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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와 총명이 넘치게 하사 (엡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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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총명이 넘치게 하사 (엡 1:3-14)


사도행전 19장을 통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특징은 사도행전 19장 2절에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여기서 ‘너희가 믿을 때에’ 란.. 에베소에는 사도 바울이 그 곳에 가기 전에 이미 예수를 믿는 신도들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믿고는 있었지만 정작 예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고, 특히 성령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사도행전 19장 9절 하반절에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와 같이 에베소 교회는 그들의 모임 장소를 두란노 서원에서 가졌습니다. 처음 석 달 동안은 회당을 이용했지만 유대인들의 반대와 핍박으로 장소를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고 사도 바울은 거기서 2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날마다 강론하니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교회의 장소가 공공장소이다 보니 교회의 예전적인 것들은 약했을 것이고 대신 말씀 교육과 훈련에 집중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을 처음 시작하면서 했던 일은 예수를 믿지만 예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던 신도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도서관인 두란노 서원에서 예수의 지혜와 지식에 대하여 가르쳤습니다. 도서관은 예나 지금이나 그 시대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문화의 산물인 문헌들을 모아 놓은 장소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바울이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예수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령의 역사 앞에서 에베소에 있는 많은 마술사들이 자신의 책을 불살랐는데 그 값이 은 오만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 은 오만 냥의 값어치는 책 한 권을 열 냥이라고 계산할 때(잠정적으로) 적어도 오천 권의 책을 태웠다는 말이고 그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집집마다 있는 책을 다 태웠다는 말이 될 정도로 정말 많은 양의 책이 태워졌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가르친 예수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그 시대의 지혜와 지식과 기술과 문화를 압도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르쳤던 것과 에베소의 신도들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배운 것, 그리고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들이 모두 ‘신령한 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신령한 복’의 핵심을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5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으니”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바로 신령한 복의 핵심적인 내용이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복은 이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13절에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어떤 말뿐인 약속이거나 심리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구체화되고 확실시되는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에베소 교회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것을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게 가르쳤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에는 마치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처음 방문 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예수에 대하여 잘 모르고 더욱이 성령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는 신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안다고는 하지만 정작 자세히 살펴보면 정확히 알지 못하고 또한 성령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는 신도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연령대를 살펴보면.. 젊은층일수록 예수에 대하여, 성령에 대하여 더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신앙인을 부모로 두고 있고 그 신앙을 물려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나이가 많고 신앙 생활의 기간이 오래 될수록 예수와 성령에 대해서 안다고 하면서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저희 아동부에서 성경퀴즈대회를 했습니다. 준비 기간을 2주로 예상 문제지가 이미 배포된 상태였습니다. 참석한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 교회가 이 지역으로 옮겨온 후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래도 교회 생활한 지 해수로 1년 이상 된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아이들이 성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복음의 기본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먼저 목회자 된 저의 책임이며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지 못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광야 교회의 주일학교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행했던 사역이 우리 주일학교에도 재현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최우선적으로 가르침으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처럼 우리 아이들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길 축원합니다. 

본문 1장 3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안’이란 ‘교회 안’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교회를 통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등식이 깨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이 곧 ‘교회 안’이라고 말하기가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왜냐 하면 교회 안에도 그리스도가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교회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고,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성도들을 찾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시대에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광야 교회 교인들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볼 때 하나 둘 발견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 1장 10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진짜 그리스도인들로 통일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각자의 지혜와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와 지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배움과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배움과 경험이라는 것은 각 개인 개인에게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성도들 또한 서로 다른 배움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배운 사람도 있고 적게 배운 사람도 있습니다. 삶의 경험이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에 대하여 대화를 할 때 보면 믿음과 말씀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성격, 지혜가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으로 각자의 배움과 경험으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통일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제 각각의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1장 8절에서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죄 사함을 믿게 하기 위해서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부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의 죄 사함의 권세를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의 의지적인 결단이나 마음의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지혜와 지식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충만하게 부어 주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가진 지혜와 지식으로는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이며 또한 각자의 배움과 경험으로 예수를 믿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의 믿음이 통일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날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 이 때에 우리 광야 교회에도 에베소 교회와 같은 복음 사역의 역사가 재실행되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게 하고 또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확신 시키는 사역이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각자의 믿음을 그리스도로 통일시키는 사역 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성령의 역사를 알게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초기 에베소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순종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더욱 잘 알기 위해서 2년 간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움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그들은 자신의 나이를 핑계대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회적 지휘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내세우지도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를 배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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