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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께서 하시는 일 (요 1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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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하시는 일 (요 16:7-11)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사실은 지난 주일이 성령 강림주일이었는데, 오월 가정의 달에 관한 설교를 하느라고, 성령에 관한 말씀을 오늘에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12 제자들을 포함한 120 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오순절 날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강림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여기에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의 광경이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이, 혹은 불의 혀처럼 강림하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급하고 강한 바람이나, 불의 혀 같은 것이 성령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성령께서 임하시고 역사하실 때, 나타난 현상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성령에 대해서 대단히 잘못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같은 이단들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무슨 신비한 힘이나 능력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회의 신관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관입니다.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잘 믿는 것 같은데, 성령 하나님은 잘 예배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나 우리 송정 중앙교회 성도들 중에서도 성령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성령님을 무슨 능력이나 권능으로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성령님이 어떻게 하나님이 되시는 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성령님이 단순한 힘이나 능력이 아닌 것부터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혜사란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그 뜻은 위로자, 대언자, 중보자, 상담자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 보혜사를 가리켜 ‘그’라고 하는 인칭 대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8절에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했는데, 어떤 힘이나 능력이 사람을 결코 책망할 수 없습니다. 인격을 갖고 계신 성령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요 14:26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힘이나 능력이 어떻게 가르치고 생각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께서 인격적이신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고전 12:11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했는데, 어떻게 힘이나 능력에 뜻이 있을 수 있으며, 혹은 힘이나 능력이 나눠주고 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일들은 성령께서 인격적이신 존재이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엡 4:30에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만일 성령이 에너지나 힘이라면, 어떻게 비인격적인 존재가 근심할 수 있겠습니까? 

행 8:29에 보면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하시면서 빌립에게 명령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만일 성령이 단순한 힘이나 능력이라면 어떻게 지시하고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행 13:2에도 성령께서 명령하신 기사가 나옵니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롬 8:26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힘이나 능력이 어떻게 탄식하고 간구할 수 있겠습니까? 고전 2:10에 보면 “성령은 모는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는데, 어떻게 힘이나 능력이 통달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은 오히려 성령과 성령의 능력을 뚜렷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탄을 예고할 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 2:4의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라는 말씀에서도, 성령과 능력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롬 15:13에 보면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는데, 만일 성령을 단순한 힘이나 능력으로 본다면, 여기의 구절은 힘의 힘으로 또는 능력의 능력으로 라는 괴상한 의미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보다 직접적으로 성령을 하나님이라고 한 성경 구절들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기사가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죄에 대하여 베드로는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다.”고 했는데, 여기에 보면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성령을 속였다고 책망하였고, 성령을 속인 것은 곧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3:16-17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는데, 여기 보면 성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는 것은, 곧 성도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여, 성령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딤후 3:16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했는데, 여기 ‘하나님의 감동’이란 곧 ‘성령의 감동’을 의미하여, 성령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벧후 1:21에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받아 말한 것이니라.”고 하여서 역시 성령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하나님이시므로 신적인 예배와 존영이 성령님께 돌려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 기도를 하였습니다. 물론 삼위일체 교리는 너무도 신비한 진리여서,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진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8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했는데, 여기 책망한다는 말의 헬라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본래의 뜻과 같은 ‘책망 한다’ ‘꾸짖다’는 뜻이 있고 2)깨우쳐서 확신케 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일 혹은 깨우치시는 일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 중에 참으로 중요한 일에 속합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의 심령에 찾아오셔서 하시는 일은 맨 먼저 

1. 죄에 대하여 책망을 하십니다.

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양심은, 화인을 맞아서 죄의 진상을 바로 깨닫지 못합니다. 물론 불신자들에게도 죄의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죄가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를 어떻게 단절시켰고, 우리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죄책과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모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 안에서 역사하실 때 어떻게 됩니까? 이사야 선지자에게 성령이 역사하실 때 그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 하면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이 그의 속에서 역사하실 때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실토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성령이 역사하실 때 그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가슴을 쳤는데, 이것은 베드로의 설교 때문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성령께서 책망하시고 깨우치시는 죄악이 있는데,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살인죄보다 간음죄보다 더 큰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불신앙의 죄입니다. 

