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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라 (엡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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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엡 5:14)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날이 더워졌습니다. 여름입니다. 
더운 때 더워야지 추우면 되겠습니까! 
아프리카에서는 에어컨 없이 
나무 그늘에서 예배드리는 곳이 많은데 …
그래도 우리는 에어컨 있는 곳에서 예배드리니 
호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옆의 분과 “우리는 호강하고 있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요즘은 살기가 좋아졌습니다. 
시설물이나 첨단기기만 봐도 얼마나 좋습니까.
문제는 우리의 머리가 첨단을 따라가기에 조금 부족하고,
손발이 못 따라가서 그렇지 
정말 좋은 시설, 좋은 물건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연세 드신 어른들께서는 건강관리 잘 하셔서 
오래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더 살기 좋아지는 데
‘천국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천국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천국입니다. 
천국에서의 삶을 기대하며 … 꿈꾸며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어젯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잘 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지구에 사는 전체 인구의 약 30%가 
불면증으로 인해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와 비만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수면 장애 환자가 5년 새 2배나 늘어났다고 합니다. 
옛말에 ‘잠이 보약’이라고 했고, 
아침인사로 ‘안녕히 주무셨어요?’했던 옛사람들은 
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진료를 할 때 하는 질문 중의 하나도 
‘잠을 잘 자느냐’하는 것입니다.
잠을 잘 못 잔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일신문. 2010년 10월 11일. 참조]

잘 자야 하는데 수면시간이 너무 많아도 문제입니다. 
지나치게 많이 자면 무기력해지고 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수면과다는 불면증과 함께 
우울증의 대표적인 징후이기도 하답니다. 

왜 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냐?
오늘은 웨슬리 설교시리즈 ③번째로
「일어나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물론 영적으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

시편 127편에 보면
“…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라고 했습니다.
잠언 3장에는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잠 3:24)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잠을 달게 잘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을 많이 자는 것은 게으른 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잠언 6장에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6:9~11) 하였고, 
잠언 19장에는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잠 19:15) 했습니다.

또한 잠을 많이 자는 것은 
영적으로 잠든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Awake, Thou That Sleepest) 라는 설교에서
영적으로 잠든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잠잔다는 말은 인간의 본성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영혼이 깊이 잠든 것이요, 
게으름과 어리석음이요,
영혼이 자신의 진실한 모습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인데, 
…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깨우기 까지 
그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웨슬리학회편, <웨슬리 설교 전집 1-‘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대한기독교서회, 2006, p.48.] 

영적으로 잠들었다는 것은
구원을 받은 빛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밤이나 어둠에 속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살전 5: 5)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은 자신이 타락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은 
- 비참한 족쇄에 결박되어 있는데도
자신이 행복하고 자유롭다고 꿈을 꿉니다.
- 사탄이 그의 영혼을 완전히 소유하고 있는데도
‘평안하다, 평안하다’(렘6:14)라고 말합니다.
- 한 번 떨어지면 다시 나올 수 없는 지옥이
그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음에도 
그는 여전히 잠자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타락에 머물러 있지만
살고 죽는 것에 만족합니다. 
-“다가오는 징벌을 피하라”(마3:7)는 
하나님의 경고를 결코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 영혼의 내면에서 진지하게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행16:30) 라고 
부르짖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할 세련된 지각’(히5:14)을 
가지지 못했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막8:18) 못합니다.
-‘하나님을 전혀 본 일이 없으며’, 
또‘하나님의 음성을 들은’일도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손으로 만진’(요일1:1) 체험도 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웨슬리학회편, <웨슬리 설교 전집 1-‘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대한기독교서회, 2006, pp.49-50.]

이처럼 잠자는 자는 영적 감각이나 지식에 반응이 없습니다. 
흡사 그런 모습은 
‘식물인간(vegetative state) 상태’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식물인간’이란 
의식불명인 채 장기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를 말합니다.
식물인간 상태와 뇌사 상태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릅니다.

