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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도자와 개미 (잠 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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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와 개미 (잠 6:6-11)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간추린 내용 

오늘 본문은 게으른 자에게 개미를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한다. 개미의 생태를 관찰해보면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책임의식을 볼 수 있다.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그저 간증하는데 그치지 말고, 책임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 말씀은 개미에게 가서 무엇을 배우라는 것일까요? 본문의 말씀을 보면 “부지런하게 살아라, 게으르게 살지 말아라” 그렇게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부지런한 것도 배워야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왜 부지런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더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개미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물었을 때 하나님이 제 마음 속에 감동을 주시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책임감’이었습니다. 무조건 부지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개미에게 인간 이상의 탁월한 책임의식이 있다는 것을 개미의 생태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언젠가 TV에서 개미의 생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존강 유역의 개미떼가 이동을 하다가 물을 만났는데 도무지 이 물을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던 개미들이 쭉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입으로 상대방의 다리를 물고 계속 이어가면서 바람을 기다렸다가 바람이 불면 휘청휘청 반동을 이용해 건너편에 있는 나뭇가지로 내닫는 것입니다. 또 만약에 길이가 짧으면 대롱을 물고 그 밑에 또 다른 개미가 대롱을 잇고 또 잇고 해서 물을 건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학교 다닐 때 도구는 인간만 사용할 수 있다고 배웠는데, 개미의 지능이 보통이 아니구나’ 느꼈습니다. 물론 그 장면도 충격이었지만, ‘맨 밑으로 들어가는 개미들은 대체 얼마나 힘들까.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며, 그리고 찰랑찰랑한 그 물 위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얼마나 아찔하겠는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떻게 개미가 그러한 희생을 감수하게 되고 책임감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런데 그게 한 시대에의 개미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이천 년이고 그 끊임없는 세대 가운데 개미는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미에게도 뭔가 법이 있습니다. 개미 하나하나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공동체를 유지해가는 일에, 마치 그 집단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 전체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책임의식. 그것이 개미 하나하나에게 다 주어져있다는 것을 볼 때,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개미에게 배워야 할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결혼하게 해주세요”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응답해주셔서 결혼하지 않았습니까. 또 “하나님, 돈 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필요한 사업의 길을 열어주시거나 혹은 직장을 주셔서 응답 받았습니다. “하나님, 학교 보내주세요” 했더니 또 대학에 보내주셨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너무 많이 주시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할 생각을 안 하고 기도할 제목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기도응답을 받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내가 기도해야 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 성공을 과시하고, 얼마나 많은 응답을 받았는가 간증하는 차원에서만 그치는, 다음이 없는 성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읽어 보니, 김용이라는 분이 한국인 최초로 아이비리그 다트머스 대학의 총장이 되셨습니다. 김용 신임총장님은 59년 생, 즉 만으로 49살로 하버드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 박사를 받았고, 2006년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을 빛낸 100인의 인물’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이 분을 총장으로 뽑았던 이유를 인터뷰했는데, 김용 총장님은 일생을 통해 젊은이들을 강의실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가르치고 영감을 고취시키는 데 헌신해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김 총장님의 교육방법은 단지 지식을 습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커다란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출세할까 이런 단순한 테크닉만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어떤 위기와 도전에도 맞설 수 있는 영웅들, 지도자들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입니다. 

김 총장님의 아버지는 치과의사, 어머니는 목사님으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지만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마음속에 항상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유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즉, 의사가 되는 것, 총장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이 분의 삶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진 자들이 책임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서 책임의식을 느껴야만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예수 믿어서 이렇게 축복 받았어요”라고 말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이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그 ‘다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지금 하나님의 슬픔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더니 우리는 그냥 축복을 자랑하는 데서 끝이 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의 척도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집을 멋있는 것으로 바꿔볼까? 외모를 바꿔볼까? 옷을 바꿔볼까? 차를 바꿔볼까? 전체가 가면무도회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도 같이 그 파도를 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업을 잘 해야 되는 이유, 또 공부를 잘 해야 되는 이유, 출세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우리의 실체가 정말 영이라면, 우리가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갈 존재라면, 이 세상에서 말뚝 박고 영원히 살아갈 존재가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 가서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 주어지는 영적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돈을 벌어야 되며 출세를 해야 되는 이유, 모든 것이 결국은 신앙생활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거꾸로 생각합니다. ‘내가 신앙생활 잘 해서 1등 해야지. 신앙생활 잘 하고 예배 생활 잘 해서 출세해야지.’ 그러면 신앙생활에 항상 바닥이 보이는 겁니다. 기도해도 항상 기도가 맴도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지를 못하는 거예요. 신앙생활이 더 이상 성장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개미에게 무엇을 배우라고요? 책임감을 배워야 합니다. 책임감은 어떻게 생깁니까? 사랑하면 책임감이 생깁니다. 

