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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마른 뼈에 성령의 생기를! (겔 37:1-14, 요 15:26-27,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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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뼈에 성령의 생기를! (겔 37:1-14, 요 15:26-27, 행 2:1-21)

<오순절 날이 이르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다 한 곳에 모여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다가 성령체험을 하게 된 날입니다. 성령을 받은 날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밖에 나가 복음을 전했더니 전도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요원의 불길처럼 교회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제일 먼저 사도행전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행 2:1절을 봅니다. “오순절 날이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일어났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무교절), 초막절(장막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명절 중에 하나입니다(신 16: 16). 유월절에서 시작하여 50일째 오는 날이므로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혹은 유월절 후 첫 안식일이 지난 다음 정확히 7주 후에 온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보리의 첫 열매를 추수하여 하나님의 제단 앞에 바친다고 해서 맥추절 혹은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출 34: 22). 
   
성령강림이 오순절에 일어났다면 먼저 영적인 추수가 일어난 날이지요. 120명이 성령의 첫 열매가 되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120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도자 베드로가 성령세례를 받고 말씀을 전하니 3천명의 영혼을 첫 열매로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은 성령의 낫으로 영혼의 첫 열매를 거둔 초실절(初實節)입니다. 이제 성령의 예리한 낫이 영혼들을 차례로 거두어들이는 영혼의 추수기가 활짝 열렸다는 것이지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오순절 날 120명이 다함께 한 곳에 모였을 때 성령강림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성령강림은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집단 사건입니다. 여기 공동체성을 보여주는 말이 한 둘이 아닙니다.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1), '온 집에 가득하며'(2), '각 사람 위에'(3), '그들이 다'(4), 이런 표현은 성령강림이 120문도 모두에게 집단적으로 일어난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성령강림은 이와 동시에 120명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일어난 일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은 집안에 있던 제자들에게 각각 동시에 임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기다리며 함께 기도했을 때 120명 전체 위에 집단적으로, 하지만 각자 위에 개별적으로 임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인들도 가족과 같이 친밀한 공동체를 이루어 다함께 뜻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 공동체 전체 위에, 그러면서도 우리 각자 위에 뜨거운 성령의 불길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표정들>
   
그렇다면 성령강림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120문도 위에 성령이 임했을 때 세 가지 초자연적인 표징이 일어났습니다. 
   
첫째, 청각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2절을 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성령세례는 내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홀연히 순식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지요.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갑자기 하시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강림할 때 제일 먼저 소리가 들려왔는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성령강림이 '바람소리'였다고 하지 않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자연적인 바람의 소리였지만 이 바람 같은 소리는 하늘로부터 온 신령한 소리였습니다. 이 바람은 하나님의 호흡이요 숨결이었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의 생기였습니다. 
   
오늘 봉독한 에스겔서 37장에 보니까 이 성령의 바람, 하나님의 생기가 마른 뼈들 속에 들어가니 이내 살아나서 군대처럼 강해졌습니다. 에스겔이 골짜기에서 보았던 말라비틀어진 뼈들은 성령의 기운을 받지 못한 영혼들의 처참한 실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른 뼈와 생기를 향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겔 37: 4-5절을 보세요.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그 다음에 9절을 보면 에스겔은 생기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여기서 ‘생기’는 생명의 근본 원인이 되는 ‘숨’ 혹은 ‘호흡’ 혹은 ‘바람’을 의미하며 성령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기, 즉 성령은 마른 뼈와 같이 생명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하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리는 일을 합니다.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생명을 주어 살리게 하는 성령의 생기가 임하여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낡은 공기, 침체된 분위기가 사라지고 성령의 새바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성령의 새 바람으로 분위기가 일신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이와 같은 성령의 생기가 불어와 마른 뼈와 같던 우리가 힘찬 군대와 같은 열정적인 새생명으로 재창조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둘째, 시각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3절을 보세요.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여기에서도 성령이 '불'이나 '불의 혀'라고 직설법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불의 혀처럼'이라고 해서 시각적인 은유법을 쓰고 있습니다. 불이 타오르는 모습을 보면 혓바닥이 날름거리는 것과 같지요. 그 불의 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이 120명의 제자들 앞에 나타나더니만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한 사람씩 사로잡기 시작했다는 말이지요. 각 사람의 심령 속에 꿰뚫고 들어가 그의 인격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신비한 언어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충만이 몸으로 나타났다는 것이지요. 

4절을 보세요.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이 120명의 제자 모두 위에 충만하게 임하니 그들이 성령의 지배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성령이 시키는 대로 방언을 말합니다. 성령의 지배와 통치를 받게 되니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언이 터져 나왔는데 이것을 전 세계 각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성령강림의 초자연적인 표적을 요약하면, 먼저 청각적으로 성령이 바람 그 자체는 아니었지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120명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장소 전체가 생기로 가득 찹니다. 공간이 새로워집니다. 더럽고 탁한 공기가 물러가고 맑고 신선한 분위기로 채워집니다. 

이와 같이 성령충만의 시작은 우리가 모인 장소에서부터 바람 같은 하나님의 호흡과 생기로 가득 차는 분위기 쇄신부터 먼저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 시각적으로 모든 더러운 것을 태우고 소독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불의 혀 같은 것이 우리 각자 위에 내려앉습니다. 물론 성령이 불 그 자체는 아니지요. 불 같이 뜨거운 그 무엇이 우리 각자 위에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냉랭하고 무미건조했던 우리의 심령을 깨우고 우리의 죄악을 불사르기 위하여 하늘에서 불같은 것이 임합니다.  
   
