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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또 하나의 ‘그래도’ (겔 36: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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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그래도’ (겔 36:37-38)

지난 해 8월 넷째 주 설교에서 ‘그래도 그리고 그러므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 ‘그래도’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그래도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우상숭배와 패역의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에게서 떠났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들을 크신 은총 가운데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래도’라는 말은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한 단어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그래도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다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인으로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다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도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뭘 모르고서 죄를 짓기도 하고, 때로는 죄인줄 알면서도 죄를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당신의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은 바로 이 ‘그래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래도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래도의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래도의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셨고, 그 ‘그래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가 오늘의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 역시 ‘그래도의 은혜’ 안에서 ‘그래도의 신앙’으로 살아합니다. 때로 우리의 삶이 힘들고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래도의 사랑’을 안다면 낙심할 수 없습니다. 때로 쉽게 풀려지지 않는 인생의 어려운 문제로 인해 마음에 평안이 없고 걱정이 앞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문제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래도의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고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래도의 사랑’을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때로 내 안에 분노가 일어나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그래도의 은혜’를 베풀어주셨고, 그 ‘그래도의 은혜’가 아직 우리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래도의 은혜와 사랑’에 힘입어 ‘그래도의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도’라고 자주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힘들다 하더라도 낙담하거나 포기해야 할 상황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그래도’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힘들 때일수록,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일수록, 불안과 걱정이 나를 짓누를 때일수록 ‘그래도’라고 외치면 됩니다. 그러면 ‘그래도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우리 앞에 새로운 역사가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우리의 신앙을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그래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이스라엘은 주전 586년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시키고, 성전 안에 있는 기구들을 다 바벨론으로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제법 쓸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다 포로로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세 번에 걸친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전쟁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거기에다 그 세 번의 전쟁에서 모두 이스라엘이 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땅에는 사람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열왕기하 25:11-12) 
  
‘비천한 자’라는 말은 당시 가장 낮은 신분에 있던 하층민들을 말합니다. 그들만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부자들,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 조금이나마 배운 사람들,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다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제 그 땅에 천민들만 남아서 농사짓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에스겔 36:1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해 주십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전역에 사람들이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36:9-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11절에서도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12절에서도 “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24절에서도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그리고 그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십니다. 35절입니다. “이 땅이 (전에는)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그 사랑을 다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2절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바벨론 침공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땅을 에덴동산과 같이 회복시켜 주시고,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땅을 사람이 들끓는 곳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긴 하시는데,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하신 은혜를 준비해 놓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길 원하십니다. 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우리는 그렇게 해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마’ 약속하셨다고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그래도의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6: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적절한 때에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풍성한 은혜로 공급해 주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쳐주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신다고 ‘하나님 알아서 다 해 주세요.’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우리의 형편을 아십니다. 우리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를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따라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힘든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힘든 상황에 방치해 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우리를 그곳에서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그래도 우리는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결해 주실 거야’ 그러면서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다.
  
때로 우리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인 우리가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반드시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해야 주님 일을 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 것처럼, 우리의 건강도 지켜주십니다. ‘그래도’ 우리는 건강케 해 주시길 위해 기도해야 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열심히 운동하면서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나는 열심히 주님을 위해서 일하니까 하나님께서 내 건강을 책임져 주실 거야’ 그러면서 건강에 대해서 소홀한다면 그건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은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은 우리가 힘을 다해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해야 할 부분까지도 하나님께 맡긴다는 핑계를 대고 하지 않는다면 그건 말 그대로 핑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래도의 신앙’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실 은총을 기대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실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고, 전혀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뭔가를 이루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대하지도 않고, 준비하지도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큰 것을 이루어주신다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은총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래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그래도의 신앙’으로 사십시다. ‘그래도의 신앙’은 우리의 현실적인 삶에 반전을 이루는 신앙이고,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교회를 비난하고 반기독교 문화에 물들어 기독교를 싫어할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버리는 것은 곧 내게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 보면 오해를 사기도 하고 때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상급을 약속해 주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손해 볼 때도 많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믿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내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고, 내게 손해를 입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거기에 참된 하늘의 기쁨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세상은 때로 우리가 적당하게 현실과 타협하도록 강요합니다. 그것이 더 현명한 것 같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처럼 유혹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과 타협하면 우리의 신앙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힘든 것을 요구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순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는 ‘그래도의 사랑’이요 ‘그래도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들은 ‘그래도의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도 기도해야 하고, 그래도 사랑해야 하고, 그래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우리 교회는 오늘로 창립 57주년을 맞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우들의 가정과 삶에 베푸신 은혜도 놀랍도록 많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까지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우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풍성히 누리도록 위해서 서로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것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건강과 신앙을 가지고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그런 삶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더욱 축복해 주실 것이고, 우리 교회를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도의 신앙’으로 사십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되,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게으르지 마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은총과 복을 마음껏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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