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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고전 1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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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중요합니다 (고전 16:1-14)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고 주님의 일을 하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기도만 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관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재무관리, 인간관리, 기획관리 등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좋아 보이는데, 이런 일들을 잘 못 해서 어설픈 분들이 있습니다. <기도만 열심히 하면 다 되겠지요...>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부분들이 많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잘 관리하고 다스려야 할 네 가지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네 가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싫건 좋건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으면 흔히 <인복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길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협력하고 복되게 살게 되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인복은 타고난다거나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소위 황금율의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먼저 대접하고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사람 사랑하는 법, 사람 대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길 원했습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마침 디모데가 고린도에 갈 일이 생겼는데, 바울은 디모데를 잘 대해 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모데는 왜 고린도에 가게 되었을까요?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파당문제, 결혼 문제, 부활을 믿지 않는 문제, 성령의 은사 문제 등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때 바울이 핍박자였던 것을 생각하면서 바울은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비판하고, 그가 가르친 복음에까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접한 바울은 당장 자신이 갈 수 없었기에 디모데를 보내  문제들을 해결하게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보내면서 바울은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디모데가 아직 연소 연소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바울은 디모데의 연소함을 염려했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을 보면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고린도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디모데가 오는 게 떨떠름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알아야 얼마나 알겠는가? 왜 바울은 직접 안 오고 디모데를 보냈나?....> 등의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잘 맞아 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람대하는 법을 알아야 했습니다. 디모데를 나쁘게 대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터였습니다. 본문 10-11절을 보십시오.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그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두려움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멸시하지 말라, 평안히 보내라, 이게 바울의 권면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주위 사람들을 잘 대해주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기쁨으로 다가오게 하십시오. 너무 날을 세우지 마세요. 무시하면 안 됩니다. 평안하게 대해야 합니다. 부드럽게 관용하면서 대해야 합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남을 힘들게 하면 곤란합니다. 사람들은 똑똑한 사람보다 사랑이 많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삼국지의 유비는 자신이 용맹한 무장은 아니었지만, 인덕이 있어 주위에 사람이 모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사랑한다면 협력해서 함께 섬겨야 합니다. 받아주고, 아껴주고, 기회를 주어 함께 일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처음 믿는 분들도 있지만,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도 제법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래 다닌 분들은 이런 분들을 가슴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문제 때문에 상처가 많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교인들은 바울이 워낙 지독한 핍박자였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그를 멀리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 때 그를 사랑으로 품은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예루살렘에 데리고 가서 소개하고, 다소로 보냈다가 후에 직접 다소까지 가서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함께 교회를 섬기게 했습니다. 바울이 교회에 자리를 잡고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된 배후에 바나바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았기에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내게 된 것입니다. 비록 디모데가 연소하고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신을 대신하여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마음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돕도록 기회를 주시고, 키우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함께 봉사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에 독불장군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고, 경험 없다고 깔보지 말고, 늘 격려하고 사랑하면서 함께 해야 합니다. 잘하는 분들을 보면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 분들, 처음 하는 분들은 오랫동안 수고해 오신 분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존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포용하고 함께 하는 게 중요합니다. 누구든지 우리 곁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길 원합니다. 


두 번 째 문제는 재정, 돈 문제입니다. 

여러분, 돈 좋아하시지요? 싫어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돈은 정말 중요합니다. 돈이 때로는 악하게 여겨지지만, 돈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단지 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악한 것이 문제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해서도 올바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돈 때문에 신앙과 인생에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우선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할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빈둥거리는 것은 죄입니다.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십시오. 사업도 잘하시고, 직장 근무도 열심히 하십시오. 교우님 모두가 물질의 복을 받길 기원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돈의 활용 문제입니다.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돈이 많아도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잘 도와야 내게도 사람이 생기는 것처럼 돈도 잘 활용해야 더 큰 돈이 생기는 법입니다. 

