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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 (엡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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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 (엡 5:8-14)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로빈샤르마)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음을 터뜨렸지만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죽을 때,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겠지만 당신 자신은 웃을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개척하고 섬기던 교회를 떠나 부천으로 올 때 성도들이 와서 웁니다. 가지 말라고 울면서 애원합니다. 참 고맙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사가나 보라 짐 실러 오는 차 앞에 눕겠답니다. 할 수 없이 못 가겠다 연락하고 주저앉았습니다. 그 후 동광교회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위임투표를 하여 위임 목사로 청빙을 받고 온지 30년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물러갈 때 울어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어떻게 되어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 빛의 열매가 주를 기쁘시게 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절)
  
하나님은 빛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3-4)
  
빛은 무료입니다. 해가 돈 받고 빛을 팔지 않습니다. 그 빛은 값없이 받아 누립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궁전에나 오막살이에나 차별 없이 비쳐줍니다. 빛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습니다. 빛은 좋은 일을 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빛입니다. 어둠 같던 사람이 빛 같은 사람처럼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수의 탄생은 곧 빛의 출현이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4:16)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시27:1) 
  
다윗이 “여호와를 “나의 빛”이라고 했던 때는 사울왕의 칼을 피해 숨어 살 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빛이라고 한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의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나의 빛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행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8:12)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님 따라가면 주님이 나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어둠에 다니지 않습니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어둠의 열매가 있습니다. 육체의 일이 어둠의 열매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과 그와 같은 것이라”(갈5:19-21)
  
빛의 열매가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9절) 

착함은 마음이 곱고 어진 것입니다. 착함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착함은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증진시키는 행위입니다. 
  
의로움이 빛의 열매입니다. 의로움은 올바른 관계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규범에 부합하는 행위가 의로움입니다. 
  
진실함이 빛의 열매입니다. 진실함은 확실성 진실성을 기본으로 내포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목사님이 말하기를 다음주일은 거짓말에 대해서 설교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 17장을 읽고 오십시오. 다음주일 설교를 시작하기 전, 마가복음 17장을 읽고 오신 분 손들어 보세요. “마가복음은 16장 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거짓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사2:5) “...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요12:36) 빛의 열매로 주를 기쁘시게 하기 바랍니다. 

  
󰊲 책망의 열매가 주를 기쁘시게 합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11절) 
  
책망은 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나 받지도 않습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잠9:8)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책망을 듣고 화를 내는 사람은 상대방의 책망이 옳다고 인정하는 꼴입니다. 깊은 생각이 있는 사람은 칭찬보다 책망을 고마워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의 설교는 죄를 책망하는 설교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꼬집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7-10)
  
사도들 중 베드로처럼 책망 받은 자가 없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23) 베드로가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은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 사람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다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8)
  
일본 전산 나까모리 사장의 경영철학은 호통경영으로 유명합니다. 자기가 젊어서 회사 다닐 때 책망으로 들으며 컸다는 것입니다. 정말 잘했는데도 한 번도 칭찬을 못 받았습니다. 그는  칭찬하면 거기 멈추고 만다. 더 책망해야 더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달콤한 칭찬이 아니라 눈물이 쑥 빠지게 꾸짖는 데도 직원들의 불만이 없습니다. 믿을만한 직원을 더 꾸짖고 꾸짖음으로 사람을 키우고 회사를 키웁니다. 나까모리 사장은 칭찬만 하면 바보나 양산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크는 사람은 혼나면서 큰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꾸중을 들으면서 “발전적 반발심”을 가져야 제대로 클 수 있습니다. 
  
책망해야할 사람을 보고도 내버려두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부족한 탓입니다. 예로부터 “못된 부모 밑에서 효자 난다.”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야단 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사람다운 사람 못됩니다. 성경 말씀도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잠27:5) 하였습니다. 책망을 받고 열매를 맺어 주께 기쁨이 되기 바랍니다.  

  
󰊳 깨어남의 열매가 주를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날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비추시리라”(14절)
  
주님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잠자는 자입니다. 잠자는 자란 죽은 자 같은 사람입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쇠붙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평생 면도날이 되고자 애썼다.” 투박한 쇠붙이 같은 나를 예리한 면도날이 되기를 힘써 왔다는 간증입니다. 
  
산에 올라 바람에 흔들리는 숲을 보았습니다. 다 흔들리는데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죽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 없다면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은 잠자지 말고 깨어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어떤 제자가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랍비님!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나요?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기도 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경주의 어떤 절간 바로 옆의 개척교회에서 기도 소리 찬송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주지 스님이 누가 가서 좀 조용히 하라 해라! 하니 동자 스님이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하고 나갔습니다. 갔다오더니 말하기를 주지 스님 제가 교회 가서 놀랬습니다. 교회 때문에 절이 유지되는 걸 알았습니다. 그들이 기도 하기를 “절망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 절이 잘되는 이유는 교회가 기도해줘서 였습니다.” 우리도 기도합시다. 절망하지 않게 기도합시다.
  
꺼진 불은 불이 아닙니다. 불은 타고 있을 때만이 불입니다. 죽은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신일 뿐입니다. 믿음도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청년이 죽어 장례 지내러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사 시신을 향하여 청년아 일어나라! 고 소리쳤습니다. 죽은 청년이 살아 일어났습니다. 과부인 그의 어머니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60:1)
  
죽은 자가 깨어나고,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면 주님의 기쁨이 됩니다. 무지와 불신앙에서 깨어나고 육신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뿐더러 할 수도 없습니다(롬8:5-7).

빛의 열매가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착함, 의로움, 진실함의 열매를 주님의 기쁨 되시기 바랍니다. 
책망의 열매가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책망의 목적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고자 하심입니다(골1:22).  

감독도 책망 받을 일이 없어야 합니다. 집사도 책망 받을 일이 없는 자라야 합니다(딤전3:1-10). 

깨어남의 열매가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깨어남은 깨달음입니다. 깨닫지 못할 때는 잠자는 자요 죽은 자였습니다. 깨어남은 살아남이요, 다시 일어남입니다.
 
“나 주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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