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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말라 (신 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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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말라 (신 8:11-20)

6.25전쟁이 발발한지 꼭 62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62세 이상 되시는 어르신들께서는 6.25를 경험한 세대라고 볼 수 있고 62세 이후 되신 분들은 6.25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십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말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은 이 땅에 없어야 한다고...’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 없어야 한다는 말에는 모두가 동감을 표현할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자. 그렇지만 잊지는 말자. 왜냐하면 잊으면 역사 속에 다시 재현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뼈아픈 역사적 비극을 잊지는 말자.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깨어서 기도하자. 하는 말인 것입니다. 

6.25한국전쟁이 유엔군의 참전을 통해서 승리로 끝난 것은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남한과 북한의 전력을 비교해 보면 참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당시 남한은 총 병력이 십만 사천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의 총 병력은 이십만 삼천 명 입니다. 두 배에요. 그러니까 남한이 북한을 먼저 공격했다는 설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아니 적은 군대가 큰 군대 건드려가지고 이길 일이 있습니까? 이건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죠. 남한에는 탱크나 자주포가 한 대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탱크만 이백 사십 이대 자주포는 백 칠십 육대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탱크나 자주포는 가공할만한 힘을 가진 병기인 것입니다. 전투기를 보더라도 남한은 연락기를 포함해서 스물 두 대 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러나 북한은 이백 십 일대의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열배 이상의 항공 전력을 가진 북한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처음부터 되지 않은 싸움이었죠. 

전쟁발발 사흘 만에 서울이 적의 손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40일만에 낙동강하류에 부산만 남고 전 국토가 공산당의 군화 밑에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산지역 일부만 남겨 놓고 전 국토가 완전히 공산당에 의해서 노략질 당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가 공산화 되지 않고 휴전 협정으로 남북이 분단된 것은 미국과 UN의 참전 덕분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참 고마운 나라죠. 와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에 와서 많은 젊은이들이 피 흘려 죽었습니다. 백만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이 땅에 와서 전쟁을 치르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실종되고 부상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 중에는 필리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필리핀은 6.25이전 까지만 해도 아시아 2위의 경제 대국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 필리핀도 칠천 오백명의 군사를 보냈어요. 우리를 위해 싸워줬고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필리핀이 경제가 굉장히 어렵죠. 그래서 오히려 우리나라에 필리핀 노동자들이 공장에 많이 와서 일합니다. 여러분 필리핀 사람 함부로 보지 마세요. 우리가 어려울 때 그분들이 우리 도와줬어요. 그 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좀 살게 되었다고 필리핀 사람들 깔보면 큰일 나요. 은혜를 모르는 거죠. 조금 살만하면 사람들은 쉽게 교만에 빠지고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모르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5개국에서는 의료지원 및 군수시설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UN의 참전 참 감사한 거죠. 또 6.25전쟁을 뒤바꾼 또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육 작전이었습니다. 이제 북한만 남고 완전히 공산화 될 즈음에 이 전쟁의 판도를 바꾸기 위해서 맥아더는 고민하다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모한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맥아더의 참모들은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고 모두가 반대했어요. 이기지도 못할 뿐 아니라 엄청난 희생도 치를 것입니다. 그러나 맥아더는 결국 강행했고 그것이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미군과 한국군 군사 사천 명이 희생됐지만 공산당 이만 명 이상을 무찌르는 대 승리를 거둔 것이 인천상륙작전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방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오늘 이렇게 우리가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경제번영을 구가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특별히 미군들의 희생은 컸습니다. 오만 사천 명의 미군들이 한국에 와서 죽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 병사가 죽은 숫자가 삼천 명이 채 안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서 그 짧은 시간에 오만 사천 명이 죽었다. 얼마나 격렬한 전쟁이었는가를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더더욱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벤프리트 장군과 크라크 장군 UN군 사령관의 아들이 한국전쟁이 참전했다가 죽었습니다. 워커 준장은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아버지도 아들도 다 전사했어요. 20사단에 딘 소장은 전쟁포로가 되었습니다. 미국도 엄청난 희생을 치뤘어요. 물론 미국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습니다. 미국이 잘못하는 것도 많지만 그러나 분명히 한국전쟁을 통하여 엄청난 미국 사람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뤘다는 거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해요. 

