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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은 주의 능력으로 감당한다 (출 6:2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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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은 주의 능력으로 감당한다 (출 6:28-7:7)

지난 한 주간을 돌이켜 볼 때, 지난 한 주간은 이상하게도 많은 목회자와 사명자들, 목회자 후보생들을 만났습니다. 왜 이번 주에 많은 목사님들을 만나게 된 걸까요? 

많은 목사님들을 만나면서 목회자들이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목회자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인데, 서로에게 좋은 지도력을 영향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지도자들의 문제인데, 지도자들이 바른 지도력을 발휘하면 교회공동체는 아름다운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해 우리는 출애굽기를 보고 있고, 오늘 이 시간이 출애굽기 18번째 강해를 하는 시간인데, 출애굽기에서 모세라는 지도자를 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는데 모세를 지도자로 세웠습니다. 여러분, 지도자라고 하는 것은 좋은 자리, 명예스러운 자리에 앉는 좋은 면도 있지만 무척 힘든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홀로 설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홀로 서야 하는 고독감이 있고, 홀로 당하는 거절감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세상 환경이 어찌하든 지도자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저는 2~30대 까지만 해도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찬양 인도자였고, 어느 모임이든지 분위기 메이커였습니다. 취미도 다양하고, 유머러스하고, 모든 것을 잘 즐겼습니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도 많고, 친구도 많았습니다. 친구들이나 선후배 사이에 내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책임감도 크고, 고독감도 많이 느끼면서 언젠가부터 어느 모임이든 내가 있으면 사람들이 어려워합니다. 그러면 나는 더 어렵습니다. 요즘 많은 목회자들이 페이스북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잘 안 합니다. 괜히 내가 들어가서 한 마디 농담을 하거나, 일상의 일들을 나누면, 응답이 없을 것 같아서... 또 ‘큰 교회 목사님이 너무 가볍다’ 할 것 같아서... 

여러분, 지도자는 홀로 있어야 하고, 홀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절감과 고독감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능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본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좌절감과 절망감 속에 있는 모세를 격려하셨습니다. ‘모세야, 너를 통해 새 역사는 시작된다. 나는 여호와다. 나는 구원자다. 그리고 너의 족보, 너의 가문을 보고 너를 택한 것 아니다. 오히려 너를 통해 이제 너의 가문이 새로워질 것이다’, 여기서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능력이다”, 
“사명은 가문을 새롭게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강력한 위로와 격려와 지지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그럼에도 모세는 또 예전에 했던 말을 또 합니다. “하나님, 저는 입이 둔합니다. 내가 누구관대 바로가 내 말을 듣겠습니까?” 

