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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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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시 3:1-8) 

  
6.25 사변이 발발한지, 62주년이 되는 해다. 6.25는 규모와 참가국에서, 피해 규모에서, 인류 역사상 5대 전쟁에 속하는 전쟁이다. 그 피해는 전쟁 당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 6.25 사변이라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래서 ‘한국전쟁’이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공연히, 북한의 남침을 희석시키려는 말에 불과하다. 국어사전에서 사변은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포고 없이 발생한 전쟁. 또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큰 재앙”이라고 했다. 

6.25는 북한이 선전포고도 없이, 탱크를 앞세우고, 남쪽으로 들이닥친 ‘사변’이 맞다. 6.25는 37개월 동안, 450만의 사상자가 말해주듯이, 이 나라 거의 모든 가정에, 불행과 한탄과 피멍을 안겨준, 참극 중의 참극이다. 따라서 ‘한국 전쟁’이라고 하면, 그들의 침략이 정당화되기에,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6.25는 유신론사상과 무신론사상의 전투였다. 인류역사에 이처럼, 분명히 나뉘어져, 대대적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다. 북괴는 250대의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파죽지세로 내려왔다. 전쟁이 터진 지 사흘인, 6월 28일, 수도 서울은 어이없게도, 함락되어 버리고 말았다. 

한 달이 지난 7월말에는, 낙동강까지 내려왔다. 그 때 인민군의 최전선 지휘관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전쟁은 마치 방망이를 가지고, 솜뭉치를 치는 것과 같았다.” 너무 쉬웠다는 말이다. 그때 우리는 방어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쟁이 쉽게 끝날 줄 알았다. 
함석헌 씨의 ‘뜻으로 본 조선역사’에서 “그 때 어찌하여 인민군이, 그 큰 세력으로 낙동강을 넘지 못했는지는, 의문 중의 의문이다.”고 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어려운 때에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민족의 최대 비극, 6.25사변이 신앙적인 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살펴보자. 

1.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었다(1-2).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많다’는 말이, 몇 번 사용되었나? 모두 3번 사용되었다. 다윗에게는 많은 대적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윗을 둘러싸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조롱했다. 다윗을 넘어뜨리려고 했다. 이러한 대적은 2가지 경우에 나타난다. ① 의롭게 살려고 할 때 ② 의롭게 살지 못할 때, 나타난다. 

(1) 의롭게 살려고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귀하게 쓰시려고 할 때, 훈련시키신다. 따라서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데, 자꾸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하나님이 나를 더 귀하게 쓰려고 하시는 줄 알고, 더욱 기도하기 바란다. 

다윗에게는 항상 대적들이 많았고, 핍박이 많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다.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계속 찾고 있다. 믿음으로 승리자가 되기 바란다. 

(2) 의롭게 살지 못할 때 
하나님은 왕을 세울 때 (신17:17)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고 했다. 그런데 다윗은 많은 아내를 두었다. 

그 많은 아들 가운데, 압살롬과 그 추종세력들의 반역으로,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도망갔다. 이처럼 무서운 비극의 원인을,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일제 강점기에, 고난 받는 한국교회를 긍휼히 여겨, 해방을 허락하셨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변질된 자유주의와 보수신앙 사이에 갈등이 확산되며, 새로운 비극을 맞게 된다. 신사참배 강요는 일제가 일어 상용, 창씨개명 등에 이어, 황국식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다. 

신도는 일본 전래 민간신앙인, 자연이나 조상, 영웅, 역대천황 등,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종교이다. 기독교는 신앙상의 이유로, 처음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했지만,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거행하게 되었다. 1935년 안식교, 성결교, 1936년 천주교, 1938년 장로교와, 감리교가 공식 결의했다. 

당시에 결의한 내용은 “우리는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진리에 위반하지 않은,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신사참배를 하여 비상시국 하에 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함.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러했다. 