미국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 기념공원에 가면 큰 기념비에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결코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에요. 하늘에 뚝 떨어진게 아니에요. 이것은 수 많은 사람들의 피 흘림 속에서 얻어진 결과다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때 인기 있던 영화 중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1998년에 상영됐던 영환인데 차 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의 4형제가 그 전쟁에 첨전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3형제가 모두 전사합니다. 이제 하나 밖에 안 남았어요. 그것을 안 참모 총장이 특별지시를 내려서 그 라이언 일병만큼은 어떻게 든지 구해서 후방으로 데리고 와라. 왜? 그 마저도 죽으면 그 집안에 대가 끊기니까. 그래서 8명의 특공대가 라이언 입병을 구하기 위해 뛰어 들어갔어요. 그들은 많은 희생을 치룹니다. 그래서 고만합니다. 한명을 구하기 위해 여러 명이 왜 죽어야 하나? 이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라이언 일병은 적진 깊숙이 아주 격렬한 전쟁을 치루고 있었어요. 이 사실을 알리고 이제 너는 후방으로 돌아가라 그랬더니 라이언 일병이 거부하는 거예요. 전우들을 위험한데 나두고 나만 혼자 돌아갈 순 없다. 우리 어머니도 내가 장렬하게 싸우다 죽는 것을 원하실 것이다. 그렇게 고집부립니다, 그러다가 결국 전쟁을 치르다가 죽게 되는 거죠. 이 영화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신문에 소개되었더라고요. 

캐나다 청년인 아치 볼트 허시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 때 9월에 입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하게 됐습니다. 동생이 전쟁에 가고 나니까 형 조셉이 염려되어 견딜 수가 없어요. 나도 동생이 있는 그 나라에 가서 전쟁에 동참해야겠다. 형이 동생 걱정 때문에 입대를 했어요. 그리고 51년 10월에 와서 열심히 싸웁니다. 

전쟁 중에 오랫동안 동생을 못 만나다가 형이 먼저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순간에 동생을 만납니다. 형은 결국 동생을 만나지만 동생의 품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형은 부산에 있는 UN묘지에 안장 되고 동생은 캐나다로 돌아가게 됩니다. 캐나다에 돌아갔지만 형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는 지병으로 죽었을 때 올 초에 자신도 한국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어요. 그래서 동생도 그 유해가 한국에 와서 형과 함께 나란히 UN군 묘지에 안장되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한국을 위해 싸워간 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사명이 무엇이냐? 어려울 때 도움받은 우리가 어려운 나라를 도와줘야 해요. 씨알의 소리라는 월간지를 오랫동안 내셨던 함석헌 선생님이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외세에 의해서 한순간도 편한 날이 없었다. 늘 공격을 받고 침략을 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대한민국이 진정 고난을 당해 본 민족으로써 세계를 섬기는 민족이 되라는 의미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우리에게 주신 이 축복을 가지고 더 어려운 나라들을 돕는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 라고 그는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까보신 영상에 마지막 말을 기억하십니까?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한 외국인 참전 노병의 고백 정말 이 폐허속에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이룬 한국을 보고 그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우리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대한민국이 번영을 이루고 있다고 그는 그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6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민족입니다. 몇일 전 신문에 보니까 우리 대한민국인 20-50클럽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20-50클럽이라는 것은 국민소득이 2만불이 넘고 인구가 5천만명이 넘는 그런 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가 7번째로 그 클럽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또 원조 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뒤바뀐 나라는 지구 역사속에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또 60여년 만에 세계경제 10위 대국으로 진입한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도 많이 있죠. 우리가 부족한게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런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남북이 분단된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한 동포가 나누어져 싸우는 나라가 대한민국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독일도 있었는데 독일은 이제 통일이 되었고 이제 대한민국이 유일한 나라에요. 왜 남겨두셨을까? 어찌보면 그 이유가 있는지 몰라요. 

