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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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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 (행 2:1-4) 

  
성경 내용의 모든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절기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다. 구원의 예표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무교절은 예수님이 장사됨을,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오순절은 성령을 보내주심을, 나팔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속죄일은 유대인들의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시기를, 장막절은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시기다. 이러한 예언의 말씀들이,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이루어짐을 깨닫고, 성경 말씀은 정확하고, 오류가 없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말은, 오순절 전도 아니었고, 후도 아니다. 바로 오순절의 그 시간이라는 말이다. 그 날에 성령님이 임하시는, 놀라운 일이 생겼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정확한 때에 일하신다. 

오순절은 초실절 이후, 50일이 되는 날,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서 드렸다(레23:10). 초실절의 첫 이삭의 한 단은, 예수님과 부활한 성도들을 말한다. 이는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말씀 그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님은 부활하실 때, 혼자만 부활하지 않았다. 예수님 안에서 죽었던 자들, 한 단으로 표현되었던 성도들이, 같이 부활했다. 
(마27:52-53)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구약의 초실절은, 신약의 부활절이다. 예수님이 부활하고, 50일이 지난 후, 즉 승천하시고 열흘 후, 성령님이 강림하신 날이다. 

하나님은 성경말씀대로, 정확하게 일하시는 분이다. 지금은 이방인들의 구원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다. 예수님은 (행1:4中-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2-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홀연히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있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성령강림이 3가지 징표로 나타난다. 곧 ‘바람과 불과 소리’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시로 여겼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떤 모습으로 임하셨는가? 

1. 강한 바람 같은 성령(2) 

보통 바람을 말할 때, 2종류의 바람이 있다. 그러나 그 뜻은 전혀 다르다. 
① 하나님이 불어버리는, 뜨거운 ‘진노, 분노’의 바람이다. 
분노는 콧구멍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을 말한다. 뜨거운 바람이 광야에서 불어오면, 나무들을 다 말라버린다. (렘4:12)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 

② 하나님이 불어주시는 ‘생명의 기운, 숨, 호흡, 생기, 영감’의 바람이 있다. 
오순절에 불어온 이 바람(πνοή)은, (행17:25) “만민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는, 영적인 바람”이다. 강한 바람(βίαιος)은 생명의 바람이다. 그러면 생명이 바람이 불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1)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킨다. 
오염된 공기로 꽉 들어찬 방에, 바람이 불어오면, 오염된 공기가 다 물러가고 맑고, 신선한 공기로 채워진다. 이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면, 우리 주변에서 악령들이 오염시킨 것들을 다 물리치게 된다. 

악령은 사람의 마음과 환경을 추악하게 만들지만, 성령의 바람은 이런 것들을 깨끗이 몰아낸다. 그래서 미움, 시기, 질투, 분노, 음란과 방탕, 도적질 등, 더럽고 악한 것들이 모두 추방된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 마음이 상쾌해진다.  

(2) 마음이 상쾌해진다. 
바람이 불면, 몸도 마음도 상쾌해 진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염려 근심, 슬픔과 괴로움이 사라지고, 평안과 기쁨이 가득하여,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불안하여, 두려움 속에서, 문을 잠그고 떨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고, 잡혀서 죽을 때에도, 기쁨의 감격에 넘쳤다. 따라서 성령을 받으면,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는 일은 없다. 

(3) 운동력이 생긴다. 
바람은 정지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공기가 흘러 움직임을 말한다. 이처럼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운동력이 생긴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나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성령님이 임하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나타났다. 제자들은 새롭게 변화되었다.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었다. 성령님이 역사하면, 어느 교회든지, 어떤 성도들에게든지, 운동력이 생긴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변화시키고, 유대와 사마리아, 온 인류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이 나타났다.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인데,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 인간의 말로만 전하면, 변화의 역사를 가져오지 못한다. 운동을 못하는 운동선수가, 말이 되지 않듯이, 잠잠한 성도들과 교회들은, 말이 안 된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난다. 
마귀는 이 세상 풍속을 지배하는 자이다. 먼저 사회 구조를 부여잡고,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러면 이 세상 악한풍습과, 공중권세 잡은 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 하나님의 은혜,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이길 능력을 주셔야 한다.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명이다. 

이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모든 이기는 힘이 생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의 생명이 들어왔기에 이길 수가 있다. 기독교인은 변화시키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 생명을 소유하고 있기에, 능력이 있다. 공중권세 잡은 자를 산산조각 낼 수 있고, 세상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의 심령에, 마가 다락방에 있었던, 성령의 바람이 불기 바란다. 그래서 악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능을 받아, 마귀의 악한 궤계를 파하는, 강력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2. 불같은 성령 

(1) 불은 태운다. 
성령님이 불같이 임하신 이유는, 우리의 모든 죄악과 불신앙을 태워서,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다. 
성령님의 불이 임하면, 세속적인 것들이, 다 소멸된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군으로 만들게 만든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무너지고 만다. 성령을 떠나서는 진정한 교회, 살아 역사하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다. 

성령의 불길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 성령의 불길이 끊어지면, 형식적인 교회가 된다.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면, 세상 물결을 따라 흘러가지 않고, 조류를 거스르는 능력이 생긴다. 죽은 고래는 물결을 따라 흘러가지만, 살아있는 송사리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차이는 무엇인가? 크기인가? 아니다. 생명이다. 생명이 있으면, 이 세상풍속을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교회의 핵심은 생명에 있다. 덩치가 크다고 강한 교회가 아니다. 생명이 있으면, 세상물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권능이 생긴다. 

