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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도 아브라함의 딸이니라 (눅 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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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아브라함의 딸이니라 (눅 13:10-17)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실용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운 것은 그것이 얼마만큼 국민을 설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등소평이 말한 흑묘백묘론과도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중요하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의 다툼을 떠나 나라를 잘 살게 하는 정치 그것을 지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도에 비교했을 때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촛불집회로 말미암아 기선을 뺏겼습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가 다시 온 나라를 흔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은 실용주의를 포용할 준비가 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보면 예수님도 상당히 실용주의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안식일이란 그 당시뿐만이 아니고 지금도 유태인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율법입니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정통 유태인이 룸메이트였는데 안식일에는 전기를 켜지도 않고 끄지도 않습니다. 그 정도로 엄하게 안식일의 규례를 지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안식일을 지킬 의무에 대해서 아주 엄하게 명하셨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육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규례에 대하여 급진적인 해석을 내세우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한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에게 무슨 유익이 되는 것이 있습니까. 이건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날 달력에 빨간 날이 있지 않습니까. 내일도 빨간 날이에요. 6월 6일도 빨간 날로 현충일입니다. 빨간 날은 직장인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날이에요. CEO는 빨간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직장인들은 빨간 날이 있기 때문에 쉴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공휴일을 지정해서 의무적으로 사람들이 쉴 수 있다는 것은 일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반가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안식일을 제정하신 것은 안식일의 규례가 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쉬다보니까 종이든 직원이든 자녀든 이방인이든 나그네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지 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의 규례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원래의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율법이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 고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병자를 고쳐주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병자를 고쳤다는 기록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 고쳐주는 것을 싫어하고 반대했습니다. 

종교가 하나님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나서 왜곡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해악을 이런 데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종교는 사람을 돕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을 얽매고 구속하고 짓누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신다면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는 분들 중에는 땅에 그어진 선 안에만 차를 대면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땅에 그어진 선은 차를 대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은 것이지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에요. 땅에 그어진 선보다는 옆 차와의 거리를 더 신경 써야 되는 것입니다. 옆 차와의 거리를 신경 써야 내가 너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나, 옆 차가 충분히 문을 열 수 있나, 이것을 알 수가 있지 그것은 관심 없고 나는 땅에 그은 선 안에 차를 댔기 때문에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주차장을 만든 원래 의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고 하나님의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가 사람을 돕게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재해석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부인한 게 아니에요. 그걸 틀리다고 한 게 아니에요. 다만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재해석할 필요를 느끼신 것입니다. 바로 본문에서 예수님의 지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이 틀렸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파악해서 더 올바른 신앙의 본질을 찾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종교인들뿐만이 아니고 법조인들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법정에서 변론할 때 법의 원래 의도를 파악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original meaning. 헌법은 아주 짧은 문서에요. 그러나 헌법의 원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인권의 발달을 가져오고 시민 권리의 발달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미국을 예로 들 때 언론의 자유든 생명과 자유와 행복추구권 이것은 헌법에 있지만 옛날에는 백인 남자들에게만 적용했다가 후에 백인 여자들에게도 적용하고 그리고 이후에 흑인들에게도 적용하고 그러면서 법이 보호하는 권리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지 않았습니까. 법이 바뀐 게 아니에요. 다만 법의 해석과 적용의 범위가 늘어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게 되었지요. 

예수께서 비유까지 드시면서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파악하신 이유는 본문에서 십 팔년 동안 등이 굽어서 펴지 못하던 이 여인도 아브라함의 딸이다, 아브라함의 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말은 이 여인이 비록 귀신이 들려서 꼽추처럼 허리가 휘고 장애를 갖고 있지만 이 여인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이 이 여인도 사랑하신다. 이 여인도 구원을 받아야 될 사람이다. 이 여인도 살 길을 얻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이 여인을 끊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 이 여자에게도 뭔가 호의를 베풀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가셨을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고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중에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최근 레이디 가가가 한국에 와서 콘서트를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에 가는 사람들 중에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요. 심지어 레이디 가가 본인도 그녀의 스타일과 방법이 우리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여인도 아브라함의 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가급적이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최대한 넓히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주님이 하늘 문을 열어 주셔야지요. 우리 스스로가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주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다고 하지 않았느냐. 

맞아요. 좁습니다. 좁기 때문에 더욱 더 그 문을 활짝 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게 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재물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좋은 것을 나누고 나눔의 덕목을 찬양하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에요. 우리가 정말 나눠야 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이야말로 나만 가지려고 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야 됩니다. 나눠가져야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 등이 굽은 여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기 위하여 율법의 재해석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모세의 율법을 재해석함으로써 이 여성이 안식일에도 나음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천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세상은 그때와 비교했을 때 많이 달라졌어요. 

만일 예수께서 이 시대에 오셨다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하여 어떤 추가의 재해석을 하셨을까. 더 이상의 재해석이 필요 없을까. 예수님에게만 재해석의 권한이 있는 것인가. 이건 충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예수님이 이 시대에 오셨다면 추가의 재해석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우리도 이미 재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하고 있지 않을 뿐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마 이혼에 대해서 예수님은 재해석을 하실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은 이혼을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결혼을 위한 것이 아니고 결혼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전제할 때 비록 하나님이 이혼을 싫어하신다 하더라도 만약 이 여성처럼 십 팔년 동안 불행한 결혼에 매여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차라리 매임에서 놓아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여자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이 남자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사람이 결혼을 위한 게 아니고 결혼이 사람을 위한 것일진대 이 경우처럼 그것이 사람을 얽매는 경우가 됐다면 놓아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느냐. 

안식일이라는 율법의 규정 때문에 고통의 멍에에서 풀어주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다면 오늘날도 오래된 규정 때문에 고통 중에 매여 있는 사람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벗어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규례가 틀렸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에요. 재해석하신 것입니다. 이혼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안하는 게 좋지요. 당연하지요. 그러나 합당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재해석이 필요한 부분이 또 있다면 동성연애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모세의 율법은 그것을 엄격하게 금지했어요. 그걸 부인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자연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분명해요. 그러나 인류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그렇게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본인이 그걸 선택한 게 아니고 본인도 바꾸고 싶은데, 변하고 싶은데 안 변하는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지 않느냐 하는 거예요.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들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거예요. 

예수께서 안식일의 규례를 재해석하셔서 안식일에 십 팔년 동안 매여 있던 이 여성을 자유하게 하신 것처럼 오늘날 어둠 속에 숨어있는 많은 동성연애자들도 더 이상 어둠 속이 아닌 빛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에 더 부합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이고 건강한 자는 의원이 필요 없으되 병든 자가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동들에게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성경구절을 읽어주고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했어요. 어느 아이가 약대와 바늘구멍을 그렸는데 바늘구멍은 크고 약대는 작게 드렸어요. 

비록 어린아이지만 성경말씀을 해석한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해석했습니까. 부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해석을 한 겁니다. 바늘구멍이 크고 약대가 작으면 들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 부자도 하나님의 자손이에요. 바늘구멍이 커지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 많습니다. 그러나 부자도 하나님의 아브라함의 자손이관대 바늘구멍을 넓히는 한이 있더라도 천국 문을 넓게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오늘날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가급적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쁜 소식임을 선포해야 되는 것입니다. 

소식은 선포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전하지 않는 뉴스는 뉴스가 아니에요. 기쁜 소식인데 기쁜 소식은 전해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래 의도에 더 부합하지 않습니까. 예수님 말씀대로 그것이 정말로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김영준 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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