‘내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한 번 과시해볼까?’ 그러한 생각은 아주 나쁜 겁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내가 높은 것을, 내가 많이 가진 것을, 내가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에는 그 다음 목표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의사 선생님들 많이 계시고, 또 수석하신 분들도 여러 명 계시죠? 그런데 누가 수석 했다더라, 여기에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이러한 간증거리가 단지 “하나님이 축복해주셨다”로 끝나버려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가 미국을 가는데, 비행기에서 주는 칫솔을 버리지 않고 쓰고 또 쓰고 그래서 막 닳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걸 버리지 않고 가방에 또 챙겨 넣으니까, 저와 같이 사시는 오영택 목사님이 옆에서 ‘아니, 그걸 버리지, 뭐 하러 가방에다 챙기느냐’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이게 플라스틱이니까 버리면 오염이 되잖아요, 땅이 오염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금은 더 쓸 수 있으니까 아까우니까 더 써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랬어요. 그리고는 웃으면서 “우리 영적 지도자는 국가적 지도자이기 때문에 이런 것도 함부로 버리면 안 되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그 얘기에 전혀 반응이 없다가 한 이틀쯤 지났는데 갑자기 “내가 당신이 얘기하는 것에 굉장히 도전을 받았어”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에 은혜를 받았느냐 했더니, 비행기 안에서 영적 지도자는 국가적 지도자라고 했던 이야기에 아주 은혜를 받았다는 거예요. 

칫솔 하나 가지고 제가 너무 뻥튀기한 건가요? 어떤 분들은 조금 부풀린 얘기 같다고 말하겠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진짜 그런 마음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지도자입니다. 왜 사회에서 우리를 그렇게 지탄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가 도적질을 했습니까, 살인을 했습니까? 왜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비방하고 교회를 비방합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선포할 때, “교회에 나오시오”라고 전도할 때, 우리는 벌써 지도자의 위치에 서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경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뉴스에서 봤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제가 무슨 굉장한 애국자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크리스천이 되고 났더니 저도 모르게 사회문제에 대해서, 국가문제에 대해서, 경제에 대해서, 그 다음에 세계 선교에 대하여 관심이 가고 책임의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라의 대통령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데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만 책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적 위기에 대해서도 어떤 책임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서 그렇습니다. 이 지구, 하나님이 만드셨어요. 하나님 것이에요. 그러니까 아껴야 되겠다는 생각에 막 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식도 아닌데 나하고 상관도 없는데, 캠퍼스에서 아무렇게나 사는 청년들을 보고 마음 속에 애통의 눈물이 흐릅니다. 제가 무슨 박애주의자여서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제 속에 부어지고, 또 그런 사랑이 부어져서 책임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대해서, 이 사회에 대해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해서 책임의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다트머스 대학의 김용 총장님이 예수님을 잘 믿으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의사가 되어야겠다’ 생각하고, 하버드대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학생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애를 많이 썼다고 합니다. 결국 그러한 노력과 헌신 끝에서 총장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총장이 되는 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더 영적이기 위해서, 더 신앙생활 잘 하기 위해서 총장이 됐다는 것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돈 줄기를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의 경제를 하나님 손에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 내가 의사가 됨으로써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씻겨줘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런 사람의 기도와 단순히 신앙생활 잘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인 사람의 예배는 다를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서 같이 예배를 드려도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런 의식이 없는 사람은 예배를 드리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드릴 때 무슨 기도를 하고 가시겠습니까. 하나님 돈 주세요, 밥 주세요 그 기도하다 가시겠습니까? 또 자식 타령하다 가시겠어요? 오늘은 좀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을 주셨으면 다 준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직도 여러분들이 저 이방 우상 섬기는 사람들과의 별로 다를 게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이미 예수님을 알고 영적 세계를 알고 천국을 알고 지옥을 아는 여러분들이 아직도 그 가운데 있다면 정말 심각하게 한 번 스스로를 돌아봐야합니다. 

