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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머리를 들게 하고 (왕하 25: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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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들게 하고 (왕하 25:27-30)   

어느 나라 역사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나라 역사에도 가슴을 저미는 슬픈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단종애사입니다. 세종의 손자요, 문종의 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문종이 왕이 된 지 두 해만에 죽는 바람에 겨우 열두 살의 나이로 조선의 6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열다섯 살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쫓겨났고, 열일곱 살에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그 해 가을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데, 그 모습이 얼마나 참혹합니까? 

남 왕국 유다에도 이에 못지않은 슬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여호야긴> 왕입니다. 그는 아버지 <여호야김>은 왕이 된 지 십년 만에 죽었고, 여호야긴은 아직 세상을 안다고 하기엔 너무 어린 열여덟 나이에 한 나라를 끌고 나가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가 물려받은 유다 왕국은 거의 기울어 멸망 직전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유다 왕들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 너무 컸고, 백성들은 죄악의 늪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있어서 헤쳐 나올 힘이 없었습니다. 여호야긴은 구조적인 죄악의 틀 안에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정, 입법, 사법 등 모든 것이 그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굴러갔습니다. 

이에 대해 열왕기하 24장 8-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억울한 측면이 많습니다. 그는 왕이 된 지 겨우 석 달 만에 왕위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된 지 석 달 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유다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호야긴은 이미 틀렸음을 알고 자발적으로 느부갓네살 왕 앞에 항복했습니다. 

열왕기하 24장 10-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그들 모두는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숙부인 <맛다디야>가 <시드기야>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느부갓네살에 의해 꼭두각시 왕이 되었습니다. 

그 후 여호야긴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후 무려 37년을 감옥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를 왕으로 존경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에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스러져가고 있었습니다. 

그 후 11년이 지나 여호야긴이 29세가 되었던 어느 날 그나마 예루살렘에서 명맥이라도 유지하고 있던 유다 왕국이 완전히 멸망하여 사라지게 됩니다. 바벨론은 성전과 예루살렘성은 무너뜨리고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이 슬픈 소식은 감옥에 있는 여호야긴에게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옥사장이 전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이, 당신의 나라가 유다라고 했지? 그 유다가 완전히 멸망했다는구먼. 그 왕도 두 눈이 뽑힌 채로 끌려왔다지? .....> 

여호야긴의 가슴은 칼로 저미는 것처럼 아팠을 것입니다. 또 함께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왕이 감옥에 갇힌 것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백성은 백성들대로, 왕은 왕대로 정말 처참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들의 슬픈 마음이 시편 137편 1절 이하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그런데 여러분, 이 슬픈 이야기는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대로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그 슬픈 이야기는 생각지 못했던 소망의 이야기로 반전되었습니다. 그 반전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야긴이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힌 지 37년이 지날 무렵, 그가 55세가 되었을 때, 주전 562년에 유다를 멸망시킨 느부갓네살왕이 세상을 떠나고 그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이 되었습니다. 새 왕의 등극 소식은 감옥에도 전해졌겠지만, 죄수들에게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닌 삶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다가왔습니다. 여호야긴이 석방된 것입니다. 단순히 석방만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그를 깨끗이 씻기고 놀랍게도 왕들의 옷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가죽신을 신겨 바벨론 왕 에월므로닥 앞에 세웠습니다. 그는 에윌므로닥으로부터 믿기 힘든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부터 그대는 다시 왕의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오. 앞으로 그는 유대 왕으로 불릴 것이오. 그리고 나와 함께 궁궐에서 함께 식탁에 앉을 것이며, 그대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은 왕궁 재정에서 공급될 것이오. 지난 세월은 잊고 나와 함께 남은 생을 살아 봅시다. 자 이리 내 곁으로 올라오시오!> 게다가 바벨론에게 점령된 다른 많은 나라의 왕들보다 여호야긴을 더 높여 주었습니다. 이게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사건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열왕기하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유다 왕국이 멸망한 이야기로 끝내지 않으시고, 그 끄트머리에 여호야긴왕의 명예와 신분의 복권을 언급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는 분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망각이란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인기인도 쉽게 잊혀 집니다. 그렇기에 잊혀 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면 우리가 사는 동네 사람들 중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몇 십 년 후 땅끝교회 교인들이 과연 우리를 기억할까요?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합니다. 여호야긴이 감옥에 있었던 37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는 <기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에 관한 많은 말씀이 나옵니다. 창세기 8장 1절은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해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족을 기억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팔려가 감옥에까지 떨어진 요셉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을 죽이고 실의에 빠져 미디안 광야로 도피해있는 모세를 40년 동안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49장 14-1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러분,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도 기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도 우리를 잊으시는 법이 없습니다. 

