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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 ①- 소명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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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①- 소명 (눅 5:1-11)


1. 베드로는 어떤 인물인가?

오늘부터 네 번에 걸쳐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장면을 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이것을 소명(calling)이라고 합니다. 
먼저, 성경에서 베드로는 어떤 사람으로 등장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평가절하합니다. 고집불통에다가, 성격도 급하고, 실수를 많이 저지른 사람으로,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읽어보면, 베드로는 실패하기도 하였지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위대한 사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거장이라고 보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예수님과 가장 친밀한 핵심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12명 중에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을 중요한 현장에 함께 데리고 다녔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마태복음에서 23회, 마가복음에서 19회, 누가복음에서 18회, 요한복음에서 34회, 사도행전에서 56회나 베드로란 이름이 등장합니다. 또, 신약성경 중 베드로전서와 후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복음증거의 선봉에 선 사람입니다. 예수님 승천 후, 역사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교회가 세워졌을 때, 베드로는 그 교회의 중심에 선 인물입니다. 사도행전1장부터 11장까지는 교회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내용인데, 그 주역이 베드로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렇게 보면, 베드로는 크게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번에 네 번에 걸쳐 베드로의 삶을 조명하면서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도 베드로가 받은 복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2. 평범한 사람에게 특별한 은혜를...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부르실 때, 제일 먼저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입니다.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다른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북부에 있는 가버나움이란 마을에서 자라난 어부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숫가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나가던 베드로는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3년간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님과 동고동락하다가 예수님 승천 후,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마지막으로는 로마 네로황제가 기독교를 박해 할 때,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당한 것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평범한 어부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는 특별한 은혜, 오늘도 평범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주님의 제자로 부르시고, 베드로처럼 특별한 은혜를 받게 될 것을 기대합시다. 

3. 소명 이전에 은혜가 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병자들을 많이 고치고, 더러운 귀신을 쫒아내고,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기적을 본 많은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갈릴리 호숫가로 몰려왔습니다. 당시에는 마이크가 없었기 때문에, 육성으로 전달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호수에서 육지로 바람이 붑니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소리가 잘 전달되도록, 예수님은 호수에서 육지를 바라보시고 서시고, 사람들은 육지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니까, 예수님이 점점 호수쪽으로 밀려갑니다. 호숫가에 배 두척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한 척은 베드로의 것이고, 다른 한 척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배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지난 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아침에 돌아와서는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사람들에게 밀려 내가 물에 빠지겠다. 배를 좀 빌려달라. 배에 앉아서 말씀을 전해야 하겠다” 고 부탁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어젯밤에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고는 아침에 돌아와서 배를 씻어 호숫가에 끌어올려놓고는 그물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귀찮은 일입니까? 다시 배를 띄워야 하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그 부탁을 들어줍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피곤한데, 귀찮은데, 어떻게 예수님의 부탁을 쉽게 들어주었을까요? 4장에 보면, 가버나움에서 시몬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는데, 예수님께서 장인 집에 가셔서 열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장모가 예수님의 은혜로 고침받았으니,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배를 빌려주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다 가르치신 후,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는 배를 타고 깊은 곳에 나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걸려든 것입니다. 혼자 감당할 수 없어 야고보와 요한을 불렀습니다. 시몬의 배는 물론이고 야고보와 요한의 배에도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고기는 보통 밤에 잡힙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어제밤에 밤새도록 그물을 내리고 올리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낮에는 고기들이 숨습니다. 그렇게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깊은 곳에는 고기가 또한 없습니다. 어부의 상식으로는 그물을 내릴 수 없습니다. 고기가 잡힐 리 없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마가복음 10:27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못 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물고기를 만드신 분, 물고기의 이동을 아시는 분, 어디에 물고기가 떼로 모여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물고기떼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서 갈릴리 호수의 많은 물고기를 베드로의 그물에 보내주셨습니다. 

한국판 베드로의 기적도 있습니다. 영덕의 구계교회 김상태 집사가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2000년 11월15일 새벽6시35분 어장에 가보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어장 안에 방어떼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장 안으로 물고기가 들어가려면, 25m 수문출입구를 통과해서 160m를 지나 마지막 폭1m의 수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수문이 점점 좁아들어 물고기들이 갇히기 때문에 마지막 수문 폭 1m에는 좀 큰 고기는 한 마리 밖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5-10kg 방어가 5,000마리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집사님 어장 바로 옆의 어장에는 방어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방어는 주로 가을에 잡히는 데 많이 잡혀도 300-500마리 정도인데, 그것도 겨울에 5,000마리가 잡혔다니... 다른 어장에는 한 마리도 안 잡히고... 
5,000마리의 방어가 한 마리씩 한 어장에 다 들어가려면, 밤새도록 줄 서서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두 배 가득 고기를 잡아 육지에 내리고는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려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좀 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리켜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릅니다. 예수님은 그냥 선생님이 아니라,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요, 내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베드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실존을 발견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을 만났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로다”라며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발견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소명입니다. 소명은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베드로는 응답합니다. 
11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소명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복을 주시고 은혜 베푸시고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살도록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도 “네가 복이 될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열방에 그 복을 전달하는 통로로 쓰임받았습니다. 

4. 소명자로 살라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가족과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란 말씀은 ‘세상적인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모든 집착을 끊어버리고’ 란 뜻입니다. 

김상태집사는 빚을 갚고 나서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또 돈을 벌게 되면 그땐 교회 건축을 하겠다고. 한 달만에 5미터의 큰 밍크고래가 어망에 걸렸습니다. 그걸 팔아 약속대로 교회 건축을 했답니다. 그의 비전은 이제 시골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실버타운을 건립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은혜받은 자는 세상적인 욕망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소명자로 살아갑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소명을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영적인 영역 즉 믿음의 영역에서의 소명과 세상적인 임무에서의 소명으로 구분합니다. 모든 성도는 이 두 가지 소명을 갖고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르심을 받은 영적 소명, 여기에는 물론 교회에서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직분을 받은 소명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세상적인 임무로서의 소명이 있는데, 가정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말합니다. 부모로서, 남편/아내로서, 자녀로서의 소명, 주민으로서의 소명, 직장인으로서의 소명을 말합니다. 
루터와 칼빈은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보았습니다. 우리의 직업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직업이든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스 기니스는 <소명>이란 책에서 소명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을 가지고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일에 우리의 일생이 투자되는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인줄 알고, 전 인격, 전 소유, 전 행위를 다 투자하여 섬기며 사는 소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09년에 <소명>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남긴 영화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강명관 선교사는 한영외국어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습니다. 1999년 어느 날, 아마존 정글에 사는 바나와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 소명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부인과 두 자녀를 데리고 아마존 정글로 떠납니다. 

바나와 인디언은 10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부족입니다. 45~5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독사에 물려 죽어나가는 아이들, 독충ㆍ모기ㆍ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물고기 피라니아ㆍ아나콘다 등 위험이 가득한 자연환경, 농사가 어려워 최악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주로 원숭이, 대형쥐, 거북이, 뱀 등 을 잡아먹는데, 그들의 소원은 멧돼지 한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강선교사는 이곳에서 때로는 교사, 때로는 의사, 약사, 때로는 영양사가 되기도 합니다. 독충과 독사에 물리면서도 죽어가는 원주민들을 보살핍니다. 아직 말은 있어도 문자가 없는 이 부족에게 문자를 만들어주고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소명자의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복을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복을 세상에 나누어주라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이 무엇입니까?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동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바로 소명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자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의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도록 역동적으로, 그리고 헌신적으로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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