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합격하셨습니까? (막 8:27-34)

첨부 1


합격하셨습니까? (막 8:27-34)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을 함께 하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셨습니다. 

3년이 다 되어갈 무렵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졸업을 위한 구두시험을 실시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을 멀리 북쪽에 있는 <빌립보 가이사랴>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출제하신 첫 문제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이 28절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연습문제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훌륭하게 대답했습니다. 29절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마태복음은 베드로의 대답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훌륭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시면서 칭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7-18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처럼 기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이시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핵심을 정확히 알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신 빌립보 가이사랴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갈릴리에서 북쪽으로 4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알렉산더가 정복한 후에 양치기들의 신인 <판신, the god Pan>을 위한 신전이 건축되었습니다. 주전 1세기 말에 로마는 이 지역을 헤롯왕에게 주었고, 헤롯은 신전을 지어 당시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바쳤습니다. 

아우구스투스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로서 본래 초라한 시골 출신이었으나, 후에 율리우스 시저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패한 공화정을 뒤엎고 로마를 강력한 국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에게는 로마 최초의 황제라는 명예가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무렵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호적을 하게 한 <가이사 아구스도>가 바로 이 사람입니다. 모두가 이 절대 권력자를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베드로는 그 절대자에게 바쳐진 신전과 판신전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주요,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로마 황제도 따라갈 수 없는 위대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아무리 로마 황제가 대단하지만, 그도 인간이요, 결코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고백은 백 점짜리 답안이었습니다. 그는 수석 졸업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뜻밖에도 이토록 탁월한 베드로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불합격이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그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그를 책망하고 불합격시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베드로가 마지막 문제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십자가였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는 그 때까지 한 번도 말씀하지 않았던 이야기, 제자들이 깜짝 놀라 충격을 받을 이야기를 말씀하셨습니다. 

30-31절을 읽어봅시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아멘. <쉿, 조심해라. 이제 극비 사항을 알려 주겠다. 이제 때가 왔어. 내가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다. 그리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긴장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토록 은밀하게 말씀하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제자들은 머릿속이 텅 비어오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주님이 죽으신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우리가 누굴 바라고 따라다녔는가? 이 분 한 분만 보고 직업도, 가족도 다 뒤로 하고 따르지 않았는가?  이 분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참지 못하고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베드로는 불합격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태도에 기분이 상하셔서 그를 불합격시킨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유치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합격시킨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여기 <항변한다>는 단어는 본래 <강력하게 책망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조금 아까 그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이 진심이라면 그 앞에 엎드려 고개도 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예수님께 대들면서 책망하듯 하고 있습니다. 이게 그 분을 <주>로,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대하는 태도입니까? 그의 이런 태도는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신앙고백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입으로 한 고백을 행동으로 부인하는 것은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입으로는 교회에서 찬양하고 고백한 후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살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그가 이렇게 대드는 이유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으면 지금까지 그 분을 따라다닌 수고가 헛될 것을 염려했습니다. 능력 많은 예수님을 통해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데, 그 분이 죽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자기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로 섬긴 게 아니라, 베드로 자신을 주로 섬긴 셈입니다. 

자기중심적 생각은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33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말합니다. <사람의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 좀 더 구체적으로는 베드로가 하려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고 자신의 목적만 이루려는 것은 사단이 하는 짓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가 그런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하려는 <사람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는 적어도 갈릴리의 어부로 사는 것보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 좋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야 출세도 하고 성공도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게 그의 목적이요,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베드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생각이 베드로에게만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5절 이하를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들을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왕이 되실 것이고, 그 때 자신들이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다른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마가복음 10장 41절을 보면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열 두 사람 모두가 똑같았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통해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한 성공, 이게 바로 <사람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형벌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의 길을 열고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죄 용서도 없고, 형벌의 면제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고, 부활이 없으면 영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받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곳이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알 때 회개하여 용서받게 되고, 비로소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최고의 은혜, 즉 새 사람이 되는 존재의 변화를 축복으로 누리게 됩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사단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질병을 고치시니 대단한 의사로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먹이시니 그 능력으로 백성을 부양하길 원했습니다. 예수님이 힘이 있으니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의사, 사회복지사, 사회운동가, 독립운동가, 왕이 되길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사회운동을 위해 결성된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사회복지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계몽운동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도덕운동 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문화 활동을 위해 생긴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가진 최고의 사명은 십자가를 통한 죄 씻음과 용서의 메시지, 부활을 통한 생명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교회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퇴락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상실할 때 생깁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신학자 <앤서니 베이커>는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Christianity Today>란 잡지에 <복음서 이야기로 돌아가기>라는 글을 게재했습니다. 그는 <켄다 크리시 딘>과 <론 포스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자신들의 삶을 전적으로 바꾸어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무엇인가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간 대부분을 피자를 사 주는 데 썼다.> 무슨 말일까요?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강력하게 전해야만 했는데, 그것은 하지 않고 피자나 사 주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 왔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에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미국 교회들이 병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예수님의 제자학교를 졸업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모두 여기서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들의 졸업은 유보되었습니다. 후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 그들 모두는 도망했습니다. 베드로는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이나 부인했습니다. 이 모두가 십자가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언제 그들이 명실상부한 제자학교의 졸업생이 되었나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십자가와 부활을 목도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림하여 능력을 받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도할 수 있게 된 후였습니다. 사도행전 3장 14-15절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그 때서야 제자학교를 졸업한 것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하고 믿고 전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본문 34절 말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아멘.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의 일, 즉 자신들의 목적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 후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사람이 되십시오.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그 앞에 회개하십시오. 용서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이 세상을 넘어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가 서 있던 그 언덕과 부활의 동산은 모든 성도들이 거닐어야 할 성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야 합니다. 영적으로 힘이 빠질 때 십자가 찬송을 부르십시오. 보혈의 능력을 찬송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 교회와 성도들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앤서니 베이커>는 <스탠리 하우어어스>의 말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스탠리 하우어어스>는 <타임, Time>지가 미국 최대 신학자로 평가한 분입니다. 그의 말은 이렇습니다. <그런 운동에서 교회의 미래를 찾을 수는 없지. 교회의 미래는 매 주일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있네.>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매 주일 하는 똑같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예배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철저히 십자가와 부활의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교회학교에서 철저히 십자가와 부활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예배 때마다 십자가 복음이 설교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역을 위한 사역을 많이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 구원하시는 사랑을 우리는 지역에 효과적으로 나누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역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의 냄새나고 더럽던 예전 사람도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도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죄인 김 아무개로 사는 게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화면을 보시면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 모두 복음의 기본에 충실한 능력 있는 성도가 되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