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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맡기라 (잠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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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맡기라 (잠 16:1-9)
   
오늘은 한 동영상을 보신 후에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패치 아담스라는 의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겠습니다. 제목은 “문제를 넘어서 보라”입니다. (다음, 프로페짜이-설교모임, 동영상 자료 “문제를 넘어서 보라”)

여러분, 문제만 보지 말고, 문제 너머를 보십시오. 근시안적으로 코앞에 닥친 문제만 보지 말고, 저 너머, 문제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사야55:8-9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주간 목회자 수련회 중에 순천에 가서 선배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생 46년 동안 사역하시고 은퇴하셨는데, 그 집에 들어가면서 한문으로 쓴 글을 보았습니다. 한문으로 기록하였지만, 다행히 제가 다 아는 한자여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굴기자 능처중 호승자 필우적”(屈己者能處衆好勝者必遇敵) 이 말은 큰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굴기자 능처중, 자기를 굽히는 사람, 즉 겸허한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오를 수 있고, 호승자 필우적,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적을 만날 것이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말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는데, 이 말을 찾아보니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나오는 말이었습니다. 하여튼 좋은 말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지 못합니다. 머리가 뻣뻣합니다. 교만이 몸에 배어 있고, 교만이 그의 천성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기기를 좋아합니다. 져줄 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다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다보니 우리 사회는 하나 되지 못하고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큰 화합과 덕을 세우려는 마음으로 자기를 양보하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성경 중에 구약의 잠언을 본문으로 삼았습니다. 잠언이란 성경은 솔로몬이 쓴 것으로 아는데, 여러 사람의 잠언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이 가장 많은 부문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도 있고, 르므엘 왕의 말씀하신 바 그 어머니가 훈계한 잠언도 있고, 지혜로운 사람의 말씀으로 내려오는 잠언도 있습니다. 

열왕기상4:32을 보면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잠언 3천 가지를 말한 사람입니다. 솔로몬이 말하는 많은 잠언이 여기 잠언에 들어 있을 것이요, 또 들어가지 못한 잠언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잠언이란 히브리어로 마샬이라고 하는데, 속담, 금언, 격언, 비유담이라는 말입니다. 잠언이란 말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훈계가 되는 짧은 말”입니다. 히브리어의 마샬이라는 말은 격언이나 금언보다는 보다 더 광범위하고 교훈적인 말입니다. 잠언은 한 절이 독립되어 있습니다.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길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2500년 전에서 3000년 전의 살던 사람들이 말한 잠언이기 때문에, 지금 현대를 살아가면서 맞지 않는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 시대의 가치관과 그 시대상을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알맹이, 주제와 내용을 보아야 합니다. 이 잠언이 무엇을 말씀하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 안에 들어온 잠언이기에 그 말씀들은 만고의 진리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말씀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보기에는 미흡하고 어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말도 있습니다. 오늘의 가치관과 생활습관으로 보면 다소 문제가 있고, 적용할 수 없는 잠언도 있습니다. 

잠21:9과 같은 말씀인데, 잠25:24에서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매일 같이 다투면서 살면 큰 집이라고 하여도 그곳이 지옥이지요, 행복한 가정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아내와의 사랑과 화합, 화평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다투므로 어렵다고 해서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거나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투는 여인을 떠나 움막에 혼자 사는 것보다는 다투더라도 큰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1절입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여호와께서 하신다.”는 말입니다. 9절을 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들은 마음으로 앞날을 생각하면서 그의 미래를 위하여 계획하지만,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1절과 9절의 말씀은 같은 말씀입니다. 마음의 경영이라는 말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경영에서 나온 구체적인 일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잠언이란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독립된 말씀이지만, 그래도 1-9절은 어떤 한 주제를 가지고 말씀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8절 말씀에만 들어가지 않았고 1-9절까지 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잠언 가운데, 이렇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계속 들어가는 구절들이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잘 보면 각 절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옳고 그른 것을 대비하므로 교훈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1절 말씀부터 간단하게 강해하려고 합니다. 다 독립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고 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을 주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런데 일정도 잘 맞았고, 돕는 이들도 많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이번 일이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나는 하는 일마다 잘 되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나만큼 경영의 귀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이런 식으로 자화자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하나님이 주셨다고 감사해야 합니다. 말의 응답, 결정은 하나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을 잘 되지 않을 때에도 냉철하게 판단하고 평가해야 하지만, 그것도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이 더 큰 일을 주신다고 믿고 맡겨야 합니다. 

2절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자기가 한 일은 옳고 좋아보여도 여호와 하나님은 심령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보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잘못이 없고, 저 사람은 잘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저 사람은 잘 되는 것 같고, 나는 성실과 정직을 다해도 어렵기만 하다고 생각되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떤 사람은 정말 관운이 있어 보이고,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사람을 축복하고 하나님이 붙들고 쓰시는 종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비아냥거리면 나만 못된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반드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야 될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진실하고 깨끗하며, 성실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 인정받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나의 성실함은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이라는 분은 하나님이 다 알아주시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욥1:8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되었지 무엇을 더 바랄 것입니까?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사람들도 반드시 알아주는 때가 찾아옵니다. 