- 뇌사상태는 뇌 전체가 손상된 것으로 
호흡, 소화, 순환, 혈압 조절이 불가능합니다.
인공호흡기나 약물로 심장이 뛰고 숨을 쉬게만 할 뿐
결국에는 심장이 정지하여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뇌사는 의학적으로 다시 깨어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는 
대뇌부위가 손상되어 발생한 무의식 상태입니다. 
호흡 뿐 아니라 소화나 순환, 혈압도 조절 가능합니다. 
걸어서 옮겨 다닐 수는 없지만 손발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 상태를 유지하다가 나중에 사망하기도 하지만 
수개월 혹은 수년 후에 생존하기도 합니다. 
[한국장기기증원(www.koda1458.kr/) 홈페이지 자료 참조.]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구원 받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뇌사처럼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식물인간상태처럼 언젠가 깨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해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족 중에, 친구 중에, 아는 분 중에 
예수 믿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수년째 기도해도 … 응답이 없어 이제 포기하려고 하십니까?
포기하면 안됩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있음을 믿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사람답게 
사랑으로 섬기고 베풀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많이 비난합니다.
잘 하는 일은 별로 얘기하지 않습니다.
칭찬거리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일은 언론에 보도됩니다.
그래도 그들에게 다가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면 마음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되면 그 열린 문으로 복음이 들어가고
생명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복음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는 말씀을 기억하며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의 향기를 풍기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면
그는 영적인 식물인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영원한 죽음 앞에 있는 것이지요.
식물인간은 깨어나지 못하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기를 끝까지 거부하고 구원받지 못하면 
결국 영원한 죽음,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주 성경을 높이 들고 고백하는 것처럼
- 우리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고, 
- 하나님 자녀 되었고, 
-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 믿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습니다. 
그런 분들이 어떻게 하든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이 교회에 올 수 있게 해야 하고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듣기 싫다해도 찬송을 듣게 하고, 성경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롬 10:17) 
그러므로 교회에 어떻게 하든지 초청하여 
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사에 관련된 많은 책을 쓰신 이덕주 교수의 책
<한국교회처음이야기-홍성사, 2006>를 보면
복음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교회에 가면 먹을 것을 준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은 그들을 일컬어 ‘쌀교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다가 
교회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면 
미련 없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게다가 예배에 참석한 대가를 
선교사들에게 요구하는 장사꾼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영적으로 잠든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곗돈을 타기 위해 교회를 나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전도의 한 방법으로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계모임이
교회 안에서 있었습니다.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주 목적이기보다
곗돈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당시에도 
교회에서 하는 계가 잘 될 리가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돈을 챙겨 도망간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계는 깨졌고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다음 주일에도 
어김없이 예배드리러 교회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뜯긴 돈을 달라고 하는 줄 알았지만
그들은 ‘그동안 예배당에서 들은 말씀이 좋아서 왔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마다 예배당에서 들은 말씀이
잠자는 그들의 영혼을 깨우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인천 내리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 자리, 말씀 듣는 자리에 나와야 하고
나오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축구선교회, 골프선교회 … 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축구, 골프하러 왔다가 
세례 받고 집사, 권사 된 분들이 많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복음을 듣게 해줘야 합니다.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오게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3절에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후 4:3) 한 말씀대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여전히 많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고후 4:4, 쉬운성경)
따라서 그들은 이미 영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받은 우리들이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라고 잠자는 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데교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했습니다.

사데교회 교인들은 겉으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삶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3:2)
그런 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딤후 3:5) 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확실히 그는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는 “한 주간에 두 번씩 금식하고”(눅18:12) … 
충실하게 교회에 나가 성례전에 참례합니다. … 
“얻은 것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합니다. 
‘율법의 의에 대해서는 ’그는 “흠 없는 사람입니다.”(빌3:6) 
그는 … 종교의 형식에서 아무 결함이 없으나 
그 정신이 없으며, … 그 진리와 생명이 빠져 있습니다. 
[한국웨슬리학회편, <웨슬리 설교 전집 1-‘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대한기독교서회, 2006, p.50.] 

예수님도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했습니다.

문제는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우리 속에,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롬8:9)
그러므로 우리의 중심이 중요합니다.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그러므로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죽음에서 깨어나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비취실 것이다” (엡 5:14, 쉬운성경)
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요나 1장에도
“…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욘1:6)했습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결코 빠져 나올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방황을 멈추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방주에 올라타야 하고
한번 올라탄 구원의 방주에서는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영원한 행복이냐 아니면 영원한 불행이냐 … 하는 것은 
바로 지금 결정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로부터 신앙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
천국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 것인지 … 보고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믿음의 선조들이 어떻게 했는지 배워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경고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지속적으로 종말과 심판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4)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열 명의 처녀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만 준비하고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까지 함께 준비했습니다.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어 준비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우리가 지금 깨어 있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빛(요1:9)이 되셔서 
우리에게 계시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4~5절에
“…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5)했습니다.

