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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행 1:4, 14,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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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행 1:4, 14, 2:1-4)

어떤 사람이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신앙교육을 잘 받고 신학교에 입학을 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답답함이 있었어요. 구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 확신이 없었습니다. 늘 삶이 불안하고 좌절이 찾아오고 했었습니다. 그는 뭐가 새로운 경험을 얻고자 미국 조지아의 선교사를 자청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선교하러 갔다가 철저하게 실패를 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오는 길에 태평양을 건넙니다. 배를 탔는데 풍랑이 일었어요. 그런데 무서워서 견딜 수 가 없는 거예요. 목사지만 죽을까봐 벌벌 떨었어요.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찬양을 하는 거예요. 그 풍랑 속에 찬양을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그분들을 보니 너무 담대할 수 없어요. 누구인가 봤더니 모라비안 교도들이었어요. 아주 경건한 사람이었어요. 저들의 신앙은 나와 무엇이 다를까? 의심이 생겼어요. 그는 돌아와서 하루하루 낙심과 좌절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한번은 퀘이커 교도들이 모이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마음에 큰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몇 일 후 그가 영국 런던의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한 교회에 보니까 조그마한 2층 교회에 불빛이 새어 나와요. 그래서 오늘 저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겠다. 하고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마침 목사님도 안계세요. 어떤 평신도가 나와서 로마서 서문을 쭉 읽고 있는데 그것이 그에게 그렇게 큰 은혜가 되는 거예요.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몰려오고 죄가 회개되고 눈물이 나고 그에게 바로 성령이 임한 사건이었어요. 그리고는 거듭남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죠. 과거의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바뀌어 집니다. 그리고 그의 일생은 하나님 앞에 씀임 받습니다. 

그는 이제 영국 런던을 떠나서 저 시골의 광산 지역을 자니면서 광부들에게 말을 타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가 모여서 기도하는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우리로 말하면 구역이고 감리교로 말하면 속회입니다. 이 구역 운동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주일에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중에도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는 뜨거운 운동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불같이 번져가요. 그것이 전 영국을 변화시키고 감리교가 이 땅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바로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레 목사님이십니다. 

그가 받은, 경험한 성령의 역사 가운데 그는 전혀 다른 사역을 하게 되었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왜 성령을 받아야 되느냐. 라고 저는 정했습니다. 왜 우리들이 성령을 받아야 할까? 왜 존 웨슬레에게 성령이 임해야만 했을까? 왜 제자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경험되어야 했을까? 오늘 우리가 이것을 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도 두려워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문을 다 잠그고 벌벌 떨고 있어요. 유대인들에게 잡히면 죽을까봐 그런데 그 마가의 다락방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어요. 문을 잠겨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이시기 때문에 주님은 정말 놀라우신 방법으로 들어오셨어요. 

주님은 평강이 임할지어다. 하고 인사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를 보낸다. 파송을 하셨어요. 그리고 마지막 말씀이 숨을 내쉬면서 너희는 성령을 받으라 하셨어요. 성령을 받지 않으면 너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으니까 너희가 성령을 받으라 하고 명령하셨어요. 

또 예수님께서는 그 이후에 40일 동안 예수님과 동행하시면서 천국에 대한 말씀을 주셨어요. 그리고 감람산에서 마지막으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아주 놀라운 말씀을 주셨어요.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1장 4절 말씀이에요. 너희는 이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약속을 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 약속하신 것이 뭐에요? 성령이에요. 성령을 기다리라. 성령 받지 않고 가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6절에 제자들에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언제 회복시키시겠습니까? 언제입니까? 예수님 말씀하세요.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바 아니요. 그것은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셔요. 

