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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와 염려의 함수관계 (빌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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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염려의 함수관계 (빌 4:4-6)

옛날에 유월절을 앞두고 한 사람이 랍비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님, 저는 너무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 무엇이 그렇게 걱정이요? 예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걱정입니다. 골머리가 아파 못 살겠습니다.”랍비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유월절이 다가오는데 무교병 살 돈도 없고 포도주 살 돈도 없고 자기옷 살돈도 아내옷살돈도  자녀옷 살돈도  고기살 돈도 없다고 온통 없는 것 뿐이 없는 것이 걱정이요 염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물었습니다. “무교병은 얼마요?” “5000원입니다.” “포도주는 얼마요?” “1만원이요.” “자네 옷은?” “5만원이요.” “아내 옷은?” “10만원이요.” “자녀옷은?” “3만원이요.” “유월절 고기값은?” “2만원이요.”

이 말을 들고 랍비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골머리 아픈 자네의 문제를 해결해 줄까? 네 물론이지요. 
그래 그럼 지금 걱정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얼마가 필요한가? 
21만5000원입니다 
그럼 이제 자네는 돌아가서 그 모든 것을 걱정하는 대신 한 가지만 해보게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그 21만5000원을 채워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일세..

여러분,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큰 일 났다고 늘 염려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큰 일 날 걸 믿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실상 매우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가게 됩니다. 

큰 일 났다고 염려하며 사는 사람은 늘 상 어떤 일을 만나도 작은 일을 만나든 큰 일을 만나든 큰 일났다고 호들갑 대며 염려하고 근심하고 안절 부절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 속에서는 염려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염려가 더 큰 염려를 낳게 되고 결국 그의 삶은 더욱 많은 염려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큰 일 날 걸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똑같이 큰 어려움을 만나고 힘든 일을 겪게 되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지금 이 큰 어려움보다 더 큰 일을 이루실 걸 믿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그의 믿음과 기도대로 하나님이 반드시 그의 삶에 더 크고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주심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보다 항상 더 큰 기적을 낳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따라해 봅시다. 염려는 더 큰 염려를 낳고 기도는 더 큰 기적을 낳는다. 

