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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역사의 설교 (잠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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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설교 (잠 14:34)
 
  
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 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내일은 6.25동란 발발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만한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가장 큰 첫 번째 이유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적화통일의 명분을 앞세운 북한 공산정권에 의한 남침 전쟁에서,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매년 6월 25일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조국을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순국선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는 날인 것입니다

먼저 6. 25전쟁의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4.3 제주 사건과 10.19 여순반란사건으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으나, 북한은 소련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로 비교적 안정된 가운데 공산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미국은 에치스라인(미국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대만을 제외한다)을 설정하여,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북한에 심어 주고, 김일성의 적화야욕에 불을 붙여주게 되었으며, 중국은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나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북한, 소련, 중공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하나가 됩니다. 

1949년 이후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남침 계획을 여러 차례 재가 받으려 했다가 번번이 무산되었지만, 그러나 김일성의 강력한 의지를 꺾지 못하고 스탈린은 결국 이를 승인하게 되며, 1950년 5월 모택동은 전쟁발발 시 미국이 참전하면 중국군을 파병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남한은 전쟁발발 하루 전 북한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비상경계를 해제하고 전방 사단장까지 참석한 장교 파티를 갖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합니다. 

이렇게 하여 결국 6.25 동란이 발발하게 되었는데, 전쟁초기 우리나라는 치욕적인 패배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유엔군의 참전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전세가 역전되어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중공군의 참전으로 안타깝게 다시 후퇴를 하게 되고, 급기야는 휴전에 이르게 됩니다.

6.25 동란으로 인한 피해 상황은 참으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인하여 발생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인명피해와 국가적 손실을 남겼습니다. 6.25동란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한국군 군인:전사-149,005명, 부상-710,783명, 실종-132,256명 민간인:사망-373,599명, 부상-229,625명, 행방불명-303,212명, 계:사망-522,604명, 부상-940,408명, 실종-435,468, 총계-1,898,480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은 인민군:전사-294,000명, 부상-226,000명, 실종-120,000명, 민간인:사망-406,000명, 부상-159,400명, 행불-630,000명, 계:사망-700,000명, 부상-385,400명, 실종-750,000명, 총계-1,835,400명, 중공군 피해는 900,000명이라고 합니다.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무모한 남침전쟁 도발로 수십만 명의 고아와 전쟁미망인을 발생시키고, 재산상의 피해는 당시의 돈으로 약 23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 국민의 생활 터전 및 산업시설과 전국토의 4분의 3을 초토화시킨 6.25 동란은, 우리 민족과 이 강산에 전대미문의 참사를 남겼고, 그 상처는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으며, 전쟁의 위험은 지금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미 양국군이 오래전부터 실시한 ‘워 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면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1993-1994년 이른바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전쟁 수행 시나리오는, 폭격기를 동원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경우, 북한이 전면전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당시 미군은 주한미군 17,000명과 일본 주둔 미 해병대 15,000명을 투입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럴 경우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민간인까지 약 150만 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군이 개전 초기 5일 이내에 예비군 400만 명을 소집해 전선에 투입하고, 미국 본토와 전 세계에 흩어진 미국 육군 등 130만 명을 한반도에 집결시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렇게 세계 최고의 화력과 막대한 병력을 집중시키면, 개전 1주일 이내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 병력만 최소 100만 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더 극심했습니다. 개전 24시간 이내에 수도권이 북한 장사정 포탄의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되면, 150여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서, 1994년 당시 화폐가치로 3,000억 달러의 피해가 예상되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의 피해 예측 시뮬레이션이 나오자,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가 백악관에 영변 핵시설 폭격을 중지해야 한다는 긴급 건의문을 보냈고,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특사로 급파하면서, 극적으로 전쟁을 모면하고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를 상정한 ‘워 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한 피해 산출은 2004년 우리 군이 다시 실시했습니다. 이때는 10년 전 피해 추정치보다 1.5배 이상 늘어난 전쟁 피해가 예상되었습니다. 즉 한반도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에, 서울 수도권 시민과 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한 사상자가, 1994년 추정치 150만 명에서 230여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또 잿더미로 변한 나라의 재산 피해도 1조 달러에 이르러 한국은 사실상 재기하기 힘든 후진국으로 전락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 연구가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지난 5,500여 년 동안 지구상에는 15,000번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37억에 달하며, 8,000번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으나 조약내용이 지켜진 것은 평균 2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박사에 의하면, 지난 3421년의 문명사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역사에는 92%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1904년 러일 전쟁 이래,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1950년 한국 전쟁, 그 후 월남 전쟁, 중동 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란과 이라크간의 8년 전쟁, 영국과 아르헨티나간의 포클랜드 전쟁, 그리고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치르게 된 걸프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1차 세계 대전으로 사망자 8,543,515 명과, 부상자 21,219,452명의 피해를 보았고, 2차 대전으로 전사자 2,700만 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 명이 나왔습니다. 지난 20세기에만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 정도의 인명이 살상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만행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인이 가장 극악한 죄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전쟁에 아무 책임도 없는 민간인들이, 직접 전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 군인들보다 더 많이 죽고 다치며, 그들의 재산이 파괴되기 때문에, 전쟁은 한 두 사람을 죽이는 살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권을 유린하고 정의를 파괴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 가운데 전쟁만큼 큰 것은 없습니다. 

