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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인사 원칙(고후 1: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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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인사 원칙
                                                                                                               고린도전서 1:18-31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잘 뽑고, 사람을 잘 세워놓으면, 많은 문제가 발생하지를 않고, 발생한 문제도 잘 해결이 됩니다.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도 능력 있는 사장이 경영을 하면, 흑자를 기록하는 회사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경영자로 존경을 받는 ‘잭 웰치’는 적자에 허덕이는 ‘제널럴 일렉트릭’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처럼 무슨 일이든지 능력 있고, 지혜로운 사람을 세우는 것이, 문제해결의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회사나 스포츠 팀들은, 최고의 기량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회사나 스포츠 팀은 최고의 실력자를 뽑아서 지도자로 세우는 것이 인사원칙입니다. 그런데 만일 회사들이 예수님 같은 인사정책을 쓴다면, 모두가 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사원칙은, 세상에서 별로 잘 난 것이 없는 사람들을 뽑아서, 쓰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1:18-31절의 말씀에는, 비록 사도 바울이 당시 문제가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한 말씀이지만, 예수님의 사람 쓰시는 법칙이 나오는데, 본문 26절에서 바울 사도는 말씀하기를,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는데, 능력이 있는 사업가를 부르시지 않고, 사명자를 부르셨습니다. 일의 성과가 있든지 없든지, 자기가 맡은 일에만 충실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이에 반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이익이 없으면, 하던 일을 접는 것이 사업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과를 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생명이 있는 한 끝까지 자기 사명을 감당해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사업가가 아니고,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한 가지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구원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역사를 인하여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여 세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당신의 자녀로 세우실 때에, 아무런 조건이 없이 여러분을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선택해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과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맡겼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차별 없이 당신의 자녀를 선택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선택하실 때에, 잘난 사람 가운데서가 아니라 잘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세상에서 유용한 사람들 가운데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서, 그러니까 능력 없는 사람들을 뽑아서, 거룩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이런 하나님의 사람을 쓰시는 원리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온전하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 부족한 사람을 선택하여 쓰셨습니까? 

1.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없는 사람들,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버림을 받은 사람들을 당신의 일꾼으로 선택했는가? 하면,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무시를 당한 사람이, 더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축구 감독에게 베컴, 지단, 호나우드, 호나우딩요 같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들만 모아서 한 팀을 만들어서 맡겨주면서, 축구팀 감독을 하라고 하면, 그 감독은 그 팀을 가지고, 우승을 해도, 별로 빛을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계에서 가장 실력 있는 선수들만 모인 팀을 가지고, 승리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동네 조기 축구정도나 할 정도의 형편없는 사람들을 선수라고 모아서 팀을 구성해서 맡겨 주었는데도, 그런 사람들을 선수로 이끌어가면서, 차근차근 훈련을 시켜서 아시안컵이나, 국내 축구리그에서 우승을 하게 했다면, 그 감독은 분명히 능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되는, 누구나 지도력이 있다고 인정되는 감독이 될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나고, 교회사에서 볼 수 있는 예수님은 동네 조기축구회원들을 모아가지고, 세계적인 스타들이 모인 유명한 팀들과의 시합에서 전승을 하신 감독처럼 일하신 분입니다. 구체적으로 비유를 한다면, 예수님은 장터에서 일하는 짐꾼을 데려다가, 그로 하여금 당대에 유명한 씨름 선수와 겨루어 이기게 하신 분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능력이고, 예수님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승리하기 위하여, 먼저 낮아져야만 하고, 남을 위해서 살아야만 하고, 자신의 능력보다는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방법은 자기 자랑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아주 매력이 없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예수님의 방법이란 것이 매력은 없지만, 분명히 능력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최종적으로는 승리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삶을 산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실제는 예수님의 지혜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 지혜를 따라서 살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울 사도가 개척하고 돌보았던 고린도 교회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교인간에 파당이 생기면서, 고리도 교인 서로간에 불신하고, 비방하고, 폄하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예수님의 인사원리를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약하고,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뽑아서 당신의 일군으로, 자녀로 삼고,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인사 원칙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공개적으로 싫어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 잘 났다고 인간적인 자랑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자랑했으니, 얼마나 그 모양이 꼴불견이었겠습니까?  

