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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 (왕상 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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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아가는 마음 (왕상 3:4-15) 

오늘 본문을 읽을 때마다 정말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한 인생에게 파격적 제안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가장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미천한 인생에게 <마음대로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 한번이라도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신다면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게으른 할아버지와 잔소리만 하는 할머니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밖에 나왔습니다. 일은 하기 싫고 해서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쉬는데, 어디선가 <살려 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리 나는 곳으로 가보니, 웅덩이에 작은 마차가 빠져 있고,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작은 꼬마 요정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차와 요정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요정은 보답으로 세 가지 소원을 들어 드리겠다고 하면서, 반드시 소원은 할머니가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에 달려와 할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평소에 할아버지 말을 우습게 여기던 할머니는 <말도 안 돼는 소리!>라고 일축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속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자, 할머니는 <그 말이 정말이라면 지금 소시지가 먹고 싶으니, 소시지를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식탁에 소시지가 차려졌습니다. 

깜짝 놀란 할머니는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영감, 당신이 좀 더 진지하게 말했다면 내가 믿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기회를 낭비하지 않았을 텐데, 벌써 소원 한 개를 날려버리지 않았느냐?> 그러더니 홧김에 말했습니다. <이 소시지나 영감탱이 코에 확 붙어 버렸으면 좋겠네!> 그러자 소시지가 할아버지의 코에 붙어 버렸습니다. 

그 순간 할아버지는 난리가 났습니다. <빨리 소시지가 떨어지게 해 달라고 빌어...>라고 말했지만, 할머니는 <이제 마지막 소원은 정말 멋진 것을 빌어야지...> 라고 하면서 할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소시지 냄새를 맡고 쥐들이 나타나 할아버지 코에 붙은 소시지를 갉아먹기 시작했고, 할아버지는 코까지 먹힐 위기를 만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울고불고 하면서 소시지를 떼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때서야 할머니는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고 <소시지가 떨어지게 해 주세요..>라고 했고, 소원대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결과적으로 세 가지 소원을 다 사용했지만, 남은 것이라곤 쥐가 갉아먹고 남은 소시지뿐이었다고 합니다. 

이 동화를 들으면서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동화의 끝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금슬이 좋아졌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여러분,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봅시다.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나요? 솔로몬이 구한 것은 하나님을 정말 기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것을 들으시고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그렇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구했습니까? 잘 아시는 대로 지혜를 구했습니다. 개역개정 번역에서는 <지혜>를 <듣는 마음>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한 것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가 <지혜, 즉 듣는 마음>을 구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혼돈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이유는 <그가 구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구하는 이유>가 마음에 드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듣는 마음> 그 자체보다 <듣는 마음을 구하는 이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을 구하느냐>하는 것보다 <왜 그것을 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공부를 잘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학생에게는 왜 그렇게 기도하는지 이유가 분명해야 하고 그 이유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 그렇게 기도하는지 이유가 분명해야 하고, 그 이유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가 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무슨 이유로 듣는 마음을 구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솔로몬의 고민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버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의 고민은 무엇이었습니까? 

시람들이 하는 많은 고민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삶의 수단을 위한 고민>입니다. 즉 <살긴 살아야 할 텐데,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어디서 자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위한 고민입니다.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 살기 위한 고민, 남보다 더 출세하고,  남보다 더 즐기면서 살기 위한 고민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차원이 다른 고민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목적을 위한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출세하여 사는 것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인생의 목적을 두고 고민합니다. <가치 있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합니다. 그는 밥이나 축내는 사람이 되지 않고 후회 없이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사명을 완수할 수만 있다면 고난도, 가난도, 불편함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어떤 사명을 위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 것인가>, 이것이 그의 고민입니다. 

솔로몬의 고민은 이 둘 중에서 후자였습니다. 그는 먹고 입고 살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왕이었습니다. 그에게 고민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왕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사명을 위한 거룩한 고민이었습니다. 