이러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소수의 기도와, 순교적 신앙인의 충성을 보시고, 1945. 8.15에 민족적 출애굽의 영광인, 해방을 주셨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중의 범죄를, 회개하지 않은 신학자들과 목사들, 또한 성도들은, 제2의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상동 목사님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지난 일의 모든 죄를, 솔직히 자복하고, 눈물 흘려 통회하면,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이 용서하지만, 해방과 독립을 주신 오늘, 회개는 고사하고, 회개를 거부하니, 여호와의 진노를 어찌 피하리요. 여호와 반듯이 진노하시리라”는 예언적으로 글을 썼다. 
당시 사람들은 진리보다 상황윤리로, 또 사회 속의 교회일치를 앞세우는, 사회주의 복음사상으로 자신들의 과거를 묻어버리려 했다. 하나님은 이런 한국교회에, 무서운 채찍을 드셨다. 그래서 교회가 많이 부서지고, 많은 주의 종들이 죽게 되었다.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은, 남아 있다.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가 희석되면서, 물질과 문화주의로 빠져버린 한국 교회는, 속히 본래 기독교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시대의 유행에 따른 가치관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럽 교회의 몰락을, 그대로 따르고 말게 된다. 

2.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3-4).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많은 대적들에게 둘러 싸여 있어도, 다윗은 대적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눈을 들어,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여호와여!’하며, 다윗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때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 안에서의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울 때, 블레셋 장수 골리앗 때문에, 이스라엘 병사들은 쥐죽은 듯 떨고만 있었다. 그들은 골리앗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이 어린 다윗은 달랐다. 물론 그의 눈에도 골리앗이 보였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의 시선을, 골리앗에게로 맞추지 않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까짓 골리앗이 무슨 문제인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자기를 어떻게 지켜주는지, 다윗은 4가지로 설명했다. (1) ‘주는 나의 방패시오’ 하나님은 다윗의 방패가 되어, 그를 지켜 주셨다. 

그런데 방패라는 말은 ‘마겐 바아디’(י󰕉󰘥󰔰 ן󰔺󰗪)라는 말인데, 이것은 아주 특별한 방패라는 말이다. 마겐은 울타리를 친다(ן󰗻󰔿)는 말에서 나왔다. 바아디는 ‘나의 뒤까지’라는 말이다. 보통 방패는 앞에만 막아주는데, ‘마겐 바아디’는 앞과 뒤를 모두 막아주는 방패다. 

(2) ‘나의 영광이시오’ 하나님은 다윗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셨다. 이것을 다윗은 확신했다. 
(3)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지금 다윗은 수많은 대적들에, 빙 둘러싸여서, 죄인처럼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실 것이다. 다윗에게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다윗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다윗은 이런 사실들을 알고, 그것을 믿었다. 수많은 대적들이 둘러싸여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시고, 승리를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5-6)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밤이 되면 발을 쭉 펴고서, 평안히 잠을 잤다. 다윗에게 있는 담대한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란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였다. 독일군의 폭격기들이, 날마다 영국 런던의 상공에 올라가서 계속폭격을 퍼부었다. 런던 시민들은 방공호에 들어가, 폭격을 피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공습은 더 심해졌다. 런던 시민들은 먼지가 떨어지는 방공호 속에서, 벌벌 떨며 밤을 지새웠다. 

어느 날 밤, 독일군의 공습이 심했다. 모두 방공호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한 어린 아이가 초저녁이 되어서, 방공호 속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쫑알쫑알 거리면서, 하나님께 잠자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더니 곧바로 쓰러져서, 쌔근쌔근 거리며, 깊이 잠들었다. 