사사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있는 원주민들을 다 내쫓지 않으시고 일부를 남겨두셨어요. 왜 남겨두셨을까? 그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를 위해서 그들을 남겨 두셨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지 잘 섬기지 않는지 테스트 해보려고 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방민족에 의해서 너희가 우상숭배를 배우고 하나님을 버리게 되지 않을까 시험하기 위해서 원주민들을 남겨 두셨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찌보면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 왜 우리를 남겨두셨을까. 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늘 깨어 있으라고 우리가 기도하는 민족이 되야 한다고 그리고 분단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할 거예요. 그리고 분단된 민족이지만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열세를 딛고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휴전이 지속되는 것도 어찌보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돌보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어찌 오늘 역사의 안정과 번영을 우리가 누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역사는 늘 경고하죠. 여러분, 진짜 위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난할 때보다 부요할 때 더 큰 위기입니다. 병들었을 때 보다 건강할 때가 더 큰 위기입니다.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가 더 큰 위기입니다. 

여러분, 병든 사람이 죄 짓는 거 봤어요? 병든 사람은 죄 못 지어요. 그렇게 부인을 괴롭히고 폭력을 휘두르던 술 주정뱅이 남편도 몸이 아파 누우니까 꼼짝 못하더라고요. 그런데 보약 먹고 다시 건강해지니까 또 부인을 괴롭히더라고요. 병들었을 때보다 건강할 때가 더 문제에요. 가난할 때보다 부유할 때가 더 넘어지기 쉬워요.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 하나님을 떠나기 더 쉽다니까요. 어찌보면 우리는 성공한 민족이에요. 지금이 위기의 시대에요. 6.25의 가난의 시대보다 지금의 시대가 어찌보면 더 위기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을 깊이 생각하셔야 해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수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에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가나안을 향해서 광야 40년을 보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그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어요. 위험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그들은 건너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보다 너희가 광야 땅에 들어가서 번영과 안정을 누릴 때가 더 위험하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자 오늘 11절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 말씀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아멘. 

여호와를 잊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런 이야기죠.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의 시절이 끝나지고 번영과 안정의 시대가 올 때 혹이라도 하나님을 잊을까봐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에요. 부유할 때 여호와를 잊지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 읽겠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아멘.

위기라는 건 언제에요? 배부를 때, 아름다운 집에 거할 때, 소와 양이 번성 할 때, 소유가 풍부할 때, 네가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을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부유할 때 교만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30장에 보니까 잠언기자는 두 가지의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허탄한 것과 거짓된 것을 떠나가지 않게 하옵시고, 둘째는,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 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부유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반복해서 이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안 될까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쭉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종 되었던 그들을 자유 민족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위험한 광야를 거치게 하시고 불뱀과 전갈에서 보호해주시고 물 없는 사막을 지나게 하셨어요. 물이 없을 때 두 번이나 반석을 터져서 물이 나오게 하셨어요. 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하늘에서 만나를 매일 내려 주셨어요. 메추라기를 바람을 불어서 내려 주셨어요. 오 모든 것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너희가 여기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잊지말라.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종 시련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를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우리 16절 말씀 함께 읽을까요?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아멘.

이 고난의 시절 우리는 보호해주셨지만 결국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결과가 뭐냐. 우리에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어찌보면 임진왜란, 6.25 전쟁 이런 어려운 때를 지나고 난 결과가 뭐냐. 우리가 더욱 뜨겁게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하나님은 오늘 이 민족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에요.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이 또 복을 주려는 계획이 있으신가보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해요. 원망하시면 안 됩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섬기는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또 우리가 교만에 빠질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이 모든 제물을 내가 없었다.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말씀 17, 1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아멘.

