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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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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왕하 18:5-8)


며칠 전 한 일간지에 기분 좋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달 23일이면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을 돌파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세계 7번째로“20-50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고 합니다.“20-50 클럽”이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을 갖춘 국가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영국이1996년도에“20-50 클럽”에 가입한 이후 16년만이라고 합니다. 2차 대전 이후 독립국가운데 유일하게 대한민국이“20-50 클럽”에 진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0-50 클럽”에 가입한 나라는 일본(1987), 미국(1988), 프랑스(1990), 이탈리아(1990), 독일(1991), 영국(1996) 등 6개국 밖에 없다고 합니다.“20-50 클럽”가입은 우리나라가 확실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합니다. 국제적으로 1인당 소득 2만 달러는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는 소득의 기준이며, 인구 5천만 명은 인구 강국과 소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통용된다고 합니다. 

이는 일제의 억압과 6.25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이룩한 오늘의 대한민국이기에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호국의 달 6월에 날아든 낭보이기에 더욱 감회가 깊습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말하기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게“20-50 클럽”에 가입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루카스 시카코대 교수가 한국의 성장을 기적이라고 했는데, 그 기적이 현실로 굳어진 셈”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힘만으로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연도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내리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상 2장 7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본문은 하나님을 잘 섬긴 히스기야 왕의 신앙에 대한 말씀인데, 그의 신앙을 살펴보므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삶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대나라 16대 왕으로 29년간 재위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부왕은 아하스였습니다. 그는 유약함과 불신앙으로 인해 정치적 종교적 상황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까지도 극도로 어려워진 나라를 아들 히스기야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나라를 이어받아 크게 부강한 나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왕을 가리켜 제2의 다윗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것은, 죄인인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사람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만 값없이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이 세상에서 축복은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행한 대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통치함으로 나라가 부강하게 된 것은 그의 힘만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기에 하나님은 그와 이스라엘 나라에 축복하셨을까요?

一. 히스기야 왕의 신앙

1. 그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본문 6절에 기록하기를“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가까이 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상을 섬기며 우상과 연합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 세상의 향락이나 물욕과 연합하여 살게 되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처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삶의 지혜이며, 축복을 받아 누린 원동력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은 마치 줄기에서 잘려나간 포도나무 가지(요한복음 15:5)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줄기에서 잘려진 포도나무 가지는 곧 말라져 불태워지듯, 하나님의 곁을 떠난 심령의 말로가 이와 같이 실패와 멸망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난 심령을 가리켜 목자를 떠나 길 잃은 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길을 잃고 헤매게 되듯, 하나님을 떠난 심령은 생명의 길, 축복의 길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목자를 떠난 양은 맹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삶은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빨아들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한 삶은 양이 목자의 곁을 떠나지 아니함으로 목자의 철저한 보호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양은 푸른 풀밭, 맑은 물가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셔서 나로 하여금 승리의 자리로, 행복의 자리로,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어느 날 천재적인 음악가 멘델스존이 유럽에서 가장 값비싼 오르간을 소장하고 있는 대성당을 방문했다가 그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자기도 한 번 연주해 볼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주자는“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 귀한 오르간을 연주하게 하겠느냐.”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래도 여러 차례의 부탁 끝에 멘델스존은 겨우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오르간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고 환상적 음악이 성당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연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연주를 듣던 그 연주자는“대체 누구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멘델스존이 자기의 신분을 밝히자 그 연주자가 말하기를“이 늙은이가 눈이 멀어서 위대한 음악가의 연주를 방해하고 말았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연주하고자 하시는 손길을 방해한 경우는 없습니까? 우리의 삶을 주님의 손길에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분께 맡기면 내 삶의 광주리에 보람된 축복의 열매를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연합한 삶이겠습니까? 하나님과 연합한 삶은 교회를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로 깨닫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의 열쇠가 됩니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사람들만 모인 곳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란 현존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 말씀에“그(그리스도)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고 했습니다. 비록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펼쳐 나가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부족하고 허물투성이인 제자들에게 주의 교회를 맡기 셨듯, 지금도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멀어지는 것은 곧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교회와 멀어지도록 하기 위해 온갖 구실로 유혹을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모든 것 다 빼앗기고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을 떠난 것은 곧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여리고란 어떤 의미입니까?“달의 도시”라는 뜻의 도시입니다. 음침한 도시, 향락의 도시라는 뜻이 여리고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집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향하는 사람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강도만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편 122편 6절~9절 말씀에는 우리가 원하는 평안과 형통함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루살렘이란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성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안과 형통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하셨듯,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일을 하는 하나님의 집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집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일을 내 집안의 일처럼 걱정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겨 삶의 우선순위에 두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과 연합한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교회를 한없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본문 6절에“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고 했습니다. 계명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간답게 살아하는 삶의 방법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길을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 길을 따라 살아가면 풍성한 은혜와 축복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 28장 1절~6절 말씀에“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길을 밝히는 빛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에“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삶입니다.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안전합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보장하신 승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보장하신 행복의 길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보장하신 성공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 말씀에“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어야 사람입니다. 아무리 존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명이 끊어지면 3일을 넘기지 않고 장례를 치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실까요?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누가복음 20장 38절 말씀에“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하셨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 즉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과 함께 하셔서 크신 능력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하셨습니다. 잠언 8장 17절 말씀에“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잠언 8장 18절~19절에 말씀하시기를“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길은 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가시밭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때로는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을 걸어간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잠언 8장 18절~19절에 말씀하시기를“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하셨기 때문입니다.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선교사가 중국에 있을 때 한 청년 신사가 찾아와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서 정식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며 신앙 연수가 몇 해가 되어야 합니까?”그러자 테일러 목사는 이렇게 반문했습니다.“촛불은 언제 빛을 내지요?”청년은“그야 물론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테일러 목사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어느 수준으로까지 오른다든지 몇 해 동안 교회 생활을 했다든지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에 불이 붙는 순간 빛을 발하듯 연수가 없어도 하나님이 나를 불러 필요한 인간으로 사용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순간 이미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벌써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 것이지요.”

