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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총회에서 쫓아 낼 자들 (느 13:1-9,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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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총회에서 쫓아 낼 자들 (느 13:1-9, 28-31)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느헤미야 13장은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주도하며 유다 신앙공동체를 회복하려한 노력의 기록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은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왕들이 내린 조치로 고국 땅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았습니다. 그러나 성전건물을 다시 세우고 성벽을 수축하는 것이 유다공동체의 회복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유다공동체는 그 무엇이기에 앞서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보다 순수하게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로부터 그들의 재건과 개혁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성전건물을 재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배를 비롯한 성전의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성벽을 쌓아 예루살렘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시낭을 안으로부터 튼튼히 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으로 유다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느헤미야의 개혁의 노력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이야기의 시작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준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하는 첩경입니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고 불순종을 경고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다”고 했는데 그 책은 신명기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문 1절 하반절부터 2절에서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했는데 이것은 신23:3-6의 말씀을 조금 압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명기에 보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했습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율법을 들은 유다 백성은 그들이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곧 그들 가운데 섞여 있던 이방인의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습니다. 유다공동체에서 모든 이방인을 추방하는 일은 극단적인 조치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신실하게 드려져야 하는 예배를 위협하는 존재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정치적 분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과 그의 명령에 신실하고자 하는 신앙적 동기의 문제였습니다. 이방인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신앙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은 늘 이스라엘 백성으로 용납된 여러 경우를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예로 모압 여자였던 룻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유다 지파 사람 보아스와 혼인하여 훗날 다윗의 조상이 되었으며 더 훗날 예수님의 먼 조상까지 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마찬가지로 유다 백성의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방 족속과의 혼인을 금해야한다는 원칙에 있어서 단호했습니다. 그는 이방 여자를 아내로 맞아 낳은 유대 백성의 자녀들이 이방 말은 절반 쯤 알아들으면서도 유대인의 말인 히브리어는 전혀 못하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노했습니다(느13:23-24). 히브리말을 못 알아들으면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 없었을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이 무너져서 결국은 유대인의 신앙의 순수성과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의 정체성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런 백성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했습니다(느13:25). 그리고 또 말하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느13:26-27)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 때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셨던 그 영화로움과 강성함을 다 상실한 그 원인을 바로 솔로몬의 이방여인과의 혼인에서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할 큰 죄악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끝까지 단호한 입장을 취했던 다른 문제는 안식일 준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여전히 안식일에 포도주 만들기 위하여 포도 담은 틀을 밟는가 하면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파는 것을 보고는 즉시 엄히 경고했습니다(느13:15). 또 이방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면서 물고기와 각종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도 유다 자손에게 파는 것을 보고는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책망하며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느13:16-18) 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이방 나라 바벨론에 잡혀와 살며 나라를 잃고 성전도 없어 마음대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통한 때문에 오히려 더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도 다시는 그 쓰라린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안식일을 철저히 준수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또 신앙적 해이에 빠지게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다른 날 할 수 있는 일들을 안식일에 하는 것은 안식일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대한 백성과 지도자들의 해이해진 의식에 맞서 단호하게 대치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한 느헤미야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다 이방 나라에 의해 망하고 나라가 없어지며 그 아름답고 찬란하던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다 무너지며 백성이 이방 땅에 끌려가 고난과 치욕을 당한 그 재앙의 원인이 안식일을 범하여 하나님을 진노하게 한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 어두워갈 때에는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도록 그의 부하 몇 명을 성문마다 세워 아예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안식일에 물건 사고 파는 일을 못하게 했습니다(느13:19). 그러자 장사꾼들과 각종 물건 파는 자들이 성 밖 성문 옆에서 잠을 자는 자들이 있음을 목격했습니다(느13:20). 그것은 성문밖에 장사꾼들이 있음을 알면 성내의 주민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물건을 사러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습니다. 

또 그 다음날 일찍 성안에 들어와 장사하기 유리한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것 또한 안식일을 바로 지키지 않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집에 돌아가 쉬지 않고 안식일 다음날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노동의 연장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 그 다음날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편히 쉬는 것일 것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면 사정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므로 굳이 혼자서 염려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식일 다음날 제일 좋은 장사자리 차지하겠다고 성 밖 문 바로 옆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질세라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또 다시 성 밑에서 자는 자가 있으면 체포하겠다고 경고함으로써 근절시켰습니다(느13:21). 성문을 지키는 일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중요한 일 되었고, 그래서 느헤미야는 그 일을 레위 사람들에게 맡겼으며, 그 일이 거룩한 일이기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을 지키게 했습니다(느13:22). 

그런데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에게 큰 충격을 준 두 가지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하며 유다 공동체를 재건하려 할 때 가장 큰 적대자이고 방해꾼이었던 두 사람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느2:10)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와서 유다 백성을 흥황하게 만들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하여 온갖 방해공작과 간계와 협박과 느헤미야를 죽여 없애려는 기도까지 마다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느헤미야가 12년 정도 유다 총독의 직무를 수행하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돌아갔다가 얼마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 엘리아십이라는 제사장이 평소에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다가 그 도비야를 위하여 성전 안에 한 큰 방을 만들어준 어처구니없는 일을 본 것입니다(본문 4-6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었습니다(본문 5절). 도비야는 제사장도 레위인도 물론 아니었을 뿐 아니라 유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성전 구역 안에 성물들이 있어야 할 큰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8절에서는 느헤미야가 경멸하듯이 “세간”이라고 불렀지만 아마도 도비야가 자신의 귀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방으로 쓴 것 같습니다. 그것을 “악한 일”(본문 7절)로 여긴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습니다(본문 8-9절). “그 방을 정결하게” 했다는 것은 그저 깨끗이 청소했다는 뜻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될 사람과 물건들을 허용함으로써 더럽혀진 하나님의 전을 거룩하게 하는 성결의식을 행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훗날 예루살렘 성전이 개인적인 용도로 쓰이며 더럽혀지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시고 짐승들과 상인들과 환전상들을 다 내쫓으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한 가지 사건은 산발랏과 관련된 것입니다. 율법은 모든 대제사장들에게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와 혼인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레21:14). 그런데 본문 28절에 따르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를 쫓아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본문 29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한 것은 잊지 마시고 그들을 벌주시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최대의 적이고 원수였던 두 이방인과 내통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심장부에까지 끌어들이는 엄청난 죄악을 바로 제사장이라는 자들이 행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새로 짓고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하며 이스라엘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를 재건하는 운동을 처음부터 방해하며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희망에 부풀었던 유다 백성에게 엄청난 불안과 실의와 위기를 안겨준 장본인인 두 이방인 대적자를 안방에 불러들인 대역죄를 저지르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정도로 해이해진 지도층의 정신상태 때문에 느헤미야가 아니었더라면 유다 민족공동체의 회복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를 통해서 그런 자들을 내쫓으시고 당신의 성전과 당신의 백성의 정신을 정화시키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제헌국회가 그 첫 본회의를 시작하면서 모든 제헌의원들이 기립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국사를 논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사건을 기려서 우리 교회가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정하여 지키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새로 출발하게 하신 이 나라인데 오늘날 제 19대 국회의 개원을 며칠 앞두고 우리는 느헤미야 때 겪었던 기가 찰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국회에 도저히 들어와서는 안 될 자들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반국가적인 사상으로 똘똘 뭉치고 조금도 변화 없이 지금까지 반국가적인 활동을 해온 자들이 국회에 큰 소리 치며 입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누가 이 나라의 느헤미야가 되어 그 자들을 내쫓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느헤미야를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느헤미야의 용기와 결단을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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