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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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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절]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눅 12:13-21)

금년의 상반기를 보내고, 오늘로써 금년의 하반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도 또한 앞으로 우리가 살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과 물질과 공간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의 몸과 생명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오늘 본문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지나간 반 년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생각하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마음으로, 찬양으로, 또한 예물로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행여 우리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다면 회개합시다. 그리고 돌이켜서 이제부터는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비유의 배경입니다(13~15절). 

눅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도 받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이적과 기사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눅12:1 말씀을 보면, 이 때도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짓 종교를 삼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제자들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시며 그들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 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시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이 예수님 때문에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 앞에 서더라도, 성령님이 그 때에 그들에게 마땅히 할 말을 가르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적인 일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느닷없이 무리 중에 한 사람이 나서면서,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랍비들을 찾아갔습니다. 랍비들이 율법에 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예수님을 율법에 능한 랍비 곧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에게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받아야 할 유산의 몫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에게 자기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영적 일에는 전연 관심이 없었고, 온통 물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눅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눅12:4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내 친구 너희”라고 하셨습니다. 애정 어린 표현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물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사람에게는 “이 사람아”라 말씀하셨습니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표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인 일에 힘쓸 때,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여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일에 미쳐있으면, 예수님은 우리를 “이 사람아”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이 사람아”가 아니라 “내 친구 너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를 “이 사람아”라고 부르신 후, 그에게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재판장도 아니시며, 또한 그들의 물건을 나누는 자도 아니시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자기의 형을 명하여 유산을 자기와 나누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들의 재판장으로, 또한 물건 나누는 자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눅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이제 예수님은 모든 무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 예수님은 무리에게 모든 탐심을, 곧 어떤 종류의 탐심이든지 다 주의해서 물리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탐심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탐심이 있으면 족한 줄을 모릅니다.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바닷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탐심이 있으면, 결코 만족함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할 이유를 이와 같이 밝히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가리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비교해보십시오. 부자는 가진 것이 많았지만, 생명을 얻지 못해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거지였지만, 생명을 얻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렇듯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는 않습니다. 

물론 소유가 넉넉한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욥도 부자였습니다. 또한 신약성경에 나오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탐심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외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탐심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외식을 버리지 못합니다. 또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탐심을 물리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외식을 버립시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삽시다. 아울러 모든 탐심을 물리칩시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족한 줄 알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비유의 내용입니다(16~20절). 

눅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한 부자의 밭이 풍성한 소출을 내었습니다. 그의 밭은 매우 비옥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것을 착취한 것도 아니었고, 또한 그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재산을 증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가 잊지 말아야 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밭에 해를 비추어주시고, 때를 따라 단비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밭에 있는 곡식들을 잘 자라게 하셔서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그가 잊지 말아야 했던 것은 이웃들의 노고였습니다. 풍성한 소출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도 생각하지 않았고, 이웃들의 노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문제였습니다. 

눅12: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부자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의 밭이 풍성한 수확을 내었기 때문에,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곳간들로는 그 많은 곡식을 다 쌓아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으로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는지 고민했습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더라면, 그는 하나님께 풍성한 감사의 예물을 드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이웃의 노고를 생각했더라면, 그는 이웃과 함께 나눔의 기쁨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말 성경은 그냥 곡식이라고만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실제로는 “내 곡식”입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곡식이 다 자기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부자는 자기 소유에 대해서 강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눅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부자는 나름대로 머리를 쓸 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부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컨대 부자는 곡식을 한꺼번에 시장에 내다 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는 곡식 값이 떨어질 것이기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이미 여러 곳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단수형으로 번역을 했습니다만, 원어성경은 복수형입니다. 그는 기존의 곳간들을 그대로 두고서 새로운 곳간들을 더 만들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곡식을 심을 땅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부자가 궁리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곳간들을 헐고, 바로 그 자리에서 더 크게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높게 짓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더 많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더 크게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부자는 자기의 곳간들을 더 크게 짓고, 거기에 자기의 모든 곡식을 쌓아 두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의 다른 물건들도 거기에 다 쌓아 두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값이 비싸질 때를 기다렸다가, 그 때마다 조금씩 내다 팔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부자는 자기의 재산관리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그는 노후대책까지 다 세워놓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적으로 본다면, 그는 분명히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는 자기 스스로도 흐뭇하게 생각하면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내가 내 아내에게 이르되”가 아닙니다. “내가 내 가족에게 이르되”도 아닙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입니다. 부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탐심에 사로잡히면,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실제로 그가 한 말을 보면, 17절에서도 “내가,” 18절에서도 “내가,” 또 19절에서도 “내가”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17절에서 “내 곡식,” 18절에서 “내 곳간”과 “내 모든 곡식,” 19절에서 “내 영혼”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는 자기뿐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무튼 부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영혼아.” 물론 단수형입니다. 부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 부자는 자신의 앞날을 걱정할 필요가 전연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여러 곳간들에 많이 쌓아 둔 곡식들과 물건들을 조금씩 끄집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할 작정이었습니다. “평안히 쉬고.” 이제는 일하는 것을 그만 두겠다는 말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은퇴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가 은퇴하고 난 후에, 어떤 삶을 살려고 했습니까?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여생은 그저 즐기면서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유산 문제 때문에 예수님에게 나아왔던 사람이 바라던 바도 바로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지금까지 부자는 승승장구했습니다. 그의 꿈이 다 이루어진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반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의 원 뜻은 “생각이 없는 자”입니다. 물론 부자는 많이 생각했습니다. 골똘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는 마땅히 생각해야 할 세 가지를 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부자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부자는 자기의 죽음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부자는 다른 사람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을 생각했더라면,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부자가 그 날 밤에 있을 자기의 죽음을 생각했더라면, 여러 해 쓸 곡식과 물건을 쌓아 두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자가 다른 사람을 생각했더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남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때가 있음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그의 이웃들을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생각이 없는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때가 있음을 생각하며,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섬기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생각하며, 그들로 인하여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이 없는 자라고 책망을 받지 않도록 합시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셋째로, 비유의 교훈입니다(21절).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교훈하십니다. 먼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지 말 것을 가르치십니다. 바로 오늘 밤에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도로 찾으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약4:13 말씀처럼, 심중에 생각하기를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가 있습니까? 약4:14 말씀과 같이, 우리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약4:15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해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니까, 그는 하나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면, 그가 준비한 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습니까? 결국 다른 사람의 수중에 다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2:18에서 자기가 해 아래서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한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다 다른 사람들에게 남기고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려 하지 맙시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고 교훈하십니다. 이것을 마6:20에 있는 말씀으로 표현하면, 오직 우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는 말씀이 됩니다. 모두 똑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 없이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며, 또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곳간을 더 크게 지으려고만 생각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이웃을 생각하며,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생각합시다. 그러면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며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됩시다. 

그리하면 오늘 본문 다음에 나오는 말씀처럼,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풀을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 여기시고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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