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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의 위기를 극복하라 (히 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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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위기를 극복하라  

 
성경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엡 6:24) 라고 축복합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한결같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기쁨과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 보다 바람직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신앙의 열심이 한결같지 않고 식어버리고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없이 의무적으로, 체면 상 마지못해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회의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세상일에 더 마음을 쓰고 몰두합니다. 

이런 일들이 생길 때 우리는 즉시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위기를 맞이했다는 경고등이 켜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건강 상태가 부실하고 병들었다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위기를 만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괜찮아, 그렇게 자신만만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열 둘 가운데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서 은 삼십을 받고 주님을 팔았습니다. 그가 처음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배신할 마음을 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한 때 그는 주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충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인정을 받아 금전의 출납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돈주머니를 맡고나서 탐욕이 생겨 돈을 훔쳐가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돈에 눈이 멀어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처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나섰습니다. 그는 수제자로서 얼마나 열심히 충성스럽게 주님을 따랐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적들이 주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칼을 휘둘러 그 중 한 사람의 귀를 베었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였지만 그 밤에 대제사장의 관저 뜰에서 사람들 앞에서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어느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당신, 나사렛 예수와 한패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너무 두렵고 당황한 나머지 그 같은 실수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그는 한 동안 침체에 빠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었으나 여전히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는 창고에 넣어 두었던 배와 그물을 꺼내 가지고 갈릴리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한 때 열심히 헌신했던 사람입니다. 바울 서신인 빌레몬서(1:24)와 골로새서(1:24)에 보면, 사도 바울의 문안 인사 가운데 마가, 아리스다고, 누가와 함께 데마의 이름도 당당하게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데마를 ‘그의 동역자’ 중에 한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기록한 디모데후서 4:10에 보니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들은 하나 같이 충성되이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를 알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들 자신조차도 그렇게 실패할 줄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 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주님을 섬겨오면서 신앙의 길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이 교회에서 16년 동안 목회하는 동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저 자신도 때때로 신앙의 열정을 상실하고 침체에 빠질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위기는 신자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신앙의 위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는 다 기질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연약하기 때문에 전혀 시험에 들지 않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보다는 신앙생활의 위기를 만났을 때 큰 손상을 입지 아니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로, 신앙생활의 위기를 만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위기에 빠지는 이유는 한두 가지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시험에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20)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마 13:)

마음의 귀가 둔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의 위기를 만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믿음이 자라는데 들어도 깨닫지 못하니까 기독교인이 된 지 오래 되었어도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지만 환난이나 핍박이 다가오면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생명의 길이므로 환난과 핍박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을 믿는 목적이 바르지 못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축복만 받을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 때문에 집안에서 핍박하고 사회생활에서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기면 주저앉고 맙니다. 그 다음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장 자주 당하는 시험으로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넘어가서 믿음에 손해를 보는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방탕함을 부추기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봇물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 영화, 소설, 연극, 노래 가운데는 사람들의 방탕한 성향을 자극하고 부추기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을 자주 보고 즐기다 보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인물들을 따라서 살게 됩니다. 술 취하는 것 역시 신앙생활을 위기에 빠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노아와 같은 위인도 술에 취하여 벌거벗고 잠자는 실수를 범했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언제나 일정한 것이 아니고 때때로 변화를 경험합니다. 우리가 방심하면 신앙생활의 열심이 식어버릴 수 있습니다. 은혜를 다 잃어버리고 길가처럼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길가 같던 사람이라도 회개하면 좋은 밭이 되어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교만해 질 때 신앙생활에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신자들은 신앙 연조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중한 직분을 맡았다고 교회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교만하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교만은 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교만하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 전에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짓고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 교회는 둘로 나뉘었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다툼의 주역인 교회의 중진들이 교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파괴하고 갈라져 나간 사람들이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신앙생활의 위기에 빠집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주일 성수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 나가서 일을 하면 얼마를 벌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까 예배 생활에 힘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락을 좋아하면 신앙생활에 위기를 만납니다. 현대인들은 인생을 즐기면서 살려는 욕망이 강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같은 세상 풍조를 따라가면 신앙생활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주일은 놀러가고 즐기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의 일을 위해 봉사하는 날입니다. 주 안에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이단 사이비한 자들과 사귀는 사람은 신앙의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고 양의 가죽을 쓰고 몰래 다가오는 도둑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양과 같습니다. 이단 사이비에게 끌려가면 결국 영적 생명이 죽고 맙니다. 

