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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선한 역할 (6) (에 8:15-17, 행 9: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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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선한 역할 (6) (에 8:15-17, 행 9:26-30)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선한 역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선한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원래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을 핍박하였습니다. 그것도 악랄하게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사울은 아주 악명 높은 핍박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회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예루살렘에 나타나 “나도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 말에 의구심을 품었고 위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려고 온 줄로 알았습니다. 그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두 냉대하였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런 사울을 데리고 다니며 안내하고 설득시키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도록 가교역할을 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보증해 주었습니다. 이 바나바는 구브로 사람입니다. 오늘 사이프러스(cyprus) 섬 출신입니다. 본명은 요셉이고 레위지파 사람입니다. 이 바나바가 설교를 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특히 위로자의 역할을 잘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좋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조화를 이루고 평화를 조성하고 격려하고 위로를 잘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이 역할자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장 선한 역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요셉이라는 이름 대신 바나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바나바는 “격려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이 바나바는 마가와 요한의 숙부(골 4:10)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전도를 위해서 사울을 준비하셨습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은 그를 회심시키셨고 이방인을 위하여 그릇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울의 길잡이로 바나바를 준비하셨습니다. 마치 예수님 오심을 위해 세례 요한을 준비하시듯 말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조용하게 안내해 주고 공동체를 세우는 일과 소외자를 돌보는 역할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아직 생소할 때 예루살렘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였고 사울이 바울로 그리고 바울이 사도로 다시 바울이 대 사도로 발돋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냈습니다. 

그리고 후에 바나바는 사울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으로 파송 받아 갔고 안디옥 교회는 이 둘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됩니다. 결국 바나바와 바울은 팀워크를 이루어 세계선교 여행을 함께 합니다.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바나바는 히브리서를 기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재산을 팔아 구부로교회를 세우고 마침내 살라미스에서 순교를 합니다. 이 같은 바나바를 바울은 잊지 못하여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고전 9:6, 갈 2:1, 골 4:10)합니다. 

II

오늘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직장에서, 회사에서, 동네에서, 공동체에서 이 역할이 빛이 납니다. 주연도 소중하지만 조연이 더 잘해 주어야 주연이 삽니다.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을 넣도록 누군가 도움을 주고 어시스트를 해주어야 합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달을 따도록 뒤에서 조련해 주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장군이 별을 다는 것은 자기 혼자서 잘해서가 아니고 수많은 부하들이 잘 해주어서 그 부대의 대표로 한 사람에게 별을 달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 중에서 구체적 역할은 이 역할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역할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더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 바나바의 역할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역할은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역할입니다. 교회에도 어떤 사람은 공동체를 허무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중단시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공동체를 세우는데 조용히 소리 없이 돕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역할자들이 영적 생활을 중단 없이 충실하게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 나라에, 가정에, 교회 공동체에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지난주일 우리의 영적생활은 대부분 주일날만 유지하게 된다고 우려하였습니다. 주일날은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교회 문을 나서기만 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것이 대부분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신앙에 하자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다가 도중에 넘어지고 뒤처지고 중단되고 탈락하는 것입니다. 

베르너라고 하는 분이 주일은 물론이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 영적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을까 해서 연구한 내용을 “월요일 신앙”이라는 책에서 10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그것이 성경을 지니고 다니기, 모르는 사람과 인사 나누기, 모르는 사람에게 복을 빌기, 예수에 관한 이야기하기, 공개적으로 신앙 일정을 소개하기 등 5가지를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다섯 가지 내용은 모두 바나바의 역할입니다. 이 바나바의 역할은 우리들로 하여금 영적 생활을 매일 지속하게 해 주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들입니다.

III

그 열 가지 중에서 여섯 번째는 “소외된 자를 돌보기”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소외된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더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고 인기가 더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챙기지 않아도 챙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또 스스로 뚫고 들어가 활동하고 쉽게 적응합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나 가보면 밀리는 사람이 있고 중심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임에 가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음에는 그 모임에 가지 않습니다. 교회에도 오면 쉽게 적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찾아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확보하고 스스로 공동체에 들어가 적응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적응하기 참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먼저 된 그리스도인은 그때 누군가를 상대해 주어야 합니다. 그 상대함이 바나바 사역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은 오랜 동안 서먹합니다. 그때 누군가 다가가서 말을 건네고 안내해 주고 함께 해 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교회의 가장 큰 병은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만 만나고 모이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처음 온 사람들은 언제나 비켜나고 소외되고 상처를 받습니다. 

바울이 처음 회심하고 가장 어려워했던 일이 믿음의 공동체에 들어가는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신앙인들은 바울의 회심을 위장이라고 의심을 하였습니다. 엊그제까지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회심했다면서 “나도 제자”라고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도 믿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을 이끌고 교회공동체에 들어가 적응하게 한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소개하고 안내하고 안심시키고 교제시켰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쉽게 적응하고 공동체의 일원되게 하고 사람들로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교회에 이 바나바 같은 역할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교회나 사회나 어느 공동체에도 이 바나바가 필요합니다. 이 바나바가 성숙한 역할자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중보자, 역할자, 제자입니다. 소외된 자를 돌보는 사역 그것이 성숙한 역할입니다. 

