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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하게 일하는 일꾼 (엡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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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일하는 일꾼 (엡 3:1-13) 

팀 티보우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필리핀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태어나 홈스쿨링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동네 미식축구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플로리다 대학팀으로 진학해 볼을 배급하는 쿼터백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플로리다 대학 미식축구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경기에 나갈 때마다 암호문과 같은 아이패치를 하고 나갔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 쓰여 있는 아이패치였습니다. 연승을 이끄는 그를 향해 언론은 ‘티보 미라클’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포츠 선교사’라는 말을 더 좋아할 정도로 예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단 한 번이 아닌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그 분을 자랑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식축구 프로팀인 덴버 브롱코스에 입단했습니다. 그는 후보 쿼터백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팀이 1승 4패로 부진하자 감독은 티보우를 선발 쿼터백으로 출전시켰습니다. 프로 미식축구에서는 아이패치가 금지 되어 있기에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라는 아이패치를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모습으로 기도한 후에 경기장에 임했습니다. 그때부터 기적은 시작됐습니다. 

첫 선발로 나선 마이애미 돌핀스전에서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0대 15’로 뒤져 있는 경기를 연장 끝에 18대 15로 뒤집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6연승을 이끌어 냅니다. 그 중에 4승이 4쿼터 혹은 연장에서 역전승을 만들었습니다. 언론은 그에게 ‘미라클 보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를 남겨두고 3게임에서 연속 패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가 공을 들고 뛰는 ‘러싱’은 잘하지만 쿼터백의 중요한 역할인 ‘패싱’에는 약하다고 ‘공을 들고 뛰기만 하는 쿼터백’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은 운이었고 우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끈 경기에서 놀라운 역전승이 이어집니다. 2011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고 준결승전에서는 강팀인 ‘피츠버그 스릴러스’와 23대 23 동점인 상황에서 연장전이 펼쳐집니다. 티보우는 전문가들이 약하다고 비아냥 댔던 ‘패싱’으로 기적과 같은 터치다운을 성공시켜 결승에 오릅니다. 

결국 그는 팀을 우승으로 이끕니다. 그는 극적인 역전승을 이끄는 패스를 한 후에 어김없이 곧바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특유의 자세를 취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티보잉’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습니다. ‘팀 티보우 식의 기도’라는 뜻입니다. 영어사전에도 곧 등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덴버팀이 우승한 후에 요한복음 3장 16절은 구글 사이트에서 무려 1억2천 번이나 검색되었고 그의 행보에 반신반의했던 많은 사람이 이 경기를 본 후에 ‘기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신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영상을 잠시 보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영상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한 젊은이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의 고백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하는 놀라운 사건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팀 티보우를 보면서 현재의 다니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에 청년예배에서도 이 영상을 청년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팀 티보우처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신앙의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힘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아 역사하시는지를 보이는 통로로 살자고 함께 말씀은 나눴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잠언서 8장 17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가 당신을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는 자리가 되어 그 분의 사랑을 덧입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감동의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에베소서를 읽다 보면 감동을 받는 것이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감옥에서 썼다고 믿어지지 않은 정도로 행복해 보이는 것입니다. 누구나 감옥에 갇히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기고만장한 사람이라도 대개는 자신을 위해 구명운동을 펼쳐 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주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나이가 많아 몸도 성치 않은 상태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감격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들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즉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는 이방인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외치며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감옥에서도 감격스러워 하는 이유는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경륜, 비밀이라는 표현이 계속 나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 3절에서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4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은’ 이라고 말씀하면서 바울 자신이 놀라운 진리를 깨달은 것을 말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심지어는 죽이는 일에 직접 나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놀라운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까지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경멸한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이방인을 향해 마음을 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6절에서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함께’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됩니다. 여기에서 ‘함께’가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합니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고 말은 하지만 많은 차별이 있습니다. 인종, 성별, 사회적인 위치, 재물의 소유 등의 이유로  많은 차별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사랑하십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그 사랑을 증거 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8절에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이 사역을 하다가 그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온갖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이라고 말하며 그것을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는 가운데 겪게 되는 고난을 고난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당해도 그 안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었기에 바울은 그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감옥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지선양을 잘 아실 겁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었습니다. 의료진은 살 가망이 없다고 살아도 사람 꼴이 말이 아닐 것이라고 비관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재활치료를 이겨내고 이전에 예뻤던 얼굴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지만 두 번째 인생을 힘있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남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들었고, 의사들도 믿기 어려운 ‘기적’을 체험하고는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믿고 미국 유학을 떠나 석사학위를 받고 2010년에는 UCLA 사회복지 박사과정에 합격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녀가 십여 년간의 고난을 이겨내면서 깨달은 귀중한 진실은 ‘삶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고백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던 한 자매는 지선양의 삶을 보면서 ‘살아줘서, 이렇게 예쁘게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새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승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 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언제는 살기 쉬웠습니까? 문제는 그 삶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느냐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염려로 삶을 맞이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맞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바울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불신의 열매는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열매는 감사와 기쁨입니다. 

바울은 13절에서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 있는 어려움들이 우리의 믿음의 삶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이 역사와 능력이 임하시는 자리로 만들어 가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난을 감사와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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