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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첫 열매를 주목하라 (신 2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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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를 주목하라 (신 26:1-11)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가지고 와서 드리라!
그리고 이것을 영원한 절기로 삼아 해마다 첫 열매를 맺게 되면 그것으로 맥추절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벽을 재건한 후 심령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이제부터는 신앙생활 바로 하겠다고 결단하면서 첫 열매를 바치는 일을 결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느 10:35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고
이것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소홀히 여긴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이 타락했던 증거의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열매를 이처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첫 열매가 대표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첫 열매는 그 이후부터 맺히는 모든 열매를 대표합니다. 나무가 사과 나무인지, 배 나무인지, 첫 열매를 보면 아는 것입니다. 첫 열매가 사과가 나면 그 다음부터는 사과가 맺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열매를 바치는 것은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첫 열매는 농산물, 가축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도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애급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를 처음 난 것을 다 죽였습니다. 사람도 짐승도 처음 난 것은 다 죽였는데, 그때, 장자를 죽이는 천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건너갔습니다. 양의 피로 문을 칠하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유월절 사건 이후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정하셨습니다.

첫 아들은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어떻게 첫 아들을 하나님께 바칩니까? 민수기 8장14-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방법으로 레위인을 구별하여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민 8:16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초태생 곧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17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18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첫 아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구별하여 받으셨습니다. 그 레위 인들은 성전에서 일하면서 자신들의 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치는 십일조와 첫 열매를 가지고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11절에 보면 맥추감사예물로 레위인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 26: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첫 열매 감사를 소홀히 하였기에 레위인이 먹을 것이 없었고 레위 인들이 성전 사역을 소홀히 하니 이스라엘의 신앙의 틀이 무너져 바벨론에 포로로 가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철저히 첫 열매를 바치겠습니다.” 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첫 열매를 바치는 감사절을 제대로 지키려면 첫 열매를 주목하여 보아야 합니다.
처음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맥추감사절을 지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계명에도 가장 중요한 계명이 첫째 계명입니다.
마 22:36-38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사랑에도 처음 사랑이 중요합니다. 절대 잃어서는 안됩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첫 열매를 보시듯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렘 2:3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든 민족이 다 하나님의 백서이지만 이스라엘은 그 첫 열매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축복입니다. 어느 나라나 이스라엘을 삼키면 다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첫 열매로 보신다고 했습니다.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로 인하여 가정도 친척도 이웃도 나라도 열방도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첫 열매이십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첫 열매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러나 처음이기에 소홀하기 쉽습니다. 
첫 자녀를 잘 기르기가 힘듭니다. 상처를 많이 줍니다. 부모가 미숙해서 그렇습니다.
첫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려운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맥추절은 성령이 임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역사도 성령의 첫 역사를 주목해야 누리게 됩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제사장 850명과 영적 대결을 하여 승리한 후,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일곱 번 간절히 기도한 다음 수평선 위에 손바닥만한 구름이 떠 올랐습니다. 그 보고를 받고 엘리야는 호들갑을 떱니다. 아합 왕에게 얼른 마차를 타고 산에서 내려가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왜 이리 하였을까요? 보통 구름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3년  반동안 하늘에 구름 하나 없었는데, 구름이 생겼다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구름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구름이라면 비록 손바닥 만해도 폭우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 김은창목사님, 성령집회 예배를 인도하면서 정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갈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양 때 일부러 일어서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 찬양하게 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 날 찬양을 인도하는데, 이상하더라구요. 일어나라는 멘트를 하지 않고 계속 찬양만 부르더군요. 그런데 교인들이 대부분 그냥 앉아서 찬양을 불렀습니다. 한두 명 정도 일어나 찬양하였습니다.

오늘은 이상하다 생각하였는데, 김은창목사님께서 그만 말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일어나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순간 거의 다 일어났습니다. 일어나라는 말 보다 더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아쉬웠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반응하기 보다 사람에게 반응하는데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역사가 제한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김은창목사님이 정말 성령의 역사를 바라보며 그 말 조차 하지 않았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일어나면 감사한 것입니다. 몇 주 지나겠지만 그 때부터 주님이 하심을 보게 됩니다. 

