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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량 없는 은혜 (창 3: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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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 없는 은혜(창 3:17-21)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6)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피조물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관계를 유지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날 인생들의 모습은 행복하지 않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인생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10)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인간이 누리는 기쁨과 행복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불행의 원인은 무엇일까? 오늘 본문은 이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주고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아내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그렇다고 무조건 아내의 말을 듣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믿음 없는 아내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되신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자 반역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 일에 대하여 엄중 경고하셨다. 

창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하나님의 진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유혹하여 범죄케 한 하와에게 벌을 내리셨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와에게 내린 벌이 두 가지인데..

1) 해산의 고통
2) 남편에게 다스림을 받게 됨 - 믿음 안에서는 인격적으로 동등하나 질서적인 면에서는 남자가 우위에 있다. 

딤전 2: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아담에게는 어떤 형벌이 내려졌는가?

17 ...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1) 땅이 저주를 받아서 가시덩쿨과 엉겅퀴를 내게 될 것 - 메마르고 황폐한 땅으로
2) 평생에 수고하며 땀을 흘려야 함 - 범죄 전의 노동은 기쁨, 즐거움.
3) 흙으로 돌아감 - 죽음(롬 6:23). 수명의 단축.

이 무겁고도 준엄한 심판의 형벌이 내려졌다. 이것은 법정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것과 같은 것이다. 사형수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형 집행의 날을 맞게 되는 것이다. 
사형 선고 받은 아담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삶의 소망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안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죽음의 날을 기다리며 후회하며 슬퍼했을 것이다. 


2. 아담의 회개

그러나 아담은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하나님의 무서운 징벌 앞에서 새로운 반전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하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생명’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동산에서 쫓겨나고 땀을 흘리는 수고를 통해서만 먹고 살게 될 것이지만 자신의 아내를 통하여 태어날 후손이 구원자로 오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은 막연한 추론이 아니라 창3:15의 말씀을 근거로 설명할 수 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이 뱀(사탄)의 머리를 깰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내의 이름을 하와, 곧 ‘생명을 가진 자의 어미’라고 부른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행동, 곧 회개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보였던 태도와도 비슷하다. 무력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를 바라보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그 순간 베드로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선포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3. 진노 중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

오늘 본문에서 아담이 그의 아내에게 이름을 지어준 후에 놀라운 은혜가 그들 부부에게 임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신 것이다.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사람이 죄를 범하면 나타나는 현상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고, 둘째는 숨으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보고 수치심이 들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해 입고 숨었다. 그러나 그들의 수치를 가릴 수는 없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나 노력으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상징적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양(?) 한 마리를 잡으셨다. 그리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주셨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수치심을 영속적으로 가려준다는 것과 그들의 몸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히기 위해서 양 한 마리가 희생을 당했다. 피를 흘린 것이다. 이것이 희생제사의 기원이 된다. 

이 희생제사는 저주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인데 곧 생명으로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사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히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구약의 제사로는 완전한 속죄를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속죄를 위한 준비로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의 제물로 보내셔서 단 한 번의 제사로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증거했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심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입혀줄 하나님의 의의 옷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 말씀은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이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곤고한 인생살이 가운데에서도 기쁨과 감사가 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결론적 메시지  

여러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집을 늘리고 좋은 차를 타는 것도 중요하다. 승진하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 취미 생활을 하고 여행을 하며 인생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그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인 허무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나의 신앙이 육신적 성공을 얻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라면 그것은 더욱 더 불행해질 것이다. 

여러분, 사형수들에게 명품 가방, 메이커 의류, 고급 가구, 고급 주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히 간직하지 못할 것들에 지나치게 매여 있는 것을 본다. 예배도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한다. 기도할 시간도 없다. 성경 읽을 시간도 없다. 영원을 위한 투자가 적다. 그리고 육신적인 일에 너무 분주하다. 그리고는 마음이 공허하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놓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셨다. 그것도 값없이 거져 입혀주셨다. 그런데 자꾸 다른 것들을 더 걸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 기쁨과 감사가 없다. 희생과 헌신도 없어지고 있다. 조금만 불편해도 불평이 터져 나오고, 사소한 일 가지고도 싸우려든다. 은혜가 떨어진 까닭이다. 은혜를 회복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쉼이 필요하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절망적 상태에 놓여 있던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셨다. 예수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과 자유가 있다. 이젠 조용히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멀리진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를 향하신 한량 없는 은혜를 회복하길 바란다.

예)예배당에 일찍 나오기. 새벽기도, 성경 한 장 읽기,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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