여러분 처음 예수 믿었을 때의 마음 그대로이십니까?
처음 집사 될 때 다짐했던 약속 지키십니까?
처음 권사 될 때 마음에 결단했던 것 그대로 실천하시나요?

권사의 사명 가운데 ‘낙심자를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권사는 그러므로 낙심할 수 없습니다.
낙심한 사람을 권면해야 하는데 권사가 낙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권사’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 합니다.

우리교회 권사님들만 잘해도 / 권사 될 때 약속한 대로만 했다면
교회가 지금의 10배는 더 커졌을 것입니다.
요즘 저녁예배 드리는 분들 숫자보다 10배는 더 나와야 합니다.

처음 약속한 것, 처음 다짐한 것 지키십니까? 
저는 늘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기술자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익숙하지 않게 해 주세요. 목회하면서 익숙해집니다.
어느 순간 기술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슬픔을 당한 이들을 위로하면서도 
너무 일상적이고 문학적인 표현만 하는 것은 아닌가? 
정말 내 가슴에 슬픔을 함께 하는 마음이 있는가?’라고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게, 기술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바로 지금이 그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눅22:46) 하셨습니다.

서양 연극 중에 <단지 15분>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주인공은 
뛰어난 성적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심사에도 극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고,
결국 15분만 남은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게 됩니다. 
주인공은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분이 지나갔습니다. 
그 때 병실로 한 통의 전보가 전해졌습니다. 
‘억만 장자였던 당신의 삼촌이 방금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은 당신뿐이니 
속히 상속 절차를 밟아 주십시오.’
그러나 죽음을 앞둔 그에게 재산은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5분이 흘렀습니다. 

그 때 또 하나의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올해의 최우수 논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 축하 전보도 그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또 하나의 전보가 들어왔습니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연인으로부터 온 결혼승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보도 그의 시계를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15분이 다 지나고 그는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인간의 삶이 15분만큼 짧다는 것을 말하는 작품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재산도 … 명예도 … 사랑도 … 
모두 의미 없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준비했느냐입니다.
영생을 얻었냐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바로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 아직도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믿음이 없이 
의무감에 … 습관적으로 … 교회에 나오시는 분이 계십니까?
잘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영혼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인간의 인생은 15분 정도로 …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세 드신 분들이 하는 말씀이 순식간에, 잠깐 동안에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고 합니다.
지금 여유 있는 것 같지만 잠깐 동안에 세월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소중하고 가까운 분인데 … 그 분에게 믿음이 없습니까?
그분을 영적인 잠에서 깨워야 합니다. 
아무리 나와 좋은 관계로 지낸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군대에 가면 제일 어려운 점이 불침번을 서는 것입니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보초를 섭니다.
실내에서 설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가 보초를 서면 얼마나 추운지요.
해안에 나가 보초를 서는 해안방어를 할 때면 정말 춥습니다.

어떤 불침번은 1시간, 2시간 서고 교대되지만
어떤 근무는 4~5시간, 
해질 때 들어가서 해 뜬 다음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초를 서려면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잘 살피고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근무교대시간에 맞춰 잠자는 다른 사람을 깨워야 합니다. 
그것이 불침번의 역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생명의 불침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졸면 안됩니다. 잠들면 안됩니다. 
우리는 잠자는 사람들, 
다시 말해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깨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살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피곤하고 고달픈 일입니다. 
빛 되고 소금되게 영향력을 끼치며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믿고 천국소망으로 사는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불침번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마25:21) 이라는 
칭찬 받는 자리의 우리 모두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한 말 같고 늘 듣는 소리인 것 같지만
일어나야 하고 일으켜야 합니다.
깨어나야 하고 깨워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 일어나야 하는 사명, 
일으켜야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결단했지만
순간순간 곁길로 갈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영적으로 잠든 자들을 깨울 만큼 
내가 영적으로 바르게 깨어있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일상적으로 듣던 말, 전에 듣던 말, 
들어야 했던 말, 당연한 말 같지만 
이것이 우리들의 삶에 실천해야 할 중요한 말씀임을 깨닫고 
말씀을 실천하여 열매 맺는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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