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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②- 지극히 인간적인 (마 16: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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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②- 지극히 인간적인 (마 16:13-24)


1. 부족함이 있어야 인간이다

한경직 목사님은 한국교회를 대표할만한 인물 중 한 분입니다. 한목사님은 1992년 아시아 최초로 종교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템플턴상은 세계의 종교인 중 인류사회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에게 주는 상입니다. 이 상을 수상하신 한목사님은 수상축하예배에서 “반세기 전에 지은 신사참배의 죄를 참회합니다” 라고 당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공개적인 자리에서 고백하였다고하여, 그의 인품이 평가절하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존경받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부족한 것이 사람입니다. 실수가 많은 것이 인간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쓴 책 제목처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 한목사님입니다. 

2. 지극히 인간적인

베드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습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님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자신이 이제껏 존경하고 따라온 선생님께서 고난당하고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베드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 입장이 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누가 고난을 좋아합니까? 누가 죽는 것을 쉽게 받아들입니까? 
베드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되기를 바랍니다.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영광받기를 바랍니다. 
고생하고, 시련당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회피합니다. 
고생해본 사람은 압니다. 그 고생 다시 한 번 더 하라고 하면, 도망갈 것입니다. 

선생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기에, 선생님에게 그런 비극이 닥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생각해서 말씀드린 베드로, 지극히 인간미가 넘치는 베드로를 예수님은 책망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탄아”- 이 말은 좀 섬뜩한 말입니다. 베드로에게 이런 말을 하게 한 것이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편하고, 쉽고, 유익하고, 보기에 좋은 것만을 구하고, 찾고, 얻으려 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같은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우리가 보기에 먹음직스럽게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갖고 싶을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것들로 유혹합니다. 불편한 것, 어려운 것, 힘든 것, 고생하는 것, 손해보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탄은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고난과 시련을 멀리합니다. 
사탄은 성공, 출세, 영광만을 원합니다. 
고난 없는 영광, 십자가 없는 부활, 수고없는 열매, 노력하지 않고 많은 돈을 벌고, 땀 흘리지 않고 성과를 얻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입니까?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요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참된 성공, 진정한 승리는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반드시 성경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적인 것은 때로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찾아다닌다고 합니다. 얼마나 위험합니까? 99마리를 위험에 방치해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것은 비경제적입니다. 한 마리를 찾아서 집에 돌아와서 너무 기뻐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양 한 마리갖고 잔치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수고도,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 손해보십시오. 예수님 이름 때문에 말입니다. 
때로 바보 소리도 들어보십시오. 예수님처럼 살다가 말입니다. 
베드로는 지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인간미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것이 때로는 하나님의 일에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인간적이 되라는 말씀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적인, 이 말에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동시에 담겨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줄 줄 압니다. 긍정적인 면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사람은 때로 너무 인간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여기 “인간적인” 이란 말은 “육체적인” 이란 의미와 동일합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면입니다. 
베드로의 인간미- 여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따스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인간미 있는 사람,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3.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시몬에서 베드로로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새 이름은 신앙고백을 잘 해서 얻은 상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란 예수님의 질문에 시몬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정확한 신앙고백입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셔서 그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는 반석, 바위란 뜻입니다. 반석 하면, ‘든든하다’ ‘굳세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를 든든한 사람, 흔들리지 않을 사람, 굳센 사람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베드로는 자주 넘어졌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렇게 신앙이 굳세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은 베드로, 얼마 후 곧 넘어집니다. 사탄의 유혹에 걸려 넘어져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예수님을 만류합니다. 은혜받고, 복을 받고서, 곧 넘어지는 베드로,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고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서 비난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저래.”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들끼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도 여전히 부족하니까, 마음은 훤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그리스도인들은 타인의 실수나 실패를 보면서 비난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자신의 거울로 삼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6:1)
타인의 실수를 보는 그리스도인은 자신도 실수하고 부족한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겸손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는 자비와 긍휼의 사람입니다. 

청량리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는 밥퍼 목사, 최일도 목사는 신학교 다닐 때, 당시 영락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한경직 목사님에 대해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은 군부 독재에 맞서 바른 소리를 하셔서 지식인들의 신뢰를 받았는데, 한경직 목사님은 그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셔서 서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도 목사가 되고나서 1992년 한목사님께서 템플턴상을 수상한 후, 축하예배에서 자신의 신사참배의 죄를 고백한 소식을 듣고는 “한경직 목사님의 그 말씀이 내 귀에 쟁쟁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하루 이틀 겸손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하나님 앞에 엎드렸던 주의 종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분이 내가 원하는대로 살아주지 않는다고 함부로 비판했다는 생각에 너무 죄송했다” 라고 했습니다.

최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를 찾아가 사죄했습니다. 그러자 한목사님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아닙네다”였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뻘인 한목사님에게 경어를 듣고는 몸 둘 바를 몰라하던 최목사님에게 한목사님은 섬김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을 남겨주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바로 사람들이 칭찬할 때는 “아닙네다”, 비난할 때는 “당연하디요”라고 하라는 것. 우쭐해하지도, 억울해하지도 말고 올곧게 소신대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4540)

주님은 베드로를 끝까지 기다려주십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시몬이 굳건한 반석같은 신앙을 가진 베드로로 변화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사건 이후에도, 베드로는 자주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에 제자들은 다 도망갔고, 베드로도 도망갔다가 후에 멀찌기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대제사장 집 뜰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도, 고향으로 고기 잡으러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베드로를 놓지 않으십니다. 베드로와 함께 하십니다. 베드로가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주님은 베드로를 떠나지 않습니다. 언젠가 이름 그대로 반석같은 신앙인이 될 것을 믿고 기다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거룩한 백성 즉 성도로 불러주십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기다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 딸답게 살 것을 기대하면서,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 날이 올 것을 기다려주고 계십니다. 

4. 실패했어도 다시 주님 앞에 서라

베드로처럼, 우리도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너무도 인간적인 나약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실수 많은 베드로, 주님의 부름을 받아 다시 주님 앞에 섰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주님께 걸림돌이 되었던 베드로, 훗날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은혜의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토대를 쌓은 초대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때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듬으셔서 곧 은혜의 디딤돌로, 교회의 주춧돌같은 사람으로 귀하게 쓰실 것을 기대하십시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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