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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청년 여호수아 (수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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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여호수아 (수 1:1-6)


오늘은 청년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청년들을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금년 심방을 다 마치고 통계를 내 보니까 20대가 21%, 30대가 24.7%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40대가 19.1%로 20-40대가 전체의 64.8%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자산이고 희망입니다. 이 청년의 때는 인생으로 말하자면 참 소중한 때입니다. 그리고 4계절에 비유한다면 여름과 같습니다. 이 때에는 몇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관적이지 않고 낙관적이라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건강이 있고 시간의 여유가 있고 매사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래서 젊을 때에는 빨리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때로 나이가 많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젊은이 때에는 대부분 비관적이지 않고 낙관적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이지 않고 이상적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사랑 때문에 열병을 앓기도 합니다. 그리고 꿈을 꾸고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래서 젊은이입니다. 그 꿈을 오래 간직해야 합니다. 그 꿈이 너무 지나치면 돈키호테가 되고 너무 부족하면 애늙은이가 됩니다. 또 젊은이는 부단히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진취적입니다. 변화가 무딘 집단에서 탈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 때에는 가정을 떠나려 안달하고 교회를 쉽게 떠나려고 합니다. 

그곳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젊은이는 열정이 있습니다. 열정이 넘칩니다. 밤새는 줄 모르고 돌아다니며 밤을 새웁니다. 이런 열정에 영적 경험만 있으면 끝내줄 것입니다. 날개를 달게 됩니다. 영적은혜는 젊었을 때, 더 일찍 할수록 좋습니다. 세기의 위인들은 모두 그런 경험을 일찍 한 사람들입니다. YMCA를 창시한 죠지 윌리암스,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셀라 선교사 모두 20대 때 영적체험을 통해서 세계로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저도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더 일찍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몸부림 칠 것입니다. 만나도 그냥 시시하게 만나지 않고 아주 뜨겁게 만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주어지는 열정과 뜨거움을 가지고 물불 가리지 않고 사역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일찍 세계로 나아가 보고 싶습니다. 적어도 젊은이는 이런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너무 안주에 빠져 사는 것 같습니다.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너무 일찍 야성을 포기합니다. 그래서 애늙은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젊은이들에게 성경이 주는 모델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서를 보았습니다. 이 여호수아서의 주인공은 물론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신앙의 젊은이들의 모델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원래 이름이 호세아(Hoshea)입니다.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13장 16절을 보면 가나안 정탐꾼을 보낼 때 모세가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개명해 주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이름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구체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의 멘토였고 스승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이름을 바꾸어 주면서까지 사명감을 부여해 주었고 앞으로 할 일을 위해 여호수아를 혹독하게 훈련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여호수아는 어린 나이에 모세에게 발탁되어 수행 시종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모세의 참모 역할을 했고 가나안 정탐 때는 에브라임 지파 대표로 직접 참가합니다. 이 여호수아가 오늘 젊은 신앙인들의 모델이 됩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에게 몇가지 특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조용한 배움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행비서로, 때로 시종으로, 참모역으로, 때로는 상담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민수기 13장 28절을 보면 혼란한 모임이 발생했을 때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진언을 합니다. 또한 민수기 14장을 보면 모세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여호수아가 전면에 나서서 진정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설익은 때입니다. 이 때는 진중하게 배워야 하고 더 수련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진지하게 모세 곁을 지키며 지도자 수업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는 든든한 멘토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야 내안에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중심을 잡아갈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모세가 멘토였습니다. 

늘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며 배우고 보았습니다.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을 사안별로 대처하는 지도력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사에게는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당대 최고의 영성 소지자였던 선지자였고 예언자였습니다. 후계자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다니며 배우고 보고 사건마다 대처하는 법을 체득합니다. 하나님과의, 백성과의 교류법을 배우고 자신과의 소통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얻기 위한 꿈을 키워 나갑니다. 

또한 디모데에게는 사도바울이 멘토였습니다. 그래서 늘 곁에서 배우고 보고 마음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내가 말하는 것을 잘 지키라 그리하면 주께서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3, 7절)고 교훈합니다. 디모데는 그 멘토를 보면서 내안에 영성을 키우고 지도자적인 자질을 키우고 큰 마음과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여호수아도 열심히 모세를 따릅니다. 그렇게 모세 곁에는 늘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기다림 

여호수아는 언젠가 큰 지도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배우면 뛰쳐나가 혼자 자기사업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윤리나 도덕이나 도리를 저버리게 됩니다. 너무 약습니다. 이해타산이 너무 밝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되면 미래가 짧습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합니다. 내 몫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실패하는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55세 때인 1840년에 정치적 음모로 제주도로 귀향을 갔습니다. 이제 추사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다 떠났습니다. 