일곱 번째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식사하기”입니다. 식사는 교제에 가장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한번 식사하고 나면 급속히 가까워지고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여러 번 사람들과 식사하셨습니다. 사람들을 초대하셨고 초대 받으셨고 사람들 집에 가셔셔 식사도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외로움의 사람이었습니다.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웃도 친구도 없이 늘 혼자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내가 오늘 네 집에 가서 너와 대화하며 네 친구가 되어 주겠다.” 는 말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삭개오는 다 녹아버렸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삭개오는 그동안 얼어있던 마음이 다 녹았고 치유되었습니다. 상처 받았던 마음이 순간 치유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의 것 횡령한 것 있으면 4배를 갚고 전 재산의 절반을 내 놓겠다고 결단을 하였습니다. 누가 그에게 재산을 내 놓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강요한 일도 아닙니다. 스스로 결단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삭개오가 공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식사로 얻어진 소통 때문입니다. 

식사는 가장 좋은 친교 방법입니다. 지방에서 목회할 때 당회를 할 때는 부부를 버스에 싣고 시외로 나갔습니다. 어느 도시나 큰 갈비집은 모두 시외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회의는 잠간하고 식사와 친교는 오래했습니다. 모두 좋아하였습니다. 왜 갈등이 일어나고 불화가 일어납니까. 친교가 없으니까 매일 같이 심각하게 앉아서 인상 쓰고 따지고 갈등하고 불화하는 것입니다. 회의가 긴 교회, 회사, 기업, 국가는 문제가 있습니다. 회의가 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잘되는 교회, 잘되는 기업, 잘되는 회사, 잘되는 집안은 회의가 짧습니다. 내 구역, 공동체에 처음 오신 분과 먼저 식사 초대를 해 보십시오. 내 교회에 처음 오신 분에게 먼저 따뜻하게 영접하고 함께 식사를 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의 심정으로 말입니다.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그러면 금방 가족이 되고 친교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챙기는 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은사입니다.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마음에서 울어 나와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우러나오는 사람이 예수의 제자입니다. 

여덟 번째는 “하나님께서 일상 속에서 자신을 사용하시도록 기도하기”입니다. 바나바는 내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 늘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역할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이 선하게 사용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가 시작될 때 그리고 하루가 끝났을 때 기도하게 됩니다. 하루가 끝났을 때에는 은혜 중 잘 끝나게 됨을 감사하며 기도를 하고 하루가 시작될 때에도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 오늘은 누구를 섬길까요, 누구를 섬겨야 할지 알려 주세요, 어떤 사람에게 영적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어떤 일로 섬길까요, 오늘도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게 하소서“. 내가 이런 기도를 매일 할 수 있다면 누구보다도 내 인생이 복은 받은 인생입니다. 내가 먼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음은 더 큰 복입니다. 이런 삶에 왜 내안에 원망과 시비가 자리를 잡겠습니까. 어떤 주부가 간증을 하였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할 때 성경을 펼칩니다, 성경을 펼쳐서 처음 눈이 가는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하루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런 삶이 매일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런 삶에는 매일 매일 기대가 주어집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 오늘은 무슨 말씀을 주실까 하고 성경을 펼칠 때 그때 얼마나 기대와 설렘이 강하게 몰려오겠습니까. 그런 삶이 축복을 유통하는 삶입니다. 

그 간증을 듣고 어떤 분이 나도 그렇게 해 보자 하고 새벽에 일어나 오늘 나에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하고 성경을 펼치니까 마27:5 “가룟 유다가 나가 목매달아 죽으니라”는 말씀이 눈에 뜨였습니다. 왜 이런 말씀이 주어지는가 하고 다시 펴 보니까 눅10:37 “너도 이같이 하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 흉내 내는 삶은 피곤한 것입니다. 뜻 없이 살아가는 삶에는 깊이도 뜻도 내용도 감동도 없습니다. 억지로가 아니고 기쁨으로 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게 될 때 감동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매일 성경읽기”입니다. 첫 번째에 성경을 자니고 다니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니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니고 다니며 매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선교의 도구로 사용되려면 내 안에 언제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내 안에 말씀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늘 질문하여야 합니다. “왜 입니까,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은 왜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까, 이것을 오늘 어떻게 실천할까요, 이것을 누구를 위해 실천할까요?”하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매일 매일 내 삶이 주님과 연결되게 되게 되고 매일 말씀을 읽게 되고 매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삶이 주님의 마음을 늘 품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주시지 않고 한 달 먹을 것 한꺼번에 거두게 하지 않으시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그날의 양식만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 요구에는 하나님이 매일 매일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는 아들이 잘 찾아오지 않으니까 아버지 집에 왔다 가면 골프 비용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아들이 골프 가는 날이면 골프 비용을 타러 아침에 아버지 집에 찾아옵니다. 그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억지로라도 와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동안 매일 만나기를 기대하십니다. 성경을 한꺼번에 다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매일 조금씩 일용할 양식만큼 읽는 것은 더 뜻이 있습니다. 그 삶이 매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매일 말씀과 가까이 하므로 내 마`음, 내 생각 속에 늘 하나님과 연관되게 하는 삶, 그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열 번째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입니다. 이를 중보기도라고 말합니다. 중보의 삶에는 기도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교통하는 시간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너를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도가 중보기도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기도해 줄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무 일도 안하고 살 수도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면 할 일이 없습니다. 주일날 예배드리고 나면 한 주간 동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뭔가 하려고 하면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내 기도할 틈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어려움 당하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10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내용들이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그 할일들이 나로 하여금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조건들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조건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세상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나바를 생각하게 합니다. 바나바는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세우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큰 사도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사역의 결과를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여러분, 이다음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 그분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되었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장례식 때 그분 때문에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되었고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분이었다는 평가를 들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주님의 제자입니다. 그 모습이 오늘 우리들이 지향하여야 할 모습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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