돈을 잘 활용하는 기본은 <비움과 나눔>입니다. 혼자 움켜쥐지 않고 나누어줌으로써 비우는 것이 원리입니다. 씨를 움켜쥐고 있으면 추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낌없이 땅에 뿌리면 나중에 풍성한 수확을 얻습니다.  돈을 씨처럼 사용하면 더 많은 것을 추수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연보, 즉 헌금에 대해 가르칩니다. 비움과 나눔의 기본은 헌금입니다.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헌금을 잘 드린다는 것은 그 사람이 돈을 대하는 기본 태도가 갖추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늘 헌금을 드리는 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교인들을 돕기 위한 헌금을 드리라고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헌금을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우선 바울은 <미리 하라>고 가르칩니다. 바울이 도착한 다음에 서둘러 하지 말고, 미리 헌금을 해서 모아두라는 것입니다. 급하게 하면 준비가 부족하게 됩니다. 저를 가르치신 목사님께서는 11월에 드릴 추수감사헌금을 1월부터 준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정성과 마음이 담깁니다. 우리도 주보를 보고 헌금 순서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미리 준비해 와야 합니다. 

또 <수입에 따라 드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물질에 대한 정직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부요한 자는 자신의 능력만큼 많이 드려야 합니다. 더 많이 드릴 수 있는데도 드리지 않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께 대해 인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색한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반면에 어려운 형편에 있는 분들의 정직은 무엇일까요? 마음에도 없고, 드릴 능력도 안 되는 헌금을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엄청난 빚을 내서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도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과시를 위한 또 하나의 속임수입니다. 그래서 <수입에 따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헌금을 드린다는 것은 단지 돈을 드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돈의 일부를 헌금하기로 마음먹고 봉투에 넣어 준비하는 순간, 그는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그는 <이 돈은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땅의 일이 아닌, 하늘과 연결된 거룩한 일이 됩니다. 우리 시간, 우리 물질,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과 연결된 것임을 알고 잘 드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재정 관리에 성공하길 원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잘 다루어야 할 문제는 <계획>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계획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획 없이 살면 인생을 낭비하게 됩니다. 꿈과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위한 장단기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계획을 세우곤 하셨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전도하시고, 후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전도 여행을 위한 철저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서신서 곳곳에 바울 사도의 계획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여행 계획을 언급합니다. 5-9절까지 보세요.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여러분, 한 달의 첫 날에, 한 주간의 첫 날에, 하루의 첫 시간에 계획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십 년 후, 이십 년 후의 모습이 오늘과 다른 아름다운 성장과 부흥을 이루시길 기원하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하길 기원합니다. 

그런데 계획을 세움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그 계획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상당 부분 후에 변경되었습니다. 계획을 변경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고린도후서를 쓸 무렵 고린도교회와 관련된 그의 계획을 보면 이렇습니다. 당시 그는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고린도에 갔다가, 육로로 마게도냐로 왔다가 다시 고린도에 가서 배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 계획은 변경되었는데, 에베소에서 육로로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까지 가서, 거기서 배로 예루살렘에 가길 원했습니다. 

어쨌든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에 갈 때는 배를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제로는 그는 예루살렘에 배로 갈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 20장 3절을 보면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바로 육로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모든 계획을 하나님과 함께 나누십시오. 본문 7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고 했지요. 그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계획은 주께서 허락하셔야 가능합니다. 우리의 계획보다 주님의 계획이 우선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의 모든 계획을 그 순간 철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철저한 계획 수립과, 이것은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마음,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 인도 안에서 계획성 있는 삶이 되길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태도와 자세>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돈도 많고, 계획도 있어도, 그 모든 일에 임하는 태도가 잘못되면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언제나 우리 삶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태도와 자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두 가지 태도를 언급합니다. 13-14절을 다같이 읽읍시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할렐루야!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두 가지 태도로서 <남자다운 강건함>과 <사랑>을 언급했습니다. 

우선 성도는 강건해야 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핍박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강해야 했습니다. 당당해야 했습니다. 굴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의 기본은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제일은 사랑입니다. 우리도 이런 태도로 살길 원합니다. 

이 둘은 언뜻 보면 반대의 개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강건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은 강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강한 사람만이 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사랑하려면 강해야 합니다. 강건하지 않은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잘못하면 비굴한 아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건하면서도 사랑하는 것은 정말 멋집니다. 예수님은 가장 강한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강함으로 우리를 누르신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강한 분이 가장 약한 우리,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무한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십시오. 굴종하지 마십시오. 환경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십시오. 그러나 강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주변 사람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고, 인생을 사랑하십시오. 모든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하십시오. 사랑으로 하지 않는 것은 자칫 거짓이 되고, 억지가 됩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당하길 원합니다. 

성도는 규모 있게 살아야 합니다. 주변 정리를 잘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매사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묵상한 말씀을 생각하면서 많은 인생의 열매를 맺으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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