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사헌신예배] 울어라 : 늙어도 떠나지 않는 말씀 (잠 22:6, 눅 23:..

첨부 1


울어라 : 늙어도 떠나지 않는 말씀 (잠 22:6, 눅 23:28)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숱한 사건들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잡하기도하고 또한 내용이 난해하여 이해하가 어려운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복잡하고 난해한 성경의 기록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즉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라는 것을 알려 주는 책입니다. 성서는 하나님 계시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 믿게 되고 믿는 만큼 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질문) 

유라굴라와 같은 환난이 오고 핍박이 와도 “주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이단, 삼단이 와서 “당신 구원 받았습니까?, 당신 죄 문제 해결 받았습니까?”들쑤셔도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해야 합니다.

사단과 귀신들이 세상의 부귀영화로 미혹해도 “예수님은 나의 구주 이십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담대히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십니다” 할렐루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 38-39) 할렐루야!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일평생의 고백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의 고백, 마태복음 16:16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기쁠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일평생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호세아서 6: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요한복음 17: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리스도인답게 승리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 분이 나에게 무엇을 주셨으며, 그 분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 때에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꼴짜기에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안위하심을 믿기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이 말씀을 의지함으로 영적전쟁에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승리는 내것일세' 능력, 은사, 축복. 

하나님의 손은 모든 것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목자로 부름을 받은 우리에게 그 일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목자란 그 일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에는 목자의 직분 세 가지가 있습니다. 목사, 구역장(속회장), 교사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교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너 얼마나 배웠니? 너 얼마나 잘 생겼니? 너 얼마나 건강하니? 너 얼마나 젊니? 너 가진게 얼마나 있니? 라고 묻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신분을 보고 부르시지 않았고, 그들의 지위를 보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학식을 보고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불학무식한 어부였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던 세리였습니다. 그들을 불러 그리스도인을 무참히 핍박하고 죽이던 로마를 변화시키고,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케 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하셨고, 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데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대신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무슨 재주로 설교를 하겠습니까? 학교도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하고,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이 부족한 제가 무슨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어 말씀을 전하겠습니까? 성령님께서 나를 감동하시고 종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주님께서 힘을 주시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전능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목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은혜가 없고 여름가뭄에 갈라진 논바닥같이 주님의 은혜가 식어진 자는 목자의 직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은혜가 있어야 은혜가 전달되고, 내 안에 사랑이 있어야 사랑이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자에게 기적이 나타나듯이, 내 안에 생명이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 전달됩니다. 그러니 주일날 하루 나와서 예배드리고는 결코 교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모임에 열심을 내고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 쓰고 남아서 드립니까? 생활에 쓰기에 부족함에도 나의 모든 소득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기에 마음을 드리고 믿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수요 예배에 나오고, 금요 기도회에 나오는 것도 시간이 남아서 교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음에도 시간을 만들어서 교회에 모이고, 예배와 기도에 승리자가 되고, 말씀과 은혜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능자의 말씀이 나의 가슴을 치고, 심령 깊은 곳에서 주님의 사랑이 샘물처럼 쏫아나는 은혜를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는 은혜를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킵니까? 공부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하고, 환경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박사학위가 있다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 아닙니다. 억만금의 돈이 있다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조갭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내가 먼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사모하고, 먹어야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었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드로가 밤이 새도록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졌는데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아침이 되어 허탈한 마음으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립니다. 

“주님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 결과 지난밤 내가 그토록 애쓰며 수고하였겄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철저하게 실패했던 그 바다에서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았습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13장에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내 마음밭에 떨어 질때 씨를 품고 싹을 틔우는 옥토와 같이 목사님을 통해 선포 되어지는 말씀을 “아멘 아멘” 받아먹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의 씨를 먹기만 하면 그 다음은 말씀이 나를 먹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나는 말씀에 지배를 받고, 그 말씀이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삶을 이끌어 가게 됩니다. 

뽕잎을 부지런히 먹은 누에가 많은 실을 뽑습니다. 주일이 되어도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몰라 답답합니까? 주님 앞에 나와 우십시오. 통곡하십시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우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슬피 우는 여인들에게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울어야 합니다. 에스켈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일어나는 기적을 꿈꾸며 울어야 합니다. 돌바닥에 떨어지는 컵과 같은 이시대의 아이들을 가슴에 품으며, 나에게 맡겨주신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울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보석과 같이 빗나는 아이들의 미래가 환히 보일 것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이 아이들이 세광교회와 한국교회에 예루살렘 성전을 받치는 보아스와 야긴과 같은 기둥들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0년 후, 30년 후에는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치며 복음을 전했던 웨슬레와 같이 휫필드와 같이, 디엘 무디와 같이 위대한 인물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웁시다. 나를 위해 울어야 하고, 맡겨주신 양들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면, 장성한 자가 되어서도, 늙어서도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진리와 사랑과 생명을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