모두 그를 잊었습니다. 그런데 귀향한 후에도 제자 한사람은 열심히 다녀갔고 서울에서 책을 모아 보내주었고, 중국에 가서 책을 사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는 그 제자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것이 깊이 있는 삶입니다. 여기에는 이해타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추사는 그 제자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뭘 줄까 생각하다가 소나무를 그려 주었습니다. 소나무는 사철 늘 푸른 나무입니다. 봄 여름에는 온 천지가 다 푸르기 때문에 소나무의 진가가 없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면 모든 나무들이 다 죽은 듯 앙상한 가지만 있지만 그 때 소나무는 여전히 푸른 모습을 견지합니다. 사람이 풍요 시나, 성공 시나, 돈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때 좋은 친구를 고르기 힘듭니다. 그런데 내가 어려움에 처하고 사업에 실패하게 되면 다 떠나가고 외면합니다. 그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고 깊이 있는 사람입니다. 추사는 그 제자가 너무 고마워 소나무를 그려 주는데 그 그림이 국보 180호인 세한도(歲寒圖)라는 그림입니다. 

온 산천천하가 눈으로 덮여 있는데 한그루 소나무만 푸른 모습으로 서 있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 안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의 진가를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진가도 어려울 때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런 사람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만큼 이 세상은 이해타산으로 물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참 진지한 젊은이입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때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준비된 사람에게 때가 되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어설픈 현장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는 자신을 푹 익히기 위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목 키움

여호수아는 모세를 따르면서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연단도, 훈련도, 고난도, 어려움도 다 극복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40년 동안 충실하게 모세를 따르며 배우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제 가나안이 가까이 왔습니다. 어느날 모세는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내기로 합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에브라임지파 대표로 파송받습니다. 정탐꾼의 임무는 적지를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 살피고 탐지하는 임무입니다. 그 일은 위험한 일입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40일 동안 적지를 두루 다니며 탐지하고 살피고 분석해서 보고 하여야 합니다. 마침내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대회를 열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각자 생각을 정리해서 백성과 모세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이 곧 들어가야 할 가나안은 어떤 땅인가, 과연 어떤 세계인가 하고 모두 기대를 가지고 모여 있습니다. 보고자는 모두 12명입니다. 그중 10명은 불가능을 보고했습니다. 그 불가능 이유가 3가지 였습니다. “우선 그 땅은 황무지였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장대같이 큰 사람들이라 우리는 그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이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보고였습니다. 참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지도자의 책무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꿈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지도자로서 안목이 부족하고 역사의 식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결과 모든 백성들이 낙심을 합니다. 오직 40년 동안 고생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가나안 턱밑에서 불가능하다니 얼마나 낙심했겠습니까!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먼저 공동체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니까 청중들이 그날 꿈을 잃고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여호수아가 나섰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사람들과 정반대의 보고를 3가지로 요약하여 보고 하였습니다.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이 과일은 거기서 따온 포도송이다. 물론 거기 사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건장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밥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있다(14:7-10).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우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가? 무엇이 두려운가? 가나안은 약속으로 주어진 우리의 땅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이런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알려주고 기대를 갖게 하고 꿈을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호수아는 지도자의 자질이 충분한 사람입니다. 그때 민수기 14장 10절을 보면 온 백성이 돌을 들고 여호수아를 치려했다고 하였습니다. 자칫하면 여호수아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는 그 자리를 회피하지 않았고 정면 돌파 하였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는 불평불만을 쏟아내지 마십시오. 교회 안에서 좋지 않은 모습이 있거든 불평불만 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누구에게 말할 때는 가능성만을 희망만을 말하십시오. 내가 그를 고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고치시는 것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냥 기도만 하십시오, 때가 되면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점에서 지도자 자질이 특출했습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의 황무지를 보았습니다. 키가 큰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 그들과 싸울 때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수아가 대수롭지 않다고 보고 했던 이유는 여호수아가 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입니다. 여호수아는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땅은 약속으로 주어진 땅이라는 점을 보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땅이 겉에서 보면 황무지였지만 속은 젖과 꿀이 흐르고 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신앙인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그날 보고대회는 극적으로 반전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모습입니다. 이 부분이 미래에 여호수아가 선택받고 들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픽업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중심이 분명이 있고 역사관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은 놔두지 않으십니다. 

기회 주어짐 

어느날 모세가 갑자기 죽습니다. 아직도 기운이 있었고 건장한데도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가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 지도자 바통을 넘기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읽은 본문말씀입니다. “내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 바통을 이어받은 여호수아는 주저하지 않고 전진하여 여리고 성을 무너트리고, 아이 성을 무너트리고, 가나안에 진격하여 땅을 차지하고 땅 분배를 성공적으로 끝냅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후에 여호수아는 이 여호수아서를 기록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끝맺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일생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준비된 사람이 여호수아 한사람뿐이겠습니까? 여호수아 말고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 갈렙도 있었습니다. 갈렙도 누구보다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호수아 못지않게 중심도 역사관도 투철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싸우며 땅을 차지하고 분배하는 과정에서 공로도 인정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한가지 더 가지고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영에 뜨겁게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열쇠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용기있게 역사관을 가지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워하고 낙심해 있었던 백성들 앞에 나서서 당당하고 확신있게 흥분한 청중을 다독거리고 안심시키고 질서를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 하나님의 영성과 영감에 사로잡혀야 있어야 하는 것이 기초이고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기대합니다. 다윗 안에 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사무엘 안에 이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다니엘 안에도 이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 안에 이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이삭 안에 이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모두 이 영에 사로잡혀 그 시대에 큰 일을 해 냈습니다. 여호수아 안에도 이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이 영이 여호수아를 사로잡았고 움직였고 사람들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이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는 은혜를 입으십시요.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이 세워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잘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이자 모범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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