성령이 임하면 권능, 듀나미스, 능력을 받고 너희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언자가 될 것이다. 자. 예수님이 계속 강조하신 말씀이 뭐에요? 성령을 받으라. 성령 받지 않으면 사람 구실 할 수 없어. 성령 받지 않으면 기독교인 될 수 없어. 성령 받지 않으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 될 수 없어. 성령을 경험하고 모셔야지만 너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목사도 성령 받지 못한 목사가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권사도 성령 받지 못한 권사가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존 웨슬레가 그랬잖아요. 선교사까지 다녀왔는데 성령이 뭔지 몰라. 성령 받고서야 그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진리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가 성령 받고 처음하고 한 설교가 ‘너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성령 받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거예요. 착한 일을 많이 하던지 돈을 많이 헌금을 하던지 그래서 구원을 받지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 받아? 그것도 무슨 공짜로? 이해가 안되는 거예요.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그것이 다 이해가 되고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반복되는 말씀은 성령을 받지 않으면 떠나면 안된다. 지금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이다. 성령 받아야 증인이 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바꿔 말하면 오늘 날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교회는 성령으로 살아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합니까? 성령으로 살아야 해요. 그렇습니다.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이시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8절에 그 당시 술을 많이 먹고 취하는 사람들을 빗대어서 성경은 뭐라고 말하느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너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너희가 뭘 받길 원하느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복 받길 원하느냐? 뭘 받길 원하느냐?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것이 우리의 우선적인 기도제목입니다. 

여러분, 성령 받기 전에 제자들의 모습과 성령 받은 후의 제자들의 모습을 비교하면 왜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느냐? 를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제일 대표적인 인물을 뽑으라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12제자 중에 수제자에요. 선임제자. 그거에다가 약간의 만용도 있고 또 지식도 가지고 있어요. 때로는 큰 소리도 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다 버릴꺼야?’ 라고 하시니까. ‘예수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은 그래도 저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한국말로 뭐라고 해요? 내가 그러면 내 손을 뭐를 지진다고 해요? 장을 지진다고 하죠. 

다음 주가 안수집사님 선출이 있습니다만 안수집사가 될 때에는 다 그렇게 생각해요. 내가 안수집사가 되면 새벽예배도 불같이 나오고 수요예배 심야예배 내가 빠지지 않고 봉사한다. 내 손에 장을 지져라. 정말 그러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베드로도 마찬가지에요. 막 장담을 하고 했는데 실제로는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 했어요. 물론 때로는 용기도 있어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들의 하수인들이 체포하러 왔을 때, 칼을 빼서 대제사장 말고의 귀를 베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베드로가 하루 아침에 허물어져요. 

때로는 주님 앞에 바른 소리도 해요. 말로는 무슨 말을 못해요? 예수님이 마태복음 16장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질문에 제자들이 엘리야라고도 하고 선지자라고도 하고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그럽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정답을 이야기 했어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정답이에요. 베드로는 지식적으로 알았어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요. 하지만 몸이 움직이를 않았어요.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도 지식적으로는 알 수 있어요.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아요.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뜨겁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우리 유전도사님이 설교하시면서 이 머리에서 가슴까지가 상당히 멀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일리 있는 이야기에요. 머리로 아는 지식과 마음으로 뜨겁고 감동하고 행동하는 것은 차이가 많아요. 머리와 가슴 30cm 밖에 안 되는 데 먼 거예요. 머리의 신앙을 가슴의 신앙으로 옮겨 놓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해요. 더구나 그것이 손과 발로 전달되려면 그래서 봉사하고 행동하는 신앙이 되려면 더 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정말 성령으로 뜨거워 지지 않으면 한 두 번 해보고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던 베드로가 성령 받고나서 딴 사람이 됐어요. 유대인만 봐도 두려워하던 베드로가 3천명 앞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복음을 믿고 성령을 받으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됐어요. 한번 설교하니까 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시가 일어났습니다.

그것만 아니에요. 사도행전 4장에 보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대제사장 장로들에게 붙들려 체포되서 매를 맞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도 전하지 말고 전도도 하지 말라고 위협을 들었는데, 베드로가 뭐라고 말하는지 아세요? 사도행전 4장 19-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19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절“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너희의 말을 듣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해라. 베드로는 두렵지 않습니다. 대제사장들 앞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습니다. 나가서 복음 전하다 또 붙들려 왔습니다. 또 모진 매를 맞고 풀어 줍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지 말라. 그런데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가느냐? 

