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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의 결혼 (창 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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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결혼 (창 24:1-9)

(창24:1-9)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1. 평양에는 이혼율 0% 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랑보다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합의 이혼 숙려 기간이 3개월인 한국에 비해 평양에서는 1년이라고 합니다. 오랜 심사숙고의 시간이 지나도 이혼의 의지가 남아 있다면 우선 지방으로 이주를 시킨 후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게 됩니다. 

이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양과 헤어지게 함으로써 평양시민 자격을 박탈하고, 그들이 말하는 성스러운 도시 평양에 흠집을 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에게 평양시민이란 자격은 대단한 특권입니다. 지방 주민이 쌀 걱정을 할 때 평양 주민은 외식장소 고민을 한다고 합니다. 일정한 직업과 지방에 비해 풍요로운 환경 등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되는 곳이기 때문에 이혼을 한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부부 중에는 상대방이 아무리 잘못을 저지르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심지어 바람을 피더라도 혼자서 가슴앓이만 할 뿐 쉽사리 이혼이란 말을 꺼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 생활 4년째인 탈북자 이 모 씨는 “아내가 바람 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지방으로 쫓겨나기 싫어서 매일 술을 마시던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아내에게 ‘이혼할 배짱도 없는 놈’이란 소리까지 듣게 되는 경우도 봤다.”며 혀를 찼습니다. 

이같은 탈북자의 증언처럼 평양에 사는 부부 중에는 평양 시민권을 빌미로 노골적으로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영어표현 중에 ‘리노로 가자(Let's go to Reno)’란 표현이 있습니다. 리노라는 곳에서는 이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결국 이 말은 ‘우리 이혼하자’는 의미입니다. 평양에서 이혼하고 싶을 때는 “우리 지방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이 한결 수월할 것으로 보입니다.(뉴데일리, 2012년 07월 10일)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방한한 미국의 인구 고령화 전문가 폴 휴잇(Hewitt) 박사는 한국에 대해 섬뜩한 경고를 했습니다. “한국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2100년에는 인구가 3분의 1 이하로 줄고, 2200년에 140만 명으로, 2305년에는 지구에서 한국인의 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아 당시 홍수 심판으로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생명체가 멸종을 당할 뻔 했었습니다. 홍수 심판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타락한 결혼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6:1-3을 보겠습니다.

(창6:1-3)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사는 ‘셋’의 자손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마음 등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외면한 채 여자의 외모에만 치중해서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가인’의 자손들과 결혼했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후서10:7 말씀대로 자신들의 안목의 정욕을 좇아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고후10:7)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 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셋’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께서 아벨 대신에 주신 아들입니다.

(창4: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이 ‘셋’은 아벨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손이 되었습니다. 창세기4:26입니다.

(창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겸손히 고백하며 기도와 찬양, 감사가 있는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창12:8,창21:33,창26:25,대상 16:8). 이처럼 셋의 자손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인의 자손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신앙생활을 유지했었는데, 외모에 치중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딸들, 즉 가인의 자손들과 결혼하므로 가정과 사회가 부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우상숭배하는 이방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우상숭배로 인해 타락하기 시작하여 나라 전체가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인하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6:3입니다.

(창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인간 타락이 절정에 달했기 때문에(창6:11-13) 하나님이 홍수 심판으로 그 인간들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비록 심판하실지라도 120년 동안 여유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홍수로 심판하기 전에 타락한 인간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간으로 120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120년 동안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홍수 심판의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계속해서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창6:4) 하나님께서 사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실 만큼 인간을 사랑하시어 이들을 짝 지어 한 몸이 되게 하여 에덴 동산에서 행복하게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타락한 결혼으로 시작된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6:5-7입니다.

(창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 마음에 근심하셨던 것처럼, 결혼 문제로 부모의 마음에 근심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손 ‘에서’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100세가 되었을 때 ‘에서’는 40세였습니다. 그가 결혼 적령기가 되어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과 결혼합니다.  

(창26:34-35)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헷 족속”은 온갖 우상숭배로 오염되어 음란한 가나안 족속이었습니다. ‘에서’는 아브라함 이래로 간직해 온 약속의 자손으로서의 순수한 영적 순결성을 저버리고 이처럼 우상에 오염된 가나안 땅 헷 족속 여인을(창23:3) 아내로 맞아들인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는 이방 여인들이 며느리로 들어오므로 이삭과 리브가가 ‘영혼의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일부다처 행위, 헷 족속 여인을 둘씩이나 아내로 맞은 것입니다. 가나안 헷 족속인 이삭의 며느리들이 우상숭배로 오염되어 음탕한 이방 생활 방식을 시집와서도 버리지 않아 이삭과 리브가의 여간 근심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리브가가 야곱을 외삼촌 라반에게로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27:46입니다.