   그 결과 고린도 교회 안에서 파당이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활동했던 세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바울, 아볼로, 바나바란 지도자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충만한 지도자이자, 논리적이고, 율법에 대하여 능통한 분이었고, 아볼로는 학문적이면서도 설교를 잘하는 지도자였고, 바나바는 인품이 좋았으며, 누구하고도 연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 분들은 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서 머리가 되신 공동체인 교회를 위해서만 일하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에수의 이름만 높이고자 정성을 다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예수의 이름을 높이기보다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성향의 지도자를 더 높이려고 노력을 하다가 보니까, 교회 안에 파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인사원칙을 버리고, 세상 원리대로 자기가 추종하는 지도자가 더 훌륭하다고 자랑한 결과 파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과 마찬가지로 현대인도 예수님의 인사원칙을 싫어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유명하다는 목사와 텔레비전에 나왔다는 목사를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까 방송국에는 그 비싼 전파사용료를 내고서라도 방송 설교하겠다고 하는 목사들이 줄을 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사람을 대할 때에는 똑똑하고 능력 있다는 사람을 좋아하고, 귀중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배우고 잘난 사람들을 당신의 일군으로 사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한 가지 과정을 거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반드시 거쳐가게 하는 과정이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 잘났다는 것을 스스로 깨뜨려버리고, 지극히 겸손해지는 과정을 거친 사람을 예수님은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성경을 보세요, 율법학자이자 바리새인이고, 예수당을 혹독하게 핍박을 했던 핍박자 사울이 예수당을 핍박하기 위해서 대제사장의 공한을 가지고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길 위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후에 다마스커스에 들어가서, 아나니아란 성령이 충만한 예수교인을 만나고, 그에게 기도를 받은 후에, 눈에 덮혔던, 비늘 같은 것이 벗어지면서 다시 보게 됩니다. 이런 표적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사울은 예수를 핍박하는 자에서 변하여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언하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변화된 바울을 지도자로 쓰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후에도 바울은 아라비아 광야로 나가서 기도생활로 삼년을 보냈고, 고향 다소로 돌아가서 야인으로 지내다가 안디옥 교회지도자로 파송된 바나바에 의해서 안디옥교회의 교사가 됩니다. 이처럼 주님의 일군은 자기 자랑거리를 모두 버리고, 땅바닥까지 낮아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큰일을 했을 때에 ‘저건 저 사람 힘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이 도와 주셨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세상에서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큰일을 이루어 놓고 ‘주님 보세요. 내가 이만큼 큰일을 이루었습니다.’라고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이 모든 행위는 예수님의 인사원칙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일을 할 수 없는, 약하고 미련한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래야만 ‘저 일은 저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저 사람을 돕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하고 사람들이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남을 이기고,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야지, 늘 손해보고, 져주고, 희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여러분도 역시 이런 삶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사원칙과 예수님의 경영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늘의 복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겸손히 예수님의 인사원리를 받아들이고, 그 원리를 따라서 살려고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에수님의 인사원리인 복음은 사람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이중적입니다. 왜나하면 복음이란 멸망할 자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받을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서 바울은 말씀하기를,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영리한 사람이 미련한 사람을 이기고, 힘 있는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을 이깁니다. 하지만 미련한 사람일지라도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세상에 영리하다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생활을 하게 되고, 힘이 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능하신 야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세상에 강하다는 자를 넘어지고 무너지게 하는 삶을 감당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능력이고,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복음은 세상에 가장 귀한 것입니다. 생명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그런데도 복음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만일에 복음이 매력적으로 보이고, 세상 지혜로 알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은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세상 지혜로 사는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감추었습니다. 세상 것들과 썩어질 것들은, 세상의 높은 사람들과 돈 많은 사람들과 영악한 사람들이 먼저 차지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복, 영원한 복을 받게하는, 복음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먼저 차지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복음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더 빨리 알아 볼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어디든지 복음이 들어가면, 부자들과 높은 사람들도 믿었지만, 항상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 26-29절에서 고린도 교인에게 말씀하기를,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택하셨으며,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과 멸시받는 것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지식을 얻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돈을 벌고, 출세하는 방식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비록 이런 세상의 지혜는 없어도, 겸손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라고 믿는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의 계획을 이루셨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한 인류 구원의 역사는, 세상의 지혜가 어리석은 것임을 만천하에 증거하였습니다. 사실은 이것까지도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오직 복음으로만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복음이 가장 귀한 지혜요, 생명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점을 확신하고, 오직 복음을 위해서만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3. 진리를 바로 알면 행동도 변합니다.
