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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눅 13:22-30) 

영감 받은 의사 누가는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각 성, 각 촌으로 다니시며 가르치셨다고 특이한 표현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절에도 『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예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 중에 예수님께 구원에 대하여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대단히 엽기적인 질문이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관심 있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철학적인 대답 같기도 한 이 오묘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Ⅰ. 구원 얻는 숫자를 묻는데 대한 대답입니다. 

본문 13장 23절에 『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사람에 대한 미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누가 했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유대적인 구원관에 대해서 어떤 명확한 대답을 얻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극소수의 잘못된 자들을 제외하고 자신들만이 구원의 유일한 대상이라는 것이 저들의 긍지이자 절대적인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중에는 이와는 정반대로 생각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Ⅱ. 구원 얻는 방법을 묻는데 대한 대답입니다.

본문 13장 23-24절에 『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내용적으로 구원 얻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1-22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고 했습니다. 동일하게 한 부자 관원의 질문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에 『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했습니다. 

큰 부자 관원은 영생을 얻는 방법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줄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 다음은 빌립보의 한 간수의 경우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0절에 『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예루살렘 군중들의 경우입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저들의 죄에 대한 구원의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영감 받은 사도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대답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Ⅲ. 구원 얻는 사람의 유형에 대한 대답입니다.

누가복음 18장 24-26절에 『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듣는 자들이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라고 했습니다.
"구원 얻는다"는 말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은 같은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부귀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욥기 1장 10절에 『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유한 것을 오히려 지적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부와 가난은 천국 가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누가복음 18장 27절에 『 가라사대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자라고 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성경에는 나사로를 비롯해서 가난한 자들이 구원 받은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 부자들 중에 구원받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부자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삭개오 등도 부자였습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 있는 인간의 조건이나 환경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지 믿기로 작정된 자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관원에게 십계명을 제시하신 것은 인간이 스스로 그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관원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소유를 팔아서 구제했다고 해도 그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물욕에 빠져있는 관원이 예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아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관원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모든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자인고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갔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Ⅳ. 구원 얻는 본질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13장 24절에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좁은 문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는 말은 절대로 추상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시적 표현이 아닙니다. 
여기 『 힘쓰라 』( , 아고니제스데)의 뜻은 투기장이나 운동경기장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미래의 것이지만 현재생활에서 확인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 좁은 문 』은 집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는 큰 대문이 아니라 집 안에서 집 안쪽으로 들어오는 좁은 대문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는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고 했습니다. 
"택함"과 "청함"의 차이는 마지막 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입니다(마 22:13).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가는 자들이 있는가하면 교회를 통하여 지옥 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들과 택함을 받지 못하고 청함 받은 자들이 후자의 경우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산상수훈의 요약이라고 할 만큼 이 말씀은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1) 좁은 문은 믿음의 문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했습니다. 
하박국 2장 4절에도 『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2) 좁은 문은 시간적으로 제한된 문입니다.
본문 13장 24절에 『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고 했습니다. 
25절에 『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라는 말이 시간적인 제한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라고 했습니다. 

3) 좁은 문은 선택된 문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개방된 문이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라고 했습니다. 

4) 좁은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5) 좁은 문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선택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은 "힘쓰라"고 했습니다. 
힘쓰라( , 아고니제스데)는 말은 격투장에서 전력투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6) 좁은 문은 생명의 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이 현재형으로 된 것은 신앙의 현세적 삶이 구원을 향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좁은 문은 시간적으로 제한된 문입니다. 
좁은 문은 선택된 자들만이 출입하는 문입니다.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에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9절에 『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생명의 문입니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다고 했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다고 했습니다. 이 문은 가는 길도 좁고 험합니다. 
예수는 넓은 길입니다. 오직 예수는 좁은 길입니다. 

주일이라는 관념적 이해는 넓은 길입니다. 주일 성수는 좁은 길입니다. 십일조는 넓은 길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좁은 길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을 좁은 길입니다. 

충성하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과 같이 나를 사랑하느냐는 넓은 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부친을 장사하고 주를 좇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눅 9:60-61).
부모와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주님을 부모와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사람 앞에서 주를 부인하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사람 앞에서 주를 시인하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대세 앞에서 신앙을 저버리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대세 앞에서 신앙을 선택하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하나님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좁은 길입니다. 

구원은 미래의 것입니다. 전투적인 신앙행위가 구원을 얻는 수단은 절대 아닙니다. 구원 얻은 사람은 전투적인 신앙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 얻은 방법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구원 얻은 류(類)의 사람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로 이미 작정된 사람입니다. 구원 얻은 사람의 숫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제한됩니다. 좁은 문은 인간의 힘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결코 아닙니다.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눅 13:24). 그런데도 힘쓰라는 말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요 감격입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성도다운 삶의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하는 것을 많이 포기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하는 대로 하고 산다면 구태여 고민하고 괴로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은 정확하고 목표가 뚜렷한 삶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이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언제나 교회운동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수단으로서의 우리의 모든 삶이 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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