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강림주일] 비전을 주시는 성령 (욜 2:28-32)

첨부 1


비전을 주시는 성령 (욜 2:28-32)
   
오늘의 교회력은 성령강림주일, 오순절입니다. 우리 총회에서는 오늘 5월의 마지막 주일은 이 땅의 청소년들,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축복하고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가지라고 청소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5월의 가정의 달로 지키면서 청소년주일로 지키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먼저 동영상 하나를 보신 후에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제목은 “제레미 린 열풍- 하나님의 영광을 쏘다” (다음, 검색 제레미 린 열풍- 하나님의 영광을 쏘다, 2012. 04. 15)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며, 청소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은 다음 세대의 주역이 될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청소년의 시기는 파종의 시기요, 준비의 시간입니다. 잘 준비한 만큼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사용하신 것이나 바울을 사용하신 것을 보면 많이 준비한 사람은 많이 쓰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세기를 마무리하던 1999. 12. 27, 미국 타임(Time) 지에서는 “금세기 인물”을 최종 선정하여 발표하는 날이었습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1930년대 미국을 대공항의 수령에서 건져내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낸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을 최고의 인물로 선정하라고 하였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28-1932년까지 뉴욕 주지사를 거쳤고, 1933-1945년까지 무려 4선에 오른 유일한 대통령입니다. 그가 1945년 4월에 뇌출혈로 서거하기까지 무려 4선에 올랐는데, 그는 소아마비 장애를 입고, 휠체어에 의지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타임지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금세기 최고의 인물에 프랭클린이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닌 ‘앨버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금세기 최고의 인물’이 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차점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선정을 놓고 방송에서는 1990년대에 시작되어 계속 발전된 과학기술 문명은 모두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발견한 과학 원리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을 천재 과학자로 만든 사물을 관찰하는 긍정적인 태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학습장애아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천재 과학자라는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 금세기 최고의 과학자가 무슨 학습장애아였느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천재와 둔재는 한 인간 안에서 얼마든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천재가 될 수도 있고, 평범한 둔재로 남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독일계 유태인인데, 어려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 언어발달이 늦어서 겨우 5살 때에 말을 하기 시작하였고, 학습부진, 지나친 결석, 산만한 행동으로 학습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여 ‘멍청한 아이’로 불렸습니다. 산수는 항상 낙제점이었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환상에 사로잡힌 저능아’라는 평가를 받고 퇴학당하였습니다. 부모님은 이런 아들을 데리고 여러 번 이사하면서 전학을 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래도 학습 부진으로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진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학습장애로 좌절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능을 개발하였습니다.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는데, 그는 상대성이론과 그는 우주에 대한 도전의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참고로 타임지가 19세기의 인물로 최고의 인물은 토마스 에디슨을 선정하였고, 차점자로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을 선정하였습니다. 에디슨이란 사람은 학교에 입학하여 천치바보로 낙인찍히고 학교를 그만 둔 학습장애아였습니다. 담임선생은 그를 ‘혼란스런 문제아’로 지목했습니다. 교육전문가였던 교장선생님이 학교를 방문한 장학사에게 에디슨을 소개하면서 ‘바보’라고 보고하였던 학생입니다. 그리고 열세 살 때 퇴학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입니다. 그가 발명왕이 되어 1,093의 특허를 받아 특허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깰 사람은 역사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특허가 나올 만큼 다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최고의 인물 토마스 에디슨과 20세기 최고의 인물 아인슈타인은 공통적으로 학습장애아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을 보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비전(vision)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이란 인생의 목표요, 꿈이요, 환상, 이상이라고 번역합니다. 비전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미래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비전이란 단어는 외국어입니다. 그래서 말은 해도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미래에 대한 구상, 미래상’이라고 짧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시각, 선견, 상상도, 꿈, 목표, 가치관, 신념 이런 말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켄 블랜차드는 “비전으로 가슴을 뛰게 하라”는 책에서 “비전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이 그 여정을 인도할지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블랜차드는 비전과 목표를 구분하여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비전은 목적을 달성해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지침을 제공하는 영속적인 것이다.” 목표와 비전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목표는 달성하고 나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비전은 미래의 행동을 위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도록 도와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만 있고 비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표만 달성되고 나면 모든 게 끝나버리고 맙니다. 

