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난다 (행 22:2-11)

첨부 1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난다 (행 22:2-11)


이북에서 배를 타고 온 가족이 월남한 김 만철 가족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가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 그리고 강의할 때마다 받은 강사료를 합하니 7억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따뜻한 남쪽 나라가 그리웠다고 말하면서 월남한 것입니다. 군에서 헬기를 빌려 주어서 남쪽을 돌다가 남해 해변가 땅을 보았습니다. 그 곳에 7억원으로 양어장을 만들 자리를 찾았습니다. 포크레인이 와서 양어장 공사를 할 때였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오더니 말했습니다.

“허허! 무엇을 하나?”

“양어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재림할 때가 가까운 데 양어장이 무슨 필요가 있나? 기도원이 급해.”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이상합니다. 그 곳에 포크레인 기사도 그 할아버지를 보지 못 하였습니다. 옆에 식구들이 있었는 데 그들도 보지 못 하고 대화하는 소리를 듣지도 못 하였다는 것입니다. 신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급작스럽게 양어장 공사를 기도원 공사로 바꾸어 기도원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김 만철 그 분이 내가 부산 감림산에서 집회하는 데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이 우리 기도원에서 집회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일 텐데 와서 집회 부탁합니다.”

나를 초청하려고 남해에서 부산으로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감림산 기도원 이 옥란 원장, 아내 그리고 나 셋이 그 기도원을 방문하여 하룻밤을 잤습니다. 아내와 원장님이 같이 한방을 사용하고 나는 김 만철과 나란히 한 방에 누웠습니다. 그 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강 목사님! 나는 지금도 신비해요. 그래서 지금도 어디에 강연 부탁을 받으면 그 할아버지가 있나 찾고 있어요.”

이 말을 듣고 내가 말했습니다.
“그 할아버지를 이제부터 찾지 마세요.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예요. 이 땅에 안 계세요. 같이 대화를 나누었는 데 옆 사람들은 보지도 못 하고, 듣지도 못 했잖아요.”
내 말을 듣고 김 만철이 말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리고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그 후 그는 어디에 가서 간증할 때마다 ‘머리가 하얀 할어버지가 나타나서’ 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가 나타나서’로 바꾸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바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의 예수 믿기 전에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의 뜻은 <가장 큰 자>입니다. 바울의 뜻은 <가장 작은 자>입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가장 큰 자가 가장 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스스로 가장 큰 자라고 여길 때에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할 때 그를 가장 큰 자로 여겨주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에게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단인 줄 알았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가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믿는 이들은 모세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주장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데 동참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핍박하였습니다. 신앙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이 곳 저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가장 도망을 많이 간 곳이 소아시아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다메섹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곳까지 따라가서 핍박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강력한 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빛이었는 지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하늘에서 예수님이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려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땅에 엎어진 채 물었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그리고 다음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바울이 다시 물었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하늘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바울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상한 것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의 특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귀가 다릅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갈 때 혼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몇 명인지는 모르지만 동행인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주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가는 동행인들은 그 음성을 듣지 못 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소리는 다 들어도 하늘의 소리만은 못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만은 하늘의 소리를 듣고 생생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귀가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영의 소리입니다. 느낌이 다릅니다.

2.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눈이 다릅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바울과 같이 빛을 보았습니다. 똑같이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한 빛이 있으면 특별한 일이 있을 징조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빛이라고 여겼습니다. 천사들도 빛의 천사라고 말했습니다. 놀라운 빛이 임하였습니다.

어둠속에 빛이 들어오면 놀라운 빛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6) 빛이 가장 강한 정오에 눈이 멀 정도의 빛이 임하였습니다. 
그 빛을 보고 바울은 7절에 엎드려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보면 엎드려진 것이 아니라 꺼꾸러졌습니다. 쓰러진 것입니다. 강력한 빛이었음을 암시하여 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바울만 눈이 멀었습니다. 동행인들은 일반 빛을 보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같이 빛을 보았지만 바울에게만 신비의 빛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빛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빛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사람에게만 강력한 체험을 주셨습니다.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바울은 그 빛으로 인하여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같이 가던 동행인 손을 붙잡지 않고는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눈이 멀었었는 데 그 후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눈이 멀지 않았는 데 영의 눈은 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빛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제부터 이방의 전도자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이런 체험을 하는 순간 앞뒤, 좌우로 꼼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아~”소리 한번 못 하고 그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중세기 시인 알게스시레우스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천만 번 베들레헴에 탄생하셨다 하더라도 내 속에 예수님이 탄생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영의 귀가 열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몇 년전에 쏘련 상공에 글씨가 나타나서 3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회개하라.”
그 후 쏘련 경찰들이 성경을 불태우려고 압수하였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서 도로 다 돌려 주었습니다. 1000만권이나 되었습니다.

