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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림받은 사람 (삼상 1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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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사람 (삼상 15:24-31)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결혼 후에는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직장생활하면서 직장에서 버림받을까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늙어서는 자식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이 심해지면 하나의 신경정신과적 질병이 됩니다. 소위 ‘경계선상의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버림받음을 상상하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성격장애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퇴근이 늦어지거나 출장 중에 연락이 없을 때 나를 버린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깊은 우울을 겪습니다. 그러다 더 심해지면 충동적이고 파괴적 행동을 시도하기도하고 알콜 중독이나 자살충동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버림받음은 인간을 정말 두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남다른 버림받음에 대한 두 움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시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 떨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시지 않았을까 두려워 떨 때가 있습니다. 힘들고 지쳐있는데 하나님마저도 자기 곁에 계시지 않은 것 같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시지 않았을까 두려워 떨 때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도 이런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시 22:1-2에서 이렇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신 것 같아 괴로워 절규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하나님께 버림받는 두려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고 또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물론이고 믿음이 강한 사람들도 하나님께 버림받는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현대 복음주의 운동의 거장 존 스토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난의 진짜 쓰라림은 불행 그 자체도 아니고 고통이나 그것의 부당함도 아니다. 바로 그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고통은 참을 만하지만 외견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무관심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견디기 힘 드는 것은 불행 그 자체가 아닙니다. 고통 그것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불행이 깊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통이 극심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 않으신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쉽게 하나님의 자녀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 41: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신 것처럼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도 사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쉽게 하나님의 자녀를 버리실 수 없습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하나님의 버리심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느끼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느끼는 영적인 혼란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버리시지 않습니다. 결코 일방적으로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실제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 혼자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

삼상 13장을 보면 사울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의 영에 이끌리어 암몬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자 내친김에 이스라엘을 핍박하던 블레셋을 공격하여 자기들 땅에서 내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뜻대로 전쟁에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없는데 이스라엘 안에 주둔하고 있던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했습니다. 적이 적은 수였기에 쉽게 전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이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도 두려워 떨며 도망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겨우 군사가 600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백성의 동요를 막기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초청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정한 시일인 7일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사울은 왕인 자기가 제사장만 할 수 있는 제사를 집정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삼상 13:13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셨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에서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울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겸손하던 사울이,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던 사울이 왕이 된 후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블레셋을 공격하고자 나섰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사를 드리려 하지 않고 제 멋대로 제사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가 마음으로 벌써 하나님을 버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먼저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이며 노벨상 작가이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알려진 솔제니친은 1983년 템플턴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수상식에서 이렇게 수상소감을 말했습니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오래전에, 그러니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몇 분의 어른께서 러시아에 닥친 큰 재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게야! 그래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잖아?' 

그때부터 나는 거의 50년간을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하는데 소비했다. 그런 도중에 나는 수백 권의 책을 읽었고, 수백 명의 개인적 증언을 수집했으며, 이미 대격동의 파편들을 정리하려는 노력으로 여덟 권의 책을 써 냈다. 하지만 만일 오늘날 네게 6천만의 백성들을 집어삼킨 이 파괴적인 혁명의 주요 원인을 정확히 표현하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이 말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게야 ! 그래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잖아?‘

그렇습니다. 러시아는 한 때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자들이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러시아는 파괴되어갔습니다. 러시아인들이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리기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

삼상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사울에게 보내셔서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었습니다. 우선 군대를 모집했습니다. 이 때 모인 군사가 보병이 20만이고, 유다 사람이 1만명이었습니다. 사울은 이 대군을 이끌고 아말렉을 공격했습니다. 결과는 대승이었습니다.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말렉 족속의 남녀노소를 진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말렉의 가축 중 쓸모없고 형편없는 것들 모두를 다 진멸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사울은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수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의 가축을 모두 진멸하라 명하셨는데 사울은 아말렉 가축 중 좋은 것 기름진 것들을 감추어 놓았던 것입니다.

삼상 10-11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버리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사울이 또 다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15:23을 보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제사 드린 후에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벨과 함께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한 분노 때문에 살인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잊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우선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가인 자신을 하나님께서 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인을 거절하신 것은 그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행동으로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됩니다.

결정적 이유

사울은 앞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5:23을 보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의 반응이 기록되어있습니다. 24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사울이 제일 먼저 보인 반응은 변명입니다. 물론 자기가 범죄하였다고 했지만 이것은 진정한 통회의 회개가 아닙니다. 단지 입술의 회개일 뿐입니다. 그리고 바로 죄의 책임을 백성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아직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변명으로 잘 설득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25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사울이 사무엘에게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자기의 잘못은 인간에게 범한 잘못 정도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의 마음만 돌리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인 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30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니다.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사울의 주된 관심은 자기의 죄를 씻고 하나님께 용서 받는데 있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백성들과 지도자들 앞에서 자기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보려는데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 버림받았음을 통고받고서도 자신의 왕권을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버릴 수 있습니다.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라는 것을 알고 나면 진정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하나님께 버림받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회개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한 번은 아프리카 콩고의 한 마을 전체가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부흥은 한 여인의 진실한 회개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이 여인의 마음이 성령님께 깊이 붙들리어 자기의 삶을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여인은 교회에 바쳐진 쌀을 한 자루 갖다 쓴 것이 왜 그런지 마음에 자꾸만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눈물로 통회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그것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성도들 앞에 고백합니다. '사실, 이 쌀은 교회에서 쓰여 져야 할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자 또 한 여인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이어 남자 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이 죄 고백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이 마을 전체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를 범했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통회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뜨겁게 안아주십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 귀히 쓰임 받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무서운 것은 죄가 아니고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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