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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잘못(민 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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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큰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백짓장 차이로 지혜자가 될 수 있고, 바보도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하면서도, 지혜가 번뜩이는 사람이 있고, 미련이 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작은 공을 세우고 크게 칭찬 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 큰 공을 세우고도 욕을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판도가 뒤바뀌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주 작은 것이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를 불러옵니다. 이처럼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도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됩니다. 큰 것에서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민수기 20:1-13절을 보면, 우리가 아주 자그마한 부분에서 엄청나게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가 발생하고,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지도자 요셉이 죽은 후에는 이집트의 정변이 나서 세상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요셉과 같은 총리대신을 낸 종족으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상 요셉 때문에 파라오의 노예생활을 하면서 사람답지 못하게 살았습니다. 인격적인 대우는 기대할 수도 없었고, 짐승만도 못한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히브리’라는 말이 이집트 말 ‘아피르’에서 온 것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집단이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자손에게 야훼 하나님께서 조상과 악속하신 복을 주기 위해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십니다. 밤낮으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만 했고, 지나친 노동과 학대로 인하여 쓰러져 죽어 가는 순간까지 일을 해야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야훼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삼아서 이집트 땅에서 노예생활로부터 해방을 얻고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땅에서 나온 것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야훼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인 가나안 땅까지 가야만 하는데, 이스라엘이 가야할 여정은 이름난 도로인 ‘왕의 대로’가 아니라 지도에도 없는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광야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다는 표현 한가지만 가지고도 이스라엘이 간 광야여정이 얼마나 험악하였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해 보신 분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출애급 여정을 따라서 움직이시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광야에 가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능 좋은 에어컨이 돌아가는 관광버스로 가보기 때문에 광야의 어려움을 진하게 느끼기는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광야 들어가서 잠시 차에서 내려보면,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야만 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에 당시 이스라엘의 어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광야에 내리 쪼이는 햇볕은 가히 살인적입니다. 그런데 그런 때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볼 수도 있는데, 그런 구름을 보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장면인, 즉 야훼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다는 표현을 조금은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집트와 이스라엘 지역은 비가 많은 지역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주 건조합니다. 몸에 땀이 나도 공기가 건조하니까 바로 마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더워도 그늘에만 가면 시원합니다. 광야에는 가끔 낮은 구름이 뜨는데, 그 구름이 햇볕을 막아 그늘을 만들어 준답니다. 그런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선선하고 시원한 것입니다. 그러니 광야에서는 구름을 따라서 이동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구름이 멈추어 있을 때에 홀로 가겠다고 나섰다가는 모두 열사병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구름은 이동을 했는데도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뜨거운 태양빛에 고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기둥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서 40년을 걸어간 것입니다. 반면, 밤이 되면 광야의 기온은 급격히 떨어져서 사람이 쉽게 참아내기가 어려운 정도의 추위가 밀려옵니다. 그런 형편이니 야훼 하나님께서 밤에는 불기둥을 내려주셔서 그 불의 온기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고, 인도하셨습니다. 비록 광야의 길이 고난의 길이었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야훼 하나님은 이처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연약한 이스라엘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하나님을 향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비하고 원망을 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이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에 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목이 말라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 이스라엘이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달려가서 원망을 합니다. 본문 3절 하반절부터 5절에 보면 목이 말라서 흥분한 이스라엘이, 총회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말하기를, ‘우리의 친척이 주 앞에서 죽어 넘어졌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다. 어쩌자고 너희들은 주의 총회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의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는 것이냐? 어찌하여 너희들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 고약한 곳으로 데리고 왔느냐? 여기는 씨를 뿌릴 곳도 못 된다. 무화과도 포도도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가만히 생각을 해보세요, 지도자 모세와 아론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모세는 파라오의 학정 밑에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고 있는 동족 이스라엘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출 3:10절에 보면 야훼 하나님께서는 가지 않겠다는 모세를 불러서 명하시기를,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기 위하여 지도자로 모세를 보내셨고,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날마다 눈물을 뿌려가며 기도하고,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하여 헌신한 귀중한 야훼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그런데 이 무지한 백성이 자기들 일신이 조금 힘이 든다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입니다. 3절 하반절에서 이들은 말하기를, ‘우리의 친척이 주 앞에서 죽어 넘어졌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다. 