스웨덴에서도 이상한 일이 있었다. 철야기도 시간이었습니다. 300명 가량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앞에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모두가 똑똑히 보고 믿음이 새로워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영의 음성을 듣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신비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울이 바울된 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은 단 한번도 선교사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꿈에도 예수를 믿고 싶다고 생각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위한 사도가 된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신비로 붙들었는 지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에는 거절할 변명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둔 하여 못 합니다.”
“나는 능력이 없으니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그러나 바울은 한 마디 뒤로 뺄 상황이 아닐 정도로 강력하게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50년 동안 서울에 살면서 뚝섬에 와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 오는 날이 첫 번 뚝섬을 본 날이었습니다. 한번도 이 곳에서 목회하리라고 생각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단 한번도 감독회장 출마를 생각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신 이 호문 목사님이 목사가 된 이야기를 하여 주셨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이 성해 목사님이십니다. 이북에서 피란나와서 평생을 혼자 사신 분이십니다.
이 호문 목사님이 어렸을 때 충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이 그를 꼼짝 못 하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책상위에서 아버지 돈을 훔쳐서 맛있는 것을 사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9절부터 30절까지를 찾아 읽어라.”
이 호문이 성경을 찾아서 읽었습니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어느 손으로 돈을 훔쳤니?”
그는 오른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이 손입니다.”
아버지는 왼 손에 칼을 들려 주시면서 말했습니다.
“네 오른 손을 잘라라.”
호문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칼을 내려고 놓고 빌면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다시는 안 그럴 터이니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아버지가 성경을 달라고 하시더니 읽으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이 말씀을 읽으시고 말했습니다.
“호문아!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 죽으셨으니 십자가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사함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너는 팔을 안 잘라도 된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강력한 은혜였습니다. 그런 은혜가 오늘 들리고 보여지기를 원합니다.
조금 더 본문을 상세히 보려고 합니다. 6절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려져 들으니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한 암시입니다.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만일 멀리서 일어났다면 바울은 먼 거리를 눈이 먼채 걸어야 했습니다.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을 계산하시면서 기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정쯤되었습니다. 12시경입니다. 하루 해 중에 가장 빛이 날 때입니다. 그 빛보다 더 큰 빛입니다. 빛중에 빛이었습니다. 가장 강한 빛일 때 빛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얼마나 강한지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홀연히 빛이 임하였습니다. 갑자기 빛이 쏟아졌습니다. 순식간에 되어진 사건입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라는 말입니다. 빛을 밝은 빛, 어두운 빛이라고 말하지 큰 빛, 작은 빛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눈이 멀 정도의 빛입니다. 우리는 땜질할 때 인부들이 눈에 쓰는 큰 눈가리개를 종종 봅니다. 그 빛을 그냥 보면 눈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 금성이 지구와 태양 가운데 들어 왔습니다. 앞으로 그런 모습을 보려면 105년 지난 2117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려고 눈에 검은 안경을 쓰고 하늘을 쳐다 보았습니다.

‘나를 둘러 비치매’ 동행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만 그 빛이 둘러 비쳤습니다. 바울만 눈이 멀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바울만 쓰러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빛은 보았는 데 눈이 멀쩡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장수 무대를 본 적이 있습니다.
90세 넘은 시골 할아버지가 방송국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무대위에 섰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생전 처음으로 밝은 조명 밑에 섰습니다. 사회자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건강의 비결은요?”

그리고 마이크를 주었습니다. 마이크를 받아 들고 “내 건강의 비결은 요.”말하는 순간 쓰러졌습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고 시청자들이 놀랐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강한 빛과 대중으로 인한 스트레스였습니다. 생방송이라 숨길 수 없었습니다.

바울을 중심으로 그렇게 빛이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바울만 신비체험을 하였습니다. 바울 중심으로 역사가 움직였습니다. 그 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 지 성경은 단 한 마디도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오직 바울의 행적만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만 주시하십니다.

여러분은 단체 사진을 볼 때 누구부터 찾나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어도 자기 얼굴부터 찾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다음입니다. 운동장에 가서 수 천명이 마스게임을 할 때 자기 자녀가 있으면 스탠드에서 자기 자녀만 찾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하늘에서 관심있는 사람만 보십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섰습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가 예수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중에 예수님은 딱 한 명 삭개오만 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 집에 가셔서 하룻밤을 주무셨습니다.
예수님인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역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 지 단 한명도 더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중풍병자 한 명을 지붕을 뜯고 내렸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믿음으로 고침받으려고 침노하는 그 사람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보시는 분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특별하게 하나님이 보시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주시고 보실가요? 상한 심령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하나님은 만나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중심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 주인공들이 바로 여러분 한 분 한 분이십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주님이 해결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3.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 나게 하셨습니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바울은 엎드려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오뚜기는 넘어뜨리면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의인은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납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스탠리 스타인(Stanry stein) 이야기입니다.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머리가 빠지고 눈썹이 빠졌습니다. 손이 문드러졌습니다. 코도 없어졌습니다. 급기야 눈이 멀었습니다.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기도하였습니다.

한번 굳세게 마음먹고 살아 보기로 작정하고 작가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책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작가가 되는 법>이라는 책을 샀습니다. 자기가 읽을 수 없으니까 읽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손가락이 없어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녹음기에 녹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나는 잃어버린 것을 보고 슬퍼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간다.”
놀라운 작가 되었습니다.
넘어진 자리가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이 달라도 다릅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한 바울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지 알게 됩니다.

1.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귀가 다릅니다.
2.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눈이 다릅니다.
3.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 나게 하셨습니다.

링컨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 1809-1865)이 젊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주의회 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낙방하였습니다.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낙방하였습니다. 이렇게 몇 번 낙방을 거듭하였습니다. 링컨은 철저하게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은 링컨을 보면서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저러다 링컨이 자살하는 건 아니냐?”
링컨 친구들은 링컨에게 비상한 관심을 기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낙선하던 날 링컨은 머리를 말끔히 깍았습니다. 목욕도 하였습니다. 고급 음식점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자기가 자기에게 외쳤습니다.
“오늘 떨어졌어도 내일 다시 할 수 있다, 부활의 주님이 도우실 것이다.”

그 때 링컨은 그 때 자기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재기할 수 없을 것만같은 심정이다. 나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있다.”
그러나 넘어진 자리에서 그 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정치하였습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남다른 눈으로, 남다른 귀를 가지고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