오늘 본문, (6:28~30절)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내가 누구관대... ’, ‘나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 아직도 모세는 자기 자신을 볼 때마다 초라한 인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마다 그 은혜를 자각하면 자신있게 앞으로 나아갔지만, 무엇인가 자신이 떨어지면 하나님의 은혜도 자각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가진 모세의 모습입니다. ‘내가 누구관대... ’, ‘저는 입이 둔합니다’, ‘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든 생각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휴, 이 등신! 야! 모세야 관둬라, 내가 너 말고 좀 더 젊은 사람을 데리고 시작해야겠다“, 그래서 모세는 오늘 본문 시작하는 6장에서 끝났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인물을 등장시켰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나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라든지...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누구냐’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 모세는 히브리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애굽인들이 천하게 여기고 경시하는 양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거절감과 열등감의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콤플렉스로 인해서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여러분,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가의 자아상이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까? 능력없는 사람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이런 건강한 자아상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와 같이 바로에게 갈 수 없다고 자신 없어서 거부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책망을 하시지 않고 말씀하셨습니다. (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였다’, 이 말씀은 모세에게 굉장한 메시지입니다. 그동안 모세에게 바로는 도저히 넘어서지 못할 태산이었습니다. 자신 없는 모세는 그에게 눌려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가 모세를 하나님처럼 여긴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질서가 재편성되고 판도가 뒤바뀌는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했는데, ‘바로가 너를 신처럼 여길 것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2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또한 모세가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라고 했는데, ‘네 형 아론이 네 대언자가 될 것이다’ 하심으로 말 재주 없는 모세의 부담을 줄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고집부리게 하고, 표징과 이적으로 애굽에 심판을 내려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해 내겠다’, ‘그리한 후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 낼 것이고, 그때에 애굽 사람들은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자신감 없는 모세, 열등감에 빠진 모세, 고민을 호소한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6절)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그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였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해서 힘 빠져 있던 80세의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신처럼 되는 능력’을 받았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고양이 앞의 쥐’라는 말이 있죠? 이전에는 바로가 고양이고 자신은 생쥐였는데, 이제 ‘신처럼 되는 능력’을 받았으니, 이제는 바로가 생쥐이고, 모세가 고양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바로가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모세가 발밑의 벌레처럼 느껴져서 두려웠는데, 이제는 바로가 벌레처럼 보여서 짓밟을 수 있는 능력과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바로가 어른처럼 보여서 항상 작은 자가 되어 위를 향해 쳐다봐야 했는데, 이제는 모세가 어른이기에 아이같은 바로를 호령하듯이 쳐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사명은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주신 사명은 나 개인의 재능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십시다. “사명은 주의 능력으로 감당한다”, 여러분, 능력이 무엇입니까? 헬라어로 능력은 ‘두나미스’인데, 이 ‘두나미스’라는 단어에서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이 두나미스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 권능, 힘’을 뜻합니다. 이 능력이 사람에게 임하면 큰 일을 두려움 없이 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능력은 주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명과 능력은 함께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능력을 힘입고 존귀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사명)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사명은 내 힘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감당함을 믿어야 합니다. “사명은 주의 능력으로 감당합니다”, 1) 이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 후에 일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500여명의 많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이 곧바로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그들 믿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오순절날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체험하고 능력을 받게 되었고 현장에 나가 힘 있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준비 없이 현장에 나가면 백전백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구하고, 그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은 기름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가의 장비라도 기름이 없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무능력해지고 환경에 눌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명은 주의 능력으로 감당합니다”, 2) 이것을 믿지 못하면 다른 길,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사명을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감당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자꾸 다른 길, 다른 방법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점점 본질을 잃어가게 됩니다. 

요즘 서점에서 인기 있는 책들을 보면, 경영학, 통계학, 광고마케팅, 심리학, 부자 되는 법, 성공학, 인맥 쌓기, 등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나름대로의 방법들이 나와 있는 책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많이 아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적인 것들을 중요시 여기게 되면,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세를 보십시오. 그가 ‘신같이 되는 능력’을 받기까지는 얼마나 무력했습니까? 오늘날 내가 힘이 없고, 사명 앞에서 주저하게 된다면 그것은 은혜가 메말라서이고, 주의 능력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받은 모세처럼 나도 하늘의 능력으로 입혀지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사명은 주의 능력으로 감당한다”, 

주중에 밖에서 두 번 설교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동지방교역자 회의에서와 충주신학원 종강예배에서였습니다. 설교가운데 공통적으로 전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명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두 가지의 확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이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또 하나는, 사명의 확신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는 확신입니다. 

저는 중학생 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정말 교회 일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중3때부터 ‘이러다가 내가 목사가 되는 것 아니야?’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왜 불길한 예감이냐 하면 저는 정말 목사가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되면, 무엇인가 자유롭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인생이 재미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답답할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래서 청소년시절 기도제목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 저 목사 안 될 겁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3 말에 대입원서를 쓸 당시, 버스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네 멋대로 산다는 것, 그것 별거 아니야, 네 평생 나를 위해 살지 않겠니?’, 그날 바로 신학대학에 가서 원서를 사고, 목회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한 번도 그날의 선택을 후회해 본적이 없습니다. - 
목회자로서 나는 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나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사명에 대한 확신이 나를 능력있는 사역을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여러분,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던 모세, 자신감도 없고 주눅들어 있었던 모세, 그가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은 인간적인 힘과 지식과 재능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사십니까? 그냥 세상에서 살아지니까 사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명이 있습니까? 내가 처한 여건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쓰신다면 어떻게 쓰실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헤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버리고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우리 각 사람에게 허락되어진 한 세상, 우리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사십시다. 우리가 그 사명을 믿음으로 감당하고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셔서 주의 능력을 체험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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