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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진정한 영적 맥추절 (출 23:14-17, 고전 5:7-8)

첨부 1


진정한 영적 맥추절 (출 23:14-17, 고전 5:7-8)  

히브리 민족은 3대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받았다. 그러나 그 절기가 지켜지지 않았다. 말씀이 주어졌지만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이 무시당했다. 

열왕기하 22장을 보면 요시아 왕 시기에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유월절을 지키게 된다.(왕하23:21) 사사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 시대까지 이런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다는 왕하23:22의 말씀을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절기가 폐기 처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의 교회력 속에도 2대 감사절이 있다. 그런데 맥추절, 추수감사절 모두가 지켜지는가? 말씀에 무지하여 외면당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요시아 왕처럼 절기를 지켜야 한다.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라는 요시아의 탄식처럼(왕하22:13) 지키지 못한 영적 무지를 돌이켜야 한다. 

특별히 맥추절을 지키라는 이 말씀을 생각해보자.

출23:16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라고 하였다. 

여기 “맥추절을 지키라.”에서 ‘지키라’는 것은 계명이든지, 시민법이든지, 도덕법이든지, 절기 규례이든지 가리지 말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불리해도 지키고, 유리해도 지키고, 지킬 수 없는 환경이어도 지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한 조종사가 한 여성과 펜팔을 하면서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대전이 끝나고 드디어 두 사람은 약속된 역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조종사가 기다리는 여자는 꽃 한송이를 들고 서 있기로 하였는데 조종사가 역전에 나가보니 뚱뚱한 아줌마 한 사람이 꽃을 들고 서 있었다. 

조종사는 실망이 되었다. 자기와 펜팔을 한 여인은 아가씨가 분명한데 아줌마와 펜팔을 하면서 꿈을 꾸고 공상에 젖었구나! 결혼한 아줌마를 만나서 무엇하나? 모른 척 지나가려다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에 자신을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그 순간 그 아줌마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 전 어느 멋진 아가씨가 내 손에 이 꽃을 전해주면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건너편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이 조종사는 약속을 지키므로 대박이 터졌다. 작은 말 한마디 지키므로 예쁜 색시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준 명령인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을 이유없이 지키라고 하셨겠는가? 여기 출23:16에서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라고 하였다. 이 말씀 속에 지키라는 이유가 있다.
  

1. 광야의 삶에서 밭의 삶으로 살게 되었으니 감사하라는 뜻이다.

광야 40년간의 삶은 힘들고 고된 삶이었다. 씨앗을 뿌릴 수 있는 밭이 없었다. 광야는 오늘 생존하느냐, 못하느냐의 삶이었다. 광야는 길도 없고 일도 없었다. 하나님이 죽지 않도록 먹이시고 입히시느라 만나와 메추라기, 생수를 주셔서 살았다. 

광야는 호된 시련의 시기였다. 자기 백성을 낮추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는지 안 사는지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광야는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문제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름 기둥으로 가려주시고 불기둥으로 가려주셔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견디게 하였다. 광야는 이동하는 삶이었다. 정주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맥추절의 이유를 보라. 밭에 뿌린 것을 거두게 됨을 감사하라는 명령이다. 광야의 삶에서 밭의 삶으로 살게 되었으니 무한 감사해야 한다. 내 땅이라고는 한 평도 없던 개인과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밭을 얻고 밭을 만들고 내 밭이 되어 밭을 경작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마땅하다. 

  
2. 아무 것도 할 수 없던데서 일하며 땀 흘리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감사하라는 뜻이다.

오늘 본문은 분명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라고 하였다. ‘수고했다’라는 말은 노동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살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이 놀면서 먹고 지내는 것과 수고하면서 먹고 사는 것은 삶의 보람과 의미가 다르다. 산 생명이기에 하나님이 굶지 않게 하려고 만나를 내려주시고 메추라기도 가져다 줄 수 있다. 엘리야처럼 광야에 숨겨 놓으시고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똑같이 먹고 살아도 수고의 땀을 흘리면서 사는 삶은 활력이 있고 행복하다. 사람을 일하는 존재로 만들었기에 구제와 돌봄의 대상으로 살면 안된다. 그러므로 수고할 수 있는 직장, 사업, 일터가 있는 것이 축복이다.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지지 않아도 나의 일터인 밭에서 수고의 땀을 흘리는 건강이 있고 기술이 있으며 경영하는 농사법을 알고 열심히 땀 흘리는 것이 행복이다. 수고하는 일이 있어야 쉼도 쉼답고 휴식도 휴식답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광야에서 밭이 생기고 일하며 땀 흘리는 수고의 삶을 살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한다.

