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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 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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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 7:5-11) 


우리 인생길에는 참 근심이 많습니다. 이 근심은 세트입니다. ‘염려’라는 누이가 있고 ‘걱정’이라는 동생이 있습니다. 이 셋은 항상 같이 움직입니다. 이 셋은 우리들이 누리는 행복을 빼앗아 가는 문젯거리로 계속 우리 속에 머물면 불신앙과 질병이라는 나쁜 열매를 맺게 하고, 결국은 망하게 합니다. 사탄 원수 마귀는 우리에게 늘 이 삼남매를 우리 속에 심어 놓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심, 걱정, 염려를 마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심리학자들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불안·근심의 원인들을 조사해봤습니다. 그중 40%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었고, 30%는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염려이었고, 12%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이었고, 10%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염려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92%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아니고, 오직 8%만이 현재적이고 사실적인 일에 대한 염려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날마다의 생활 가운데 가지고 있는 근심이나 염려의 대부분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실제로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한 헛된 근심을 너무 많이 하며 속상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냉동 창고에 근무하던 직원이 실수로 문이 잠겨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날 다른 직원에 의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냉동 창고는 전기고장으로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직원이 죽은 이유는 여기가 냉동 창고 안이니까 몇 시간 갇혀있으면 얼어 죽을 것이라는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동되지 않아 춥지도 않은 냉동 창고 안에서 죽은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경우에 우리의 근심과 염려는 쓸데없는 것이며 신경성입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병 가운데 신경성인 병들이 많습니다. 쓸데없는 염려와 근심이 우리를 약하게 하고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근심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 쓴 편지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주 호되게 책망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망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많은 근심을 했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교회 안에 온갖 문제가 가득한 교회였습니다. 근친 상간문제, 소송문제, 혼인문제, 우상제물 문제, 은사 문제 등등 골치 아픈 문제가 말도 못할 정도로 많아 사도 바울이 심하게 책망을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고전 16:22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 책망 때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큰 근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크게 후회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근심케 한 책망이 전화위복이 되어 교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회개하고 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눈물과 사랑으로 쓴 편지이긴 하지만 나무람이 지나쳐서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높은 담을 쌓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사도 바울은 솔직히 걱정되고 후회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디도의 편에 그들이 뉘우치고 바울의 권면을 따랐다는 반가운 소식을 대하고는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근심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0절 말씀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근심이 있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근심입니다. 육신적인 근심은 세상적인 근심을 말하는 것이고, 영적인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세상 근심이 무엇입니까? 세상 근심이란 육신의 근심을 말하는데 이 근심은 우리에게 결과적으로 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쓰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쓰레기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 쓰레기를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욕심쟁이, 구두쇠라도 쓰레기는 내다 버립니다. 만약 쓰레기를 집에 그냥두면 온 집안에 악취가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마음속에 근심이나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 잠 17: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한 것처럼 마침내는 마음이 병들고 육체까지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다주는 세상적인 근심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이런 근심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물리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우리의 근심과 두려움을 기도로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벧전 5: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키라”고 했고, 시 37:5절에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으며, 시 55:22절에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 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목욕탕에 가보면 카운터에 이런 글이 씌어져 있습니다. “귀중품은 주인에게 맡기십시오. 분실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염려와 귀중한 것들을 우리 삶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은 맡긴 것만 책임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 중에 은혜는 잘 맡기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상황은 여전히 어려운데 염려가 안 되는 것은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 이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믿음은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염려와 걱정을 맡김으로 마음에 평안이 흘러야 진짜 맡긴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염려와 걱정꺼리가 있어도 걱정과 염려가 안 되는 은혜, 문제가 있어도 잠을 푹 잘 수 있는 은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슨 근심의 짐을 지고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큰 근심의 짐, 장래에 대한 불안의 짐이 여러분들의 어깨를 짓누를 때, 능력의 손을 벌리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와서 그것을 맡기십시오. 때로 무엇인가 불안한 마음이 일거든 엎드리어 기도하고 주님의 능력의 손에 모두 맡기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좋은 길, 해결의 길, 쉼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 근심은 하나님 앞에 맡기고 대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심을 하지 말라 명하셨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근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9-10절에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라는 데서 생기는 거룩한 근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와 허물에서 깨끗하게 될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더 잘 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킬까,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하나님께 보다 더 헌신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이 우리에게 사망을 주는 것이라면 이 영적인 근심은 우리로 회개케 하고 생명을 주는 조은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침체시키고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이 되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생명에 활기와 생명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피로써 회개한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저절로 우리의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반드시 회개라고 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같은 근심을 통해서 우리로 회개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새 힘을 주십니다. 회개하면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새롭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애통하는 자"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애통하는 자요,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여서 애통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위로로 함께 하시어 회개케 하시고 구원을 이루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근심은 우리를 아름답게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삶과 행동도 변화시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간절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백하게 하고, 뉘우치고 한탄하게 하며, 주님을 대함에 두렵게 하고, 복음 증거를 사모하게 하고, 주님의 일에 열심 있게 하고, 우리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벌하게 합니다. 이로써 우리 자신이 깨끗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세속적인 근심, 쓰레기에 불과한 근심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고 대신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려는 거룩한 근심의 짐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 6:3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자신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것이 많을지라도 하나님께 다 맡기고 대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의식주 문 제, 인생의 문제를 다 채워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네 인생의 짐은 내가 맡을 터이니 너는 내 나라 사업의 일부를 맡으라.”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대부분은 어려움을 당하면 오히려 신앙이 주춤하며 교회 일을 멈춥니다. 그러나 염려와 근심이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며 더욱 적극적으로 신앙에 힘쓰고, 교회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매일의 삶 속에서 근심할 일이 많았습니다. 전도하면서 일행의 경비를 위해서 매일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해야 했고, 몸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많은 반대자들로 인해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 인생의 지친 무거운 짐은 다 주님의 능력에 손에 맡기고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 전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 20:23-24절서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결박이 오든, 환난이 오든, 심지어 생명의 위험이 오든지 간에 주님께 다 맡겨버리고 오직 주님이 맡기신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는 단호한 고백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바울의 믿음 앞에 가는 곳마다 기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가운데 열심히 금식하고 철야하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할 뿐, 하나님이 맡기신 일은 전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신앙이 어렸을 때는 그러한 기도가 응답이 되지만, 어느 정도 자란 신앙에서는 응답이 어렵습니다. 만약 부모의 입장에서 청년이 된 아들에게 무슨 일을 맡겼음에도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요구만 들어 달라면 들어주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짐은 하나님께 맡기고 대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힘쓸 때에 놀랍지요. 내 인생의 짐은 저절로 벗겨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안고 오신 근심과 불안의 짐은 무엇입니까? 이 시간 주님의 능력의 손에 모두 맡기십시오. 그리고 대신 주님이 맡기시는 멍에를 메고 주님의 교회를 위한 염려와 성도들과 불우한 사람들의 일을 위해 근심하면서 중보기도를 해보십시오. 그때 우리 주님은 우리의 문제와 근심을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근심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그릇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근심을 할 것이냐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에 달렸습니다. 백해무익한 세상 근심으로 찌들려 살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근심으로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냐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 근심에 젖어서 매일매일 세상일에 허덕이며 그 일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생활을 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일 듯 일어나 언제나 하나님 아에 쓰임을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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