결은 교육의 힘입니다. 부모님들이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자신들은 굶고 헐벗으면서도 자식만큼은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러한 교육열의 결과가 오늘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42년 만에 만났다는 그 친구의 말이, 유럽이나 중남미 지역의 부모들은 절대로 자식을 위해 그렇게 희생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자식 교육을 시켰습니다. 지식을 쌓도록 했습니다. 기술을 배우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이 나라 모습입니다. 교육의 힘입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두운 그림자도 있습니다. 행복한 세상 같은데 내면을 살펴보면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자살 율이 세계 1위로, 매일 자살하는 사람이 평균 42명이라고 합니다. 이혼율 세계 1위, 술 소비량 세계 1위, 교통 사고율이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윤리는 땅에 떨어져 부모를 경시하고, 스승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교육을 시키되 교육 방향이 오직 지식과 기술교육중심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성 교육이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목적의식이 바르지 않습니다. 다만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돈을 많이 벌어야 잘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이며, 이것이 잘산다는 것입니다. 인간다운 교육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제목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일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나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공중도덕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미국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남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이라고 한합니다. 확실히 미국 사람들은 어디에 고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입양하고 남에게 나눠주는 일을 합니다. 임종 전 재산을 사회나 교회에 기증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남에게 기죽지 말아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승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덤벼들고, 부모에게도 덤벼들고, 회사에서는 사장 앞에서도 큰소리를 칩니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나와서 고함부터 지릅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입니다. 
어디에서든지 기죽지 않으려고 해외에 나가면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 싹쓸이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기가 살았다고 좋아합니다. 기가 죽어도 안 되겠지만 남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면서 키워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한마디 충고하기가 겁이 납니다. 기죽지 않고 커왔기 때문에 당장 눈을 부라리고 덤벼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죽지 말고 살아라.” 하는 말은 우리의 자녀들을 정말 죽이는 말입니다. 

인간 교육이 상실된 교육은 뿌리 썩은 나무와 같습니다. 인류의 대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교육에 관한 내용입니다. 무엇입니까?

1. 가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달리 설명을 드린다면, 가서 복음을 전하여 듣게 하므로 불신영혼을 구원시키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무엇일까요? 건강일까요? 돈일까요? 행복일까요? 이러한 것들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하고 소중한 것은 영혼이 새생명을 얻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사형수에게 가장 주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건강이나 돈이나 행복이 아닙니다. 우선 살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을 그냥 버려두면 그는 지옥에 가서 영원한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구원을 받고 보아야 합니다. 

5월 18일 대전 우송중학교 학생들을 태운 수학여행 버스가 강원도 양구에서 브레이크 고장으로 10m 절벽 아래로 추락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고 6명 중상, 35명 부상이었습니다. 자동차의 고장을 직감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다급히“얘들아, 위급해, 위급해, 안전벨트 확인해. 죽을 수도 있어.”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외침을 듣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학생들은 모두 안전벨트를 매었고, 약 10여초 뒤 버스는 옆으로 굴렀다고 합니다. 이 안전벨트가 학생들의 생명벨트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고장난 버스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안전벨트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고장난 자동차가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 상황에 필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벨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엔진이 고장난 비행기가 있다면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지금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인간이 아닙니다. 죄로 인해 고장난 인간입니다. 고장난 자동차는 정비기술자를 만나야 하듯, 고장난 인간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인간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거기에는 저주가 없고 죄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사람의 삶은 사탄의 궤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탄과 연결된 곳에는 불안과 불행이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는 평안이나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사탄의 결박은 끊어지고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자유입니까? 죄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불안과 공포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영원한 멸망의 처소인 지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8장 32절에 말씀하시기를“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하셨습니다. 이 진리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하셨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이 일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앉아서 자기발로 걸어서 주님 앞에 나오도록 기다리지 말고“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아)”고 하셨습니다. 가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야할까요?“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아)”고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입니다. 구원받는 데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4장23절에 말씀하시기를“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하셨습니다. 밖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디모데후서 4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영혼 구원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받을 뻔했으나 구원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노아의 방주를 지은 목수들입니다. 길이는 300규빗, 넓이는 50규빗, 높이가 30규빗으로 3층을 지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겠습니까? 그뿐이겠습니까? 그때는 요즘처럼 기계가 발달한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산에 가서 나무를 찍어 내려와 다듬는 데서부터 운반하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겠습니까? 그것을 잘라서 판자를 만들고, 조립하고, 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을 칠하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겠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방주를 만들었느나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다 구원받을 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구원받을 뻔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아내가 예수를 믿고 있으나 아직 남편은 주님을 무르는 상태입니다. 자식이 예수를 믿는데 아직 부모는 주님을 무르고 있습니다. 부모는 예수를 믿는데 아직 자식은 주님을 무르는 상태입니다. 구원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구원을 받을 뻔한 상태이지 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에 당선될 뻔했다 해도 당선이 아니면 낙선입니다. 될 뻔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될 뻔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는 악취가 납니다. 죽은 것은 썩기 때문입니다. 영혼 구원은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 가족이 사는 길입니다. 내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2.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20절에“내가 너희에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제자들에게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가르치신 교육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육의 주제와 교육의 방향이 분명합니다. 주제는“분부한 모든 것”입니다. 분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교육의 목표는“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지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지식 전달이 아닙니다. 기독교 교육은 지식 암기가 아닙니다. 뇌리에 기억된 지식만으로는 안 됩니다. 교육을 받았는데 지키지 않는 다면 잘못 받은 교육입니다. 그것은 받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1절에“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본문 19절에는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제자를 삼으라”는 것은“제자를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제자란, 스승을 배우고 본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배워서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작은 예수가 되어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고 하셨습니다. 세례와 가르침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을 뜻하며, 지킴은 제자 됨의 열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전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쳐 열두 명의 제자를 남겨 놓으시고 주님은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들로 인해 생명의 복음은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8절~29절에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찬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이 든든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믿음이 있어야 예수님이 주시는 참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은 신앙은 맹목적 열심에 빠지기 쉽습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은 신앙은 광신이나 미신에 치우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배우되 깨닫는 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배우면서 실행하지 않는 것은 열매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죽었습니다. 실행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배우므로 분명히 깨닫고, 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에 대하여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말씀에“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배우며 실천할 때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워 실천하므로 이 세상에 본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린도후서 3:2-3)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셨습니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썼고, 돌이나 종이에 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썼다고 하셨습니다. 