사도행전 5장40-41절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40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예수 때문에 능욕 받고 핍박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떠났다는 거예요. 여러분 빰 맞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아무리 제가 목사지만 빰을 때리고 와서 설교하라고 하면 제가 웃으면서 설교 할 수 있겠어요?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매를 맞고도 예수 때문에 핍박 받는 것을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났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모습이에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예요. 그들은 이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세상을 두려워해요, 돈 앞에 무릎 꿇고 권력 앞에 맥 못추고 아니에요. 성령을 모신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나서 나눔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저 모으기만 좋아했고 전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지기만 했던 사람들인데 성령 받고 나니까 사도행전 2장 후반절에 가면 그들이 유무상통했다. 가진 것을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어요.

가진 것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사람들은 그리고 그것을 나누어주기 시작했어요. 모일 때마다 떡을 떼면서 기뻐하고 교제를 나눴어요. 그리고 기쁨이 충만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 보니까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그들은 기쁨이 충만했어요. 그리고 복음 전파에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성령을 사모해야 하느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거예요. 종종 교회에서도 성령을 모르고 성령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분들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나친 열심이 교회에 문제가 될 때가 있어요. 우리가 성령 받고 성령충만 하여 열심히 봉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교우들이 다 성령충만을 입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충만이란 뭘까? 성령님이 내 안에 임재 하셔서 나를 온전히 지배하시는 상태를 성령충만이라고 해요. 그리고 나 자신의 의지를 꺾고 성령께 나를 순복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인 생을 내가 이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거예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내가 늘 경험으로 이렇게 했지?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 어떡하면 좋을까요? 성령님 제가 옳은 길을 알려주세요. 늘 성령께 묻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 성령 충만한 모습 자 이런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필요했을까요? 

첫 째로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 말씀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분명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내게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제자들은 그 약속대로 기다립니다. 

사도행전 1장 12절 말씀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그들이 왜 감람원에 갔을까요?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 예수님 승천하시고 나서 그들은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감란산 위에는 예수님의 승천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어요. 왜? 그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너희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 이야기를 바꾸어 말하면 성령 받기 전에는 꼼짝도 하지 말아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여서 기도하게 되죠.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이에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순종 이것이 성령 받는 첫 번째, 조건이에요. 사실 떠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에 모든 사람이 순종한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15장은 우리가 부활장이라고 부르는데 말씀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 쭉 열거됩니다. 뭐 베드로 주의 형제 야고보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나에게도 또 12제자에게도 또 이렇게 형제들에게도 쭉 나와요. 그런데 그들 숫자를 종합해보니까 모두 약 500명 정도 되요. 500명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들었을 거예요.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그런데 감람원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기 위해 모인 숫자가 약 120명 정도 됐어요. 그러면 380명은 기다리지 않고 떠난 거예요. 순종한 사람이 있고 순종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은 어느 쪽에 드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기다려서 순종하는 쪽이냐? 아니면 한 귀로 흘려듣고 산산히 흩어져버린 그런 무리냐는 거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은 전도하라면 전도하고 기도하라면 기도하고 봉사하라면 봉사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렇지 못해요. 자기 생각이, 주장이, 논리가 많아요. 이런 분들은 은혜 받기가 참 어려워요. 이미 마음이 자기 생각, 논리로 꽉 차있기 때문에 성령을 향해서 마음을 열지 못해요. 이렇기 때문에 은혜 받기가 어려워요. 늘 마음이 냉랭한 거예요. 신앙생활을 해도 기쁨이 없어. 눈에 보이는 것은 남의 흠만 크게 보여. 남 칭찬 할 일은 별로 크게 안보이고 남의 흠만 크게 보여. 그래가지고 늘 흠만 찾는 거예요. 은혜 받지 못하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기쁨이 없고, 사명도 없고 감격도 없고 비판자만 되는 거예요. 이게 문제가 있어요. 

