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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나의 표적 (마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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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의 표적 (마 16:1-4)

옛날 속담에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 사람이 개를 집에서 기르지 않던 시절에는 개들도 들에서 살다보니 자연히 자기보다 약한 동물을 잡아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 개는 큰 동물을 잡아먹기에는 힘이 들고 해서 몸집이 작고 눈에 잘 띄는 원숭이가 만만했던 모양입니다. 원숭이 입장에서 예민한 후각을 가진 개가 더 없는 강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적을 피해 살아남으려면 자기를 표적삼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개에게 원숭이도 개처럼 으르렁대지 않을 수 없었던 데에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바로 견원지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견원지간(犬猿之間)과 같이 만나면 서로 비난하고 야유를 보냈던 두 분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비난을 중단하고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였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바리새인이며 다른 하나는 사두개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서로 상반된 교리와 생활자세로 인하여 적대적 관계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교리에서 부활과 천사와 악령들을 인정하였지만 사두개인은 이 모든 것을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사두개인은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로마와 협착하여 상당한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이었던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로마지배를 반대하면서 회당에서 일반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율법을 가르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교리와 생활을 표방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을 배척하는데 온전히 연합하였습니다. 

= 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뒤를 밞고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나 병을 고치신 일들을 보았지만 오히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이루어진 기적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지상에서 나타난 표적들은 사단과 그 졸개들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와 반대로 [하늘에서 오는 표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다그쳤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달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당신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 사흘을 있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셔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표적이 될 수 없습니다. 능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의존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외에 다른 표적을 구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그 불신앙의 결과는 실패와 멸망입니다. 

그들은 예전에 모세가 광야를 인도할 때에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게 했던 것과 같은 표적(출16장)이나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들과 전투할 때에 태양을 기브온 위에 머물게 하고 달은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게 했던 표적(수10장)과 같은 초자연적인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예수님께서 보이시더라도 예수님을 믿으려는 마음에서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배격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얼마전 한국 갤럽에서 조사한 최근에 발표 통계를 보면 기독교인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병 고침을 받았거나 그와 유사한 체험을 했었다'는 사람이 10명 가운데 3명이나 되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천주교인들은 10명 가운데 1명이고 불교인은 거의 전무한 통계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기독교인이 일천만 명이라고 가정하면 대략 삼백만 명이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병 고침이나 그와 유사한 체험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표적이 있어야만 예수님을 믿고 표적을 보지 못하면 믿지 않는다는 발상은 바리새인적인 불신앙입니다. 

교회에서도 기적이 일어나지만 기도원에서 더 많은 치유의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용하다는 점쟁이 찾아가듯이 방언을 받네. 입신을 하네. 불이 떨어지네. 병을 고쳤다네. 하는 기도원을 찾아다닙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약 중독에 빠지면 다른 약이 효험이 없는 것과 같이 표적 중독증에 걸려서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세상을 이기시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께서 그들에게 '시대에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여 주시기 전에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고 기후변화를 예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그들은 직업이 어부들과 목자들이었기 때문에 기후 변화에 민감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후변화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민감하였지만 진작 중요한 영적인 흐름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 시대는 메시아의 강림하신 때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 하였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4)라고 하였습니다. 

이솝 우화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자와 나귀와 여우가 함께 사냥을 나갔습니다. 많은 먹이를 사냥하여 셋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나귀가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 셋이서 잡은 것들이니 세 등분하여 나누자고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자가 나귀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 사자가 여우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구대일로 나누자고 제안했습니다. 사자가 마음이 흡족하여 여우에게 어떻게 그런 갸륵한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우가 대답하기를 바로 전에 나귀가 죽은 것을 보고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사계절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리석으며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더욱더 불행한 사람은 종교와 정치지도자로서 시대적 표적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이 시대적 표적을 분별력이 없이 백성들을 인도하므로 자기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멸망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유대 지도자들과 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아서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시면서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신 것은 육체적인 음란을 질책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음란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세운 규례나 전통은 물론 자기들의 체면이나 인간적인 이익들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시하고 섬겼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영적인 음행으로 보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겼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이미 메시아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말하지만 언제나 자기 자신에 돌아오는 인간적인 유익이나 육체적인 욕심이나 세상적인 향락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속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요구하였던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여호와께서 요나에게 이방인이었던 니느웨 백성들에게 회개시키라고 보냈지만 다시스로 도망하다가 뱃사람들에 의해서 바다에 던져져서 주야로 삼일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표적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을 믿는 자가 구원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현재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바리새인들처럼 세상일에는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가 되심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하나님보다 이 세상에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를 더 우선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지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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