나는 맥추절을 영적으로 생각한다. 우리에겐 본래 영적인 밭, 교회가 없었다. 유리 방랑하듯 살던 우리에게 예수의 피 흘리심으로 교회라는 밭이 생겼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얼마나 감사한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밭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주셨다. 또 할 일 없이 사는 자였다. 일을 해도 덧없는 것을 붙잡고 일하는 자였다. 그런데 이 밭에 나아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 땀을 흘리고 수고할 때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둬들이는 사역을 한다. 우리의 영적 맥추절을 생각해보면 너무도 감사하다. 만왕이 해야 할 사명의 일이 생겼다. 이것이 감사의 이유이다. 

사실 지난 날, 가난한 시절에는 보리개떡을 먹으며 살았다. 새까만 보리개떡, 정말 거칠고 거칠지만 그것을 먹고, 그것도 없어서 먹는 아이들을 부러움으로 보며 지냈다. 보리 추수할 때 낫을 들고 그 껄끄럽고 따가운 보리를 베어 도리깨로 타작하며 지냈다. 

어머니는 보리를 사다가 반쯤 삶아서 바구니에 담아놓고 밥을 지을 때면 보리를 넣어 밥을 지었다. 쌀 한 숟가락은 아버지 몫이고 나머지는 우리가 먹었다. 그렇게 살고 5~6월 춘궁기에는 보릿고개라 하여 보리가 익어서 나올 때까지는 살림이 어려웠다. 그렇게 살다가 먹는 것이 넘쳐 남아돈다. 쓰레기로 버리는 밥상 먹거리만 해도 북한을 먹여 살린다. 농사를 지으면 삼모작, 오모작 소출이 되어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다. 없던 농토가 생기고 없던 집, 없던 차, 없던 스마트폰이 생겨서 감사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영적 맥추절이 주어진 것이 너무 감사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밭과 헌신을 다해도 후회가 없는 사명스런 일이 주어졌다. 이것을 생각하면 오직 감사, 절대 감사다. 영적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감사로 지키는 것이다. 
  

3. 기근 들지 않고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으니 감사하라는 뜻이다.

“열매는 거둠이니라.” 이것보다 복스러운 말이 어디 있는가? 열매는 농부의 마음에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준다. 보리 추수가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니 앞으로 다른 열매도 맺힐 것이다. 밀 추수도 따라올 것이다. 포도도 열매를 맺고 무화과도 열매를 맺을 것이다. 밭이 열매를 내는 것은 적당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것은 누가 하는 일인가? 식물이 힘을 얻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햇빛을 주시고 온도는 맞추는 것은 누가하는 일인가? 하나님의 일이다. 

시편 147편,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하는 이 시는 시147:16~18에 이렇게 찬양의 이유를 고백한다. “눈을 양털 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 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의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이 시에 의하면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밭에서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으니 감사하는 축제의 절기이다. 여기서 또 영적 맥추절을 깨닫게 된다.

교회의 밭에서 기도의 일꾼들이 땀을 흘리며 성령의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오순절이 이르러 하나님은 교회 위에 첫 열매를 거두게 하셨다. 즉,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으로 역사하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성령의 임하심이 있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은 사람들, 성령을 받아 복음의 일꾼으로 구별된 날, 그것이 오순절 사건이다. 

교회가 성령의 사람을 열매로 맺은 것, 그것이 맥추절, 칠칠절이요 진정한 영적 맥추절의 이유다.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은 마땅한 명령이지만 우리에게는 성령이 임한 오순절이 영적 맥추절이다. 우리 자신이 이 성령의 열매가 되어 사도행전 29장을 새로 쓰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 맥추절이다.   

우리는 절기로 구원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절기를 올바로 이해하므로 구원에 도움이 되고 구원을 전하게 되고 구원을 설명하게 된다. 히브리인은 절기를 지킬 때 시청각적으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각인하게 된다. 우리도 명절을 지켜야 한다. 밭도 없고 씨도 안뿌리고 보리를 심지도 않는다고 하나님의 명령을 폐해서는 안된다. 

복음의 시대에 절기를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로 감사하는 것이다. 밭으로서의 교회가 있음을 감사하라. 당신의 해야 할 사명을 감사하라. 성령을 부어주셔서 성령의 열매로 드려지는 산 제물이 된 것을 감사하라. 그것이 진정한 영적 맥추절을 바로 지키는 것이다. 땅의 것의 소출을 감사하는 감사에서 하늘의 것,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하는 감사가 영적 맥추절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감사다.(골2:7)

고전5: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맥추절을 지킨다. 넘치는 감사로 자원하는 감사로 지킨다. 순전하고 진실한 감사를 담아 감사의 제물로 바쳐지는 맥추절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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