두 번째로, 신앙생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누구나 방심하면 신앙생활의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자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위기를 피하려면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나도 교만해 질 수 있고, 나태해 질 수 있고, 욕심에 사로잡힐 수 있고, 세상 쾌락에 넘어질 수 있고, 이단 사이비에게 미혹 될 수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인정하는 사람은 그러한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12에 보니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였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신앙생활의 위기에 빠지지 않으려거든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하신 주님의 권면을 마음에 새기고 준행하시기 바랍니다. 조심하는 만큼 시험에 들지 않고 위기를 피할 수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조심한다고 할지라도 자칫 방심해서 또는 욕심에 이끌려서 위기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던 신앙인도 일순간 정욕에 사로잡혀 범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다윗이 그처럼 무서운 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고,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의 최일선에 내보내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도 한 동안 다윗은 겉으로 태연한 척 했지만 그의 속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완악해 졌고 하나님의 은총이 그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서 그의 죄를 지적하였을 때 곧바로 “내가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라고 회개했습니다. 

그 때 그가 지은 시편이 32편과 51편인데, 그 시편을 읽어 보면 그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얼마나 깊이 회개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2)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3)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4)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5)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 

“9)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 

다윗이 눈물로 이불을 적시며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사하시고 다시금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불화했던 관계가 화목한 관계로 원상회복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신앙의 위기를 만났거든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문제의 해결은 회개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시편 51편 17절에서 다윗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리 무서운 죄를 지었더라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회 자복하면 사죄의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시편 103편은, 회개하는 성도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잘 보여줍니다. “8)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 8-10절에 이같이 말씀합니다.

“8)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핑계를 대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솔직하게 하나님께 엎드려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의 죄를 말갛게 씻어주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를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우리 심령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고, 다시금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그 다음, 신앙생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을 올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적인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 동안 한국 교회는 눈부신 부흥을 이룩하였습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가 85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이단 연구가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니 이중 200만 명 정도는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한 달에 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이단으로 넘어간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기막힌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동안 한국 교회가 수적인 부흥에 집착한 나머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현세적인 기복신앙을 전한 결과라고 봅니다.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데, 현세적인 축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기독교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신앙이 뿌리가 없어서 이단 사이비의 말에 쉽게 넘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그들의 교주를 신성시합니다. 재림주라고 하거나 보혜사 성령이라, 또는 그리스도라,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그릇된 것은 성경에 대하여 기초적인 지식만 있어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이 누구신지, 기본적인 지식만 알아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을 수년 간, 또는 수십 년 간 했어도 미신 섬기듯이 축복 일변도로 믿었기 때문에 성경에 무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같이 권했습니다.

“14)…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 성경을 배워서 진리를 알게 되면 이단 사이비의 꾐에 넘어갈 리가 만무합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을 바로 알 때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우리의 신앙생활을 육상 경기에 비유합니다.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경기에 임한 선수는 간단한 복장을 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경주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경주에 나선 성도들은 모든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주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왕에 믿을 바에야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지근한 상태를 벗어버리고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사모하여 신앙생활에 열심 낼 때 주님께서 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마귀가 우리를 시험하러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주시며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선수가 골인 지점을 바라보고 달리듯이, 성도들은 예수님을 신앙의 푯대로 삼아야 합니다. 

♪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우리 눈에 세상이 보이면 주님을 올바로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 눈에 재물이 보이고 세상 명예가 보이면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 눈에 주 예수 그리스도만 보여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처한 환경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면서 변함없이 주님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징계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그 사랑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실족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났을 때, 낙심하지 말고 그 시련을 통해서 우리를 바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되 우리를 연단하셔서 영적으로 성숙하고 온전케 만들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목적을 갖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모든 시련을 감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합니다. 기독교인 가운데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체에 신앙의 목적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이용해서 현세적인 이득을 얻는 데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눅 18:8)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기는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가 가까워져서 진실한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재물이나 인간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돈을 더 사랑하고 세상 즐거움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신앙의 위기를 만날 수밖에 없고, 마귀의 시험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위기에 빠지지 말아야 하지만, 혹 빠졌거든 속히 그 수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음을 알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영적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을 따르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고,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매일 같이 회개의 생활에 힘씀으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성도다운 성결함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눈을 떠서 주의 강림이 가깝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시대의 징조들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너무 미로가 많아서 한번 길을 잃어버리면 되돌아오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심을 하고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오직 주님만을 섬기고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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