전쟁무기로 죽이고 상처를 주는 것 외에도, 전쟁 중에는 평상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간, 납치, 협박, 모독 등의 인권유린이 이뤄지고 정의, 정직, 예의가 다 무력해져서, 인간이 짐승보다 더 못한 짓을 자행할 수 있으며, 인간의 가장 저급하고 비열한 단면이 거침없이 적나라하게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 특히 그리스도인은 모든 힘을 다 기울여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6.25 동란을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해보면서, 조국을 위한 우리의 신앙적 각오를 굳게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1. 6.25동란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6. 25전쟁은 크게 국제적 요인과 국내적 요인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먼저 국제적 요인에는 첫째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들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공산화 팽창정책을 펼쳤고, 이에 자본주의 이념을 가진 미국은 소련을 억제해야만 했습니다. 동쪽에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소련은 한반도를 공산화시키려 한 반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계로 돌입할 것을 예상하고, 절대로 소련에게 전진 항구를 내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6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데 이어,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에서 제외시키자, 한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소련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유엔은 즉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공격을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이 불응하자 미·영·호주 등 21개국(의료 지원국 5개국 포함)이 UN군을 파견하게 됩니다. 

전쟁초기 한국군보다 월등한 화력과 병력(한국군의 약 4배)을 보유한 북한군은 한 달여 만에 남한의 4분의3을 점령하였으나, 9월15일 한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주를 거듭하여 압록강까지 후퇴하였습니다. 그러나 10월16일 중국이 갑자기 10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북한군을 지원하자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38도선 상에서 대치상태를 보이다가 1953 7.27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정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무서운 비극의 원인을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일제 치하였던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군국주의자들의 압제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장자 교단임을 자처해온 장로교는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제27회 총회를 열어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했습니다. 이날 총회장 홍택기는 신사참배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두어 총회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반대는 묻지도 않고 만장일치로 신사참배를 결의한 후 아래와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습니다. 