편지는 생각의 표현이며, 나와 너와의 대화양식입니다. 옛날 바벨론은 토판에 썼고, 애굽과 희랍인들은 석판이나 파피루스에 썼고, 유대인들은 가죽에 썼고, 우리들의 옛 조상들은 박달나무에 8만대장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하셨습니다. 마음에 쓰여 있는 글이 얼굴에 나타나 뭇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 28장 1절~6절에 말씀하시기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듣는 대로 행하면 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배운 대로 순종하면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연결하는 축복의 다리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복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가서 천만고를 겪습니다. 그러나 그는 훗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요셉에게, 그의 성공적인 삶의 비결을 물어 본다면“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간 신앙생활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의 저자인 다니엘은 이스라엘 나라가 망할 때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간 사람입니다. 모진 억압가운데에도 그는 바벨론 나라의 수석총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니엘에게 그의 성공적인 삶의 비결을 묻는다면 분명히 그는“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간 신앙생활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당신이 어떻게 청년의 유혹을 이기고, 세상의 헛된 부귀도 버리고, 오직 일생을 가난한 사도바울을 따라 갖은 고생을 하며 그토록 고귀한 삶을 살았습니까?”라고 한다면 그의 대답은 간단할 것이다.“나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배우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중세시대의 성 프랜시스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모든 가산을 초개같이 버리고 일생을 빈민과 고아와 병든 자를 위해 봉사하며 복음을 전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그의 삶의 비결을 묻는다면 그는“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간 신앙생활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세계정치사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인정을 받는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에 대한 깊은 동정심과 깨끗하고 경건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에게 그 비결을 묻는다면 역시“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가 성경을 배웠고 ,어머니의 유언처럼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간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50대 나이에 세계 최대의 재벌이 되었던 록펠러는 어렸을 때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항상 누더기 옷차림으로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철없는 같은 반 학생들은 이러한 록펠러를 걸레라고 놀렸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밖에 공부하지 못한 그가 젊은 나이에 세계적 석유재벌이 되었으며 24개 대학과 4,928개의 예배당을 짓게 되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나는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정하여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에“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예배에 부지런히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있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읽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깨달아지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이 주님의 제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3. 전하며 배우며 지키는 사람에게 약속하신 축복은 무엇입니까?

본문 20에“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귀하고 복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데 누가 감히 해하겠습니까?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무엘하 5장 10절에“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양치기 목동이었지만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를 대항해서 이긴 사람이 없습니다. 6천년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인간됨됨이보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교육에도 이러한 생각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교육이 우선이 아니라 기술교육 지식교육이 우선입니다. 그 결과 삶은 풍요로워 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피폐해졌습니다. 그 결과가 자살, 이혼, 방탕, 비윤리적인 현상이 우리 사회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33)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 하셨습니다. 

영혼이 우선입니다.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영혼은 자동차의 엔진과 같습니다. 엔진이 고장난 자동차의 외장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소용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셔서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불신 영혼 사랑하셔서 영혼 구원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약속하시기를“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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