사람들을 좀 잘되면 자기가 잘 나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제물을 얻으면 자기가 똑똑해서 제물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허락해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물의 주인은 누구냐? 바로 하나님이세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 제물과 성공을 사용해야 한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은 사명의 무거운 책임도 따라오게 된거죠. 오늘 성경은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 19절 말씀 읽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아멘.

부대 근처에 가보면 철조망이 쳐져있고 거기에 이런 경고판이 써 있죠. ‘접근하면 발포한다.’ 어찌보면 그것과 같은 거예요.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다른 신들에게 절하면 너희는 반듯이 멸망할 것이다. 오늘 날 우리의 우상 숭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뭐 고목나무 서낭당에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 입니까? 그런 일은 별로 안하죠.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에요. 하나님 보다 물질을 더 사랑해. 하나님보다 명예와 성공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 보다 음란과 쾌락을 더 사랑한다면 세상 즐거움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우상숭배다.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우상을 섬기면 너희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어쩌면 경제가 안정을 추구해가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는 말씀이에요. 가난할 때는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국민소득 2만불이 넘으면 교회들을 떠나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돈 많은데 예수가 왜 필요해? 돈 많은데 차도 있는데 집도 있는데 시간도 있는데 놀러가지. 고리타분하게 교회에 가서 목사의 설교를 들어? 이런 생각이 휘몰아쳐 버려요.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해요.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교만한 자에게는 복을 걷어가기 때문이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 그 자체보다 복을 주시는 분을 깊이 생각해야 해요. 복 주시는 하나님이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복 받은 후에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을수록 더 겸손해져야 해요. 그래서 겸손은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그릇에 다섯 개를 담아주시면 우리는 감사할 때 더 담아주셔요. 다섯 개를 담아주셨는데 교만해져 버리면 하나님은 다섯 개까지 거둬가세요. 우리가 어떤 그릇이냐? 열 개를 담을 수 있는 겸손한 그릇이냐?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하죠. 

언제가 책을 읽다보니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한 사람이 열심히 살았는데 부부관계가 별로 안 좋은 집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신이 그에게 나타나서 ‘내가 네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 하니 ‘잘됐다.’ 이 사람이 생각했어요. 우리 부인하고 사는게 지겨운데 신이여 이 부인을 데려가 달라고 그리고 새 부인을 얻어서 살고 싶다고 이렇게 첫 번째 청원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것을 들어줬어요. 

부인이 어느 날 죽었어요. 장례식을 치르는데 동네 사람들이 와서 장례를 참여하는데 그들이 와서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당신의 부인은 참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정말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인정이 많고 그런 사람이 이렇게 빨리 죽다니 너무 안타깝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좀 아쉽더래요. 이렇게 훌륭한 부인을 너무 빨리 데려가셨구나. 

그래서 아쉬워서 후회하다가 두 번째 기도제목을 이야기 했데요. 신이시어. 내 죽은 부인을 다시 살려 달라고 죽었던 분이 다시 살아났다는 거예요. 이제 한 가지 기도제목이 남았어요. 세 번째 그는 뭘 구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신에게 물었데요. ‘내가 뭘 구하면 좋을까요?’ 그랬더니 신이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그래서 그는 세 번째 기도제목을 드리고 나니까 그렇게 행복하더라는 것입니다. 부인도 그렇게 예쁘고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 주신 복에 대해서 감사해야 해요. 

여러분 1950년대 그 가난 속에서도 살았는데 그때에 비하면 6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풍요롭고 얼마나 모든 것이 완벽합니까? 그러나 아직도 불평하는 사람은 계속 불평하고 있어요. 뭐가 그렇게 부족한지 감사할 줄 몰라요. 감사가 진정한 축복이에요. 가진 자가 축복이 아니라. 감사하는 자가 축복이라는 거예요. 감사하는 사람은 더 큰 복을 받을 자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평화와 안정과 자유를 감사 하면서 우리를 일깨워간 이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해요.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바라보면서 함께 기도의 무릎을 꿇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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