순종에 지체하지 않아야 합니다. 순종은 병든 환자가 의사의 처방대로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건강 회복이 빠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병든 영혼의 소유자들입니다. 생각이 병들었고, 언어가 병들었고, 생활 방식이 병들었습니다. 이대로 두면 모든 인간은 불행의 늪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에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병든 심령을 고치시고자 오신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2장 17절에 말씀하시기를“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지체하지 않는 심령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3. 히스기야 왕은 환경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선왕(先王)인 아하스 왕은 유다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이 온갖 우상을 다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어려서부터 우상 숭배하는 것을 보고 듣고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주변의 유혹이 아담과 하와를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주변의 유혹이 지혜의 왕 솔로몬을 우상숭배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주위의 악습을 본받지 않았습니다. 삶의 승리자들의 공통점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셉이 그렇고, 다니엘이 그렇습니다. 환경으로부터 오는 유혹이나, 위협이나, 역경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가“20-50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삶의 환경은 더없이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진 삶의 환경은 영적 침체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편안하고 좋은 환경은 하나님께 향하려는 우리의 마음과 관심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좋은 환경은 하나님께 드리려는 우리의 시간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편안하고 좋은 환경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환경은 하나님이 없어도 살만하다는 착각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편하고 부한 환경은 영적 위기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언제나 그렇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점기나 6.25동란 같은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믿음을 지키는 것도 어렵지만, 부족함이 없는 좋은 환경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좋은 환경의 유혹을 이기고 더욱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겠습니다.

二. 히스기야 왕의 신앙의 결과

본문 7절에 기록하기를“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히스기야 왕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받아 누린 형통함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1. 나라가 속국에서 벗어났습니다. 

본문 7절에“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라고 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앗수르 왕을 섬기며 조공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굴욕적인 섬김에서 벗어났습니다.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습니다. 당당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자유는 곧 생명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내려지는 형벌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에게 자유를 빼앗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구치소나 교도소에 감금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사회에서 누리던 자유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더욱 큰 죄를 지은 죄수에게는 감옥소 내에서도 독 감방에 수감합니다. 이는 교도소 담장안의 자유까지도 박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살아가는 곳에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4장 18절~20절에 말씀하시기를“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부왕 아하스는 잘 살아보고자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 결과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그 나라를 섬기며 비굴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 결과 앗수르의 속국에서 벗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28장 13절~14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정성 다해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자유 함이 있습니다.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의 자유,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죄악으로부터의 자유, 지옥의 멸망으로부터의 자유 함이 있게 됩니다.

2. 건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20장에는 히스기야 왕의 투병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중병에 걸려 소생할 가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15년간 연장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 신유의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외적의 침략을 막아 주셨습니다.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않자 그 앗수르 왕이 대군을 이끌고 유다나라를 침략해왔습니다(왕하 18:9-19:37).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베푸신 전쟁의 기적에 대해 열왕기하 19장 35절에 기록하기를“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기도의 능력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의 형통함인 것입니다. 

1967년도에 있었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을 이끈 모세 다이안 장군은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선언을 했습니다. 다이안은, 100배의 인구를 가진 아랍연합과 맞서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새로운 무기가 있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세계 사람들은 그것이 틀림없이 원자폭탄이거나 수소폭탄을 능가하는 신무기일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나 다이안 장군은“우리를 승리하게 할 신병기는 바로 시편 121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121편이란“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1~8)하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결국 이 전쟁은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난 싱거운 전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정성을 다해 섬기는 나라를 지키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정성을 다해 섬기는 개인과 가정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에게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에게도 고난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성도에게도 역경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승리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 까닭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날, 인간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며,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히스기야는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 함을 누렸습니다. 
외적이 침략해왔을 때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막아주셨습니다. 
병들어 사경을 헤맬 때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우리가 바라는 모든 축복은 우리들의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히스기야 왕의 믿음을 본받으므로 나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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