우리는 개미에게서 삶의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우리가 그냥 쉽게 눌러 죽일 수 있는 작은 개미도 자기 공동체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사랑을 주기 위해서 다른 많은 개미들이 자기 머리를 누르고 짓밟고 지나가더라도 엎드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개미보다 나아야 되지 않을까요? 

우리의 성공이라는 것이 우리의 외모를 바꾸고 차를 바꾸고 집을 바꾸고 지위를 상승시켜가면서, 그것이 예수 없이 이루어졌든, 혹은 예수를 믿고 이루어졌든 거기서 끝이라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십자가를 보면 알죠. 십자가를 보면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의 책임감입니까? 예수님의 책임감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만큼 책임을 느끼거든요. 교회를 사랑합니까? 그러면 여러분들이 책임감이 있어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양들을 아끼고 정말 하나님 사랑합니까? 그러면 목자로서의 책임감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감을 모르면 부끄러운 사람이에요. 아버지로서 책임감, 어머니로서 책임감, 자녀로서 책임감, 집사로서, 권사로서, 장로로서, 주의 종으로서의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개미보다도 부끄러운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의 모든 인생을 다 주고 마지막 생명까지 주고 가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죠?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된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가야 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빌리 조엘이라는 유명한 가수에게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딸의 생일에 아빠가 어린 딸에게 같이 시간을 갖지 못해 미안하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딸아, 미안하다. 아빠가 너의 생일에 같이 할 수 없어서 미안하게 됐다. 그 대신 너에게 선물을 보내줄게.” 생일날 현관에 큰 선물이 도착해서 딸이 풀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 아빠가 톡 튀어나왔습니다. 딸에게 있어서 아빠만큼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빠의 출현이 그 딸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아닙니까?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출현하셨었습니다. 아예 당신 자신이 오신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일방적 사랑,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그 사랑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얼마나 억울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실 때도 “그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욕도 비방도 아니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얼굴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제게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십자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쓸어버렸을 것입니다. 저는 성미가 급해서 기다리지 못하고 보여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욕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책임을 완수하고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볼 때 우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 사랑이 무엇입니까? 책임감입니다. 사랑한 만큼 책임을 지게 되어있습니다. 지도자는 책임을 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책임감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란 돈만 있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남은 생애동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갈까? 섬기고 갈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부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어떤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저는 종교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떤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직분에 대하여 여러분 책임의식을 느끼고 있습니까?

디즈니에서 만든 <라이온킹>이라는 아주 재밌는 만화가 있습니다. 거기 심바라고 하는 어린 사자가 있었죠? 근데 실수로 그 아버지 무파사가 세상을 떠났는데, 심바는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명을 쓰고는 왕자라는 신분을 다 내려놓고 도망을 갑니다. 심바가 한참을 헤매고 있을 때 아버지가 환상 중에 나타나지요. 

“아들아, 너는 나를 잊었느냐.”
“아니요, 아빠 내가 어떻게 아빠를 잊어요.” 
“너는 네가 누군지를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나를 잊은 거나 똑 같은 거야. 너는 왜 네가 누군지를 잊고 사니? 너는 나의 아들, 너는 왕자야. 근데 네가 그것을 잊어버리는 순간 넌 아빠를 잊어버린 거나 똑같은 거야. 너는 네가 누군지 알고 살아야 한다.”

여러분, 우리는 지도자입니다. 이 시대, 경기가 어렵다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렇게 허덕이면 안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처럼 지금 돈 벌기 어렵다고 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돈 벌어야지 마음먹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고민하니까 우리도 끝났다, 망했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반응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도자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 손에 있습니다. 정치가가 못한 것, 경제인들이 못한 것, 하나님의 손으로 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축복은 순종으로 받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하면 경제가 바뀝니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여러분들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것을 믿어야 여러분들은 진정 크리스천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정말 애통해 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책임집니다. 실수한 것을 자기가 뒤집어씁니다. 십자가는 책임감입니다. 개미에게서 그 책임감을 배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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