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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이기는 힘 (요일 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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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이기는 힘 (요일 5:4-5)


우리는 모두 어려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어려운 세계경제 여파로 우리나라도 어렵습니다. 유명 백화점에는 체면을 버린 세일을 한다는 신문보도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꿈나무들이 배우고 자라는 학교는 폭력문제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음주 소비량은 부끄럽게도 세계 1위로 그에 의한 부작용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보도는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술로 인한 가정폭력, 아동 폭행, 아동성폭력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국민을 안심시켜야할 정치계는 연일 이념논쟁으로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둡고 힘겨운 때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그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는다면 오늘 본문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요일 5:4~5)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난자는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는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한국대학생선교회를 설립하고 학원 복음화를 위해 평생을 살다 가신 고 김준곤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이 땅에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하자고 외치면서, 백문백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백가지 문제의 해답은 단 하나“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잠금장치의 마스터키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귀한 것이 많습니다. 생명도 귀하고, 돈도 귀하고, 권력도 귀하고, 명예도 귀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는 믿음이 가장 귀한 보배인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의 삶속에 흘러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믿음보다 더 강한 능력은 없습니다. 믿음은 세상 풍파를 이기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16에“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역경은 다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누구 한사람 예외 없이 고난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 등 모두가 믿음으로 험한 세파를 이겼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38절 말씀에“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밝히시기를“무릇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말의 뜻은“맡긴다, 신뢰한다, 아멘,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멘 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 아멘의 뜻은“기둥에 기댄다.”라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돈에 기대고, 권력에 기대고, 지식에 기대고, 사람에게 기댑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다 변하여 넘어집니다. 내가 기댔던 것이 넘어지면 함께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것, 무한한 능력에 내 생애를 맡기고 기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 무한한 능력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정성을 다해 열심히 섬겨야 하겠습니다. 

一.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삶의 기초로 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합리적 생각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큰 낭패와 시험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다는 것은 이해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이 주신 말씀위에 삶의 기초를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창조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 목사는 말하기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말했고, 토마스 왓슨은 “이성이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믿음은 헤엄 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철학자요. 수학자였던 파스칼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과학자의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믿는 자의 하나님이다. 신앙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란 합리적 생각 속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1. 믿음은 느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느낌은 항상 변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평안할 때도 있고, 불안할 때도 있고, 가슴이 떨릴 때도 있습니다. 마음의 기분대로 사물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분이란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변화일뿐, 그 기분 때문에 환경이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마음의 느낌을 의지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위에 온전히 서는 것입니다.

2. 믿음은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감각을 극복하는 것이지 감각에 따라서 믿음이 좌우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모시고 오라버니 나사로의 무덤가에 갔을 때, 이미 나사로는 무덤에 들어 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눈으로 보아도 틀림없이 죽은 지 나흘이었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아도 썩은 냄새가 났습니다. 감각에 의지한다면, 나사로는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각에 의지하지 말고 믿음에 의지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르다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다시 말해 믿음이란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은 것을 분명히 보고도 살아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썩은 냄새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살아날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감각을 극복하고 믿는 것이지 감각을 따라 믿는 것이 나닙니다.

스펄전 목사의 말처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다.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한 말을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3. 믿음은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5장 절~7절에“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갈리리 바다에서 평생 고기잡이로 살아온 전문적인 어부였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는 밤을 새우며 물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날이 밝자 마침 그때 예수님이 그리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자 예수님께서 설교를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밤을 새운 베드로가 그물을 씻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배를 잠시 빌리고자 하셨고, 베드로는 배를 내어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바다에 조금 들어가셔서 그곳에서 말씀을 다 전하신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베드로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전문적인 어부였고 예수님은 내륙지방 나사렛에서 목수로 성장하신 분으로 바다의 고기잡이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는 밤에 잘 잡히는 법인데, 간밤에 밤을 새워 수없이 그물을 내렸으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에 잡히지 않았던 물고기를 밝은 낮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다 갚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기를“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베드로가 겪은 경험은 몇 년 전, 몇 십 년 전의 경험이 아닙니다. 바로 몇 시간 전, 어제 밤에 겪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경험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 앞에서 어떤 이성도 감각도 경험도 의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오직 말씀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어두운 인생길에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밝혀 나의 갈 길을 인도하는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二. 믿음과 함께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믿음에는 기도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믿음과 기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기도 없는 믿음, 믿음 없는 기도는 비없는 구름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하셨습니다. 믿음과 기도가 함께 있어야 무엇이든지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믿음과 기도는 세상을 이기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말씀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하셨습니다. 