“우리들은 신사가 기독교신앙에 위반되지 않는 본지(本旨)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대국적으로 보아 국가의 의식인 것을 자각하고 이에 신사참배를 선서함. 신사참배를 솔선하여 이행하며 더 나아가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에 참가하여 시국 하의 총후 황국신민으로서의 적성(赤誠)을 다하기를 기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 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러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결교, 감리교, 천주교 등에서도 신사참배를 모두 결의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신사참배 강요는 일제가 일어 상용, 창씨개명 등에 이어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인데, 일본의 전래 민간신앙인 신도(神道)는 자연이나 조상, 영웅, 역대 천황 등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多神) 종교로, 메이지시대 이후로 천황제와 함께 군국주의 침략정책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38년 12월 12일 감리교의 양주삼, 김종우, 성결교의 이명식, 장로교의 홍택기, 김길창 등 지도급 교역자 5명으로 구성된 ‘신궁참배단’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세(伊勢)신궁 등을 참배하였으며, 일부 목사들은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일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 장로교는 이듬해 1939년 제28회 총회에서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예수교장로회 연맹을 결성하였으며, 일본의 침략전쟁 전승 기도운동과 시국강연회·모금운동을 벌였으며, 헌금을 모아 ‘조선장로호’라는 비행기를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큰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순교적 신앙인들의 충성을 보시고 1945.8.15에 민족적 출애굽의 영광스런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범죄를 회개치 않은 신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성도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초에 한상동 목사님은 ‘대한교회에’라는 제목으로 예언자적인 글을 파수군 지에 실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과일(過日, 지난 일)의 모든 죄를 솔직히 자복하고 눈물을 흘려 통회하면,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께서 용서하시련만, 해방을 주시고 독립을 주신 오늘에도 회개는 고사하고 죄감이 전무하고 회개를 거부하니, 어찌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리요. 여호와께서 반드시 진노하시리라.”고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하였습니다. 

2.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공산사상의 결과입니다 

6.25 동란은 어떤 면에서 유신론 사상과 무신론 사상의 전투였습니다. 북한은 소련군을 힘입고 남침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시에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영.중.소 4개국이 5년간 한국 신탁통치 안을 결정하였으며, 그것은 휴전선이 생길 조짐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 총선이 열리고 5월 30일 최초 국회가 열리며, 7월 17일에는 헌법을 공포하여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박사가 민선으로 당선되었습니다.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세계에 선포되었습니다. 이런 중에 공산주의 사상은 무섭게 민족정신을 와해하고 혼란 중에, 유신사상의 기독교가 특별히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겨레는 공산주의 사상이 아니었더라면 그처럼 비참한 민족상잔이 있을 리가 없었는데,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결국 6.25 동란이라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일은 6.25동란 62주년 되는 날입니다. 어떤 점에서 인류사는 전쟁사라고 할 만큼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욥 7:1에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고 하여서, 인생사는 전쟁사임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역사학자는 25년을 주기로 해서 지구의 전쟁은 계속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야기 한국사’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조 5백 년 동안의 그 구역질나는 역사, 모략과 음모, 사색당쟁으로 점철된 왕조가 어떻게 5백년씩이나 이어져 왔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일제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우리의 범죄 역사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진노가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해방을 주시니까, 또 좌우익으로 나누어 싸우고, 거기다 교회도 싸우고 분열하는데 앞장을 서다가 6. 25동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처참한 동족상쟁의 전쟁 중에 울고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고, 폐허의 잿더미 위에서 오늘날 이만큼 한 경제 성장의 축복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참혹한 전쟁 이후 60년 동안 이 땅에 평화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60년 동안의 전쟁 없는 평화와 물질의 축복을 받은 우리 민족이,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목전에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을 위한 싸움에 영일이 없으며, 심지어 지금 국회에는 종북 주사파 정치인들까지 들어와 있는 형편이고, 국민들은 이제 조금 살만 하니까 사치하고 음란하고 방종을 일삼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 왕따 문화, 자살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노려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저수지에 빠뜨려 숨지게 한 비정한 아내가 있는가 하면, 경찰관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어머니를 숨지게 하고, 며칠 전에는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와 자신의 친동생 그리고 처남을 연쇄 살해한 인면수심의 흉악범죄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몇 십 년 전부터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스와핑 클럽’이라고 하는, 부부를 교환하여 서로 관계를 맺는 천인공노할 일들이 이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라는 말은, 도덕적인 의로움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의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는 말은, 한 개인의 죄가 단순히 그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사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공자는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박윤선 박사는 “역사는 죄 지으면 망한다는 하나님의 힘 있는 설교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개인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사업도 망하고, 국가도 망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죄를 멀리하여, 가정도 흥하고, 자식도 흥하고, 사업도 흥하고, 우리나라와 우리민족도 흥하고, 한국 교회도 흥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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