엄청난 폭격 중에서도,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평안히 잠을 잤다. 아침이 되어서,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놀라서 아이에게 물었다. “얘야, 무섭지 않았니? 우리는 무서워서, 밤새 한 숨도 못 잤는데, 어떻게 그리 평안히 잘 수 있냐?” 그랬더니 아이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깨어서 나를 지켜준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깨어서 나를 지켜주는데, 하나님과 내가, 둘 다 깨어있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어요?” 정말 믿음의 대답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작은 일에 두려워 벌벌 떤다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세상이 준 것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가 준 것이다. 수많은 대적 앞에서도, 평안히 잠을 잘 수 있었던, 다윗의 담대한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3.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구원해 주신다(7-8).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다윗은 어려울 때,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면서.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다. 구원이 누구에게 있는가? 여호와께 있다. 내가 똑똑하고, 잘나서 구원하심이 아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다. 사람이 실패하는 이유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렵고 큰 문제도, 하나님이 도와주면, 이길 수 있다.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쳐들어올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와주자 이겼다.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니까, 이스라엘이 점령할 수 있었다. 
죽음 앞에 기도하던 히스기야 왕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니까 살아났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사막에서도 생수를 먹고, 사자굴 속에 들어가도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본문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에, 6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말씀이다.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과 아랍 연합국들 사이에, 시나이 반도를 놓고, 전쟁이 났다.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은, 아랍국가에 둘러싸여 있고, 인구수를 보더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250만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주변 아랍국가들 인구를 모두 합치면, 1억이 훨씬 넘었다. 

그래서 세계 여론은, 그 싸움에서 이스라엘이 패한다고 예견했다. 그러나 전쟁에 임박했을 때, 그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 모세 다얀 장군은,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리는 2,534년 만에 되찾은, 우리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최단기간 내에, 반드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군대의 전 장병들은, 이미 최신식무기로 무장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서방 첩보원들은, 이스라엘이 핵무기보다 더 위력 있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전쟁이 일어났다. 모세 다얀 장군은, 이스라엘 장병들을 일선에 투입하고 난 뒤에, 자신은 방송국 의자에 앉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천천히, 또박또박 봉독하기 시작했다. 시편 3편 말씀을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확신에 찬 그의 음성은 전파를 통해, 이스라엘의 장병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전능하신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하여, 그들의 방패가 되어 보호하고, 승리를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은 병사들을, 과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은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서방 첩보원들은, 모세 다얀 장군이 말했던, 최신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새로운 무기가 전쟁에, 사용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난 뒤, 모세 다얀 장군은, 승전을 기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음은, 최신 무기의 힘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전 장병의 마음속에 불타는, 뜨거운 애국심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땅 조국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한다는 불타는 애국심이, 그들이 갖춘 최신식 무기였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심과, 불타는 애국심 2가지가 합쳐져,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어린 다윗은 말했다. 그리고 다윗은 담대하게 나아가서, 골리앗을 무너뜨렸다. 병사의 수가 많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기드온의 삼백 용사들이, 미디안의 대군을 무찔렀다. 수가 많아서 승리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이 철병기를 가지고 쳐들어왔다. 그때 미스바에 모여, 금식하며 회개했다. 이스라엘은 힘도 없었고, 무기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 진영에 뇌성벽력을 발해, 그들은 혼비백산해서 다 달아났다. 이스라엘은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기에, 승리한 것이 아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기에 승리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지켜주심을 믿고, 나라를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지켜주는 주는 자들은, 기도하는 자이지, 잠만 자는 자도, 노는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사업도, 육신도, 가정도, 나라도, 다 지켜주신다. 우리나라가 절박한 위기에 있을 때, 유엔군이 파병되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에 유엔군을 파병하느냐, 안 하느냐 결정할 때, 소련대표가 참석했으면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이니, 부결되어 파병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날, 소련대표가 참석하려고, 가장 고급차인 캐딜락을 타고 오다가, 뜻밖에 고장이 나서 늦는 바람에, 한국파병이 결정되었다. 

유엔군이 파병되어, 한국에 들어왔으나, 때마침 장마철이라, 비행기가 뜰 수 없어, 위기에 처했다. 초대대통령 이승만 장로는, 전국교회를 향해, 나라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부산으로 내려온, 수백 명의 목사님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호소를 듣고, 함께 모여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다.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모여, 한 주간 동안 금식하며, 울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때 맑은 날씨로 개여, 폭격할 수 있었고,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하게 되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안다.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셨다. 

북한의 세력은 기독교인의 기도로, 이 나라를 빼앗지 못했기에, 기독교인들을 더욱 미워한다. 내일 6·25의 62주년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은 없어도, 조국은 있다.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도, 종북 세력이 들어 있어, 위기에 처해있다. 그러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늘 깨어서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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