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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려운 일을 구하십시오 (왕하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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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을 구하십시오 (왕하 2:9-12)  

오늘 본문은 구약에서 매우 특이하고 인상적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위대한 예언자인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11절을 보세요.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대단하지요? 

엘리야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대표하는 큰 인물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모세와 함께 나타났던 분입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오른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최고로 높이신 것을 뜻합니다. 정말 부러운 분입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엘리야 외에 또 한 분이 등장합니다. 그는 이름도 비슷한 <엘리사>입니다. 본문은 엘리야의 위대한 마지막 모습만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그 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엘리사를 존귀하게 만드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 못지않은 위대하고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도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우리는 선배들을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존귀하게 되고 싶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존귀하게 되는 과정은 어떻습니까? 

우선 거기에는 <거룩한 선택>이 있습니다. 

엘리사를 선지자로 부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열왕기상 19장 16절 후반절을 보면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는 것은 엘리야의 선택도 아니고, 엘리사의 자원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존귀한 사람이 된 첫 단계는 거룩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여기 앉아 예배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존귀한 사람입니다.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꿈을 꾸십시오. 우리네 삶을 결코 하찮은 것으로 여기면 안 됩니다. 비록 환경이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청소년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길 원하는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러나 달동네에서 개척을 시작한 목사님의 여건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힘들어서 자꾸만 무너지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크게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그 분은 <목사님, 꿈이 무엇입니까? 저도 세계 선교의 일익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또 교회 청소년을 지도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일을 위해 미력하나마 제가 힘껏 돕겠습니다. 우선 5억 원의 헌금을 작정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목사님은 그 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로 보였다고 합니다. 목사님의 가슴에는 꿈과 의욕이 불타올랐습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 존귀한 사람으로 쓰일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그 분은 목사님께 수출 대금을 받기 위한 조처로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돈을 빌리러 왔고, 목사님은 몇 차례 여기저기서 빌려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분은 돈도 제대로 갚지 않았고, 작정한 헌금 5억 원 중 단 10만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목사님의 가슴에 생긴 거룩한 꿈은 계속 타올랐고, 그 분이 헌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부흥했고, 사역자로서의 목사님의 꿈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지금 청소년들을 위해 아름답게 사역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환경이 어렵고, 오히려 속기까지 했지만,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되고 싶은 꿈만 식지 않고 있다면, 우리도 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만 죽지 않고 붙든다면, 우리 모두도 귀하게 쓰이는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 번의 삶이 복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존귀하게 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의 과정은 <어려운 일을 구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를 보십시오. 본문의 엘리사는 지난주에 우리가 함께 생각했던 솔로몬과 비슷한 입장에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구하라>고 하셨고, 그가 <듣는 마음, 지혜>를 구한 것을 생각했지요. 본문의 엘리사도 그렇습니다. 하늘로 승천하기 직전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같은 말을 합니다. 9절 앞부분을 보세요.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이 때 엘리사가 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9절 후반부를 보면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아멘!  그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스승인 엘리야를 통하여 이루신 일보다 갑절이나 자신을 통해 이루시길 구했습니다. 

사실 이건 대단한 기도였습니다. 엘리야는 북 왕국의 아합 왕 시절 온 나라가 바알 우상을 숭배하고, 아세라 우상을 숭배할 때 홀로 맞서 여호와께서 참 신이심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갈멜산에 모인 우상의 선지자 850명과 홀로 맞서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게 했던 사람입니다. 또 그가 사르밧 땅에 사는 과부의 집에 머무는 동안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엘리야가 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이것보다 갑절이나 자신에게 임하길 구한 것입니다. 
  