7-9절을 읽으실까요?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아멘. 백성을 잘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고, 백성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왕으로서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듣는 마음을 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어떠합니까? 11절을 보세요.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를 위하여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직 백성을 위해, 왕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의 마음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고민한다는 것은 삶을 진지하게 살고자 애쓴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그 고민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것일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반면에 인생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태도, 아무런 사명감도 없이 사는 것, 삶에 대한 외경심이 없이 흘러가는 대로, 욕망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삶의 수단을 위한 고민>을 버리고 <삶의 목적을 위한 고민>으로 옮겨가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사명을 위한 고민>임을 가르치셨습니다. 6장 33절을 다 아시지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 즉 지혜>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솔로몬의 인생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 듣는 마음, 지혜라는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삶의 목적을 위해, 사명을 위해 고민하면서 구하는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그 이유는 주님의 마음도 그러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늘 당신의 <메시아 사명>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따라다녀도, 아무리 신분 높은 사람들이 산해진미로 대접을 한다 해도, 아무리 좋은 집에서 주무신다고 해도,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아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욕을 당해도, 머리 둘 곳도 없이 고생을 하셔도, 마지막에는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더라도 메시아의 사명을 이루는 것이 주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주님은 늘 이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사명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주님은 새벽마다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좋은 것을 먹고 입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메시아 사명의 완수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도 십자가를 짐으로써 메시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 사명을 위해 고민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명을 위해 구하십시오. 살아가는 목적과 이유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더 잘 먹고 입기 위한 기도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이방인들이나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셨으면, 그 후에는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삶이 혹 좀 불편하고, 부족하고, 어렵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권태롭고 짜증이 나더라도 원망하지 마십시오. 늘 일상생활에서 사명자로서 충성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좀 불편하고 힘들어도 사명을 이루어가고 있다면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얼마나 좋은 것을 먹고 입고 살았는가>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오직 <사명자로 살았는가>를 따라 평가됩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삶에 임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에게 하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늘 자신이 하는 일에 불평이 많았고, 모든 일을 대충대충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존재가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루터는 그녀의 변화에 대해 <그 날부터 그녀는 카펫 아래까지 청소하기 시작했다.>고 재미있게 말했습니다. 

어제 6065남선교회 성경공부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떤 가정주부가 은혜를 받은 후 씽크대 앞에 이렇게 써 붙였다고 합니다. <주님, 이 씽크대가 제 사명의 현장임을 고백합니다.> 교우 여러분의 사명의 현장은 어디입니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위해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잘 구해서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드시길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구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그것은 그렇게 될 때 구하지 않은 나머지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솔로몬에게 하신 12-13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한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주셨습니다. 왕의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주시고,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모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앞에서 읽은 마태복음 6장 33절도 그렇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머지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을 얻길 기원합니다. 

자, 이제 마지막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명을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 올라갔습니다. 당시 성전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일천 번제라는 엄청난 제물을 드리기 위해 규모가 큰 기브온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그 누구도 엄두를 못 낼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꿈에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경배에 배어 있는 정성을 보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요, 어느 정도의 정성으로 오셨나요?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너무 정성이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전에 새벽기도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수도권의 어느 교회의 예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11시에 예배하는데, 10시부터 와서 한 시간 동안 찬양을 드린다고 합니다. 한 시간을 찬양하면 가슴이 다 열리고 은혜 받을 준비가 이미 끝납니다.  그런데 찬양대원은 7시에 와서 한 시간 기도하고, 두 시간 연습하고, 10시부터 찬양대석에 앉아 교우들과 함께 찬양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느 정도의 열심을 가지고 예배하는지 아시겠지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부끄럽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는 엎드려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드려야 할 줄 믿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자신을 왕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십니다. 그 위대한 왕 앞에서 우리 자신을 왕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우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참되신 왕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작은 아이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십시오. 그 앞에 나아가십시오. 정성껏 경배하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온갖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19세기 미국 보스턴에 <A. J. 골든>이란 목사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그 분은 유명한 설교가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설교를 준비하다가 피곤하여 책상에 엎드려 깜박 잠이 들었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주일이 되었는데,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삼십세 정도의 낯선 사람에게 시선이 끌렸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그를 만나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내위원들에게 <그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 사람이요? 알고 말구요 그 사람은 예수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깜짝 놀라 깨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목사님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예배 중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 채로 예배해 왔음을 회개했습니다. 그 후로 목사님은 더 큰 열정과 정성으로 예배에 임하게 되었고, 교회는 더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여러분, 여기 지금 우리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마음을 다해 예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예배에 개근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사명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솔로몬처럼 응답을 받게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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