자. 이 사람들은 말씀하신 것을 기다렸어요.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은혜가 임하게 된 거예요. 사도행전 5장 32절에 보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성령은 어떤 사람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부어 주신다. 여러분도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서 성령 충만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 번째, 그들은 순종해서 기다렸어요.

두 번째로, 그들은 성령 받기 위해서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 말씀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그들은 모여서 온전히 기도에만 전념했어요. 모여서 회의, 세미나, 논쟁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기도했어요. 겸손히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 거예요. 왜?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이런문제 저런문제 여러분 걱정꺼리 많으시죠?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그렇습니다. 문제 앞에 놓여 있다면 여러분 기도하세요. 

왜 마가복음 9장 29절에서도 보면 기도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랬어요. 기도만이 우리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한다는 거예요. 성령은 바로 기도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영이에요. 하물며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 성령을 받았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해요. 예수님도 기도할 때 성령을 받으셨어요. 

누가복음 3장 21-22절 “21절: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절: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기도 할 때 예수님도 성령을 받으셨다. 하물며 우리는 말할 것도 없죠. 마태복음 7장 7절에 보니까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주님 약속 하셨어요. 구하는 자에게 내가 주겠다는 거예요. 

마태복음 7장 11절에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보면 그 좋은 것이 뭐에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어요. 남종과 여종이 다 성령을 받을 것이 사도행전에 이미 예언돼 있죠.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길 바라십니다. 여러분 다시 기도의 무릎을 꿇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제단에 기도의 불이 꺼지면 안되요. 가전에 기도의 소리가 없어져 버리면 그 가정은 주님이 떠난 가장 비참한 가정이 되버리는 거예요. 엘리 제사장의 가정 홉니와 비느하스가 아주 불량한 아들들이었고 못된 제사장들이었어요. 

그들은 제단에 올려지는 제물들을 자기들이 가로채고 여인들을 희롱하고 거짓된 자식들이었어요. 그들이 법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다가 패배하고 법궤만 빼앗기고 다 죽임을 당했어요. 그 소식을 듣고 엘리가 상에서 떨어지면서 목이 부러져 죽고 그의 며느리는 애기를 낳다가 그만 죽잖아요. 그러면서 애기 이름을 이가봇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성령이 우리 가문을 떠났다는 거예요. 

다윗 왕이 밧세바를 범하는 범죄는 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가장 눈물로 기도한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성령이 떠나가면 다윗은 아무 존재가 아니에요. 내가 비록 범죄했지만 성령을 내게서 거둬가지 마소서. 그것이 다윗의 첫 번째, 기도 제목이에요. 

우리는 성령충만을 구해야 해요. 예수님도 사도행전 10장 3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예수님도 성령과 기름부음을 받으신 후에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선한 일을 행하시고 귀신을 내쫓고 눌린 사람을 고치시고 하셨어요. 하물며 우리는 말할 것도 없죠. 성령 받지 않고 성령의 능력 의지하지 않고 봉사하겠다. 인간적인 봉사에요. 봉사하다 다 시험받아요. ‘왜 나를 인정 안해주느냐. 나를 왜 안 알아주냐?’ 다 시험받아요. 성령의 감동 없이 봉사하면 그래요.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면 되는 것이지 꼭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해요. 우리는 사람보고 신앙생활 해, 목사 보고 신앙생활 해. 안타까운 일이에요. 사람에게 인정 좀 못 받으면 어떠세요. 제가 여러분에게 인기 얻으려고 목사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목사가 되려고 몸부림치지 여러분의 마음에 들려고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령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해요. 교회가 인간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되면 가장 비참한 교회가 되요. 성령이 인도해 가시는 교회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교회 그런 교회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교회일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제 성령 충만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정을 받는 교회 여러분의 인생이 성령에 붙들림 받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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