오늘도 주님 앞에 오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큰 일 났다고 염려하며 안절 부절하고 늘 근심과 걱정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까?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큰 일을 행하여 주실 것을 믿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기적을 경험하기 원하시는 사람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즐겁고 행복한 날도 있지만 어렵고 힘든 일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 주어질때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가 문제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을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의 삶은 분명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렵고 힘든 일, 걱정스럽고 낙심스러운 일들을 만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6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울사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아무리 염려할 만한 일을 만나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하며 간구할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따라 여러분 모두 앞으로 펼쳐지는 인생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해 큰 일을 행하여 주실 것을 믿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기적과 응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며 살아가고 싶어도 때로는 염려가 우리를 사로잡아 기도하지 못하게 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빌4:6절을 다시 보실까요? 
사도 바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여러분, 평생 바울만큼 그토록 심한 고생과 힘겨움속에서 인생을 산 사람이 있을까요? 그는 복음을 위하여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주를 위해 매 맞음과 배고픔과 추위를 기쁨으로 견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사람이었기에 때로는 걱정하고 염려하며 좌절하고 낙심하는 순간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그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보낸 오늘 빌립보서 4장6절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중의 중요한 부분은 바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에서 아무것도라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도 대부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났을 때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할만한 일들을 만났을 때는 누구나 염려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누릴 수 있는 행복이요 특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 사람 모두가 염려되고 고민되어서 다 나자빠지고 의기소침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그 때 그렇게 염려할만한 일들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만나게 되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니 오히려 염려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요14장1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벧전5:7절 말씀에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들이 다 염려하고 좌절하고 낙심하여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그때 우리의 염려를 맡겨버릴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요 특권입니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도 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고 절대 누릴 수 없는 이 행복과 특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이 사실에 가슴이 벅차 오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염려가 되고 어려움이 있고 낙심이 되는 순간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처럼 똑같이 염려하며 좌절하고 낙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여러분을 무겁고 하고 힘들게 하고 좌절케 하는 그 무거운 염려와 근심이 무엇입니까? 
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저는 해결해 드릴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해결해주실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염려하지 말고 나에게 맡기라고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심을 생각하며 오늘 이 아침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지는 빌4:6절 말씀에서 바울은 염려에 대한 말씀에 이어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염려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7절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간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또 다시 염려가 우리를 엄습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염려의 바이러스가 침투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의 백신이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염려로부터 지켜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낙심으로부터 지켜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를 좌절로부터 지켜준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실망하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좌절하지 않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가 우리를 염려와 좌절과 낙심과 실망과 패배로부터 지켜줄 것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꼭 기억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와 염려의 함수관계입니다. 
여러분, 기도와 염려의 함수관계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함수관계에는 정비례관계와 반비례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도와 염려의 함수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정비례관계일까요? 반비례관계일까요? 반비례 관계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도가 늘어날수록 염려는 줄어들고 염려가 늘어날수록 기도는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염려는 줄이고 기도는 늘려야 한다는 원칙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봅시다. 염려는 줄이고 기도는 늘리자.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그렇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염려를 0%로 기도를100%로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그렇게 쓰여져 있습니까? 6절입니다. 바울 사도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어로 낫애니팅 쯕 낫팅 0입니다. 즉 그 어떤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염려의 수치를 0%로 만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일 에브리띵 즉 우리의 삶에 100%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와 염려의 관계는 마치 시소의 원리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시소 다 타보셨죠? 
시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한쪽의 무게가 무거워 내려가면 한쪽은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기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염려는 내려가고 염려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기도는 내려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동안 여러분의 삶의 무게 중심을 어느 쪽에 두고 살아오셨습니까? 우리가 기도에 무게중심을 많이 둘수록 다시 말해 기도하는 삶을 살수록 우리의 삶에 염려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우리의 삶에 염려에 무게중심을 둘수록 우리의 기도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을 기억하셔서 어떠한 일을 만나든 염려대신 기도를 선택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처럼 삶의 무게를 기도에 두고 평생을 살았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기도로 대통령이 되었고 기도로 대통령직을 감당하였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관하여 쓴 전기 중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바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입니다. 
여러분, 백악관은 원래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정치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 링컨은 백악관을 기도하는 정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기도하는 정치는 결국 가장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로 길이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링컨은 1863년 4월30일 목요일을 ‘금식 기도일’로 선포하고 온 국민의 동참을 호소했었습니다. 
한번은 인기 배우 제임스 머독이 링컨의 초청으로 백악관에 머물다 새벽에 링컨의 기도 소리에 잠을 깬 적도 있었습니다. 또한 링컨은 병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종종 전쟁터를 찾았는데 그때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는 시간이면 사령부 막사 입구에 ‘하얀 손수건’이 내걸리곤 했습니다.
링컨은 전쟁이 끝난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같은 명장이 없었음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이 처한 곳을 기도실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링컨처럼 우리에게 좋은 조건이 없음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리하고 즐거운 상황이 아니라 열악하고 힘겨운 상황이 주어진 것이 다행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렵고 힘든 때 믿고 의지하고 모든 어려움을 내어 맡길 수 있는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우리는 기도와 염려의 함수관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반비례관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염려가 사라지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염려하는 대신 우리는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의 기도가 게을러지고 느슨해지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매사에 염려하며 낙심하며 좌절하는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빌4:6절의 바울의 선언처럼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김으로 줄이고 아니 0%로 만들고 기도를 100%로 만드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럴 때 앞으로 펼쳐지는 여러분의 생애는 분명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부어주시고자 하시는 모든 축복과 은혜가 가득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고백할 나날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염려를 줄이고 기도를 늘임으로 이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들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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