(창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리브가는 자신의 삶이 싫어질 정도로, 다시 말해 사는 재미를 전혀 못느낄 정도로 경건치 못한 며느리들, 방탕한 에서의 아내들 때문에 마음과 영혼의 고통이 극심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삭과 리브가는 사는 내내 영적 고통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창28: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의 가정이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결혼에 대한 것입니다. 이삭의 결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의 결혼은 아브라함 노년의 최후의 중대사이며 동시에 약속의 자손, 의인의 계보를 이어갈 중대한 혼사(婚事)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의 세대는 가고 이삭의 세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되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집사장(執事長) 엘리에셀을 불러 다음과 같이 엄숙한 맹세를 하게 합니다. 

창세기24:3-4입니다.
(창24:3-4)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1) 먼저, 이삭의 결혼을 위해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족속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이삭을 자기 혈통과 결혼시켜 순수성을 보존할 뿐 아니라 가나안 족속의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구별짓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족속의 도덕적 문란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카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고자 했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롯을 구원하기 위해 “(창18:23-24)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라며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한 명이 없어서 결국 하나님의 유황불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음란과 음탕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할 목적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상을 살펴보도록 하기 위해 두 천사를 보냈습니다. 날이 저물어 롯이 이들을 집으로 영접했는데 이를 목격한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롯의 집에 모여 들어 에워싸고 그 두 사람을 내놓으라며 이렇게 외칩니다. “오늘 저녁 네 집에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상관하겠다.” 

여기 ‘상관하겠다.’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야다’인데 남색(男色), 남창(男娼), 동성애를 의미합니다. 본래 ‘소돔’(sodomy)이라는 이름은 남색을 의미합니다. 그 성의 이름이 ‘소돔’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그만큼 그 성 주민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것입니다. 소돔성은 창녀촌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소돔성에 만연한 동성애는 분명히 하나님의 창조 질서(창2:24)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가증한 죄악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레위기20:13, 로마서1:26-27, 고린도전서6:9입니다.

(레20:13)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롬1:26-27)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이렇게 누구를 가리지 아니하고 동성애를 즐기겠다며 롯의 손님으로 온 사람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이에 롯이 나가 부탁합니다. “여러분, 부탁입니다. 제발 이런 악한 짓은 하지 마시오. 나에게 시집가지 않은 두 딸이 있습니다. 그 딸들을 당신들에게 내어줄 테니 당신들 좋을 대로 하시고 이 사람들에게는 제발 아무 짓도 하지 말아 주시오. 이들은 내 집에 온 손님들입니다.” 

롯이 손님을 보호하기 위해 약혼까지 한 자신의 두 딸을 성적 노리개로 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위가 될 소돔 사람 역시 자신의 약혼녀의 순결성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반영한 것입니다.(창19:14). 

이렇게 아브라함의 조카 롯마저 성적으로 문란한 소돔 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롯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돔 성 백성들은 막무가내로 롯을 밀어붙이며 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올 기세였습니다. 그때 안에 있던 그 두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은 다음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모조리 어둡게 하자 그들은 문을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롯에게 말합니다. “이 곳에 너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느냐? 네 자녀나 사위나 그 밖에 다른 친척이 이 성 안에 있으면 그들을 모두 성 밖으로 나가게 하라. 우리가 이 성을 멸망시키겠다. 이 성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으므로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망시키려고 우리를 보내셨다.” 

그래서 롯이 나가서 자기 딸들의 약혼자들에게 ‘너희는 빨리 이 성에서 떠나라.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 심판으로 멸망당했습니다. 롯과 그 두 딸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겨우 구원받아 소돔 성에 나와 심판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 성의 음란과 음탕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해서 후손을 이어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근친상간의 죄악을 서슴지 않을 만큼 이미 롯의 두 딸은 성적 문란에 깊숙이 물들어 있어 있었던 것입니다. 창세기19:30-33입니다.

(창19:30-33)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렇게 근친상간의 죄악으로 태어나게 된 후손이 바로 모압과 암몬 족속입니다.

(창19:37-38)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익히 알고 있던 아브라함인지라, 가나안 족속 중에서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지시킵니다. 신명기7:1-4입니다.

(신7: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것도 혼합되지 않은 순수하고 순결하며 거룩한 것을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신앙과 생활의 성결을 위해 육축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옷도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19:19-20입니다. 

(레19:19-20)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무릇 아직 속량도 되지 못하고 해방도 되지 못하고 정혼한 씨종과 사람이 행음하면 두 사람이 형벌은 받으려니와 그들이 죽임을 당치 아니할 것은 그 여인은 아직 해방되지 못하였음이라.