우리 성도의 능력은 ‘얼마나 돈이 많으냐?’가 아니라, 얼마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생명을 크기로 맞바꿔버렸다. 그래서 힘이 없다. 변화시키는 힘이 없다. 성령의 능력이 넘쳐나기 바란다. 

(2) 불은 어둠을 밝혀 준다. 
캄캄한 방에 불이 들어오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이와 같이 성령님은, 세상의 어둠을 밝혀 주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다. 성령이 오시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어, 죄를 깨닫게 된다. 
싸움의 대상이 악령임을 명확히 깨닫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악령과 싸우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성령 충만해서 기도하면, 기도가 또렷해진다. 교회가 성령 충만하면, 사람들이 다 똘똘 뭉쳐,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1904년에 영국 웨일즈 일대에, 큰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이반 로봇’을 중심으로, 청년들이 부흥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수개월 동안 회개와 기도에 전념한 결과, 성령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 결과 술집, 당구장, 극장, 경마장이 비고, 유치장이 비어, 경찰들이 할 일이 없어졌다. 
광산의 직공들이 훔쳐간 물건을 되돌려 와서, 따로 창고를 지을 정도였다. 대대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났다. 증오와 불만에 찬 광부들이, 석탄차를 끄는 당나귀를, 회초리로 치던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찬송을 부르며, 당나귀를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하므로, 당나귀도 성령 충만했다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성령님이 오시면, 그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 준다. 사람은 무엇을 먹고 마실까? 하면서 부귀와 영화만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왜 살며, 무엇이 죄이며, 의인지 안다(요16:6-11). 싸움의 대상이 악령임을 명확히 깨닫게 되기에,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악령과 싸우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람이 똑똑해진다.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런데 성령으로 충만해서 기도하면, 기도가 또렷해진다.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람들이 똘똘 뭉쳐, 싸움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이런 역사가 있기 바란다. 

(3) 불은 동력의 근원이다. 
비행기도 불의 힘으로 가고, 자동차도 큰 배도 불의 힘으로 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님은, 불같이 임하셔서, 우리의 신앙에 동력을 주신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마음속에 힘이 생겨난다. 
기도와 전도의 힘이 생겨나고, 신앙의 힘이 솟구쳐나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수 있는 마음이, 속에서 생겨나게 된다. 성령님은 어떻게 힘을 주시나? 꿈과 환상을 통해, 불을 붙여주신다. 성령님이 임하면,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행2:17). 

예수님께서 택한 12제자들은 대개 어부였다. 그들은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사회적인 지위나 부도 없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꿈을 심어주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비행기나 기차도 없고 전화, 전신 등 교통 통신시설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또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실현 불가능의 꿈이었지만, 제자들은 그 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로 그들은 300년 이내에, 전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꿈은 할 수 없는 일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성령님이 들어가면, 거룩한 꿈으로 뜨거워져,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령님으로 거룩한 꿈을 꾸고, 뜨거워져 멋있는 삶을 살자. 

3. 혀의 소리 같은 성령 

하나님은 복음이, 온 천하 만민을 위한 복음이 되었음을, 언어를 통해 선포했다. 이렇게 다른 말을 하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차원의 교통이 열렸음을 뜻한다. 
(2中)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ἦχος)가 있어” 여기서 이 소리는, 하나님의 사건을 알리는, 울림을 말한다.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일반적인 소리(φωνή)가 아니다. 바람 같이 하늘에서 내려온 소리다. 그런데 (3上)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임했다. 

(4下)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나님은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언어를 주셨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언어가 단절되었다. 미움도, 살인도, 전쟁도, 대화가 되지 않음으로 나타난다. 
창11장의 바벨탑 사건은,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쌓았던, 바벨탑 때문에, 사람들의 언어가 서로 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시자,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던 사람들 사이에, 언어, 인종, 학식, 명예, 문화를 뛰어넘어, 서로 통하기 시작했다. 

대화가 단절된 인류역사에, 놀라운 이적이 나타났다. 오순절 사건의 핵심은, 즉 대화의 회복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대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신앙생활은 예배드리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만 있지, 사람과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내 이웃과의 관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야 한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은 지리적, 지역적으로만 적용하면 안 된다. 장벽, 막힌 담을 넘었다는 말이다. 

예루살렘은 종교의 도시다. 그곳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따라서 이런 두려움의 장벽, 의심의 장벽, 적대감의 장벽을 넘어서야 함을 보여준다. 유다와 사마리아는 지리적, 종교적, 사회적 장벽을 넘어섬을 말하며, 땅 끝까지는 모든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함을 보여준다. 
오순절에 사람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의 언어로, 분명히 말하고 듣는 “대화의 이적”을 상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성령님이 불처럼 임했을 때, ‘불의 혀’처럼 갈라졌다. 이 사건은 바벨탑의 비극을 극복한 사건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대화가 살아나서, 서로 이해하고 통할 수 있어, 적대감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자, ‘방언으로 말하고(4), 방언으로 들었다(8).’ (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오순절에 탄생한 교회공동체는, 하나님의 커다란 일을 증언하는 공동체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 힘을 모으는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함께 꿈을 꾸는 새로운 공동체이다. 

연합하지 않고, 혼자만 나가는 교회는, 올바른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성령 받았다고 하면서, 연합하지 않는 성도는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장소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다. 초대교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저마다 개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개인차를 뛰어넘어,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복음을 위해 함께 나가야 한다. 성령님이 임하자마자, 그들은 하나님께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공동의 꿈을 갖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꿈을, 같이 꾸기 시작했다. 이방인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목표를 위해, 개인차를 뛰어넘어서, 열방의 세계를 품고, 손에 손을 잡고 나갈 수 있었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님이 우리를 주장하시고,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모든 개인차를 뛰어넘어,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진해 나갈 수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 깨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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