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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 (시 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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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 (시 122:1-9)


대구 서현교회 정규만(鄭奎萬) 장로는 선친을 기념하여 성전부지 1,842평을 헌납하여 연건평 1,960평의 1957년 당시 동양최대의 석조 예배당 건축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건축이 시작되자마자 정규만 장로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정규만의 생명을 한번만 살려 주옵소서. 살려주시면 이 한 목숨 다하여 또한 종의 재산을 다 바쳐 성전건축에 헌신을 다하겠습니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 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적이 계속 되었습니다. 대구 경북지방에 악질 전염병이 만연하였는데 유독 정규만 장로의 활신당 한약방의 한약만 지어 먹으면 깨끗하게 낫는 것이었습니다. 한약방은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는 돈을 푸대로 담아 건축헌금으로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석재를 비롯하여 건축자재를 가장 좋은 것으로 구입하여 현장에 공급했습니다. 부채 하나 없이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봉헌식을 하고자 할 때 정장로는 자기가 죽으면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유는 사람들이 정규만 장로를 칭송하여 천국의 상급이 삭감될까 염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1969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고 그 후에야 서현교회는 봉헌식을 하였습니다. 정규만 장로는 고인이 되어서야 표창장과 공로패를 받았습니다. 정장로는 성전건축 운동에 활력소를 주었으며 감동을 끼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정규만 장로의 가훈은 “첫째, 주일을 성수하여 건강의 복을 받고 둘째, 십일조를 철저히 구별하여 드림으로 물질의 복을 받고, 셋째로 목회자를 선대하여 자녀가 잘되는 복을 받자’ 이었습니다. 가훈대로 살았던 그의 자녀 정영현, 정두현 형제 장로는 인도 중부 하이드라바드 지역에 10채의 주택과 교회를 세웠습니다. 기공식 때 ‘고마운 한국인’에 대해 인도 현지 언론이 크게 다룬 바 있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선교에 헌신하는 것이 가문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이들이야말로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시편 122편의 표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 소개됩니다. 그러나 시 가운데 성전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고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만 네 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이 성전과 같은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 성전이 있었기에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이라 불리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뜻은 ‘평강의 성’ 혹은 ‘완전의 성’입니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거기에 평강과 완전함이 있습니다. 

교회가 좋다고 느껴지십니까? 교회에 오시는 이유도 교회가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부담의 문제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부담이 없지만 사랑은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모쪼록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자는, 
 
첫째로 기뻐하도다

존 맥스웰(John Maxwell)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를 하였던 맥스웰은 집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설거지였습니다. 틈만 나면 설거지가 싫어서 여자 친구의 집으로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가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는 주저 없이 그녀 옆에서 설거지를 하였지만 그 설거지는 즐거움과 기쁨의 설거지였습니다. 그에게 여자는 기쁨의 대상이었기에 가장 하기 싫었던 설거지가 기쁨이 된 것입니다. 가장 하기 싫었던 일이,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아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을 누리고자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벅찬 가슴을 안고 교회에 오셨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 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있기에 심령이 즐겁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에 교회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영적 체험을 가지게 됩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기쁨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자는 소리만 들어도 기쁘다는 것은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드리는 일에 기쁨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위로와 안식과 은혜를 얻는 곳입니다. 교회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교회만 생각하면 찬양이 절로 나오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교회에 나오는 사실조차 고통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 나오는 자체가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 잘되는 교회, 살아 있는 교회는 성도들이 교회에 나올 때마다 기쁨으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모쪼록 교회에 올 때마다 기쁨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교회를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둘째로 감사하도다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두 사람이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장소에 가려면 말을 타고 며칠을 가야했고, 험한 지역도 지나야 했습니다. 드디어 두 사람이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습니다. 한 사람이 상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오다가 중간에 겪은 일을 들어보게! 내 말이 길을 오다가 갑자기 뭔가에 놀라 뛰는 바람에 내가 땅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지 무언가. 다행히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다리라도 부러졌더라면 어쩔뻔 했나? 나는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에 감사를 드렸다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사람이 갑자기 무릎을 꿇으며 말했습니다. “자네 말을 들으니 나는 자네보다 훨씬 놀랍고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였다네. 

내가 탄 말은 아무 사고 없이 나를 이곳까지 태우고 왔으니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여태 그것을 모르고 있었네!” 말에서 떨어졌으나 다치지 않은 사람과 말에서 떨어지지 않은 사람 중 누가 더 감사해야 합니까?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할 뿐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고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감사를 고백하는 자가 비로소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성전에 나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전례’ 는 ‘에두트’ 로서 ‘율법’과 동의어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지켜야 할 것을 율법으로 정하여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일도 율법으로 정하여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절기가 되면 유다의 온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반드시 감사의 제사를 올렸습니다. 성전에 모였던 이유는 감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원불교인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미 많은 교회에 원불교인이 잠입해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중직을 맡은 사람들 중에도 원불교인이 있는데, 이런 경우 교회가 심각한 내홍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불교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종파로서의 원불교가 아니라 원망하고, 불평하는 교인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 대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할 수 있는 교회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교회를 돌보고 헌신하며 스스로 봉사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야말로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셋째로 형통하도다

역사상 최대의 거부였던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냉혹한 기업가였으나 후에 회심을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에는 교회 사랑을 위한 어머니의 교육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록펠러에게 열 가지만은 꼭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둘째, 목회자를 존경하라. 셋째,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넷째, 예배시간에 항상 앞에 앉아라. 다섯째, 오른쪽 주머니는 십일조 주머니로 삼으라. 여섯째, 주일 예배를 힘써 지키라. 

일곱째, 아침에 목표를 세워 기도하라. 여덟째, 남을 힘껏 도와라. 아홉째, 아침에는 하나님 말씀을 꼭 읽어라. 열째, 잠자기 전에는 하루를 반성하며 기도하라. 록펠러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살았기에 사업에 성공을 할 수 있었고 나중에 리버사이드 교회를 건축하고 선교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형통의 삶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면 반드시 형통의 축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6절입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형통케 된다는 뜻입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간증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사랑하여 형통케 된 인물입니다. 비록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했지만 일평생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였고, 그의 왕국이 영원히 빛났으며 그의 혈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되는 가문의 복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 형통의 증거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가정마다 평강이 임합니다. 사업과 일터에 복이 임합니다. 복을 주시므로 더욱 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형통을 기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기초 위에 인생을 설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교회를 가까이 하십시오.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형통의 복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난파를 당해 무인도에서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멀리 지나가는 배를 보고, 손을 흔들며 구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를 발견한 배가 섬을 향해 다가 왔습니다. 배에서 내린 선장은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그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기 오두막이 왜 세 채나 됩니까?” “저쪽에 있는 건 제 집이지요.” “그럼 그 옆에 있는 건요?” “그건 제가 다니는 교회랍니다.” “그럼 그 옆에 있는 건요?” “아, 그건 전에 다니던 교회죠.” 여러분에게 교회는 어떤 존재입니까?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기분과 감정에 의해서 바꾸는 대상이 교회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다윗의 고백을 바라보며 예루살렘인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해 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할 때 비로소 기쁨으로 나오게 됩니다. 감사함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형통의 복을 통해 더욱 더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게 하실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사랑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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