(신22:9-11) 여러분은 포도원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 작물과 포도를 다 제사장에게 압수당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매어 밭을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을 섞어 짠 옷을 입지 마십시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여 종종 호랑이와 사자를 교합시켜 이른 바 ‘라이거’를 생산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순수한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신앙, 그리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혼합시키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그만큼 순수한 신앙과 생활의 성결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매어 밭을 갈지 말라.’는 것은 이 두 짐승이 보폭과 힘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짐승을 한 멍에에 묶는다면 온전히 밭을 갈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성도가 세속화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이 말씀대로 행하여 순수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나님의 기뻐하시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신자가 불신자와 함께 멍에를 메지 말도록 경고한 것입니다.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참조-고전7:14-16)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것은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매어 밭을 가는 것’처럼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날로 변하는 세상 도덕이나 윤리에 따라 살지 말고 그것들을 지혜롭게 구별하여 거룩한 하나님 말씀대로 생활하여 순수하고 순결한 믿음을 간직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사시기 바랍니다. 

2) 다음으로, 이삭의 결혼을 위해 아브라함이 “(창24:3-4)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고 하자 늙은 종이 이렇게 묻습니다. “(창24:5)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이에 아브라함이 “(창24:7-8)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 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고 늙은 종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고향 친척 가운데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 오되 어떤 경우에도 이삭을 고향, 하란 땅으로 데려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가리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절대 주권자이시며(느 9:6), 인간의 운명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음을 고백하는 말로 하나님께서 이삭의 결혼에 대하여서 조차 직접적으로 섭리하여 주실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확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삭의 결혼은 단순한 혼인이 아니라, 약속의 자손으로 아브라함 자신에게 약속하신 바 “큰 민족을 이루게 하며,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 되리라.”(창12:2-3)는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중대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결혼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 아래 진행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까지는 800km가 넘는 거리로 20여일이 소요되는 먼 거리입니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늙은 종이 찾아와 그곳에서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여인의 몸으로 일가 친척과 친구들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 낯 모르는 사람을 따라 낯선 땅으로 따라 나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신부 될 여인이 신랑 될 사람의 얼굴이나 구체적인 정보도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선뜻 따라오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내 아들을 그리고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거하고 있는 이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이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셨고 또한 이 땅을 ‘네 씨’, 곧 내 아들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결코 아들을 데리고 그리고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너보다 앞서 사자를 보내실 것이다.’는 것입니다. 아들 이삭의 며느리를 구하러 가는 늙은 종의 길을 친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 여자가 따라 오지 아니하면 그 여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난 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약속의 땅을 떠났다가 큰 낭패를 겪었던 아브라함인지라, 자신과 자신의 후손이 함께 받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또 다른 지시가 없이는 가나안을 떠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창12:10-20;20:1:7)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전에 인간적인 생각을 좇아 행동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이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말씀만을 좇아 행동하는 그의 성숙된 신앙 인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오려는 여자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서 이삭의 아내 될 자를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이는 마음의 소원과 일의 계획은 인간에게 있을지라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아는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말입니다.(잠16:1) 

3) 아브라함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를 예비하시고 앞서 인도하시라’는(창24:7) 믿음대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친족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 과정을 낱낱이 브두엘에게 말하며 엘리에셀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창24:48)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브두엘과 그 아들이 결국 가부를 말할 수도 없이 리브가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창24:50-51)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순수한 믿음의 혈통 가운데 정결한 처녀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맞이하게 되고, 그 친족들이 리브가를 보낼 때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라.’(창24:60)는 예언적 축복대로 ‘열국의 어미’ 사라에 이어 ‘천만인의 어머니’ 리브가가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신앙의 순수성과 생활의 성결함을 지키는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호세아2:16-20입니다.

(호2:16-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 날에,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성결함을 받게 되는 그 날에, 다시는 바알 우상을 두고 내 남편이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내 남편이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에게 장가든다.’는 말씀은 과거 우상을 남편으로 섬기다가 돌아서서 하나님과 재혼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결혼, 새 장가든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처럼 우상으로 인해 행음했던 불결한 여자로 생각하지 않고, 순수한 처녀로 인정하여 새로운 결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고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너를 영원히 내 아내로 삼아 너에게 신의와 사랑과 자비를 베풀고 진실함으로 너를 맞을 것이니 네가 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들이 성취되어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성결함을 받아 거룩하고 빛나며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어린양의 신부들이 되었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공중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어린양의 신부들입니다. 요한계시록19:6-9을 보겠습니다.

(계19:6-9)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그러면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내,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의 신부는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요한계시록14:1-5을 보겠습니다. 

(계14:1-5)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어린양의 신부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려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야 합니다. 이 말씀은 몸과 생활의 성결과 더불어 하나님과 어린양에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켜 우상 숭배와 배교를 하지 않은 성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성결함은 입은 성도 여러분은 정결한 신부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아무리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 말씀대로 끝까지 사는 성도라야 거룩하신 어린양의 신부인 것입니다. 

또한 몸과 생활이 정결하며 세상에 있는 동안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순결한 신앙을 간직한 자들이 어린양의 신부입니다. 이삭의 결혼을 거룩함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내이며,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의 신부되신 성도 여러분의 삶을 거룩하고 성결함으로 인도하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함께 하도록 아브라함과 같은 순결하고 성결한 결혼을 준비하는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으신 성도 여러분에게 성결한 믿음과 생활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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