어쩌자고 너희들은 주의 총회를 이 광야로 끌고 와서, 우리와 우리의 가축을 여기에서 죽게 하는 것이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말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것 때문에, 더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죽고, 더러는 자신의 명이 다하여 약속의 땅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죽기도 하였는데, 차라리 먼저 죽은 그들처럼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실제로 이스라엘 가운데 출애급 첫 번째 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말고는 심지어는 지도자 모세까지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 길을 가다가 죽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줄을 모르고 함부로 말한 것입니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 이제는 야훼 앞으로 돌아갑니다. 급기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쉽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고, 배반하는, 패역한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때에 모세와 아론은 불신앙적인 이스라엘 백성과 다투다가 하나님의 회막 앞으로 가서 엎드려 기도를 드립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서 기도하기를 시작하자, 바로 야훼 하나님의 영광이 모세에게 임하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를 합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하기를,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시게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도 여러 가지 사항을 가지고, 기회만 있으면 지도자 모세에게 시비하고, 원망하고, 모세를 공공연하게 폄하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소행을 보아 온, 모세로서는 혈기가 올라왔습니다. 그 겸손하던 모세가 속에서 올라오는 혈기를 어찌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본문 10-11절에서 책망하기를, ‘너희 반역자들은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하랴?"라고 하고는, 모세가 팔을 높이 들고, 자신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물이 솟아나왔고, 목이 말라 고생하던 이스라엘 회중과 가축 떼가 그 물로 갈증을 해결했습니다. 야훼께서는 분명하게 바위를 향하여 명령을 하라 하셨거늘, 모세는 분을 못 이겨서 자신의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친 것입니다.

    그러자 야훼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본문 12절에서 말씀하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결말입니다. 그렇게도 자비하시고, 사랑과 이해가 많으신 하나님께서 무정하게도  한 순간 마음 속에서 솟아난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잘못한 것 때문에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토록 수고하고, 헌신했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이, 열망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징벌 같아 보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야훼의 종이 지도자 모세입니다. 신약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을 사람들은 바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는 신구약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도구다 라고 합니다. 사실 모세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던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종입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에서 야훼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나님 보시기에 불신앙인이었고, 불순종이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모세와 아론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는가?를 살펴보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본문에서 모세는 자기의 감정을 앞세워 행동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명령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대항하고, 자기를 대항하는, 패역한 백성을 보고, 모세는 자기의 혈기 나는 감정을 앞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을 처리하지 않고, 모세 자신의 감정에 따라서 일을 처리한 것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감정을 따라서 행한 것이 바로 불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신 섭리를 믿고,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모세처럼 나의 상한 감정과 혈기와 내 판단에 옳은 대로 행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성령의 능력 아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성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지 못하고, 내 감정만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이고, 불신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어떤 형편에서도 자기 혈기를 주님의 뜻에 앞세워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망치거나 무너뜨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주변 상황에 치우쳐서 인간의 판단과 감정을 고집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마귀가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러 가려고, 다 준비를 하고, 집에서 나오다가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같이 교회에 나가는데, 어쩐 일로 아내에게 화가 나서 “그 따위로 신앙생활 하려면 집어쳐!”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순간 아내도 지지않고 “알았어, 집어치면 될 것 아냐!” 하고는 성경책을 집어던지고, 어디론가 씩씩거리며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결정적인 손해는 하나님 편에서만 보고 있습니다. 싸움은 자기들이 하고, 핑계는 다 교회와 예수에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여러분 개인의 감정이 하나님의 뜻을 앞질러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형편에서도 여러분이 예배당에 나가서 신령과 진정으로 주님 앞에 예배드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감정이 그만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짖밟고 묵살해 버렸습니다. 이런 것을 믿음이라고, 순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도자 모세도 어떤 경우에는 이런 허물을 범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근신하고, 겸손하게 주 앞에 서려고 하지를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욱만을 따라가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2. 혈기가 반석에서 물을 내는 주체가 자신이 되게 했습니다.