벌써 오래 전입니다. 2005년인가에, 중국산 납 김치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산 김치에 납 성분이 많이 함유되었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도 중국산 김치에는 납성분이 많이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005년도 까지는 확실하게는 몰랐거나, 공식적으로 확인이 안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언론기관과 같은 공식적인 기관을 통하여 중국산 김치에 납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정보가 보도되자, 형편이 삽시간에 달라졌습니다. 식당에서 김치를 먹지 않습니다. 김치를 직접 담그는 식당만 찾아갑니다. 이처럼 지식이란,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행동을 바뀌게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도 머리로 기억만 하는 지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디. 하나님을 정말로 바로 알면, 행동에 변화가 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택하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분입니다. 미련한 사람을 택하셔서, 세상에서 지혜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어리석게 합니다. 예수님의 인사원리는 무능한 사람을 뽑아서, 유능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손해를 보고, 희생하는 방법으로, 가장 큰 이득을 남기는 것이 예수님의 경영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상식과 경험과 지식만 가지고는, 아무도 예수님의 경영원리에 아멘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생각과 방법을 겸손하게 버리고, 예수님의 인사원리와 경영원리에 동의하고, 순종하면, 그런 사람은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야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선하신 지혜를 구체적으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예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모자라고 약한 자를 뽑아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감독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미련한 사람을 뽑아서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하는 최고의 경영자입니다. 가난한 자를 뽑아서 부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경영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자라는데도 뽑힘을 받은 여러분이, 자신을 뽑아준 그 분인,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고, 예수의 경영원리와 인사원리만을 따라가야만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십자가의 도를 따라가야만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세상에서는 미련하게 보이지만, 예수님만이 세상에서 제일 유능한 감독이고, 최고 경영자이기에,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원칙을 따라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오직 예수님만을 따를 때에, 미련한 나를 통하여, 지혜롭다는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나아만은 아람 왕의 오른팔로 장군이었지만, 나병환자였습니다. 당시 나병은 고칠 수 없는 무서운 병입니다. 하지만 나아만의 집에 이스라엘에서 잡혀 와서 종노릇하는 여자아이가 우리나라에 가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분은 고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아람왕의 친서까지 가지고 이스라엘에 가서 왕을 만나고, 아람왕의 친서를 전해줍니다. 아람왕의 친서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자기 집 앞에 도착했을 때에, 나와 보지도 않고, 가서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하라고 합니다. 나아만에게는 엘리사의 말이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화가 나서 호위병들에게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아만을 섬기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나아만에게 말하기를, 그 까짓 것 밑져봐야 본전이니 한 번 해보자고 권합니다. 그래서 요단강에 들어가 일곱 번 목욕을 했더니, 나아만이 나병이 거짓말처럼 나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이고,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이 보기에는 약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미련하고 단순하게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나같이 미련한 사람을 사용하여,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의 지혜를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특별한 인사원칙 때문에 선택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처럼, 성품이 좋은 사람, 공부 잘한 사람, 집안이 좋은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만 뽑았더라면, 여기에 모인 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아마도 선택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약한 자, 미련한 자, 지혜가 없는 자인 저와 여러분이 선택 된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인사원칙 때문입니다. 파격적인 인사원칙 때문에 선택을 받은 여러분과 저에게는 한 가지 의무만 남았습니다. 감당할 의무란 오직 예수님의 경영원리에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영원리란 십자가의 법칙입니다. 십자가의 법칙은 은혜의 법칙입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법칙은 희생의 법칙입니다. 나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소금처럼 녹아지는 것입니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원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과 깨달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오직 예수님의 경영원리만을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을 경영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연약한 여러분을 통하여, 세상에 지혜 있다 하는 이를 굴복시킬 것이고, 여러분의 약함을 통하여 강한 자를 능가하는 표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바른 믿음생활로 표적을 보여주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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