2. 믿음은 성경의 양식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육신이 생명이듯 영혼도 생명입니다. 육신이 음식을 먹지 아니하면 힘이 없어 아무 일도 할 수 없듯, 영혼도 영혼의 양식을 공급해야만 힘을 얻어 하나님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29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 믿음대로 되라”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는“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을 있게 하는 것이며. 믿음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험한 세파를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염려와 근심을 이기고 행복한 삶을 기대하십니까? 믿음을 잘 관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얻는 방법에 대해 성경에 딱 한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이 제시하신 믿음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중요합니다. 자주자주 들어야 합니다. 

3. 믿음에는 순종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 말씀에“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하셨습니다. 조금 전 베드로가 물고기를 가득 잡은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베드로가 그때 만약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텅텅 빈 배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일평생 가난한 어부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순종했습니다. 베드로의 순종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물고기 몇 마리 더 잡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고,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의 생애에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한 위대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도 베드로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베드로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남아 전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4. 믿음에는 인내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절~4절 씀에“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걸핏하면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 길을 택했겠습니까만 참아야합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커피포트에서 물을 끓일 때 처음부터 끓지 않습니다. 계속 열기를 가하지만 끓지 않다가 100도에 도달하면서 갑자기 끓기 시작합니다. 물은 98도나 99도에도 끓지 않습니다. 단지 임계점인 100도에 도달해야 합니다. 나무를 부러뜨릴 때 힘을 가하면 굽기 시작하지만 처음부터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구부러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부러지게 됩니다.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물이 끓지 않거나 나무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끓지 않고 아직 부러지지 않은 것입니다. 

우물은 물이 나올 때까지 파야합니다. 임계점을 기다리지 못하는 인내의 부족으로는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기도생활과 전도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많은 사람이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을 불가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응답의 때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전도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에 불과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은 국립묘지에 묻히지 않고 옛날 자신이 다니던 작은 교회 옆에 있는 묘지에 묻혔습니다. 

1943년 전시 내각을 수립하고 독일 비행기가 하루에 1천여 대씩 런던을 폭격할 때, 그는 하루에 18시간씩 근무를 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BBC 방송을 통해서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땀과 피와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습니다.”라고 전 영국군에게 호소하자, 그 방송을 들은 영국군은 3일밖에 먹을 수 없었던 양식을 가지고 보름이나 견디면서 싸워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처칠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영문학에 낙제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쓰고 나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습니다. 
그가 은퇴한 후에 한번은 그의 모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칠은 지팡이를 짚고서 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여러분의 대 선 배이신 처칠 경이 말씀하실 때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모두 받아쓰라.”고 했습니다. 처칠 경은 지팡이를 짚고 강단에 서서 두꺼운 안경 너머로 학생들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습니다.“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도 바닷가에는 끊임없이 파도가 넘실거릴 것입니다. 바다의 파도는 오늘날만 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그랬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오늘날 우리에게만 있는 것인 아니라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랬습니다. 

우리는 혼자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인간최대의 난제인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다는 믿음이 이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속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힘쓰듯, 영혼 건강을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기도로, 말씀으로, 순종으로, 인내로 우리의 영혼관리를 잘해야 하겠습니다. 영혼이 건강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됩니다. 요한 3서 1장 2절 말씀에“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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