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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운 동역자들 (고후 8:16-24) - 교사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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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동역자들 (고후 8:16-24) 

독신을 주장하는 한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대학 교수로 명성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 안에서는 권사님으로 신앙도 인정을 받는 분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누리고 있었고, 환경적으로도 아쉬움이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결혼의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고 혼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분이 50중반이 되어서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결혼을 하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어느 날 등 쪽에 종기가 나서 밴드를 붙이려고 혼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붙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 밴드를 붙여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과 함께 협력하여 살게끔 되어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좋을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있고 신앙 공동체가 있습니다. 서로가 선한 협력자가 될 때 서로가 유익하고 건전한 신앙생활을 영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특정한 한 두 사람의 영향력에 좌우되는 교회가 되어서는 건강한 교회,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서로 협력하여 영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강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 뜻을 위해 온 교회 성도들이 함께 동역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는 귀한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고후 8:1-5절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정성을 다하여 헌금한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들도 당시 극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듣고는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 구제헌금에 잘 동참을 하지 않았습니다. 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해놓고 흐지부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8:6-15절까지 디도를 보내어 구제 헌금에 동참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고, 고린도교회의 헌금 모금을 위하여 다시 파송된 사도 바울의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기 위해 파송한 세 사람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꾼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특징을 잘 살펴보고 우리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귀한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사도 바울이 파송한 첫 번째 사람은 디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디도를 언급합니다. 오늘 본문 16-17절에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여러 명의 제자 혹은 믿음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디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딛 1:4절에서 디도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라고 했고, 그리고 오늘 본문 23절에는 “나의 동료요 나의 동역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사도 바울과 디도와의 관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디도는 초대 교회와 선교 활동 전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었으나, 디도는 사도 바울의 사역에 있어 디모데와 같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힘써 복음을 전하여 성도를 얻고, 그곳에 교회를 세우면 그것으로 복음 사역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 곳곳의 교회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문제 있는 교회마다 사도 바울이 직접 가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교회에 아무나 보낼 수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서 그것을 올바로 가르쳐줄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바로 디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도를 곳곳에 파송합니다. 그리고 파송을 받아 사도 바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가는 곳마다 문제를 해결하여 주님의 교회를 복음의 터 위에 굳게 세웠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16절에서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디도에게 자신과 똑같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간절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푸데이”는 '간절한 바람', '열성', '열심', '노력', '근면함'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속도를 낸다’, ‘속력을 낸다’, ‘서두른다’, ‘열심을 품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기서는 진정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간절함은 하나님과 그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디도에게는 이러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불타는 심정, 불붙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타는 듯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디도의 간절함은 자원함으로 표현되어집니다. 17절에 보시면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라고 했습니다. 

디도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갔다 오라는 말에 마치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순종하고 자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디도는 고린도교회로 파송되었다가 마게도냐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소아시아는 교통수단이 불편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오래 걸렸습니다. 게다가 헌금을 수송하는데 있어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온 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또 가라는 것입니다. 쉽고 간단한 사명 같으면 여기에 기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여기에 기록했겠습니까? 디도는 이러한 어려운 환경과 여건임에도 사도바울의 부탁에 자원하여 ‘예’라고 순종하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가슴을 알기 때문에 순종한 것입니다. 

디도는 처음에 사도 바울의 지시하는 대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를 보고나서, 사도 바울의 자랑이 무엇이며 그 교회를 향한 바울의 염려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와는 무관한 고린도 교회이었는데 그 교회를 방문하고 난 지금은 자기도 그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으며, 바울의 그 교회를 위한 염려와 기도가 그의 염려와 기도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에게 생기는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사랑과 간절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일을 하는 자의 모습이 이래야 합니다. 직분을 맡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함은 강요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라 하라고 해서 마지못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참석한 예배나 기도모임이나 봉사이면 이내 싫증을 느끼고 도망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일을 감당하고자 할 때, 이 사람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즐겁고 보람 있고 은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디도처럼 모든 일에 간절함과 자원함으로 잘 감당하시고 사역자들에게 특별한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사도 바울이 동역자로 파송한 사람은 이름은 없고 다만 18절에 보면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라고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헌금 전달과 고린도 교회의 헌금을 위해 디도 외에 두 사람을 더 보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에 대해 오늘 본문 18-19절에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의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의사인 누가’나 혹은 ‘디도의 형제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 후반에서 그의 동역자들의 이름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 16장의 인물, 고전 16장, 골 4장에 함께 사역한 동역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그만큼 바울이 이름을 많이 밝혔다는 것입니다. 아마 사도 바울이 그의 이름을 밝힐 수도 있었을 터인데 굳이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그가 원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억하고 축복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도 바울의 사역에 순종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사람이 누구인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그대로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이고, 더 나아가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은 자”는 것입니다. 

복음으로서 칭찬을 받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나타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복음을 잘 증거하여서, 혹은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복음증거에 힘써서, 또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잘 살아서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헌금을 모금하는 일을 사사로이 하지 않았습니다. 모금하는 일에 아무런 부정한 것이 없고, 투명하게 행하여지게 하기 위해서 여러 교회들이 인정하는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모금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바울의 원하는바 가난한 성도를 돕는 일을 온전하고 흠없이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교회 앞에 쓰임을 받기 위한 중요한 자격은 바로 복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복음의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았고, 복음 때문에 사자의 밥이 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일에 동역할 수가 없습니다. 


3. 그리고 세 번째로 사도 바울이 동역자로 파송한 사람 역시 이름을 알 수 없는 인물입니다. 다만 22절에 보면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라고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한 형제”라고 소개된 이 사람 역시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아 누군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사도 바울은 그를 소개하면서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된 사람”이라고 했고, 그리고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말은 ‘봉사에 열심이고 부지런하며’ , ‘올바르고 선하여 도덕적인 자질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입증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이 과연 정직하고 물질을 탐하지 않는 사람인가 여러 면에서 지켜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사람이 과연 모금하는 일과 모금한 헌금을 관리하는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판단되어서 파송한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 두 사람을 가리켜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했습니다. 디도와 함께 간 그 형제들은 누구냐면 여러 교회 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사자들’이란 말은 ‘여러 교회의 대표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을 들어낼 만한 교회의 대표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했던지 두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나고, 사람의 행위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칭찬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될 최고의 칭호가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이름 없는 두 사람처럼 이름이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거나 관계없이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주의 일을 기쁨과 성실함으로 잘 감당할 때 영적 상급이 큽니다. 한시적인 인간의 상급이 아니라 영원한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기대하는 신앙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 복음과 교회와 어려운 성도를 위한 일에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움직이고 있습니까? 교회와 성도의 일을 보면 누구보다도 빨리 움직이는 사람, 그리고 그 일에 성실하게 매달려 그 일을 이뤄내는 사람, 거기에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자질까지 갖춘 사람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비롯한 이 두 사람을 고린도 교회에 소개하면서 정말 행복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과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 주님을 향한 사랑이나 교회를 향한 사랑, 그리고 복음을 향한 열정이 같은 사람들, 교회들이 믿고 헌금을 맡길 뿐 아니라, 사도 바울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그리고 사도 바울로부터 이러한 인정을 받고 있는 이들 또한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 앞에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도 사도 바울이 파송한 디도와 두 형제처럼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교회를 위한 열정과 간절함이 사도 바울과 같은 성도,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성도, 그리고 주님과 복음과 교회와 어려운 성도를 위한 일에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잘 감당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고, 우리 교회가 이러한 믿음의 동역자들로 넘쳐나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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