또 이 간구는 단순히 능력과 영감을 구한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엘리야 선지자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되게 해 달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당시에 선지자가 되려고 훈련받는 후보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 자신이 엘리야가 후계자가 되게 해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본래 한 가정의 맏아들은 아버지 유산을 받을 때 다른 형제보다 두 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갑절>이란 말에는 그런 의미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가 이것을 구했을 때 엘리야 선지자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10절을 보세요.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이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어려운 일일까요? 그 이유는 이런 문제는 엘리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엘리사는 사람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을 구했습니다. 사람의 능력 그 이상의 것을 구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노력하면 얻을 수 없는 것, 하나님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하늘의 일을 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소소한 것에 매달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큰 것을 품고, 엄청난 것을 구한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 시시한 것을 구하면 시시한 사람이 됩니다. 소소한 것에 마음을 쓰면 사람이 잘게 됩니다. 그러나 큰 것을 보면 큰 사람이 됩니다. 존귀한 사람들은 구하는 것 자체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모두 어려운 것을 구하길 원합니다. 시시하게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구하지 말고, 우리 힘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큰일을 구하십시오. 영적인 일을 구하십시오. 하늘의 일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큰 일, 하늘의 일을 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생존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숨 쉬며 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길 원합니다.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거미형의 사람, 개미형의 사람, 꿀벌형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미형의 사람은 있어서는 안 될 사람, 남을 해롭게 하는 사람이요, 개미형의 사람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사람, 즉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꿀벌형의 사람은 꼭 필요한 사람인데, 열심히 꿀을 만들어 자기들도 먹지만 대부분 주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도는 꿀벌형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예수님과 그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매우 적다. 주님의 위로를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사람은 매우 적다.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코자 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금식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매우 적다. 주님과 함께 떡을 나누기 원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시기 원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주님의 기적을 보고 경탄하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와 함께 십자가의 수치를 감당코자 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사랑한다. 그러나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치지 않을 때에만 주님을 사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찬양한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축복을 받을 때에만 찬양한다.> 그는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해 한탄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합니다. <자신의 만족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주님만을 위하여 주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떠한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항상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축복을 받지 못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할 것이다. 이처럼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을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여러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존재가 되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고귀하게 만드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의 어부 시몬을 만나셨을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장 42절을 보면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고 했습니다. 시몬이 게바, 즉 베드로가 된다는 것은 그가 평생 물고기나 잡는 데 만족하는 사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존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이렇게 살려면 우리에게도 엘리사가 구한 것이 필요합니다.  하늘의 일은 하늘의 능력으로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르게 살아가는 일, 믿음을 지키는 일은 거룩한 일은 하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쉬운 일을 구하지 마십시오. 어려운  일을 구하십시오. 영적인 일을 구하십시오. 하늘의 은혜로 채워지길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려운 일을 구해서 얻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누구나 어려운 일을 구하여 다 응답을 받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긴 조건이 있습니다. 엘리사가 구했을 때 엘리야가 대답한 것을 다시 한 번 봅시다. 1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아멘.
 
여기 한 가지 조건이 분명히 나오지요.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 가실 텐데, 그것을 보면 엘리사가 구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보지 못하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따라가서 엘리야가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아야만 합니다. 사실 엘리사는 여러 차례 중간에 포기할 뻔했습니다. 2장 1절 이하를 보면 엘리야와 엘리사의 여정이 나옵니다. 그들이 처음 출발한 곳은 <길갈>이었습니다. 거기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따라오지 말고 길갈에 머물라고 합니다. 만약 이 때 엘리사가 길갈에 그대로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는 존귀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끝까지 단호하게 따라가겠다고 말합니다. 열왕기상 2장 1-2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그 후 그들은 벧엘로 갔고, 거기서도 엘리야는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후 여리고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고, 급기야는 요단강을 건넌 곳까지 따라온 것입니다. 그리고 갑절의 영감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엘리야는 승천했고, 엘리사는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구한 것을 얻었고,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엘리사를 통하여 엄청난 일을 이루심으로써 엘리야 못지않은 존귀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사의 열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엘리사처럼 끝까지 은혜를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받기까지는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혜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집념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길갈에서, 벧엘에서, 여리고에서 따라오지 말라는 세 번의 시험을 극복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세 번의 시험을 모두 이기신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도 끝까지 엎드려 구하고, 끝까지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내일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집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내일 새벽부터입니다. 길갈을 지나, 벧엘을 지나, 여리고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 계속 따르는 엘리사의 심정으로 새벽에 나오십시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아야 응답이 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끝까지 따르는 모습을 보길 원하십니다.  

다른 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십시오. 집안의 모든 시계를 맞춰 놓으십시오. 바쁜 일들은 다음 주간으로 미루십시오. 아이들을 다 데리고 오십시오. 이번 집회를 우리 각자를 위해 차리신 것으로 받으십시오. 구역에 모두 연락하십시오. 여전도회, 남선교회에서 모두 연락하십시오. 먼데서도, 가까운 곳에서도 모두 오십시오. 멀리 있는 분들은 저녁에 오셔서 교회에서 주무시면서라도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귀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것들, 어려운 것들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큰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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