더구나 세상은 대상에 따라 기억력이 다릅니다. 세상은 <사랑의 기억력>이 없습니다. 세상은 <증오의 기억력>만 가지고 있습니다. 미움이란 감정은 오래 지나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섭섭하게 했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됩니다. 그러나 사랑받고 은혜를 입은 일에 대한 기억은 매우 짧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호야긴 왕과 유다를 기억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움 때문입니까? 사랑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으로 기억하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께 사랑스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숱하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불의를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원수를 갚으려고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베풀어 감옥에서 꺼내 주시고, 구원해 주시려고 기억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죄를 기억하셔서 벌을 내리고 망하게 하시려는 게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주시려고, 구원하시려고 기억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소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한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노예가 되었어도, 미디안 광야에 있어도,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역전의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성도들의 9회 말 공격은 그들이 이길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잠시 유보된 것뿐이지, 결코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끝이라 말씀하기 전까지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둘째로 본문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긴 왕과 백성들을 기억하기만 하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하셔서 회복시키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오게 하시고, 명예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작정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다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도 나중에 다시 회복되어 돌아올 것을 예고하신 바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장 10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약속하신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회복의 첫 단계로 우선 여호야긴 왕을 복권시키신 것입니다. 유다의 왕이 다시 회복되어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이 <유다 왕의 회복>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신약의 예수님 사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명패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신 예수님께서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유대인의 왕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왕은 깜짝 놀랄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놀랍고 놀라운 <유대인의 왕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부활하신 후 단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왕이요,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절정에 도달한 이 <회복의 복음>은 그 후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선포되었습니다. 지금도 이 회복의 복음이 곳곳에 전해지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엄청난 회복의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질병과 실패로 망가졌던 인생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깨진 가정이 회복됩니다. 희망 없던 사업장이 다시 부흥합니다. 포기했던 젊은이들의 비전이 회복됩니다. 중국과 러시아처럼 공산주의로 얼어붙었던 복음의 불모지들 위에도 꽃이 피어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 회복의 복음을 강하게 믿으십시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하나님께 회복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노아의 가족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답답한 방주에서 벗어나 신천신지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 요셉을 기억하셔서 감옥에서 나오게 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해 주신 하나님,  모세를 기억하사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 만에 나오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지도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쓰러진 저를 일으켜 주옵소서. 망가진 저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상처 입은 저를 싸매 주옵소서. 하나님의 손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서게 하옵소서! 저를 부흥시켜 주옵소서. 영혼이 부흥되고 삶이 부흥되게 하옵소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여호야긴 개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전체를 회복시키셨습니다. 얼마 후 바벨론이 멸망하고 페르샤 제국이 등장했을 때 고레스왕을 통해 유다 백성들을 예루살렘을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역대하 36장 23절은 유다 백성의 귀환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러분,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싸매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이사야 30장 26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할렐루야! 

오늘부터 2012년도 하반기가 시작됩니다. 지난 상반기 동안의 삶이 마치 포로가 되어 감옥에 있는 여호야긴와 같았다면, 하반기에는 왕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복권된 여호야긴처럼 되시길 기원합니다. 결코 소망을 잃지 마십시오. 우리를 기억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하반기에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세계가 부흥되어 회복되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 전체에 하나님의 기억하시고 회복시켜 우뚝 세우시는 은총이 충만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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