3절입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다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을 다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맡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갈랄”이라고 하여 “구르다”, “굴리다”는 뜻입니다. ‘길갈’이라는 이름을 여호수아가 지었는데, 할례를 행하고 애굽의 수치가 굴러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굴리다’는 말에서 확대되어 ‘맡기다’ ‘신뢰하다’ ‘위임하다’, ‘위탁하다’, ‘던져 버리다’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하려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위임하고, 하나님이 맡아서 다 해결해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벧전5:7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마6:27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마6:34에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맡김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가 모른다고 하시면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나를 위하여 계획하신 일들을 실행할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이것이 참된 맡김입니다. 

요즈음 병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중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건강 염려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혀 아픈 데가 없는데도 TV에 질병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나도 똑같은 병에 걸렸다고 의심하고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음식을 먹고 소화되는 중에 생기는 정상적인 꼬르륵 소리가 나면 나쁜 질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먹는데 땀이 나고 밖에서 돌아와 보니 피부가 이상하다고 하면서 자기는 암환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간다는 것입니다. 의사가 건강하다고 진단을 해주어도 자기는 병든 사람이라고 의심하고 이곳저곳 아프다고 병원을 찾아와 여기 저기 검진을 받는 사람들이 환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염려병을 ‘건강염려증후군’이라 부릅니다. 환자의 30%가 건강염려증후군 환자들입니다. 죽고 사는 것, 하나님께 맡기세요. 할렐루야!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알맞게 만드셨습니다. 심지어 악한 사람, 악인도 그가 행한 악한 일을 전용하셔서 악한 날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악한 깡패, 살인자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들이 있으므로 어린 학생들에게 교훈이 됩니다. 세상에 저렇게 악하고 나쁜 깡패가 되지 말라는 실물교육 자료로 사용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깡패가 없으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를 무서워할 줄도 알게 되고, 피하는 것이 지혜인 것도 알고, 사법으로 다스려 감옥에 보내는 것도 보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교육할 수 있습니다, 악이 없으면 선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악한 일에 쓰임 받지 않고, 선한 일에 선한 목적으로 쓰임 받으려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은 선한 일에, 선한 목적으로, 선한 방법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야곱의 10형제들도 하나님의 더 큰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악한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가룟유다도 악한 날에 악역으로 쓰시는데, 하나님의 크신 섭리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교회와 사회에서도 악한 일에 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쓰임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일에 선한 방법으로 선하신 목적을 이루려고 사모해야 합니다. 

5절입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고 하셨는데, 역겨워하신다, 가증스럽다고 하십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고 역겨워하시고, 가증스럽게 보십니다.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무슨 말인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불의하게 서로 손을 잡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는 뜻인데, “그들은 틀림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는 말입니다. 

잠16:18에서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말씀이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6절입니다.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사람이 어질고 진실하게 살면 죄를 용서받고, 여호와를 경외하면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한 일을 피하고 불의를 물리치면서 진실하고 의롭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인자와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죄의 용서를 받고 재앙을 받지 않습니다. 

7절: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원수 맺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어떤 누구와도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8절: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여러분, 많은 소득을 원하지 말고, 바르고 정당한 소득을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야호와의 말이니라”(학2:8)라고 하셨습니다. 

잠8:19에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요즈음 불의한 소득으로 구속되는 거물 정치인들을 보면서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해야 함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까짓 1억 원이 무엇이라고 앞날이 창창한 정치인이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을 봅니다. 평생 국회의원하고 돈이 무엇이라고 감옥에 들어갑니까? 

9절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들은 자기의 갈 길을 계획합니다.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고 그 일을 놓고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무슨 작은 업적이라고 하여도, 작은 성공이라고 해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저는 생각해봅니다. 이 지구상에 이미 왔다가 가신 사람들이 수천억의 사람들, 지금 살아가는 70억의 사람들, 또 앞으로 태어나고 살아갈 수천억의 사람들, 그 중에 나 하나는 있으나마나 한 사람입니다. 아등바등 싸우면서 살아도 인류의 역사상에 무엇을 남길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세상에 나를 지어 보내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되시게 하시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것은 덤으로 받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우리가 여러가지 소원을 가지고 기도할 때도 있고, 그냥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하기도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총이요, 복입니다. 기도하는 시간 그 자체가 응답임을 알게 됩니다. 기도의 진정한 응답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그 상태요,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만남으로 차오르는 기쁨과 평안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에 영혼의 평화와 안식을 주시고, 문제에 대한 통찰력을 주시고 문제의 원인이 바로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희한한 사건이 응답되었다고 해야만 응답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 그 자체가 응답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기뻐 예배하고 당신을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들을 알아주시고 기뻐하시고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여주십니다. 

“우리 이 땅에”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CCC 간사이신 최용덕씨가 작곡한 노래입니다. 1절입니다. “우리 이 땅에 몸으로 태어나/ 무슨 일 하다가 무엇을 남기랴/ 우리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나/ 너와 내가 남남으로 주 앞에 설 때에/ 우리 무엇으로 주님께 드리랴” 2절입니다. “혹은 긴 인생 어떤 인 짧은 인생/ 그러나 누구도 영원히 살 수 없네/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 것/ 너와 내가 영혼으로 만날 수 없다면/ 우리 이별을 어떻게 견디랴” 3절입니다.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 얻어/ 언젠가 또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우리 헤어져도 슬프지 않을 수 있어/ 너와 내가 영혼으로 또 다시 만나세/ 주님 우리 위해 함께 계시리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성실하게, 알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일에는 일등 신앙이어야 하고, 알곡 신앙이어야 합니다. 보답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이제는 돌려드려야 할 것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는 구원받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고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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