구약에서 '바람 같은 소리'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표현들입니다. 그 만큼 영광스럽고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설명할 때 바람과 불의 비유를 썼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또 다른 임재와 역사를 의미하는데 귀나 눈, 입과 같은 감각 작용으로 분명히 인지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동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바람 같이 임하여 장소를 지배하고 불과 같이 임하여 각자의 머리를 지배하더니만 이내 마음을 통째로 뚫고 들어가 전인격을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동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다른 언어들', 즉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성령이 임하는 소리를 들었고, 보았고, 말했습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함으로써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확인했던 것이지요. 결국 바람→불→방언은 모두 성령이 어떻게 120명의 제자들을 사로잡고 지배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외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새술에 취한 사람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놀라다> 
   
때는 마침 오순절, 유대인의 국가적인 명절인지라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천하 각국으로부터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속속 몰려들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부터 오순절 축제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이 12지파를 대표하는 12사도와 120명의 제자들이 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유대인 대표들을 대면해서 복음의 세계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는 9절로 11절에서 이 '천하 각국'이 어디인지 다섯 개 그룹의 총 15개 지역으로 나누어 그 출신지까지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이 15개 지역은 그 당시 유대인의 세계관으로 볼 때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 있던, 전 세계를 대표할 만한 '천하 각국'이었습니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그 날 오순절에 이십 만 명이 넘는 국제적이고 다문화적이고 다언어적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제자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절로 방언이 터져 나왔는데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비록 이들이 유대인들이라고는 하나 해외에 나가 산지 오래 되어 그 지역의 말을 쓰고 있었는데, 120명의 제자들이 자기 지역의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15개국 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국제적인 언어 소통이 일어났던 것이지요. 그 15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쓰는 언어는 각각 달랐지만 그 핵심 메시지는 같았습니다. 11절을 봅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그들이 자기 나라 말로 들은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이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인간의 교만과 죄악으로 민족이 흩어지고 언어가 혼잡해졌습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각종 장벽과 분열이 생겨나서 소통이 단절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성령이 역사하니까 민족의 경계가 무너지고 언어가 통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분열된 세계 민족을 하나로 묶어서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세계어로 전파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바람과 불과 같은 성령세례를 받고서는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말을 했더니 천하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의 말 속에는 하나님의 큰 일이 들어가 있었기에 경건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6절에 보면 “소동하여,” 7절에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그리고 12절에 “다 놀라며 당황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이 사람들의 나랏말로 방언을 말하자 그야말로 일대 혼돈에 빠졌다는 말이지요! 전혀 상상하지 못했고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기에 모두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이들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시골뜨기의 대명사격인 갈릴리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더 놀랐습니다. 7절을 보세요.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성령은 사람의 조건을 보고 임재하지 않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처럼 교양 없는 시골뜨기 위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해야지만 성령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제 불고 싶은 대로 불듯이 성령 하나님 역시 우리의 조건이나 환경을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역사합니다.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이 성취되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말씀을 보면 성령강림은 철두철미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재자들과 영원토록 함께 계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주님이 우리와 육체로 함께 계시지는 않지만 훨씬 더 좋은 영적 선물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가장 좋은 영적 선물은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PARACLETE’인데 영어로 ‘helper,’ ‘돕는 자,’ 특별히 법정에서 우리를 돕는 자를 뜻합니다. 
   
이와 같이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돕습니다. 어떻게 돕습니까? 요 14: 16절을 보면 보혜사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14: 26절을 보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 다음에 15: 26절을 보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그리고 오늘 봉독한 16: 8절을 보면 보혜사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합니다. 세상이 예수를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핍박하는 것에 대해서 성령이 책망해주신다는 약속이지요. 끝으로 16: 13절을 보면 진리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이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들 위에 약속 그대로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약속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이지요!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러한 예수님의 약속은 언제나 유효해서 믿고 순종해서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실 줄 믿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초대 교회 교인들의 성령체험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반응을 가장 멋지게 보여주는 말이 있습니다. 행 2: 13절에 보면 세상 사람들은 이들 120명의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며 조롱했습니다. 술기운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알코올의 힘이 그 사람을 지배하고 조종합니다. 얼굴이 빨개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담력과 용기가 생깁니다. 제자들이 성령충만해서 황홀한 방언을 말하고 얼굴에 기쁨과 권능이 가득해보이니까 이런 조롱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새 술에 취했다”는 표현만큼 성령충만의 특징을 더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엡 5: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술은 세상적인 술입니다. 우리를 방탕하게 만드는 술은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새 술에는 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은 새롭게 발효되고 숙성된 최고의 새 포도주입니다. 
   
이 성령의 새 포도주에 취하는 사람마다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충만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언할 수 있는 담력과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하여 맨 정신인 사람들이 미쳤다고 조롱하고 비방할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에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은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새 술에 흠뻑 취해야 합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해야지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고 옥합을 깨뜨려 건축헌금을 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를 하고 모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맨 정신으로 계산해서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수많은 물질과 시간과 노력을 바쳐 봉사하고 헌신해도 도무지 아깝지가 않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더 충만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이와 같은 성령의 새술에 흠뻑 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성을 사랑한다면서 뜨거운 구애를 했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여주세요. 100일 동안 밤마다 집 앞으로 찾아와 주신다면 당신 뜻대로 결혼하겠어요.” 

그날 밤부터 그 남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그 여자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99일째 되는 날에는 유난히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도 그 남자는 변함없이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큰 감동을 받은 여자가 밖으로 나가 그 남자에게 외쳤습니다.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당신의 그 뜨거운 마음을 알았으니 우리 당장 결혼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당황하며 대답했습니다. “저⁓ 저는 아르바이트 학생인데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덕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하나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끈질기게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충만을 선물로 받을 때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오늘 이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에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생기가 마른 뼈와 같이 무기력했던 여러분의 심령을 뚫고 들어가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새술에 취한 사람처럼 무엇을 하든지 즐겁고 담대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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