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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지중에 만나는 천사 (히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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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중에 만나는 천사 (히 13:1-2)


히브리서의 기자는 오늘 본문에 앞서 히12:28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1절에서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과 형제를 사랑하는 일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절에서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손님이란 주인이 좋아하고 원해서 초청해 온 손님이 아니라 “이방인” 또는 “나그네”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형제에 대한 이해가 광범해지는 것을 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특정한 민족이나 국민이나 지역주민만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것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은 종족과 국적과 피부색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신자는 다 형제이고 자매이며 남매가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언제 누구를 신자 만드실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를 대하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 남매로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외국에서 온 이들에게는 특별한 관심과 배려와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자기 고향이 아닌 곳에 와있는 이방인은 자연적으로 약자의 처지에 놓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찍부터 약자를 보호할 책임을 강조하시며 과부와 고아와 함께 나그네를 늘 잊지 않고 언급하셨습니다. 출22:21-22에서는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합니다. 

신10:18-19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합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나그네를 돌보는 것은 신구약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중요한 덕목의 하나이고 신앙의 의무입니다. 사도 바울도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을 감독 또는 장로가 될 사람에게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미덕의 하나로 여겼습니다(딤전3:2 Cf. 딛1:8). 

이렇게 손님을 잘 대접할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한 히브리서 기자는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한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창18:1-15)과 그의 조카 롯(창19:1-22)과 사사 기드온(삿6:11-23)과 사사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삿13:2-20)는 각각 나그네들을 그들이 천사인 줄 알지 못한 채 정성껏 대접하고는 그들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거나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꼭 천사를 만나고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우리는 힘껏 우리 가운데 있는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대해야 할 것입니다. 

지지난 주 수요일부터 지난 주 월요일까지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일행은 두 분 장로님을 비롯해서 권사, 집사님들 모두 합하여 스물네 명이었습니다. 평소에 베트남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말없이 후원하던 분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귀국한 베트남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도 살피며 격려하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우리 교회 출신들을 다 만나볼 수는 없기에 이번에는 하노이, 닌빈, 다낭 세 도시를 중심으로 방문을 하고 그들을 만났습니다. 

그 세 도시에 살고 있지 않는 이들 중에는 일곱 시간을 차를 타고 와서 우리 일행을 만난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며칠간 우리와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감격해하며 행복해했습니다. 처음 만날 때와 헤어질 때는 다들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들은 새문안교회에 대해서 영원히 잊지 않을 감사를 마음에 품고 살며 한국에 있는 동안 새문안교회를 알게 된 것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 베트남인들을 돌보는 단체나 그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들은 다른 데도 있지만 새문안교회 성도들처럼 거의 정기적으로 베트남에 찾아와서 다시 만나주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부모형제처럼 정을 나누는 이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베트남에 돌아온 이들 가운데는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냥 신앙생활을 그만 둔 사람도 있지만 교회를 다니고 싶어도 부근에 교회가 전혀 없어서 다니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자기 동네에 교회가 하나 생기기를 얼마나 간절히 고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일행이 만난 이들 중에 오늘은 한 부부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한국에 와서 근로자로 지내는 동안 가는데 마다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하는 등 유독 일이 잘 안 풀리던 한 베트남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회(Hue)라고 합니다. 그녀는 베트남의 한 조그만 어촌 출신으로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새문안교회에서 신앙을 키웠습니다. 귀국해서는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사로 사역하는 가운데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이름이 쭝인 그 남자는 하노이의 명문 집안의 세 아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들은 모두 하노이대학을 나온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마약에 중독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마약중독자가 되자 그 집안은 급속히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한때 우리교회의 베트남인 목회자였던 떰 목사님도 이번에 반갑게 만났는데 그가 하던 마약중독자 재활사역을 통해 회와 쭝이 만난 것입니다. 둘은 혼인하기에 이르렀고 쭝은 마약중독에서 벗어났으며 신학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몰락했던 집안에 중학교밖에 안 나왔지만 예수 믿는 시골 처녀 회가 들어오자 그 집안은 변화되고 다시 회복됐습니다. 

그 시어머니도 만나봤는데 후덕하게 생긴 부인이었습니다. 며느리 회와 완전히 새 사람 된 아들 쭝으로 인해 감사하며 그 어머니는 그들에게 자기 소유의 4층짜리 집을 내주었습니다. 그 집은 옛날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살았던 것 같은 유럽풍의 고급주택지에 있는 건물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살림도 하고 마약중독자들을 데리고 재활사역도 하며 교회로도 사용할 계획입니다. 회와 쭝 목사 부부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 이름이 에스겔교회입니다. 왜 에스겔이라 했는가 하면 마약중독으로 다 마른 뼈들같이 되었던 이들이 다시 살아나게 하는 교회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약중독자 재활을 주목표로 삼는 교회로 에스겔 1교회, 2교회, 3교회, 4교회, 5교회까지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한 두 시간 떨어진 다른 도시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이미 백 명 이상의 마약중독자들을 갱생시켰고 앞으로 더 큰 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들은 넓지 않은 예배공간들 때문에 그들이 세운 교회의 모든 신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기도원을 세우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고아원과 양로원과 마약중독자갱생원을 세우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는 볼 품 없는 조그마한 베트남 시골 처녀였습니다. 그녀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주고 사랑을 베풀었는데 그녀가 신앙을 갖게 되었고 복음을 들고 귀국하여 지금 놀라운 하나님의 사역을 행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를 변화시켰고 몰락한 한 명문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수많은 마약중독자들과 에이즈환자들을 구원에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베트남 선교에 그녀 부부보다 더 열정적이고 확실한 동역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천사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 작은 여인을 들어 쓰시며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여인이 그 놀라운 구원사역의 도구가 되는 과정에 우리 새문안교회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가운데 있는 외국인들 가운데 누가 또 천사로 드러날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 우리의 외국인 형제자매들을 힘껏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요한3서의 저자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요삼5-8)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했습니다. “계속하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약화되지 않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여러 외국인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우리의 형제자매로 여기고 힘껏 사랑하기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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