성령 훼방 죄를 제외한 모든 죄가 다 용서받을 수 있으나, 불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구속까지를 믿지 아니하게 되므로, 불신앙은 죄 중에 죄요 우리를 영원히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의 진상을 바로 알게 해주시고, 우리의 불신앙을 깨우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하여 구원을 얻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2.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해주십니다.

유대인은 율법의 의를 자랑하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의 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는 다 거짓된 의입니다. 본문 10절에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했는데, 여기에 보면 성부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대업을 다 이루시고 성부에게 되돌아가시는 것을 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이요, 곧 그것이 우리를 의롭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 이러한 길을 누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가?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란 것입니다.

3.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하십니다. 

11절에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의 이 세상 임금이란 악령들의 두목이 되는 사탄 곧 마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마귀는 이미 심판을 받아버렸습니다. 마귀는 이미 정죄되었고, 영원히 타는 불 못에 들어가기로 정해져 있습니다. 마귀는 영원토록 소망이 없습니다. 영원한 지옥불이 마귀의 거처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이 세상 임금인 마귀를 좇아 살면, 마귀와 함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 확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미 마귀를 이기시고 또 마귀가 이미 심판받고 정죄되었다면, 조금 남은 그의 때에 마귀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우리를 방해하여도, 우리의 구원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 같은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일 또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임종하면서 “우리는 실로 거지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육적으로 영적으로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다음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입니다. 

1)성령은 우리에게 성경을 깨닫도록 조명해 주십니다.(고전 2:13)

2)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상태 즉 우리는 죄의 세력에 노예 가 되어 있고(롬 6:20) 따라서 사망에 예속되어(롬 6:23) 심판을 받게 되어 있 음을 가르쳐 주십니다.(롬 5:18)

3)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1)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종의 생활을 하셨고, (2)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시고, (3)부활하사 죽음의 권세를 정복하시고, (4)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4)성령은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을 창조하십니다.(고전 12:3)

5)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힘을 주십니다.(요 13:12-15 빌 2:13)

6)성령은 우리가 마지막 영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앙 가운데서 우리 를 지켜주시며,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그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마 25:34)

7)마지막 주님의 영접이 있고 난 다음, 성령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 생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계 2:10)

성령께서 하신 중요한 일들이 또 있습니다. 성령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 1:2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성부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케 하신 분이십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수태고지를 할 때,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는 신천지 이단의 무리들은, 이만희가 자신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하는 말을 믿고 따릅니다. 그렇다면 이제껏 말씀드린 성령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이만희가 했다는 말이니 포복졸도 할 일입니다. 도저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는, 너무도 무지몽매하고 가련한 인생들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관은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관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원리나 법칙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생사회복을 주관하시는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또 뛰어난 위인이나 성인의 반열에 모실 분도 아닌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무슨 신비한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책망하시고,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근심하시고, 탄식하시고, 명령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인격적이신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 성령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확신케 해주십니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속 사역의 공로를, 우리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하여 구원을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그를 가리켜 신자라 할 수 없는 것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의 전기에 보면 자주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 기도를 한다.” 이 기도는 “하나님 오늘도 나를 성령 충만하게 도와 주십시오. 나는 성령 충만 없이 하루 길을 걷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나는 말을 조심한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내가 하는 말은 종종 실수일 수 있고 실언 일 수 있고, 이웃들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성령 충만 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때, 중요한 결정을 유보한다. 내가 성령 충만하지 않고 결정을 할 때, 종종 내 결정은 잘못 될 수 있고, 나는 믿지 않는 사람과 꼭 마찬가지의 이기적인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모한다. 나는 목이 타도록 사모한다. 목마른 사슴처럼 사모한다. 성령 충만을 사모한다.”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강림하신 성령께서,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의 심령에 찾아오셔서, 아직 거듭나지 못한 신자는 먼저 중생케 해주시고, 기왕에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더욱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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