본문 10 절에서 지도자 모세는 자신에게 시비하는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너희 반역자들은 들어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하랴?’라고 하면서, 혈기를 부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위에서 물을 내게 하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라고 했습니다. 바위에서 물을 내게 하는 분은 야훼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위에서 물을 내게 하는 주체가 야훼 하나님에게서 모세와 아론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교만이고, 불신앙의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드러내야만 하는 자리에서 자기를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이 가로채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매사에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신앙인이 다 되어야만 합니다.

    자취하는 청년이 호된 독감에 걸렸습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돈이 얼마 없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아파서 하루치 약을 지었습니다. 두 번을 먹었는데도 감기는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 번 먹을 약밖에 없는데 이것을 먹고도 낫지 않으면 어떡하지!’ 너무 아팠기에 꼭 나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아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약을 먹고 다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께서 다 낫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 약을 먹고 난 다음날 놀랍게도 몸이 거뜬해졌습니다. 그런데 청년의 입에서 무의식중에 나온 말은, “역시 약이 좋긴 좋구나!”라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것은 이미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고, 감기약에게 영광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광을 받으실 주체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의 자리에 대신 앉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모세의 잘못은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은 것은 불신앙입니다.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는 장면은 본문 외에도 출애굽기 17:5-6절에도 나옵니다. 그때에는 야훼 하나님께서 지도자 모세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 모으고, 반석을 지팡이로 쳤더니, 반석에서 물이 쏟구쳐 나왔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는 야훼 하나님의 역사는 ‘반석을 지팡이로 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반석에게 물이 나오도록 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혈기가 나서, ‘바위에게 명한 것’이 아니라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을 내리쳤습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런 행위를 그냥 이해하고 넘기지를 않으셨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에 흥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엄청난 불신앙입니다. 이 죄로 인하여 그렇게 들어가기를 갈망하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고 죽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한 것, 또한 모세가 지은 허물이라고 야훼 하나님은 지적하셨습니다. 이처럼 불순종은 큰 죄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모세가 하나님께서 직접 석판을 깎으시고, 글로 기록하여 주신, 십계명 두 돌 판을 들고 시내산을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 앞에서 절을 하고, 음란하고, 패역한 짓을 하는 것을 보고는, 그 돌 판을 깨뜨려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그 석판이 어떤 것이라고 감히 깨뜨려 버린단 말입니까? 야훼 하나님께서 친히 깎으시고 글씨로 새겨주신 고귀한 십계명이 아닙니까? 하지만 그것을 던져서 깨뜨려 버린 사건으로 인하여, 야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불순종하고, 네가 혈기를 냈으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행위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세요,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치자, 바위에서 물이 콸콸 솟아 나왔습니다. 큰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나왔단 말입니다. 이런 형상에 대하여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죄를 지었음에도 물이 쏟아져 나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비록 모세와 아론은 불순종하였지만, 야훼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보고 역사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보고, 바위에서 물이 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들의 형편을 외면하면 모두가 죽게 될 터이니, 먼저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불신앙적인 행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바로 여러분과 함께 하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비록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 불순종의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역사하시고, 베푸시고, 이끌어 주시는 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불신앙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리 여러분을 흥분하게 하는 형편과 사람이 도전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 것 때문에 불신앙자라는 책망을 듣지 않도록, 삼가 말씀에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고,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인정을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속이 상하더라도 내 감정대로 사는 것, 모든 일에서 자기가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적인 행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언제나 하나님께 당신의 자녀라고 인정을 받는 구체적인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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