어느 누가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하고 성형을 하면서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고 싶다’고 합니다. 이것은 목표입니다. 그러나 비전을 그런 목표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넓고 큰 주택을 구입하고 싶다, 아름다운 별장을 가지고 싶다,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겠다, 많은 돈을 모으고 싶다, 경영자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비전이 아니라 목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비전으로 알고 살아간다면 설령 누가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고 해도 만족보다는 오히려 허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목표는 그것을 성취하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목표를 수립해서 도전해야 됩니다. 하지만 비전은 우리의 삶에서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비전은 우리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이며, 어떠한 장애물도 뛰어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비전을 믿음에서 태어나고, 소망에 의하여 양육되며, 상상력에 의해 꽃이 피고, 열정에 의해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교육학자들의 학설을 종합해보면 지적 능력은 11세에서 15세 사이에 발달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 때에 지적능력이 가장 발달하게 됩니다. 17세가 되면 지적 발달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바로 이때에 인생의 장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때에 분명한 진로와 목표를 가져야 하는데, 먼저 비전을 세워야 합니다. 

무엇이 되느냐 하는 것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서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일류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중간 단계에 들어 있는 것이지,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서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하면 비전이 없이 단순히 목표만 서울대학에 들어간다고 하면 서울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목표를 다 이룬 것입니다. 그러면 허탈감에 빠집니다. 인생의 목적은 비전에 가깝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이루어가는 꿈을 꾸며, 환상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고, 비전의 인물이 되려면 긍정적인 자아상을 키워야 합니다. 자신을 모자라는 사람으로 실패한 사람으로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그 말한 대로 됩니다.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나도 꼭 하고 만다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구축해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비전을 그려보면서 상상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보지 않는 한 멋진 일을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범한 생각과 태도로 산다면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마음에 품지 않는 복은 절대로 현실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좋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대적은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복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려는 은총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난 이미 나이가 많아, 난 이미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어, 에게 바로 내 한계야, 내가 무어 그렇지, 나 같은 것이 감히 어떻게 그런 일을,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겠어, 이제 난 글렀어.” 안타깝지만, 맞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기 전까지는 그 말이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잠재력,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면 큰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이 비전은 신념으로 이어집니다. 목표를 세우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에서 더 위대한 일을 꿈꾸게 합니다. 더 높은 단계로, 하나님이 붙잡고 쓰시는 위대한 인생으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역에 사용되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자아개념, 이 자긍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자신의 모습, 존재가치, 능력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끊임없이 더 높은 단계로 자라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낡은 가죽부대를 버리십시오.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낡고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태도, 부정적인 생각은 복이 흐르는 통로를 가로막고 맙니다. 비전은 인생의 교만이 결코 아닙니다. 비전이 분명할수록 성취도는 높습니다. 비전은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미래를 환상 중에 그려보게 합니다. 이 비전을 야심, 야망이라는 말로 설명하지만, 젊은이여 야망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곧 비전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사야43:19-21에서 “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비전을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이 저의 사는 이유요, 제가 죽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어 이 땅에 보내어주신 그 목적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나의 것을 다 내어놓고 베풀고 나누며, 예수님처럼 섬기며 살려고 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약 40일 정도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거의 마무리하실 즈음에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4: 25-26에서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보내어주시는 성령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5:26에서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아버지께로부터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은 진리의 성령으로 주님을 드러내실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요16:7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시고 오신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가실 수밖에 없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떠나가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인 것은 예수님이 떠나가지 않으면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팔레스틴에 머물러야 하는 한계가 있지만, 성령은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고,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시고, 하나님과 우리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정리하시면서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어주실 것이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눅24:49에서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주시는데,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행1:4-5에서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물 세례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행2:1-4에서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힘써 기도하던 중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는데, 성도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임하심으로 이미 요엘 선지자가 예언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요엘2:28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세대에 하나님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라는 말은 종말론적인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마지막 세대에’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세대에는 하나님은 당신의 영, 당신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내다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성령이 비인격적으로 마구 부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끊임없는 영적인 교통으로 풍성한 은혜와 넘치는 사랑과 어떠한 견고한 진영과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을 부어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선지자와 같이 됩니다. 하나님은 꿈과 이상으로 하나님 자신을 알리시는데, 성령으로 하나님과 교류하고, 성령으로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게 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하신 성전이 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면 비전을 품게 됩니다. 그냥 일반 사람들이 품는 신념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비전입니다. 예수님처럼 되는 비전입니다. 어떠한 악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펼치고 이루어드리는 원대한 꿈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면 우리 안에 더러운 생각이나 못난 자아상을 다 몰아내게 됩니다. 곧 피와불과 연기 기둥과 같이 우리 안에 더럽고 추한 모든 생각을 몰아내어 버립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은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주님을 믿는 사람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보느냐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합니다. 가능성과 놀라운 잠재력, 창조적인 아이디어, 꿈으로 가득한 씨앗을 뿌리십시오.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신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대신하여 성령님이 같은 능력으로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본받고, 그 분을 모시고 그 분에 살고, 그 분과 교제하며, 주님이 나를 통하여 당신이 하시고 싶은 일들을 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종종 나를 비우고 주님이 온전히 주인으로 사시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오.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고 성령님에게 순종하고,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 비전의 사람이 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