저는 설교 말씀을 준비할 때도 주님이 주시는 영감의 말씀이 임하는지를 살핍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이 하나라도 깨달아지면 믿습니다. 주님이 역사하실 것이구나! 믿습니다.
집회 시간에도 주님의 역사를 살펴 봅니다. 준비기도 시간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찬양하는 시간에 한 사람이라도 성령의 감동으로 찬양하는 사람을 보면 믿습니다. 주님이 역사하시겠구나! 그리고 담대하게 믿고 말씀을 전합니다. 주님을 증거합니다. 
교회를 목회하면서도 성령님의 역사를 주목합니다. 한 가지라도 성령님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성령의 염청난 역사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예언하실 때 요한복음 4장 13절에서는 샘물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나 요한복음 7장에 가서는 생수의 강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분별할 때 이 눈이 뜨여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크냐 작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면 이미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주목하는 눈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첫 열매를 주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한 여성도가 예배 후, 너무나 답답하다며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주시도록 기도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였습니다. 저는“성도님의 그 눈물이 하나님의 역사요 은혜입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눈물로 간구할 마음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어느 권사님께서 회사 일이 어려울 때, 주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주님이 역사하실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큰 믿음이 없어도 지금 가진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미 가진 믿음도 전에는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믿어지는 것을 가지고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믿음은 자랍니다. 순간에 달라집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강팍하여도 성령님을 모신 자라면 증거가 있습니다.
왜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이미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합당한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 비비어 목사의 [임재]에 보면 사모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혼 초에 남펀 목사님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답니다. 남편 목사님이 실수를 너무 자주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목사님이 사과는 했지만 사모님의 마음은 닫혀버리고 말았답니다.‘당신이 정말 변화되면, 그때 사과하세요. 그러면 당신을 믿겠어요I" 
그 후 남편이 계속 실수를 했고 사과했지만 사모님은 폭언을 퍼부었습니다. “당신이 미안한 건 당연하지! 또 일을 저질렀잖아요! 이젠 사과하는 모습도 꼴보기 싫어요." 

어느 날 하나님께 또 분노가 치밀어 남펀 좀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편을 엄히 다루시거나 꿈이나 환상을 통해 그에게 깨달음을 주시리라 기대했는데, 하나님은 전혀 의외의 대답을 하셨답니다.‘네가 남편을 용서해주지 않으면 남편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다." 

사모님은 항변하였답니다.
“왜 항상 내가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 건가요? 매번 억울한 사람은 저잖아요I"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하였답니다.“존에게 가서 그가 변화될 걸 네가 믿는다고 말하고, 그 동안의 잘못을 모두 용서한다고도 말하라."  
사모님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편을 용서하고 놓아줄 것인가? 아니면 그의 잘못을 꽉 붙잡고 있을 것인가? 
하나님은 너무나 분명하였기에 결국 남편을 찾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나누었다. 그 동안 그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을 사과했습니다.
 
이렇게 사모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그 즉시 하나님의 능력이 터져 나와 불편했던 상황이 해결되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부부 사이에, 가족들에게, 작은 변화라도 성령의 역사라면 인정하고 기뻐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온전히 다 변화되지 않았다고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말 만이라도 변했다면 얼마나 놀랄 일입니까?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고 평가절하하면 성령의 역사는 더 이상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싹을 자르면 안됩니다. 변화되지 않은 것을 보고 변화된 것을 무시하지 맙시다.

임신을 확인하러 갔다가 초음파 검사에서 태아의 모습이 보일 때, 와!
중환자실, 심장 마비가 온 환자, 맥박이 다시 뛰기 시작했을 때, 와!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에 대하여는 왜 그렇게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까?

선교사님의 심정이 되어 보십시오. 첫 열매인 교인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고전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그 첫 열매에서 민족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첫 열매인 분이 계시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은 다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때문에 우리도 있는 것입니다.

저의 증조할머니, 첫 열매 중 한분, 할아버지 첫 목사 중 한분, 저도 첫 열매 감사 신앙의 하나, 꼭 목사 만드는 것이 첫 열매 감사는 아니지만 그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첫 열매를 바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성령의 역사, 작다고 무시하면 그 다음 열매가 없습니다.
감사절은 모든 것을 다 거두고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6개월 지난 다음 감사절, 대단한 믿음입니다.
이미 6개월 지났습니다. 먹고 살았습니다. 이미 첫 열매를 주신 것입니다. 

풍성한 추수감사절을 기다립니다. 그러려면 맥추감사가 분명해야 합니다.
첫 열매 감사 없이 풍성한 추수 감사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첫 월급을 드립니다. 첫 월급, 첫 수익의 때는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므로 첫 열매 감사는 진정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은 강력한 믿음의 도전입니다. 믿음으로 살리라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믿음의 결단을 하였습니다.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맥추감사절 헌금을 다 분립개척비로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믿음의 감사절이기 때문입니다.

첫 열매를 주목하고 감사함으로 올려드려 풍성한 추수감사절, 성령충만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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